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법동리석장승

한국무속신앙사전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에 소재한 남장승과 여장승 2기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석장승.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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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에 소재한 남장승과 여장승 2기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석장승.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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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범
정의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에 소재한 남장승과 여장승 2기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석장승.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정의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에 소재한 남장승과 여장승 2기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석장승.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내용석장승이 있는 대덕구 법동[마을](/topic/마을)에서는 음력 시월에 산신제를 지냈으나 근래에는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자정쯤 산신당에 제사를 지내고 석장승으로 와서 [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낸다. 마을의액운을 막고 동민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제관](/topic/제관)은 동네에서 나이가 많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선출한다. 과거에는 정월 초사흗날부터 풍물패가 마을을 돌며 걸립하고 장승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였다. 그리고 장승과 선돌에 [금줄](/topic/금줄)을 두르고 그 앞에 [황토](/topic/황토)를 깔아 놓아 부정한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제물로는 백설기, 과일, [북어](/topic/북어), 청수 등을 장만한다. 제관이 절을 한 다음 마을소지와 가구별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과 각 가정의 안녕을 기원한다. 제사가 끝나면 주민들이 풍물을 치며 놀면서 [음복](/topic/음복)을 한다.

법동리장승은 법동 택지 조성 사업으로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대덕구청으로 옮겼다가 현재 법동 [아파트](/topic/아파트)단지 입구 도로 양쪽에 다시 모셔졌다. 도시개발로 인하여 아파트단지앞에 조형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1990년까지는 한 마을의 어귀를 지키던 수호신으로서 제사를 받는 신앙 대상물이었다.
참고문헌민간신앙 (이필영, 대전민속지 상, 1998)
내용석장승이 있는 대덕구 법동[마을](/topic/마을)에서는 음력 시월에 산신제를 지냈으나 근래에는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자정쯤 산신당에 제사를 지내고 석장승으로 와서 [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낸다. 마을의액운을 막고 동민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제관](/topic/제관)은 동네에서 나이가 많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선출한다. 과거에는 정월 초사흗날부터 풍물패가 마을을 돌며 걸립하고 장승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였다. 그리고 장승과 선돌에 [금줄](/topic/금줄)을 두르고 그 앞에 [황토](/topic/황토)를 깔아 놓아 부정한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제물로는 백설기, 과일, [북어](/topic/북어), 청수 등을 장만한다. 제관이 절을 한 다음 마을소지와 가구별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과 각 가정의 안녕을 기원한다. 제사가 끝나면 주민들이 풍물을 치며 놀면서 [음복](/topic/음복)을 한다.

법동리장승은 법동 택지 조성 사업으로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대덕구청으로 옮겼다가 현재 법동 [아파트](/topic/아파트)단지 입구 도로 양쪽에 다시 모셔졌다. 도시개발로 인하여 아파트단지앞에 조형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1990년까지는 한 마을의 어귀를 지키던 수호신으로서 제사를 받는 신앙 대상물이었다.
참고문헌민간신앙 (이필영, 대전민속지 상, 1998)
역사대덕구 법동 범천골에서는 산제를 지낸 뒤 장승과 선돌 앞에서 [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내 왔다.

본래 남장승은 [마을](/topic/마을) 어귀 북쪽에 검은색 선돌과 함께 서 있고, 그 앞을 가로지르는 도랑 옆에는 여장승이 역시 선돌과 함께 남장승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다. 구전에 따르면수백년 전에 마을 어귀는 숲으로 뒤덮혀 있었고 이로 인해 질병과 재앙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해 장승을 세웠다고 전한다. 당시에는 나무 장승이었다가 1700년쯤에 이마을의 갑부인 송민노라는 사람이 사재를 털어 석장승으로 교체하였다는 말이 전한다.
역사대덕구 법동 범천골에서는 산제를 지낸 뒤 장승과 선돌 앞에서 [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내 왔다.

