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 창녕군
이이존 교지첩
이이존 교지첩은 조선 인조 연간에 이이존李以存(1609~미상)에게 내린 교지 등을 모아 첩帖으로 만든 것이다. 이이존을 조산대부(朝散大夫) 행 홍문관부수찬 지제교(行弘文館副修撰知製敎)에 제수하는 교지를 비롯하여, 숭덕(崇德) 7년(인조 20년, 1642) 7월 13일에 역마를 타고 속히 올라오라는 내용의 유지(有旨) 등이 있다. 유지의 내용은 “이제 경을 홍문관 부수찬에 제수한다. 경연(經筵)에 입번(入番)하는 일은 긴요하니 경은 역마를 타고 속히 올라오라.”는 것이다. 유지는 승정원의 담당 승지承旨가 왕명을 받아 그 내용을 직접 작성하여 명령을 받는 이에게 전달하는 왕의 명령서를 이른다. 조산대부는 조선시대 종4품의 종친(宗親) 문관(文官) 벼슬이다. 숭덕은 중국 청나라 태종(太宗)의 연호로 1636년부터 1643년까지 사용되었다. 태종의 재위 기간인 1636년부터 1643년까지의 문서는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숭덕을 쓰기도 하였지만 연호 없이 간지만을 쓰거나 명나라 의종(毅宗)의 연호인 숭정(崇禎)을 쓰고 있는 경우도 발견된다. 이는 당시 조선의 대외적인 정치혼란에 따른 것으로, 조선이 1636년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청나라 개국 초에 대외적으로는 청나라의 요구에 따라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였지만 대내적으로는 문서에 간지를 기재하거나 명나라 숭정의 연호를 사용하는 식으로 그 반감을 드러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이존의 자(字)는 존오(存吾), 본관은 여주(驪州)이다. 인조 8년(163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인조 17년(1639)에 문과 별시(別試) 갑과(甲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 이조 정랑(吏曹 正郞), 홍문관 응교(弘文館 應敎), 진주 목사(晉州 牧使) 등을 지냈다. 정확한 사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효종 1년(1650) 4월 23일 서용敍用하라는 기사가 보이고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지은 이이존의 만사(輓詞)가 『청음집(淸陰集)』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1650년에서 1652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