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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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 00:00
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 영산 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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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 창녕군 향토유적 제21호 |
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 기념물 |
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 못 |
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 |
소재지지번주소 lnmadr |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서리 139-3 |
위도 latitude | 35.45466418 |
경도 longitude | 128.528286 |
지정일자 appnDate | 1986-05-30 |
소유주체구분 posesnSe | 사유 |
소유자명 ownerNm | 경상남도 창녕군청 |
규모 scale | |
조성시대 makePd | 조선 |
이미지정보 picInfo | |
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 영산 연지는 창녕군 영산면 서리의 영산면사무소 서쪽에 위치한 못이다. 못 가운데 5개의 섬이 있고 그 중 북쪽에 항미정(杭眉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과거 영산에 화재가 잦아 풍수지리설에 의거해 영산의 진산인 영축산의 산세(불기운)를 막기 위해 조성했다고 전한다. 영축산의 정기를 받는 좌청룡인 남산이 낙동강 쪽으로 흐르도록 못을 파고, 못 속에는 용의 알을 형상화한 섬을 조성하여 청룡의 머리를 돌리게 하는 지세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산 연지의 조성 시기는 항미정 기문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현감(縣監) 신관조(申觀朝)가 고을에 부임한 이후 연지를 살펴보니 60여 년 동안 가꾸지 않아 못의 구실을 못한다 하여 만년교(萬年橋)를 중건(고종 29년, 1892)하기 3년 전에 수리한 것으로 전한다. 따라서 현감 신관조가 연지를 수리한 것은 만년교 중건시기보다 3년 전인 고종 26년(1889)으로 보이며, 연지가 처음 조성된 것은 60여년 전인 1830년대 이전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연지는 고종 26년(1889) 수리 시에 확장된 크기로 처음에는 이보다 작은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못을 다시 파고 개울물을 끌어들여 연지를 수리하였으며, 하늘의 오성을 본따 다섯 개의 섬을 만들고 연못 둘레에는 불막이로 버드나무를 심어 잦은 화재를 막았다. 3년 뒤인 고종 29년(1892) 연지의 가운데 큰 섬에 한 칸의 초가 정자를 세우고 중국의 유명한 항주호수의 미정(眉亭)에 비하여 현판을 항미정(杭眉亭)이라 하였다. 항미정은 이후 1920년대 2칸의 기와 정자로 개축하였다가 1971년 다시 육각 정자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1982년 5월 30일 호국공원 조성시에 영산 연지의 섬 4개와 주변을 정화했다. |
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 031-770-3310 |
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 경상남도 창녕군청 |
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 2022-01-09 |
ctprvnNm | 경상남도 |
sigunguNm | 창녕군 |
sido | 38 |
sigungu | 38330 |
upmyundo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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