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 창녕군
창녕 망우정
창녕 망우정은 굽이치는 낙동강과 강변 모래사장이 내려다보이는 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3칸짜리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1552~1617)가 생전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망우정은 ’근심을 잊고 살겠다 ’는 뜻을 지닌 이름으로, 망우당이라는 곽재우의 호도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한다. 곽재우는 관직에 미련을 두지 않았는데 이는 이순신 장군의 투옥과 절친했던 의병장 김덕령의 무고한 옥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곽재우는 선조 33년(1600) 봄에 병을 이유로 삼아 경상좌도병마절도사직을 사직한 후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2년 동안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되었고, 그 후 현풍 비슬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다가 선조 35년(1602) 영산현 남쪽 창암진(蒼巖津, 지금의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강가에 망우정을 짓고 기거하였다. 선조 37년(1604)과 광해군 2년(1610) 조정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하고 잠시 관직에 나간 적이 있으나 삼도수군 통제사·한성부 우윤·한성부 좌윤·전라도 병마절도사 등의 관직을 수차례 거절하였다. 곽재우는 나룻배를 띄워 낚시를 하고, 거문고와 차를 가까이 하며 망우정에서 만년을 보냈다고 알려진다. 곽재우는 죽기 전에 외손자 이도순(李道純, 1585~1625)에게 망우정을 물려주었는데, 그 후로 명칭이 여현정(餘賢亭)으로 바뀌었다. 여현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 간송당(澗松堂) 조임도(趙任道, 1585~1664)가 이도순에게 제안한 명칭으로, ’곽재우가 어진 이에게 물려준 정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한 사연은 건물 내부에 걸려 있는 ’여현정기(餘賢亭記)’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망우정 뒤쪽으로는 정조 13년(1789)에 고을 유림들이 세운 창녕 망우당 곽재우 유허비와 근래에 세운 충익공 망우당 곽선생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망우정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72년 벽진이씨(碧珍李氏) 후손들이 중수하였고, 1979년 창녕군에서 전면 보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