본래 남장승은 [마을](/topic/마을) 어귀 북쪽에 검은색 선돌과 함께 서 있고, 그 앞을 가로지르는 도랑 옆에는 여장승이 역시 선돌과 함께 남장승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다. 구전에 따르면수백년 전에 마을 어귀는 숲으로 뒤덮혀 있었고 이로 인해 질병과 재앙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해 장승을 세웠다고 전한다. 당시에는 나무 장승이었다가 1700년쯤에 이마을의 갑부인 송민노라는 사람이 사재를 털어 석장승으로 교체하였다는 말이 전한다.
형태대덕법동리석장승은 남녀 한 쌍이 마주보고 서 있으며, 그옆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선돌](/topic/선돌)이세워져 있다. 남자 장승의 키는 153㎝, 가운데 둘레는 184㎝이다. 얼굴 길이는 62㎝로 전체 모습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다. 눈망울, 코, 입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특히 눈망울은 튀어나올 듯이 조각되었다. 남자 장승에는 ‘천하대[장군](/topic/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새겨졌다. 남자 장승의 오른쪽에는 약 90㎝떨어져서 길쭉한 형태의 선돌이 서 있다. 선돌의 높이는 100㎝, 가운데 둘레는 62㎝이다.

여자 장승은 키가 126㎝, 둘레는 125㎝이다. 남자 장승에 비해 작게 만들어졌으며, 얼굴도 남자 장승에 비해 작고 둥근 턱선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인다. 귀모양도 남자 장승보다 잘 남아 있다. 얼굴 길이는 46㎝이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 장승에는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이라고 새겨져 있다. 여자 장승의 오른쪽 약 80㎝ 떨어진 곳에 선돌을 세워 놓았다. 키는 90㎝이고, 둘레는 113㎝이다.

본래 이 장승은 법동 법천골[마을](/topic/마을) 한복판을 흐르는 냇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천하대장군, 왼쪽에 지하대장군으로 있었다.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현재는 법동 입구 도로 양쪽에 세워져 있다. 장승 옆에 있는 선돌은 각각 옆에 있는 장승을 보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견해가 있다. 또 각각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선돌이라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확실하지않다. 또한 장승 내외의 아들과 딸이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를 아[기장](/topic/기장)승이라고 부른다.
형태대덕법동리석장승은 남녀 한 쌍이 마주보고 서 있으며, 그옆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선돌](/topic/선돌)이세워져 있다. 남자 장승의 키는 153㎝, 가운데 둘레는 184㎝이다. 얼굴 길이는 62㎝로 전체 모습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다. 눈망울, 코, 입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다. 특히 눈망울은 튀어나올 듯이 조각되었다. 남자 장승에는 ‘천하대[장군](/topic/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새겨졌다. 남자 장승의 오른쪽에는 약 90㎝떨어져서 길쭉한 형태의 선돌이 서 있다. 선돌의 높이는 100㎝, 가운데 둘레는 62㎝이다.

여자 장승은 키가 126㎝, 둘레는 125㎝이다. 남자 장승에 비해 작게 만들어졌으며, 얼굴도 남자 장승에 비해 작고 둥근 턱선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인다. 귀모양도 남자 장승보다 잘 남아 있다. 얼굴 길이는 46㎝이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 장승에는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이라고 새겨져 있다. 여자 장승의 오른쪽 약 80㎝ 떨어진 곳에 선돌을 세워 놓았다. 키는 90㎝이고, 둘레는 113㎝이다.

본래 이 장승은 법동 법천골[마을](/topic/마을) 한복판을 흐르는 냇가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천하대장군, 왼쪽에 지하대장군으로 있었다.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현재는 법동 입구 도로 양쪽에 세워져 있다. 장승 옆에 있는 선돌은 각각 옆에 있는 장승을 보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견해가 있다. 또 각각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선돌이라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확실하지않다. 또한 장승 내외의 아들과 딸이라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를 아[기장](/topic/기장)승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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