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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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9 00:00
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 형수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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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 22 |
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 유형문화유적 |
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 기념물 |
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내부길 30-6 |
소재지지번주소 lnmadr | |
위도 latitude | 36.13683473 |
경도 longitude | 127.508474 |
지정일자 appnDate | 2011-08-16 |
소유주체구분 posesnSe | 사유 |
소유자명 ownerNm | 천안전씨 |
규모 scale | 1동 |
조성시대 makePd | |
이미지정보 picInfo | |
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 형수당은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한 전유(全瑜), 전완(全琬), 전구(全球) 삼형제를 배향한 사당이다. 삼형제는 대현(大賢)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문하에 수학하였으나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형제가 한 집안에 같이 살면서 힘을 다해서 부모봉양과 형제 우애를 위해서만 힘썼다고 전한다. 어버이가 돌아가셨을 때 50세가 넘은 나이였으나 슬피 울음과 사모함이 주위 사람까지 감동하였고, 상식 올리는 예의와 거처의 변경하는 절차를 한결같이 옛 법을 따르고 석 달 동안을 미음만 먹고 3년 동안 맨밥을 먹으며 담사때가지도 예를 갖추어서 변하지 않았다.송시열선생이 ‘형수당’이란 당호를 직접 써주었는데, 이는 중국 제나라 때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한 전진(田眞) 삼형제의 집에 영고성쇠를 의미하는 자주빛 박태기나무〔紫荊樹〕가 있었다는데서 유래한 것이다.1682년 7월 송시열의 손자인 송주석(宋疇錫)이 형수당기(紫荊堂記)를 지었고, 1726년에 전유의 아들 전덕병(全德炳)이 형수당이란 세 글자와 기문(記文)을 그 당시 금산군수였던 김시발에게 간청하여 군수는 글을 써주었고 이를 새기어 초당에 걸었다. 현판은 퇴색하고 부식하여 1998년에 다시 새기어 걸었고 원판은 사당 안에 보관하고 있다. |
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 041-750-2395 |
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 충청남도 금산군청 |
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 2022-06-29 |
ctprvnNm | 충청남도 |
sigunguNm | 금산군 |
sido | 34 |
sigungu | 34310 |
upmyun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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