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한국무속신앙사전
짚을 원추형으로 엮어서 [가신](/topic/가신)(家神)을 안치한 단지나 신체(神體) 등을 덮는 데 사용하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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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을 원추형으로 엮어서 [가신](/topic/가신)(家神)을 안치한 단지나 신체(神體) 등을 덮는 데 사용하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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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익
정의짚을 원추형으로 엮어서 [가신](/topic/가신)(家神)을 안치한 단지나 신체(神體) 등을 덮는 데 사용하는 조형물.
정의짚을 원추형으로 엮어서 [가신](/topic/가신)(家神)을 안치한 단지나 신체(神體) 등을 덮는 데 사용하는 조형물.
내용주저리는 집 안에 모신 터주단지 ․ [칠성단지](/topic/칠성단지) ․ 업단지 ․ [대감단지](/topic/대감단지) 등을 덮어서 신체를 보호하는 데 주로 사용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유주지, 유지기, 유두지, 터주가리, [업가리](/topic/업가리), 짚가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주된 재료는 [볏짚](/topic/볏짚)이다. 이 외에 갈대, 밀짚, 수숫대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볏짚만큼 빈도가 높지 않다.

주저리는 해마다 다시 엮어서 갈아주는 것이 관례이다. [가을걷이](/topic/가을걷이)를 마치면 집안에서 [상달고사](/topic/상달고사)를 지내기 전에 깨끗한 볏짚을 골라 주저리를 엮는다. 가령 터주단지의 주저리는 어른 서너 주먹만큼의 짚을 [가지](/topic/가지)고 만든다. [갈퀴](/topic/갈퀴) 등으로 볏짚의 하부에 달린 잔잎을 긁어 낸 뒤 상부를 묶는다. 이어 묶은 부분의 위쪽을 꺾어 아래쪽을 향하도록 한다. 이렇게 주저리를 만들고 나면 마치 우산과 같은 형태를 이루게 된다. 다 엮은 주저리는 하부 중앙을 벌려 터주단지에 씌운다. 그리고 왼새끼로 꼰 [금줄](/topic/금줄)로 단지 주위를 묶어 주어 주저리가 벗겨지지 않도록 한다. 이처럼 주저리로 단지를 덮어 두는 것은 눈․비로부터 터주단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 주저리를 씌우는 데 왼새끼가 사용되는 것은 잡귀의 범접을 막고 쥐 따위의 [해충](/topic/해충)을 물리치려는 주술적인 목적이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벼를 베면 볏단을 묶어 가정의 앞[마당](/topic/마당)에 가져다가 쌓아 놓았다. 볏단은 보통 원추형으로 쌓는데 다 쌓고 나면 상부에 주저리를 엮어 덮어 놓았다. [볏가리](/topic/볏가리)를 덮는 주저리 또한 터주단지의 주저리와 동일하다. 다만 터주단지의 그것보다 볏짚의 양을 많이 하여 주저리를 만든다. 이처럼 주저리를 만들어 볏가리를 덮는 것은 이슬이나 비로부터 벼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내용주저리는 집 안에 모신 터주단지 ․ [칠성단지](/topic/칠성단지) ․ 업단지 ․ [대감단지](/topic/대감단지) 등을 덮어서 신체를 보호하는 데 주로 사용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유주지, 유지기, 유두지, 터주가리, [업가리](/topic/업가리), 짚가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주된 재료는 [볏짚](/topic/볏짚)이다. 이 외에 갈대, 밀짚, 수숫대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볏짚만큼 빈도가 높지 않다.

주저리는 해마다 다시 엮어서 갈아주는 것이 관례이다. [가을걷이](/topic/가을걷이)를 마치면 집안에서 [상달고사](/topic/상달고사)를 지내기 전에 깨끗한 볏짚을 골라 주저리를 엮는다. 가령 터주단지의 주저리는 어른 서너 주먹만큼의 짚을 [가지](/topic/가지)고 만든다. [갈퀴](/topic/갈퀴) 등으로 볏짚의 하부에 달린 잔잎을 긁어 낸 뒤 상부를 묶는다. 이어 묶은 부분의 위쪽을 꺾어 아래쪽을 향하도록 한다. 이렇게 주저리를 만들고 나면 마치 우산과 같은 형태를 이루게 된다. 다 엮은 주저리는 하부 중앙을 벌려 터주단지에 씌운다. 그리고 왼새끼로 꼰 [금줄](/topic/금줄)로 단지 주위를 묶어 주어 주저리가 벗겨지지 않도록 한다. 이처럼 주저리로 단지를 덮어 두는 것은 눈․비로부터 터주단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 주저리를 씌우는 데 왼새끼가 사용되는 것은 잡귀의 범접을 막고 쥐 따위의 [해충](/topic/해충)을 물리치려는 주술적인 목적이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벼를 베면 볏단을 묶어 가정의 앞[마당](/topic/마당)에 가져다가 쌓아 놓았다. 볏단은 보통 원추형으로 쌓는데 다 쌓고 나면 상부에 주저리를 엮어 덮어 놓았다. [볏가리](/topic/볏가리)를 덮는 주저리 또한 터주단지의 주저리와 동일하다. 다만 터주단지의 그것보다 볏짚의 양을 많이 하여 주저리를 만든다. 이처럼 주저리를 만들어 볏가리를 덮는 것은 이슬이나 비로부터 벼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지역사례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산자뜸의 [마을](/topic/마을) 주민은 야산과 주택 대지의 경계 부분에 대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이 경계 부분에 단지를 놓고 주저리로 덮어 놓았다. 이것을 [업가리](/topic/업가리)라고 한다. 족제비나 구렁이, 두꺼비 등의 업신을 위할 목적으로 [봉안](/topic/봉안)한 [신물](/topic/신물)(神物)이라는 것이다. 주저리를 씌운 업가리는 경기도 지역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사례이다.

