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고사

한국무속신앙사전
동지고사
동짓달(음력11월) 저녁에 각 가정에서 주로 주부가 제액초복(除厄招福)을 목적으로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리고 [가신](/topic/가신)(家神)에게 팥죽을 올리는 세시 의례적 [고사](/topic/고사). 지방에 따라서는 팥죽제, 동지차례(冬至茶禮), 동지맞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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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음력11월) 저녁에 각 가정에서 주로 주부가 제액초복(除厄招福)을 목적으로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리고 [가신](/topic/가신)(家神)에게 팥죽을 올리는 세시 의례적 [고사](/topic/고사). 지방에 따라서는 팥죽제, 동지차례(冬至茶禮), 동지맞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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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동짓달(음력11월) 저녁에 각 가정에서 주로 주부가 제액초복(除厄招福)을 목적으로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리고 [가신](/topic/가신)(家神)에게 팥죽을 올리는 세시 의례적 [고사](/topic/고사). 지방에 따라서는 팥죽제, 동지차례(冬至茶禮), 동지맞이라고도 한다.
정의동짓달(음력11월) 저녁에 각 가정에서 주로 주부가 제액초복(除厄招福)을 목적으로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리고 [가신](/topic/가신)(家神)에게 팥죽을 올리는 세시 의례적 [고사](/topic/고사). 지방에 따라서는 팥죽제, 동지차례(冬至茶禮), 동지맞이라고도 한다.
내용동지고사는 매년 11월 동짓날 정해진 시에 지낸다.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topic/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topic/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topic/노동지)라고 한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지만 애동지에는 쑤어 먹지 않는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애동지 때는 팥죽 대신 팥떡을 해 먹기도 한다.

동지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제수는 팥죽이다. 팥죽은 먼저 팥을 큰 솥에다 넣고 한참 동안 고아서 퍼질 때쯤 쌀을 넣고 끓이다가 새알심을 넣고 다시 쑨다. 이렇게 쑨 팥죽은 [사당](/topic/사당)이 있는 집에서는 먼저 사당에 바쳐 차례를 지낸다. 그러고 나서 성주, 조왕, 삼신, 용단지 등 [가신](/topic/가신)(家神)들의 거처인 방․[마루](/topic/마루)․광 등 집안의 곳곳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topic/대문)이나 벽에다 팥죽을 뿌린 다음 먹는다.

가신에게 팥죽을 바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각 가정의 주부가 하지만 사당에서 동지차례를 지내는 것은 집안의 남자들이 한다. 사당에서는 팥죽 외에 과일 등 다른 제수도 함께 차려서 설과 추석 때처럼 강신(降神), [독축](/topic/독축)(讀祝), 재배(再拜) 등 순으로 차례를 지낸다. 불교 신도들은 이날 절에 가서 [동지불공](/topic/동지불공)을 드리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동네의 고목에도 뿌리고, 팥죽이 부글부글 끓을 때 그 국물을 떠서 곳곳에 뿌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잡귀의 범접을 막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용동지고사는 매년 11월 동짓날 정해진 시에 지낸다. 동지가 초순에 들면 [애동지](/topic/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topic/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topic/노동지)라고 한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지만 애동지에는 쑤어 먹지 않는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애동지 때는 팥죽 대신 팥떡을 해 먹기도 한다.

동지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제수는 팥죽이다. 팥죽은 먼저 팥을 큰 솥에다 넣고 한참 동안 고아서 퍼질 때쯤 쌀을 넣고 끓이다가 새알심을 넣고 다시 쑨다. 이렇게 쑨 팥죽은 [사당](/topic/사당)이 있는 집에서는 먼저 사당에 바쳐 차례를 지낸다. 그러고 나서 성주, 조왕, 삼신, 용단지 등 [가신](/topic/가신)(家神)들의 거처인 방․[마루](/topic/마루)․광 등 집안의 곳곳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topic/대문)이나 벽에다 팥죽을 뿌린 다음 먹는다.

