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외삼동산신제

한국무속신앙사전
대전광역시 유성구 외삼동에서 3년에 한 번 음력 시월 초순에 길일을 택해 [마을](/topic/마을) 뒷산에서 지내는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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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성구 외삼동에서 3년에 한 번 음력 시월 초순에 길일을 택해 [마을](/topic/마을) 뒷산에서 지내는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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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범
정의대전광역시 유성구 외삼동에서 3년에 한 번 음력 시월 초순에 길일을 택해 [마을](/topic/마을) 뒷산에서 지내는 산신제.
정의대전광역시 유성구 외삼동에서 3년에 한 번 음력 시월 초순에 길일을 택해 [마을](/topic/마을) 뒷산에서 지내는 산신제.
내용외삼동산신제는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평안을 위해 지내며, 매년 치르지 않고 3년에 한 번 지낸다. 제의를 지내는 해에는 음력 시월 초순에 좋은 날을 받는다. 책력을 보아 날을 정하는데 대개 초닷샛날로 제일(祭日)을 삼는다. 제일이 결정되면 제사 일주일 전에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운이 닿는 깨끗한 사람을 [제관](/topic/제관)으로 선정하는데, 우선 [칠성제](/topic/칠성제)를 지낼 사람으로남녀 구분 없이 두 명을 선출한다. 그중 한 명이 제관이 되고, 나머지 한 사람이 축관이다. 간혹 자녀가 없는 부부가 칠성제를 자원하여 모시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아이를낳은 부부도 있다는 말이 전한다.

한편 산제와 [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낼 사람으로 한 명을 선정한다. 이를 ‘축관’이라 부른다. 축관은 주로 큰말에서 뽑는 경우가 많다. 또 산제와 거리제 음식을 장만할 사람을 한 사람씩 따로 선출한다. 선출된 사람들은 제를 지내기까지 일주일가량 약수로 목욕재계를 하고, 비린 음식을 먹지 않으며, 부정을 가리기 위해 외출도 삼간다. 특히 축관 집 [대문](/topic/대문) 앞에는 솔잎, [고추](/topic/고추), 검정 숯을 꽂은 [금줄](/topic/금줄)을 치고 대문 양쪽에는 [황토](/topic/황토)를 일곱 무더기 놓아서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금한다. 이 기간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 비린 음식을 가리는등 마을에 부정이 드는 것을 각별히 조심한다.

제비(祭費)는 마을 공동기금과 추렴을 통해 마련한다. 집집마다 햅쌀 한 되나 두 되를 성의껏 낸다. 제일 낮이 되면 칠성제를 지낼 두 사람이 산지당 아래쪽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다가 칠성당으로 올라가 이 물로 쌀을 씻은 뒤에 [절구](/topic/절구)통에 넣고 빻는다. 밤 10시쯤이 되면 칠성제를 지낼 두 사람이 칠성당으로 올라가서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은 메, 떡, 미역국 세 [가지](/topic/가지)이다. 떡은 낮에 준비해 둔 한 되 세 홉의 쌀을 시루에 넣고 흰[무리](/topic/무리)떡을 쪄서 준비한다. 이때 소금은 넣지 않는다. 메와 미역국도 칠성당 앞에서 직접 장만한다.

칠성당 앞에 제물을 진설하면 제관이 재배를 하고 대동소지를 올린다. 칠성제가 끝나면 제관이 마을을 향해 “[마중시루](/topic/마중시루)를 떼라!”며 소리 지른다. 이 소리를 들은 각 가정에서는 집집마다 찐 시루를 올린다.

