창녕조씨 영적비 및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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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 00:00
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 창녕조씨 영적비 및 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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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 창녕군 향토유적 제36호 |
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 유형문화유적 |
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 조각 |
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 |
소재지지번주소 lnmadr |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대암리 386 |
위도 latitude | 35.58473038 |
경도 longitude | 128.4973338 |
지정일자 appnDate | 2002-08-28 |
소유주체구분 posesnSe | 사유 |
소유자명 ownerNm | 창녕조씨만호공파조도암종중 |
규모 scale | 1기 |
조성시대 makePd | 조선 |
이미지정보 picInfo | |
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 창녕조씨 영적비 및 비각은 창녕조씨의 시조 조계룡(曺繼龍)의 사적과 영험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와 비각이다. 이건창(李建昌)이 짓고, 후손 조인승(曺寅承)이 썼으며, 제액의 전자는 조두환(曺斗煥)이 썼다. 상단부에 ’창녕조씨시조 신라태사부마도위 창성부원군 영적비(昌寧曺氏始祖 新羅太師駙馬都尉 昌城府院君 靈蹟碑)’라고 전자로 썼으며, 본문은 단정한 해서로 쓰여져 있다. 창녕조씨는 시조 이래 고려시대 8명의 평장사, 9명의 소감을 배출하였으며, 조선왕조 들어와서 덕이 쌓여 서로 이어져 나라의 대성이 되었다고 전제하고, 시조 조계룡의 어머니는 신라 한림학사 광옥(光玉)의 딸로 처녀 때 배가 아파 화왕산의 용지에 기도하였더니 동해용왕의 아들 옥결로 인하여 아들 계룡을 낳았다. 계룡은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으며 동래에서 왜적을 막았다. 고종 29년(1892) 시조의 탄생처인 화왕산 용지에 비석을 세우고자 후손들이 의논하고 이조참판 조인승이 이를 주관하고 이건창에게 비문을 부탁하였다. 동쪽 면(전면)은 이건창의 글을 새겼으며, 서쪽 면(뒷면)에는 후손 병의(柄義)가 쓴 음기와 함께 비의 건립을 주도한 도청(都廳) 전승지 시영(始永)과 군수 유승(有承)의 이름을 새겼으며, 좌측 옆면에 글의 지은이와 글씨, 전액을 쓴 사람의 명단을 새겼다. 우측 옆면은 전액만 새겼고 본문은 새기지 않았다. |
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 031-770-3310 |
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 창녕조씨만호공파조도암종중 |
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 2022-01-09 |
ctprvnNm | 경상남도 |
sigunguNm | 창녕군 |
sido | 38 |
sigungu | 38330 |
upmyun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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