가신에게 팥죽을 바치는 것은 일반적으로 각 가정의 주부가 하지만 사당에서 동지차례를 지내는 것은 집안의 남자들이 한다. 사당에서는 팥죽 외에 과일 등 다른 제수도 함께 차려서 설과 추석 때처럼 강신(降神), [독축](/topic/독축)(讀祝), 재배(再拜) 등 순으로 차례를 지낸다. 불교 신도들은 이날 절에 가서 [동지불공](/topic/동지불공)을 드리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동네의 고목에도 뿌리고, 팥죽이 부글부글 끓을 때 그 국물을 떠서 곳곳에 뿌리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잡귀의 범접을 막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역사24절기의 맨 처음은 입춘이며 동지는 22번째에 해당한다. 동짓날은 태양이 남회귀선(南回歸線)인 적도의 남쪽 23.5도, 즉 동지선(冬至線)에 이르는 때이다. 이 날 지구의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하지로부터 차츰 짧아진 낮의 길이가 이날에 이르러서 가장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다. 옛날 사람들은 이를 태양의 부활로 여겨 에서 “일양(一陽)이 생(生)하도다”한 것처럼 하나의 명절(名節)로 삼았다. 동지를 [아세](/topic/아세)(亞歲)라 한다든지 고대의 역법에서 설날로 삼았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후한(後漢) 때 최식(崔寔)의 에도 이날 조상에 대한 제사는 물론 존장(尊長), 군사(軍師), 기로(耆老) 등에 대하여 정월에 모시듯이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周)나라에서는 중동(仲冬), 즉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정했다. 또 『송서(宋書)』에 따르면 동지에도 원일(元日)과 같이 조하(朝賀), 향사(享祀)의 의식을 한다고 하였다. 당(唐)나라의 선명력(宣明曆)에서도 갑자삭야반동지(甲子朔夜半冬至)를 역(曆)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잡고 있다. 『역경(易經)』에서 동지를 태양의 운행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보고 부괘(復卦)를 11월에 배치한 것도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동짓달을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이란 뜻으로 [자월](/topic/자월)(子月)이라 하고, 동짓달 열나흘날 밤을 섣달 그믐날밤처럼 제석(除夕)이라 한 것도 동지를 설과 같이 여겼기 때문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에 따르면 당(唐)의 선명력은 이미 신라 때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사용되었다. 고려에서도 이를 이어 쓰다가 1309년(충선왕 원년)에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꾸어 씀으로써 폐지되었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인식했음을 짐작케 하는 풍습들이 보인다. 관상감(觀象監)에서 이듬해의 달력을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하면 임금은 이 역서(曆書)에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를 찍어 모든 관원[百官]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역서는 장정(裝幀)한 색깔에 따라 황장력(黃裝曆), 청장력(靑裝曆), 백장력(白裝曆)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황장력을 제일로 쳤다. 『[열양세시기](/topic/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각 관아에서도 동지 전에 미리 준비해 둔 종이를 관상감에 주어 역서를 찍도록 부탁하고 이를 고향 친지 및 이웃들과 나누어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궁중에서는 설과 동지를 연중 가장 으뜸 되는 축일로 여겼다. 이날에는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관계(官桂), 후추, 설탕, 꿀 등을 쇠[가죽](/topic/가죽)과 섞어 삶아서 기름에 엉기도록 만든 [전약](/topic/전약)(煎藥)을 임금께 진상하고 나누어 먹었다.

