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묘역 및 신도비
0
374
2021.11.02 00:00
향토문화유적명 relicsNm | 강주묘역 및 신도비 |
---|---|
문화유적지정번호 appnNo | 지정번호 없음 |
향토문화유적구분 relicsKnd | 유형문화유적 |
향토문화유적종류 relicsSe | 묘 및 비 |
소재지도로명주소 rdnmadr | |
소재지지번주소 lnmadr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궁평리 산5-6 |
위도 latitude | 36.70947932 |
경도 longitude | 126.9988788 |
지정일자 appnDate | 2021-09-05 |
소유주체구분 posesnSe | 사유 |
소유자명 ownerNm | 진주강씨 죽창공파종중 |
규모 scale | 분묘1, 석물7, 묘표1, 신도비1 |
조성시대 makePd | 조선 |
이미지정보 picInfo | |
향토문화유적소개 relicsIntrcn | 조선 중기의 문신 죽창 강주(姜?, 1567~1650)의 묘소에 있는 묘표다. 강주의 묘소에는 봉분 앞의 묘표 외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다. 향로석과 좌우의 문인석, 망주석 등의 석물은 상당히 고풍스럽고, 모양과 조각 솜씨가 아름다울 만큼 뛰어나다. 계체석도 보기 드물게 큰 장대석을 이용했다. 당시 충청도 관찰사였던 아들 강백년이 무척 공 들여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대리암으로 만든 비신은 윗부분이 둥근 원수(圓首) 형태의 비갈이며 입자가 치밀해서 질이 좋은 석재를 이용했다. 대좌는 석질이 거친 화강암이고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특히 비좌 부분이 비석에 비해 커서 맞지 않는다. 풍화도 상당히 진행되었지만, 윗부분의 복련 무늬와 앞면의 안상 두 개 등이 신도비의 대좌와 비슷하다. 비신과 대좌가 맞지 않는 이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묘표의 앞면에는 ‘有明朝鮮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左議政兼 領經筵監春秋館事 世子傅行折衛將軍 僉知中樞府事 知製敎 姜公之墓 贈貞敬夫人 安東金氏?左(유명조선 증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겸 영경연감춘추관사 세자부행절위장군 첨지중추부사 지제교 강공지묘 증정경부인 안동김씨부좌)’라 새겨져 있다. 뒷면의 음기에 따르면 이 묘표는 1654년(효종 5)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맏사위인 시암 조상우(趙相禹)가 짓고 강주의 차남이자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강백년(姜栢年)이 썼다. 강주 신도비는 아산지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도비다. 장방형 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올린 이른바 ‘비좌이수’ 형태이다. 비신이 상대적으로 좁고 얇아서 날렵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화강암 대좌는 윗부분이 약간 높게 처리하고 복련을 조각하였으며 비를 꽂는 비좌는 테를 표현하였다. 앞면과 뒷면에는 음각으로 칸을 구분하여 각 하나씩의 안상을 조각하였고 양 옆면도 하나의 안상을 조각하였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수는 하단에 연잎들을 배치하고 그 위에 앞쪽은 한 쌍의 용을, 뒤쪽에는 한 마리의 용을 조각하였다. 이수의 매우 정교하고 뚜렷하여 아름답게 느껴질 만큼 뛰어난 조각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대리암으로 조성된 비신에는 앞 뒷면에 작은 글씨로 비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윗부분의 두전은 ‘贈左議政竹窓姜公神道碑銘(증좌의정 죽창강공 신도비명)’이다. 비문은 김시국(金蓍國)이 짓고 유심(柳?)이 글씨를 썼으며 김광욱(金光煜)이 전서를 썼다. |
관리기관전화번호 phoneNumber | 041-536-8775 |
관리기관명 institutionNm | 충청남도 아산시청 |
데이터기준일자 referenceDate | 2021-11-02 |
ctprvnNm | 충청남도 |
sigunguNm | 아산시 |
sido | 34 |
sigungu | 34040 |
upmyundong | |
네이버 블로그 관련글 | |
Array ( [bo_table] => public_nvpc_cltur [page] => 200 [wr_id] => 17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