칠성제가 끝나면 산지당을 맡은 축관이 산제를 지낸다. 산지당 제물은 [[가래](/topic/가래)떡](/topic/가래떡), 삼색실과, 명태 두 마리이다. 통소나 통돼지, 수탉을 올리기도 한다. ‘통’은 한 마리를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에는 소를 잡아서 올렸으나 1995년부터는 돼지를 올린다. 제의는 칠성당과 마찬가지로 [헌작](/topic/헌작), 재배 순으로 진행된다.
내용외삼동산신제는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평안을 위해 지내며, 매년 치르지 않고 3년에 한 번 지낸다. 제의를 지내는 해에는 음력 시월 초순에 좋은 날을 받는다. 책력을 보아 날을 정하는데 대개 초닷샛날로 제일(祭日)을 삼는다. 제일이 결정되면 제사 일주일 전에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운이 닿는 깨끗한 사람을 [제관](/topic/제관)으로 선정하는데, 우선 [칠성제](/topic/칠성제)를 지낼 사람으로남녀 구분 없이 두 명을 선출한다. 그중 한 명이 제관이 되고, 나머지 한 사람이 축관이다. 간혹 자녀가 없는 부부가 칠성제를 자원하여 모시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아이를낳은 부부도 있다는 말이 전한다.

한편 산제와 [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낼 사람으로 한 명을 선정한다. 이를 ‘축관’이라 부른다. 축관은 주로 큰말에서 뽑는 경우가 많다. 또 산제와 거리제 음식을 장만할 사람을 한 사람씩 따로 선출한다. 선출된 사람들은 제를 지내기까지 일주일가량 약수로 목욕재계를 하고, 비린 음식을 먹지 않으며, 부정을 가리기 위해 외출도 삼간다. 특히 축관 집 [대문](/topic/대문) 앞에는 솔잎, [고추](/topic/고추), 검정 숯을 꽂은 [금줄](/topic/금줄)을 치고 대문 양쪽에는 [황토](/topic/황토)를 일곱 무더기 놓아서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금한다. 이 기간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 비린 음식을 가리는등 마을에 부정이 드는 것을 각별히 조심한다.

제비(祭費)는 마을 공동기금과 추렴을 통해 마련한다. 집집마다 햅쌀 한 되나 두 되를 성의껏 낸다. 제일 낮이 되면 칠성제를 지낼 두 사람이 산지당 아래쪽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다가 칠성당으로 올라가 이 물로 쌀을 씻은 뒤에 [절구](/topic/절구)통에 넣고 빻는다. 밤 10시쯤이 되면 칠성제를 지낼 두 사람이 칠성당으로 올라가서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은 메, 떡, 미역국 세 [가지](/topic/가지)이다. 떡은 낮에 준비해 둔 한 되 세 홉의 쌀을 시루에 넣고 흰[무리](/topic/무리)떡을 쪄서 준비한다. 이때 소금은 넣지 않는다. 메와 미역국도 칠성당 앞에서 직접 장만한다.

칠성당 앞에 제물을 진설하면 제관이 재배를 하고 대동소지를 올린다. 칠성제가 끝나면 제관이 마을을 향해 “[마중시루](/topic/마중시루)를 떼라!”며 소리 지른다. 이 소리를 들은 각 가정에서는 집집마다 찐 시루를 올린다.