민간에서도 동지 무렵에 제주도지역에서는 귤과 [감자](/topic/감자), 평안도․함경도에서는 청어를 각각 진상하는 등 이날을 명일로 여겼다. 이 날 팥죽을 끓여 [사당](/topic/사당)의 조상은 물론 집안 곳곳의 [가신](/topic/가신)(家神)에게도 바친 뒤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다. 설날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 한 살을 먹은 것으로 치는 풍습처럼 이날 동지팥죽을 쑤어 먹음으로써 나이 한 살을 먹은 것으로 치는 풍습도 여기에서 온 유습으로 해석된다. 이날 팥죽을 먹는 것은 팥의 붉은색이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 준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동국세시기』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인용하여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자식이 팥을 두려워했는데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疫鬼)가 되었으므로 팥죽을 쑤어 물리친다’고 하였다.
역사24절기의 맨 처음은 입춘이며 동지는 22번째에 해당한다. 동짓날은 태양이 남회귀선(南回歸線)인 적도의 남쪽 23.5도, 즉 동지선(冬至線)에 이르는 때이다. 이 날 지구의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하지로부터 차츰 짧아진 낮의 길이가 이날에 이르러서 가장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다. 옛날 사람들은 이를 태양의 부활로 여겨 에서 “일양(一陽)이 생(生)하도다”한 것처럼 하나의 명절(名節)로 삼았다. 동지를 [아세](/topic/아세)(亞歲)라 한다든지 고대의 역법에서 설날로 삼았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후한(後漢) 때 최식(崔寔)의 에도 이날 조상에 대한 제사는 물론 존장(尊長), 군사(軍師), 기로(耆老) 등에 대하여 정월에 모시듯이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周)나라에서는 중동(仲冬), 즉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정했다. 또 『송서(宋書)』에 따르면 동지에도 원일(元日)과 같이 조하(朝賀), 향사(享祀)의 의식을 한다고 하였다. 당(唐)나라의 선명력(宣明曆)에서도 갑자삭야반동지(甲子朔夜半冬至)를 역(曆)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잡고 있다. 『역경(易經)』에서 동지를 태양의 운행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보고 부괘(復卦)를 11월에 배치한 것도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동짓달을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이란 뜻으로 [자월](/topic/자월)(子月)이라 하고, 동짓달 열나흘날 밤을 섣달 그믐날밤처럼 제석(除夕)이라 한 것도 동지를 설과 같이 여겼기 때문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에 따르면 당(唐)의 선명력은 이미 신라 때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사용되었다. 고려에서도 이를 이어 쓰다가 1309년(충선왕 원년)에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꾸어 씀으로써 폐지되었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인식했음을 짐작케 하는 풍습들이 보인다. 관상감(觀象監)에서 이듬해의 달력을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하면 임금은 이 역서(曆書)에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어새(御璽)를 찍어 모든 관원[百官]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역서는 장정(裝幀)한 색깔에 따라 황장력(黃裝曆), 청장력(靑裝曆), 백장력(白裝曆)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황장력을 제일로 쳤다. 『[열양세시기](/topic/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각 관아에서도 동지 전에 미리 준비해 둔 종이를 관상감에 주어 역서를 찍도록 부탁하고 이를 고향 친지 및 이웃들과 나누어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궁중에서는 설과 동지를 연중 가장 으뜸 되는 축일로 여겼다. 이날에는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관계(官桂), 후추, 설탕, 꿀 등을 쇠[가죽](/topic/가죽)과 섞어 삶아서 기름에 엉기도록 만든 [전약](/topic/전약)(煎藥)을 임금께 진상하고 나누어 먹었다.

민간에서도 동지 무렵에 제주도지역에서는 귤과 [감자](/topic/감자), 평안도․함경도에서는 청어를 각각 진상하는 등 이날을 명일로 여겼다. 이 날 팥죽을 끓여 [사당](/topic/사당)의 조상은 물론 집안 곳곳의 [가신](/topic/가신)(家神)에게도 바친 뒤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다. 설날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 한 살을 먹은 것으로 치는 풍습처럼 이날 동지팥죽을 쑤어 먹음으로써 나이 한 살을 먹은 것으로 치는 풍습도 여기에서 온 유습으로 해석된다. 이날 팥죽을 먹는 것은 팥의 붉은색이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 준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동국세시기』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인용하여 ‘공공씨(共工氏)의 재주 없는 자식이 팥을 두려워했는데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疫鬼)가 되었으므로 팥죽을 쑤어 물리친다’고 하였다.
지역사례오늘날 동지팥죽을 쑤어서 [사당](/topic/사당)이나 조상에게 바치고 집안의 곳곳에 뿌리는 등 전통적인 방법을 그대로 고수하는 가정은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아직도 이러한 전통을 지키는 가정이 있다. 적어도 동지팥죽을 쑤어서 온 가족이 나누어 먹는 풍속은 전국적으로 폭넓게 전승되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서지[마을](/topic/마을)에서는 팥죽을 쑤어서 먼저 사당의 조상님들께 바친다. 그 후 바[가지](/topic/가지)에 팥죽을 담아 [대문](/topic/대문)과 문짝에 뿌린다.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물려라. 조씨 터전에 잡귀잡신을 물려라.”라고 외치면서 집의 바깥쪽에서 안쪽을 향하여 뿌린다고 한다.

