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간제

한국무속신앙사전
문을 지키는 문신(門神)에게 행해지는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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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지키는 문신(門神)에게 행해지는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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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학
정의문을 지키는 문신(門神)에게 행해지는 제의.
정의문을 지키는 문신(門神)에게 행해지는 제의.
내용문신은 [대문](/topic/대문)으로 들어가는 잡귀나 부정을 막는 문에 깃든 신이다. 중국에서는 주로 그림이나 글로 묘사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에 구전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지역에서는 육지의 대문에 해당하는 정살과 정주목에 있는 신을 ‘남선비’라 부른다. 경기․충청도 지역에서는 대문을 지키는 신을 ‘남해대[장군](/topic/장군)’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대문이 흔히 남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군이라는 호칭은 문신이 무관(武官)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무속에서 무당들은 출입문의 신을 ‘수문(守門)대감’이라고 한다. 과거 문헌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처럼 문신을 그림이나 글로 붙인 사례가 보이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민간에서 대문신은 실제 형상이 없는 ‘[건궁](/topic/건궁)’으로 섬기고 있는 셈이다.
내용문신은 [대문](/topic/대문)으로 들어가는 잡귀나 부정을 막는 문에 깃든 신이다. 중국에서는 주로 그림이나 글로 묘사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에 구전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지역에서는 육지의 대문에 해당하는 정살과 정주목에 있는 신을 ‘남선비’라 부른다. 경기․충청도 지역에서는 대문을 지키는 신을 ‘남해대[장군](/topic/장군)’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대문이 흔히 남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군이라는 호칭은 문신이 무관(武官)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무속에서 무당들은 출입문의 신을 ‘수문(守門)대감’이라고 한다. 과거 문헌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처럼 문신을 그림이나 글로 붙인 사례가 보이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민간에서 대문신은 실제 형상이 없는 ‘[건궁](/topic/건궁)’으로 섬기고 있는 셈이다.
역사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문신을 붙이는 풍습을 볼 수 없지만 과거에는 [대문](/topic/대문)에 문신을 붙이는 풍습이 있었음을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용재총화](/topic/용재총화)(慵齋叢話)』․『[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열양세시기](/topic/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처용(處容), 직일[장군](/topic/장군)(直日神將), 울지공(尉遲恭), 진숙보(秦叔寶), 귀두(鬼頭), 종규(鍾馗), 각귀(角鬼), 위정공(魏鄭公) 등이 문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처용(處容)을 제외한 다른 신들은 중국에서 들어온 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신은 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라인들이 처용의 그림을 벽사의 의미로 문에 붙였다고 적고 있다. 이 같은 기록이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에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의 풍습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것이 도교의 유입과 시대적 변천에 따라 문신으로서의 위용보다는 주술적 성향이 강조된 부적으로 간주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3 잡지 제1 제사 조에는 “성문(城門)에서 제사를 드렸다.”라는 단편적인 기록이 보인다. 중국 『[예기](/topic/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주(周)나라 때부터 여름 제사 음식으로 개고기가 쓰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사기(史記)』의 12제후연표(史記․12諸侯年表)와 진본기(史記․秦本紀)에도 충해(蟲害)를 방지하기 위해 진(秦)나라에서는 복날에 개를 잡아 읍문(邑門)에 걸어 놓고 제사 지냈음을 적고 있다. 한나라 때 응소(應邵)의 『풍속통의(風俗通儀)』에는 그믐날에 닭을 죽여 문호(門戶) 제사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성문 제사의 제물은 중국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개나 닭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문짝에 뿌려서 액운을 제거하는 풍속이 있다. 중국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문에 제사를 지낸다. 먼저 버들가지를 문에 꽂은 뒤 팥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끼얹고 제사를 지낸다.”라고 적고 있다. 동짓날에 팥죽을 문에 뿌리는 것은 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미도 있다.
역사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문신을 붙이는 풍습을 볼 수 없지만 과거에는 [대문](/topic/대문)에 문신을 붙이는 풍습이 있었음을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용재총화](/topic/용재총화)(慵齋叢話)』․『[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열양세시기](/topic/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처용(處容), 직일[장군](/topic/장군)(直日神將), 울지공(尉遲恭), 진숙보(秦叔寶), 귀두(鬼頭), 종규(鍾馗), 각귀(角鬼), 위정공(魏鄭公) 등이 문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처용(處容)을 제외한 다른 신들은 중국에서 들어온 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신은 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라인들이 처용의 그림을 벽사의 의미로 문에 붙였다고 적고 있다. 이 같은 기록이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에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의 풍습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것이 도교의 유입과 시대적 변천에 따라 문신으로서의 위용보다는 주술적 성향이 강조된 부적으로 간주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3 잡지 제1 제사 조에는 “성문(城門)에서 제사를 드렸다.”라는 단편적인 기록이 보인다. 중국 『[예기](/topic/예기)(禮記)』 월령(月令)에는 주(周)나라 때부터 여름 제사 음식으로 개고기가 쓰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사기(史記)』의 12제후연표(史記․12諸侯年表)와 진본기(史記․秦本紀)에도 충해(蟲害)를 방지하기 위해 진(秦)나라에서는 복날에 개를 잡아 읍문(邑門)에 걸어 놓고 제사 지냈음을 적고 있다. 한나라 때 응소(應邵)의 『풍속통의(風俗通儀)』에는 그믐날에 닭을 죽여 문호(門戶) 제사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성문 제사의 제물은 중국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개나 닭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문짝에 뿌려서 액운을 제거하는 풍속이 있다. 중국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문에 제사를 지낸다. 먼저 버들가지를 문에 꽂은 뒤 팥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끼얹고 제사를 지낸다.”라고 적고 있다. 동짓날에 팥죽을 문에 뿌리는 것은 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미도 있다.
지역사례우리나라에서는 굿을 할 때 문굿을 한다. 시월상달에 [가신](/topic/가신)(家神)들에게 제를 지낼 때도 [대문](/topic/대문)을 활짝 열고 문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천신의 의미로 문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충청도지역에서는 문간을 바라보고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 ‘문간제’라 한다.

