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제계

한국무속신앙사전
동제의 준비와 봉행, 동제를 위한 기금이나 전답의 관리 등 동제의 전승을 목적으로 조직된 계(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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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의 준비와 봉행, 동제를 위한 기금이나 전답의 관리 등 동제의 전승을 목적으로 조직된 계(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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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선
정의동제의 준비와 봉행, 동제를 위한 기금이나 전답의 관리 등 동제의 전승을 목적으로 조직된 계(契).
정의동제의 준비와 봉행, 동제를 위한 기금이나 전답의 관리 등 동제의 전승을 목적으로 조직된 계(契).
내용계는 계원의 상호부조·친목·통합·공동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이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이다. 여기에는 목적과 형태, 기능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동제계(洞祭契)는 좁은 의미에서 동제의 전승만을 위해 조직된 경우로 규정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마을](/topic/마을)의 동계(洞契)나 송계(松契), 어촌계(漁村契) 등에서 동제계를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제계의 명칭은 사례에 따라 당산계(堂山契), 산사계(山祀契), 산제계(山祭契), 서낭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운영 방식은 해당 전승 사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내용계는 계원의 상호부조·친목·통합·공동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이에 따라 운영되는 조직이다. 여기에는 목적과 형태, 기능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동제계(洞祭契)는 좁은 의미에서 동제의 전승만을 위해 조직된 경우로 규정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마을](/topic/마을)의 동계(洞契)나 송계(松契), 어촌계(漁村契) 등에서 동제계를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제계의 명칭은 사례에 따라 당산계(堂山契), 산사계(山祀契), 산제계(山祭契), 서낭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운영 방식은 해당 전승 사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지역사례경남 산청군 단성면 백운리 백운[마을](/topic/마을) 당산제의 동계는 당산계로 불린다. 이 마을에서는 당산계를 통해 주민들이 한 해 동안 모은 경비를 동제의 봉행에 사용한다. 당산계의 결산은 당산제를 마친 날 아침에 소임을 맡은 사람의 집에서 간단히 이루어진다. 이 자리에서는 이듬해 소임을 맡을 사람을 미리 선출하기도 한다.

동제계는 동제의 전승 상태에 따라 중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의 산사계는 산신제와 탑제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다. 옥화리의 산사계가 구성된 것은 1859년이며, 1882년 음력 11월 24일에 중수되었다. 산사계의 중수는 춘추로 제사를 받들고 그 뜻을 후대에 계승하는 것과 마을에서 가구당 약간의 돈을 갹출하여 산제답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사족들의 향권(鄕權)이 약화되어 향권의 유지가 어려웠고, 수재로 인해 19세기 중엽 호서지방 일대가피폐되는 등 19세기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매년 향사하던 산신제와 탑제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송계나 어촌계가 동제계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남 완도군 금당면 차우리에서도 해마다 정월에 치제되는 동제의 비용을 송계에서 지출하였다. 충남 계룡시엄사면 향한리에서는 송계의 산림을 적극 활용하여 창출된 기금의 식리를 통해 음력 정월 열나흗날 동제를 송계에서 주관하며, 평소 산제당의 관리와 개·보수, [지붕](/topic/지붕)의 개초(蓋草) 작업 또한 송계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다.

울산광역시 동구 주전동 상마을 동제는 어촌계가 동제계 역할을 한다. 주전동은 주전해변을 따라 형성된 일곱 개의 작은 마을들로 구성되었으며, 전체 300여 가구이다. 이 마을은 151명의 어촌계원이 마을공동 양식어장을 관리하면서 연간 25억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어민소득을 증대시키고 지역 내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대화의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마을의 동제는 1989년부터 어촌계장이 [제관](/topic/제관)이 되고 어촌계의 자금으로 동제 비용을 충당한다. 동제의 결산은 동제가 끝나는 날인 대보름날 마을회의를열어 마친다. 이 사례는 지역의 [생업](/topic/생업)과 관련된 주도적 세력이 동제계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동제계는 운영 여건이 변하게 되면서 마을 내 다른 계와 통합되거나 분리됨으로써 동제계의 조직이 마을 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강송리 동제에서는 19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당주 한 명과 유사 두 명이 중심이 되어 서낭계를 운영하였다. 당시 유사는 가사리와 산두들에서 한 명씩 선출되었으며, 계의 문서를 관리하였다. 동회에서 계[갈이](/topic/갈이)를 하며, 이 자리에서 그해의 수입과 지출내역을 보고하고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받아 결산한다. 그리고 제당의 보수를 의논하고새 유사를 선출한다. 현재는 유사 없이 당주가 서낭계의 재산과 문서를 관리하고 밭 100평을 경작한다.