태백시 구문소동 동점마을에서는 동지팥죽을 쑤어서 먹으면 그해에 드는 살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 속신이 있다. 그러나 초승에 드는 애기동지 때는 쑤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무시하고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아기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집안에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있을 경우 절대 팥죽을 쑤어 먹지 않는다. 액을 막지 못한 집이기 때문에 아예 팥죽을 쑤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팥죽이 끓을 때 팥죽 물을 조금 떠서 [마당](/topic/마당)에 뿌리는 것을 예방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한 해 동안 잡귀가 들지 못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절에 가서 팥죽을 쑤어 기도를 한 뒤에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에서는 집안에 우환이 들거나 아이가 탈이 나서 고생을 한 해에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집의 네 [기둥](/topic/기둥)에다 뿌린다. [이사](/topic/이사)를 갔을 때에도 네 기둥에다 팥죽을 뿌린다. 또한 집 주위의 사방을 돌면서 [메밀](/topic/메밀)을 뿌려 놓기도 한다. 집안에 우환이 들었을 때도 메밀을 뿌린다. 그러나 특별한 일 없이 무사히 넘어간 해에는 팥죽이나 메밀을 뿌리지 않는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용화리에서는 초순에 드는 애기동지 때는 팥죽을 쑤지 않고 하순에 들 때만 쑤어 먹는다. 팥죽을 쑬 때 팥죽물이 한창 끓게 되면 그것을 바가지에 퍼 담아 들고 다니면서 솔잎에 묻히거나 숟가락으로 떠서 집안 곳곳에 뿌린다. 이를 뱅이[예방]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붉은색을 싫어하는 귀신이 범접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후 사당에 팥죽, 적, 과일 등을 놓고 간단하게 차례를 올린다. 동지차례는 설과 추석 때처럼 집안의 남자들이 모여 [독축](/topic/독축), 재배 순으로 드린다. 사당이 없으면 [안방](/topic/안방)의 [윗목](/topic/윗목)에 팥죽 상을 차려두어 [조상신](/topic/조상신)이 [흠향](/topic/흠향)(歆饗)토록 하고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다.

청원군 북이면 장재1리 배나무골에서도 초순에 드는 [애동지](/topic/애동지) 때는 팥죽 대신 팥떡을 해 먹고 하순에 드는 [노동지](/topic/노동지)에만 팥죽을 쑤어 먹는다. 동지팥죽을 쑤면 성주, 터주 등에는 놓지 않고 안방에만 한 그릇 떠다 놓는다. 팥떡을 하는 애동지 때도 안방에다 떡을 놓고 조상에게 고한다. 이는 조상님께 바치는 의미라고 한다.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에서는 동짓날 새벽에 찹쌀가루로 새알심 수제비를 빚은 다음 팥을 삶아 걸러낸 팥물을 끓여서 팥죽을 만든다. 팥죽물이 끓으면 주부나 [대주](/topic/대주)가 먼저 한 바가지를 퍼서 솔잎으로 적셔 집안 곳곳에 골고루 뿌린다. 이렇게 하면 팥죽물이 뜨겁기 때문에 귀신이 겁을 내어 물러간다고 한다. 이렇게 집안을 깨끗이 한 뒤 주부가 삼신, 지앙, 터주 등의 앞에 팥죽 한 양푼씩을 떠다 놓고 “동지라 팥죽을 끓였으니 많이 잡숩고, 집안에 탈 없고 재수 있게 해 주이소.” 하고 [비손](/topic/비손)을 한다. 동지가 초순에 드는 애기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중순에 드는 [중동지](/topic/중동지)와 하순에 드는 노동지 때만 팥죽을 쑨다. 근래에도 이런 풍습은 일반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가신](/topic/가신)을 모시는 집안에서는 동지고사도 올린다. 그러나 핵가족으로 인해 팥죽을 쑤어도 먹을 사람이 적은 가정에서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나서 팥죽을 먹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쑬 때 한창 끓으면 이를 퍼서 집안 곳곳에 뿌려 잡귀를 막는다. 그런 다음 성주, 조왕, 지석 등 모시는 가신들 앞에 바친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가 새알심을 크게 만들어 [아궁이](/topic/아궁이)의 불 속에 넣은 뒤 꺼내서 보고 새알심의 한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오면 아들, 갈라지면 딸이라고 여기는 새알심 점을 치기도 한다.