칠성제가 끝나면 산지당을 맡은 축관이 산제를 지낸다. 산지당 제물은 [[가래](/topic/가래)떡](/topic/가래떡), 삼색실과, 명태 두 마리이다. 통소나 통돼지, 수탉을 올리기도 한다. ‘통’은 한 마리를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에는 소를 잡아서 올렸으나 1995년부터는 돼지를 올린다. 제의는 칠성당과 마찬가지로 [헌작](/topic/헌작), 재배 순으로 진행된다.
역사대전 유성구 외삼동은 진주 강씨(晉州 姜氏), 경주 김씨(慶州 金氏), 은진 송씨(恩津 宋氏) 등이 거주하는 [마을](/topic/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산막](/topic/산막)(山幕), 서당골[書堂洞], 안말[內村],큰말[大村], 학교말[學校村]이 있다. 이 중 안말과 큰말, 서당골 일부가 옛날부터 공동으로 산제를 지내 왔다. 그러다가 1992년부터 안말이 산제에 참가하지 않게 되면서 그 이후 큰말과 서당골 일부 주민들이 함께 제를 모시고 있다. 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 뒷산이다. 이 산은 밥봉(275m)의 개울 건너에 있는 옆산으로, 계룡산의 한 지맥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는 특이하게도 상당제로서 칠성당과 산신제를 나누어 지낸다. 뒷산 꼭대기에는 ‘칠성당’이라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밑에 [제물](/topic/제물)을 차릴 수 있게 막돌로 단을 쌓아 놓았다. 칠성당 못 미쳐서 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산지당’이라고 부른다. 산지당은 당집이 없는 자연제장(祭場)이다. 마을 사람들은 [칠성제](/topic/칠성제)를 먼저 지내고 나서 산제를 모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리제](/topic/거리제)를 치른다. 칠성제는 가장 큰 어른인 북두칠성, 산제는 산신령을 각각 위하는 제의이다. 산제의 대상은 호랑이이다.
역사대전 유성구 외삼동은 진주 강씨(晉州 姜氏), 경주 김씨(慶州 金氏), 은진 송씨(恩津 宋氏) 등이 거주하는 [마을](/topic/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산막](/topic/산막)(山幕), 서당골[書堂洞], 안말[內村],큰말[大村], 학교말[學校村]이 있다. 이 중 안말과 큰말, 서당골 일부가 옛날부터 공동으로 산제를 지내 왔다. 그러다가 1992년부터 안말이 산제에 참가하지 않게 되면서 그 이후 큰말과 서당골 일부 주민들이 함께 제를 모시고 있다. 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 뒷산이다. 이 산은 밥봉(275m)의 개울 건너에 있는 옆산으로, 계룡산의 한 지맥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는 특이하게도 상당제로서 칠성당과 산신제를 나누어 지낸다. 뒷산 꼭대기에는 ‘칠성당’이라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밑에 [제물](/topic/제물)을 차릴 수 있게 막돌로 단을 쌓아 놓았다. 칠성당 못 미쳐서 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산지당’이라고 부른다. 산지당은 당집이 없는 자연제장(祭場)이다. 마을 사람들은 [칠성제](/topic/칠성제)를 먼저 지내고 나서 산제를 모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리제](/topic/거리제)를 치른다. 칠성제는 가장 큰 어른인 북두칠성, 산제는 산신령을 각각 위하는 제의이다. 산제의 대상은 호랑이이다.
지역사례외삼동산신제는 지금도 계속 전승되고 있다. [마을](/topic/마을) 주민의 수는 다소 줄어든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신앙심과 제의는 별다른 변동 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외삼동산신제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대 마을신앙의 보편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산신을 중심으로 하는 상당신과 장승·탑 등 하당신의 신앙 및 의례는 마을 구성원의 사회적 유대와공동생활의 응집력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에게 정신적 일체감과 위안을 제공한다. 외삼동을 비롯한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대에서는 정월 또는 시월에 좋은 날을 택하여 제사를 지낸다. 인근 지역에서는 유성구 덕진동, 세동, 구룡동, 성북동, 자운동 등이 시월에 산신제를 지냈지만 대부분이 소멸됐다.
참고문헌민간신앙 (이필영, 대전민속지 상, 1998)
지역사례외삼동산신제는 지금도 계속 전승되고 있다. [마을](/topic/마을) 주민의 수는 다소 줄어든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신앙심과 제의는 별다른 변동 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외삼동산신제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대 마을신앙의 보편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산신을 중심으로 하는 상당신과 장승·탑 등 하당신의 신앙 및 의례는 마을 구성원의 사회적 유대와공동생활의 응집력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에게 정신적 일체감과 위안을 제공한다. 외삼동을 비롯한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대에서는 정월 또는 시월에 좋은 날을 택하여 제사를 지낸다. 인근 지역에서는 유성구 덕진동, 세동, 구룡동, 성북동, 자운동 등이 시월에 산신제를 지냈지만 대부분이 소멸됐다.
참고문헌민간신앙 (이필영, 대전민속지 상,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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