이 마을의 계는 1985년에 재정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하여 서낭계, 상여계, 배계를 통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1985년 새 다리가 생기면서 배계는 사라지고, 1992년에 서낭계와 상여계가 분리되었다. 흉사에서 나오는 돈으로 깨끗한 서낭님을 모실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서낭계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서낭계와 상여계가 다시 통합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마을의 여건에 따라 동제계와 마을 내 다른 계의 운영이 서로 융통성을 보이면서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도시화나 문화 변동 등으로 동제계의 운영은 그 역할과 기능이 다른 사회조직에 의해 대체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문중](/topic/문중)이나 경로당, 향우회, 부녀회, 지역문화원 등 다양한조직과 기관 등이 동제계의 역할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참고문헌계룡산 국사봉 주변[마을](/topic/마을)의 송계(松契)관행-19세기 후반~20세기 향한리 송계를 중심으로 (강성복, 민속학연구 24, 국립민속박물관)
청원 옥화리 산사계의 성격와 산신제·[탑제](/topic/탑제) (강성복, 민속학연구 11, 국립민속박물관, 2002)
18~19세기 서남해 다도해안지역 송계의 조직과 기능 (김경옥, 역사학연구 26, 호남사학회, 2006)
박대천과 함께 한 400년 청원 계원마을 (청원향토문화연구회, 청원문화원, 2006)
한국의 마을신앙 상·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지역사례경남 산청군 단성면 백운리 백운[마을](/topic/마을) 당산제의 동계는 당산계로 불린다. 이 마을에서는 당산계를 통해 주민들이 한 해 동안 모은 경비를 동제의 봉행에 사용한다. 당산계의 결산은 당산제를 마친 날 아침에 소임을 맡은 사람의 집에서 간단히 이루어진다. 이 자리에서는 이듬해 소임을 맡을 사람을 미리 선출하기도 한다.

동제계는 동제의 전승 상태에 따라 중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의 산사계는 산신제와 탑제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다. 옥화리의 산사계가 구성된 것은 1859년이며, 1882년 음력 11월 24일에 중수되었다. 산사계의 중수는 춘추로 제사를 받들고 그 뜻을 후대에 계승하는 것과 마을에서 가구당 약간의 돈을 갹출하여 산제답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사족들의 향권(鄕權)이 약화되어 향권의 유지가 어려웠고, 수재로 인해 19세기 중엽 호서지방 일대가피폐되는 등 19세기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매년 향사하던 산신제와 탑제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송계나 어촌계가 동제계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전남 완도군 금당면 차우리에서도 해마다 정월에 치제되는 동제의 비용을 송계에서 지출하였다. 충남 계룡시엄사면 향한리에서는 송계의 산림을 적극 활용하여 창출된 기금의 식리를 통해 음력 정월 열나흗날 동제를 송계에서 주관하며, 평소 산제당의 관리와 개·보수, [지붕](/topic/지붕)의 개초(蓋草) 작업 또한 송계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다.

울산광역시 동구 주전동 상마을 동제는 어촌계가 동제계 역할을 한다. 주전동은 주전해변을 따라 형성된 일곱 개의 작은 마을들로 구성되었으며, 전체 300여 가구이다. 이 마을은 151명의 어촌계원이 마을공동 양식어장을 관리하면서 연간 25억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어민소득을 증대시키고 지역 내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대화의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마을의 동제는 1989년부터 어촌계장이 [제관](/topic/제관)이 되고 어촌계의 자금으로 동제 비용을 충당한다. 동제의 결산은 동제가 끝나는 날인 대보름날 마을회의를열어 마친다. 이 사례는 지역의 [생업](/topic/생업)과 관련된 주도적 세력이 동제계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편 동제계는 운영 여건이 변하게 되면서 마을 내 다른 계와 통합되거나 분리됨으로써 동제계의 조직이 마을 여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강송리 동제에서는 19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당주 한 명과 유사 두 명이 중심이 되어 서낭계를 운영하였다. 당시 유사는 가사리와 산두들에서 한 명씩 선출되었으며, 계의 문서를 관리하였다. 동회에서 계[갈이](/topic/갈이)를 하며, 이 자리에서 그해의 수입과 지출내역을 보고하고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받아 결산한다. 그리고 제당의 보수를 의논하고새 유사를 선출한다. 현재는 유사 없이 당주가 서낭계의 재산과 문서를 관리하고 밭 100평을 경작한다.

이 마을의 계는 1985년에 재정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하여 서낭계, 상여계, 배계를 통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1985년 새 다리가 생기면서 배계는 사라지고, 1992년에 서낭계와 상여계가 분리되었다. 흉사에서 나오는 돈으로 깨끗한 서낭님을 모실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서낭계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서낭계와 상여계가 다시 통합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마을의 여건에 따라 동제계와 마을 내 다른 계의 운영이 서로 융통성을 보이면서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도시화나 문화 변동 등으로 동제계의 운영은 그 역할과 기능이 다른 사회조직에 의해 대체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문중](/topic/문중)이나 경로당, 향우회, 부녀회, 지역문화원 등 다양한조직과 기관 등이 동제계의 역할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참고문헌계룡산 국사봉 주변[마을](/topic/마을)의 송계(松契)관행-19세기 후반~20세기 향한리 송계를 중심으로 (강성복, 민속학연구 24, 국립민속박물관)
청원 옥화리 산사계의 성격와 산신제·[탑제](/topic/탑제) (강성복, 민속학연구 11, 국립민속박물관, 2002)
18~19세기 서남해 다도해안지역 송계의 조직과 기능 (김경옥, 역사학연구 26, 호남사학회, 2006)
박대천과 함께 한 400년 청원 계원마을 (청원향토문화연구회, 청원문화원, 2006)
한국의 마을신앙 상·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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