영주시 순흥면 배점2리에서는 동지팥죽을 집안의 동서남북에 뿌린 뒤 안방, 마당 , [외양간](/topic/외양간), [뒷간](/topic/뒷간) 등은 물론 대문과 [골목](/topic/골목)에도 뿌린다. 동지팥죽을 쑤지 않은 집에 나누어 주기도 한다. 동지팥죽을 얻어먹으면 좋다는 속신이 있어 여러 집의 팥죽을 얻어먹기도 한다. 그래서 팥죽을 아홉 그릇이나 얻어먹고 [문지방](/topic/문지방)을 넘다가 배가 터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팥죽을 쑤어서 먹을 때는 어른들만 나누어 먹고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는 풍습도 있다. 요즘에는 가정에서 팥죽을 쑤지 않고 절에 가서 얻어먹고 오기도 한다. 동지가 11월 초열흘 이전에 드는 애동지 때에는 팥 [시루떡](/topic/시루떡)을 해 먹는다.

부산광역시 일대에서는 때에 맞추어 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죽을 솔잎에 적셔서 집안 곳곳에 뿌림으로써 잡귀를 쫓는다. 이때의 순서는 [부엌](/topic/부엌), 앞[마루](/topic/마루)의 사방 귀퉁이, 방문 앞의 벽, 대문 , 변소, 외양간 순으로 한다. 초상이 나서 아직 [탈상](/topic/탈상)을 하지 않은 집에서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 이 금기를 어기고 팥죽을 쑤면 부산시 [기장](/topic/기장)군 연화리의 경우 망인의 혼령이 구천을 떠돈다고 하고, 기장군 내리에서는 마을에 줄초상이 난다는 속신이 있다. 금정구 금성동에서는 팥죽을 쑨 다음 먼저 웃물을 떠서 조왕에게 바친 뒤 집안 곳곳에 뿌려서 잡귀를 쫓는다. 동지가 초승에 드는 애기동지 때는 팥죽 대신 팥 시루떡이나 팥밥을 해 먹는다.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차려 놓고 집안 곳곳에 뿌린다. 도깨비가 말 피를 무서워해서 색깔이 비슷한 팥죽을 뿌림으로써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동지가 초승에 드는 애동지 때는 팥떡을 해서 집안 곳곳에 뿌리고, 하순에 드는 노동지 때에는 팥죽을 쑤어 뿌린다. 팥죽을 동지에 맞춰 쑤어서 뿌리면 ‘일 년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신학리 오향마을에서는 예전에 설보다 동지를 더 큰 명절로 여겼다. 동지팥죽을 쑬 때 새알심을 넣는다. 이때 잡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가지로 웃국물만 떠서 집안의 곳곳은 물론 집터에도 골고루 뿌린다. 그런 다음 가장 먼저 선영에 상을 차리면서 팥죽과 함께 묵은 나물 무침, 지진 두부 등도 올린다. 예전에는 동지가 큰 명절이었기에 일반 제사와 마찬가지로 상을 잘 차렸다고 한다. 11월 초순에 드는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시루팥떡을 해 먹는다. 요즘은 동지팥죽을 거의 쑤지 않는다. 쑤더라도 그냥 먹기 위해서이지 신을 섬기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주시 문평면 대도리 입석마을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면 제사 지내는 조상의 수대로 팥죽을 떠 놓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앙과 조왕에는 떠 놓지 않는다. 물론 이는 모든 가정에서 일률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 따라 지앙과 성주 앞에 한 그릇씩 떠 놓기도 한다. 이때 물 두 보시기도 함께 떠 놓다. 이처럼 팥죽을 조상이나 가신 앞에 떠 놓은 뒤 집 주변에다 팥죽을 뿌려서 잡귀를 막는다.