충청북도 청양지역에서는 동지 제사 때도 깨끗한 짚 위에 [시루떡](/topic/시루떡)을 올리고 대문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이때 ‘[장군](/topic/장군)’이라는 호칭을 들면서 가내 평안을 기원한다. 이것을 보면 무장(武將)을 문신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이천지역에서는 대문이 남향이기 때문에 방위를 따서 ‘남방장군’이라는 호칭으로 문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때 별도의 [제물](/topic/제물)은 진설하지 않는다.

문간제를 충청도 일부지역에서는 정월 초에 날을 받아 지내기도 한다. 이때 집 앞에 [금줄](/topic/금줄)을 치며, [손 없는 날](/topic/손없는날)에 [황토](/topic/황토)를 퍼다 놓고 부정을 가린다. [고사](/topic/고사)일 저녁에 문을 열어 놓고 밥, 나물, 과일, 시루를 문간에 바친다. 이밖에 사업을 시작하거나 집터가 도깨비터인 경우에도 문간제를 지낸다.
참고문헌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제주도 (문화재관리국, 1974)
[조선무속고](/topic/조선무속고) (이능화, 백록, 1976)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서울 (문화재관리국, 1979)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전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문과 상징 (정연학, 시월, 2009)
지역사례우리나라에서는 굿을 할 때 문굿을 한다. 시월상달에 [가신](/topic/가신)(家神)들에게 제를 지낼 때도 [대문](/topic/대문)을 활짝 열고 문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천신의 의미로 문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충청도지역에서는 문간을 바라보고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 ‘문간제’라 한다.

충청북도 청양지역에서는 동지 제사 때도 깨끗한 짚 위에 [시루떡](/topic/시루떡)을 올리고 대문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이때 ‘[장군](/topic/장군)’이라는 호칭을 들면서 가내 평안을 기원한다. 이것을 보면 무장(武將)을 문신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이천지역에서는 대문이 남향이기 때문에 방위를 따서 ‘남방장군’이라는 호칭으로 문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때 별도의 [제물](/topic/제물)은 진설하지 않는다.

문간제를 충청도 일부지역에서는 정월 초에 날을 받아 지내기도 한다. 이때 집 앞에 [금줄](/topic/금줄)을 치며, [손 없는 날](/topic/손없는날)에 [황토](/topic/황토)를 퍼다 놓고 부정을 가린다. [고사](/topic/고사)일 저녁에 문을 열어 놓고 밥, 나물, 과일, 시루를 문간에 바친다. 이밖에 사업을 시작하거나 집터가 도깨비터인 경우에도 문간제를 지낸다.
참고문헌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제주도 (문화재관리국, 1974)
[조선무속고](/topic/조선무속고) (이능화, 백록, 1976)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서울 (문화재관리국, 1979)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전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문과 상징 (정연학, 시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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