신안군 지도읍 광정리 적거마을에서는 팥죽을 쑤어 가족들이 먹기 전에 먼저 열두 그릇을 떠서 안방의 윗목에다 상을 차리고 [정화수](/topic/정화수)와 함께 올린다. 이후에 양푼에다 팥죽을 퍼서 집 주변에 뿌린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잡귀가 못 들어온다고 한다. 안방에 떠 놓은 팥죽으로 월점(月占)을 치기도 한다. 먼저 정월부터 섣달까지에 해당하는 팥죽 열두 그릇을 떠 놓은 다음 각각 팥죽이 식은 모양을 보고 월점을 치는 것이다. 즉 팥죽에 금이 많이 나 있으면 그 달은 가뭄, 곱게 옷을 입은 상태면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점을 치는 것이다.
참고문헌東國歲時記, 宋書, 易經, 洌陽歲時記, 增補文獻備考, [조선상식](/topic/조선상식) (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의 책력-하 (이은성, 전파과학사, 1978)
한국민속대관 4-[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전승놀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한국민간신앙연구 (김태곤, 집문당, 1983)
한국의 세시풍속 (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한국민속대[사전](/topic/사전) 1 (민족문화사, 1991)
부산지방의 세시풍속 (김승찬, 세종출판사, 1999)
한국의 가정신앙-강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충남․충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경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지역사례오늘날 동지팥죽을 쑤어서 [사당](/topic/사당)이나 조상에게 바치고 집안의 곳곳에 뿌리는 등 전통적인 방법을 그대로 고수하는 가정은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아직도 이러한 전통을 지키는 가정이 있다. 적어도 동지팥죽을 쑤어서 온 가족이 나누어 먹는 풍속은 전국적으로 폭넓게 전승되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 서지[마을](/topic/마을)에서는 팥죽을 쑤어서 먼저 사당의 조상님들께 바친다. 그 후 바[가지](/topic/가지)에 팥죽을 담아 [대문](/topic/대문)과 문짝에 뿌린다.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물려라. 조씨 터전에 잡귀잡신을 물려라.”라고 외치면서 집의 바깥쪽에서 안쪽을 향하여 뿌린다고 한다.

태백시 구문소동 동점마을에서는 동지팥죽을 쑤어서 먹으면 그해에 드는 살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 속신이 있다. 그러나 초승에 드는 애기동지 때는 쑤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무시하고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아기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집안에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있을 경우 절대 팥죽을 쑤어 먹지 않는다. 액을 막지 못한 집이기 때문에 아예 팥죽을 쑤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팥죽이 끓을 때 팥죽 물을 조금 떠서 [마당](/topic/마당)에 뿌리는 것을 예방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한 해 동안 잡귀가 들지 못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절에 가서 팥죽을 쑤어 기도를 한 뒤에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에서는 집안에 우환이 들거나 아이가 탈이 나서 고생을 한 해에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집의 네 [기둥](/topic/기둥)에다 뿌린다. [이사](/topic/이사)를 갔을 때에도 네 기둥에다 팥죽을 뿌린다. 또한 집 주위의 사방을 돌면서 [메밀](/topic/메밀)을 뿌려 놓기도 한다. 집안에 우환이 들었을 때도 메밀을 뿌린다. 그러나 특별한 일 없이 무사히 넘어간 해에는 팥죽이나 메밀을 뿌리지 않는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용화리에서는 초순에 드는 애기동지 때는 팥죽을 쑤지 않고 하순에 들 때만 쑤어 먹는다. 팥죽을 쑬 때 팥죽물이 한창 끓게 되면 그것을 바가지에 퍼 담아 들고 다니면서 솔잎에 묻히거나 숟가락으로 떠서 집안 곳곳에 뿌린다. 이를 뱅이[예방]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붉은색을 싫어하는 귀신이 범접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후 사당에 팥죽, 적, 과일 등을 놓고 간단하게 차례를 올린다. 동지차례는 설과 추석 때처럼 집안의 남자들이 모여 [독축](/topic/독축), 재배 순으로 드린다. 사당이 없으면 [안방](/topic/안방)의 [윗목](/topic/윗목)에 팥죽 상을 차려두어 [조상신](/topic/조상신)이 [흠향](/topic/흠향)(歆饗)토록 하고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다.

청원군 북이면 장재1리 배나무골에서도 초순에 드는 [애동지](/topic/애동지) 때는 팥죽 대신 팥떡을 해 먹고 하순에 드는 [노동지](/topic/노동지)에만 팥죽을 쑤어 먹는다. 동지팥죽을 쑤면 성주, 터주 등에는 놓지 않고 안방에만 한 그릇 떠다 놓는다. 팥떡을 하는 애동지 때도 안방에다 떡을 놓고 조상에게 고한다. 이는 조상님께 바치는 의미라고 한다.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에서는 동짓날 새벽에 찹쌀가루로 새알심 수제비를 빚은 다음 팥을 삶아 걸러낸 팥물을 끓여서 팥죽을 만든다. 팥죽물이 끓으면 주부나 [대주](/topic/대주)가 먼저 한 바가지를 퍼서 솔잎으로 적셔 집안 곳곳에 골고루 뿌린다. 이렇게 하면 팥죽물이 뜨겁기 때문에 귀신이 겁을 내어 물러간다고 한다. 이렇게 집안을 깨끗이 한 뒤 주부가 삼신, 지앙, 터주 등의 앞에 팥죽 한 양푼씩을 떠다 놓고 “동지라 팥죽을 끓였으니 많이 잡숩고, 집안에 탈 없고 재수 있게 해 주이소.” 하고 [비손](/topic/비손)을 한다. 동지가 초순에 드는 애기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중순에 드는 [중동지](/topic/중동지)와 하순에 드는 노동지 때만 팥죽을 쑨다. 근래에도 이런 풍습은 일반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가신](/topic/가신)을 모시는 집안에서는 동지고사도 올린다. 그러나 핵가족으로 인해 팥죽을 쑤어도 먹을 사람이 적은 가정에서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나서 팥죽을 먹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봉화군 상운면 구천리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쑬 때 한창 끓으면 이를 퍼서 집안 곳곳에 뿌려 잡귀를 막는다. 그런 다음 성주, 조왕, 지석 등 모시는 가신들 앞에 바친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가 새알심을 크게 만들어 [아궁이](/topic/아궁이)의 불 속에 넣은 뒤 꺼내서 보고 새알심의 한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오면 아들, 갈라지면 딸이라고 여기는 새알심 점을 치기도 한다.

영주시 순흥면 배점2리에서는 동지팥죽을 집안의 동서남북에 뿌린 뒤 안방, 마당 , [외양간](/topic/외양간), [뒷간](/topic/뒷간) 등은 물론 대문과 [골목](/topic/골목)에도 뿌린다. 동지팥죽을 쑤지 않은 집에 나누어 주기도 한다. 동지팥죽을 얻어먹으면 좋다는 속신이 있어 여러 집의 팥죽을 얻어먹기도 한다. 그래서 팥죽을 아홉 그릇이나 얻어먹고 [문지방](/topic/문지방)을 넘다가 배가 터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팥죽을 쑤어서 먹을 때는 어른들만 나누어 먹고 아이들에게는 주지 않는 풍습도 있다. 요즘에는 가정에서 팥죽을 쑤지 않고 절에 가서 얻어먹고 오기도 한다. 동지가 11월 초열흘 이전에 드는 애동지 때에는 팥 [시루떡](/topic/시루떡)을 해 먹는다.

부산광역시 일대에서는 때에 맞추어 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죽을 솔잎에 적셔서 집안 곳곳에 뿌림으로써 잡귀를 쫓는다. 이때의 순서는 [부엌](/topic/부엌), 앞[마루](/topic/마루)의 사방 귀퉁이, 방문 앞의 벽, 대문 , 변소, 외양간 순으로 한다. 초상이 나서 아직 [탈상](/topic/탈상)을 하지 않은 집에서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 이 금기를 어기고 팥죽을 쑤면 부산시 [기장](/topic/기장)군 연화리의 경우 망인의 혼령이 구천을 떠돈다고 하고, 기장군 내리에서는 마을에 줄초상이 난다는 속신이 있다. 금정구 금성동에서는 팥죽을 쑨 다음 먼저 웃물을 떠서 조왕에게 바친 뒤 집안 곳곳에 뿌려서 잡귀를 쫓는다. 동지가 초승에 드는 애기동지 때는 팥죽 대신 팥 시루떡이나 팥밥을 해 먹는다.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서 차려 놓고 집안 곳곳에 뿌린다. 도깨비가 말 피를 무서워해서 색깔이 비슷한 팥죽을 뿌림으로써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동지가 초승에 드는 애동지 때는 팥떡을 해서 집안 곳곳에 뿌리고, 하순에 드는 노동지 때에는 팥죽을 쑤어 뿌린다. 팥죽을 동지에 맞춰 쑤어서 뿌리면 ‘일 년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신학리 오향마을에서는 예전에 설보다 동지를 더 큰 명절로 여겼다. 동지팥죽을 쑬 때 새알심을 넣는다. 이때 잡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가지로 웃국물만 떠서 집안의 곳곳은 물론 집터에도 골고루 뿌린다. 그런 다음 가장 먼저 선영에 상을 차리면서 팥죽과 함께 묵은 나물 무침, 지진 두부 등도 올린다. 예전에는 동지가 큰 명절이었기에 일반 제사와 마찬가지로 상을 잘 차렸다고 한다. 11월 초순에 드는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시루팥떡을 해 먹는다. 요즘은 동지팥죽을 거의 쑤지 않는다. 쑤더라도 그냥 먹기 위해서이지 신을 섬기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주시 문평면 대도리 입석마을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면 제사 지내는 조상의 수대로 팥죽을 떠 놓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앙과 조왕에는 떠 놓지 않는다. 물론 이는 모든 가정에서 일률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 따라 지앙과 성주 앞에 한 그릇씩 떠 놓기도 한다. 이때 물 두 보시기도 함께 떠 놓다. 이처럼 팥죽을 조상이나 가신 앞에 떠 놓은 뒤 집 주변에다 팥죽을 뿌려서 잡귀를 막는다.

신안군 지도읍 광정리 적거마을에서는 팥죽을 쑤어 가족들이 먹기 전에 먼저 열두 그릇을 떠서 안방의 윗목에다 상을 차리고 [정화수](/topic/정화수)와 함께 올린다. 이후에 양푼에다 팥죽을 퍼서 집 주변에 뿌린다. 이렇게 하면 집안에 잡귀가 못 들어온다고 한다. 안방에 떠 놓은 팥죽으로 월점(月占)을 치기도 한다. 먼저 정월부터 섣달까지에 해당하는 팥죽 열두 그릇을 떠 놓은 다음 각각 팥죽이 식은 모양을 보고 월점을 치는 것이다. 즉 팥죽에 금이 많이 나 있으면 그 달은 가뭄, 곱게 옷을 입은 상태면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점을 치는 것이다.
참고문헌東國歲時記, 宋書, 易經, 洌陽歲時記, 增補文獻備考, [조선상식](/topic/조선상식) (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의 책력-하 (이은성, 전파과학사, 1978)
한국민속대관 4-[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전승놀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한국민간신앙연구 (김태곤, 집문당, 1983)
한국의 세시풍속 (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한국민속대[사전](/topic/사전) 1 (민족문화사, 1991)
부산지방의 세시풍속 (김승찬, 세종출판사, 1999)
한국의 가정신앙-강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충남․충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경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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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읍 산기리 동지팥죽 뿌리기(액을 막기 위해 대문에 뿌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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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읍 산기리 동지팥죽 뿌리기(액을 막기 위해 대문에 뿌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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