충북 옥천 지역에는 마을 어귀에 놓여 있는 선돌이나 [돌탑](/topic/돌탑)의 머릿돌에 간혹 주저리를 씌우기도 한다. 선돌이나 탑의 머릿돌은 그 자체가 암석인 까닭에 눈과 비를 맞아도 손상될 염려가 없다. 그럼에도 주저리를 씌우는 까닭은 선돌이나 탑의 머릿돌을 사람의 두상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로 충남 공주 ․ 금산 ․ 대전 등에서는 동제를 지내기 전에 선돌과 탑의 머릿돌에 [한지](/topic/한지)를 씌우고 왼새끼로 묶어 두기도 한다. 이를 ‘옷 입히기’라고 하는데, 이는 마을신을 위해 묵은 옷을 벗기고 새옷으로 갈아입힌다는 폐백의 의미이다.

경기도 용인시 일대에서는 주저리형의 당집이 등장하기도 한다. 즉 건물 형식의 당집 대신 [볏짚](/topic/볏짚)을 터주가리 모양으로 엮어서 산제당으로 모신 것이다. 짚으로 이엉을 얹듯이 엮은 이 제당은 높이 1.5~2m, 둘레 3m 내외의 비교적 큰 규모인데, 마을에서는 속칭 ‘터주가리’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쇠말](/topic/쇠말)을 안치하거나 동제를 모시는 날 터주가리 속에 [제상](/topic/제상)을 안치하고 제를 지내기도 한다. 또한 마을에 따라서는 산제당의 제기(祭器)를 보관할 목적으로 주저리를 씌우기도 한다.

전남 진도에서는 풍요를 기원할 목적으로 유지깃대에 주저리를 매달아 놓았다. [버섯](/topic/버섯) 모양의 주저리를 엮어 깃대에 매달아 놓았는데, 그 이면에는 [생업](/topic/생업)의 풍요의지가 깃들어 있다.

충남 당진군 송악읍 고대리에서는 고기잡이와 관련된 주저리달기 풍속이 전한다. 이 주저리달기는 고기잡이의 결과를 축하하고 또한 과시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196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어민들이 목선을 사용하여 고기잡이를 하였다. 따라서 이동 시에는 해류와 바람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원거리 고기잡이 때에는 해류의 이동과 바람의 방향 및 세기를 이용하여 돛배로 항해하였다. 고대리 안섬을 비롯한 서해안 어부들은 정초부터 연평도에 나가 고기잡이를 많이 하였다. 정초로부터 봄철에 이르는 연평도 고기잡이에서는 주로 조기를 잡았다. 그런데 해류와 돛을 활용한 이동인 까닭에 이동 자체가 순조롭지 못하였다. 특정 장소에 한 번 이동하게 되면 의도하는 곳으로의 이동은 다음 물때까지 기다려야 하였다. 따라서 한 장소에서 오랜 기간 고기를 잡는 것이 목선 어부들의 관행이었다. 일정한 지역에서 머무는 기간은 물때를 기준으로 보름부터 두 달 정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이처럼 특정 장소에서 오랜 기간 고기를 잡는데 만선이 되면 현장에서 잡은 고기를 거래하였다. 잡은 고기를 팔아넘겨야 창고가 비게 되고 다시 잡은 고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에는 고기를 사러 다니는 상선이 있었는데 이들 상선에 고기를 팔아넘겼다. 현장에서 팔아넘기는 고기는 부두의 어시장에 넘기는 값에 비해 비교적 싼 편이었다. 보통 제값보다 20~40% 싼 값으로 고기를 넘겼다고 한다.

이렇게 보름에서 두 달 또는 그 이상의 기간에 고기를 잡고 나면 어부들은 자신의 고향 포구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때 그동안 잡거나 판 고기의 양에 비례해서 주저리를 [뱃기](/topic/뱃기)에 단다. 관행상 잡아서 판 고기가 한 배일 경우 하나의 주저리를 달고, 다섯 배인 경우는 다섯 개의 주저리를 단다. 이처럼 잡아서 판 양 만큼의 주저리를 뱃기에 매달아 뱃머리에 세우고 고향의 포구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멀리 포구가 보이면 풍장을 울리며 흥겨운 리듬의 를 한다. 일명 이라고도 불리는 는 선창자가 [앞소리](/topic/앞소리)를 매기고 후창자가 [뒷소리](/topic/뒷소리)를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리듬이 매우 빠르고 경쾌하다.

한편 주민들은 포구에 나와 목선의 귀환을 맞이한다. 그리고 부두 가까이 배가 다가오면 뱃기를 통하여 누구네 배가 들어오는지를 살핀다. 또 배가 보다 가까이 오면 뱃기에 걸린 주저리를 보고 얼마나 많은 고기를 잡았는지를 확인하고, 해당 배의 선주를 비롯한 선원들의 가족에게 축하인사를 건넨다. 선주와 선원들의 가족 역시 이 주저리를 보고 고기잡이의 풍흉을 인지한다.

이러한 전통에 유래하여 송악읍 안섬에서는 제당의 한 쪽에 [봉죽기](/topic/봉죽기)를 세워 놓고 당제를 지낸다. 봉죽기는 일종의 뱃기라고 할 수 있는데, 뱃기의 상부에 서리화를 꽂고 깃대에 주저리를 매단 것이다. 여기에서 서리화는 조선시대 과거급제자의 [모자](/topic/모자)에 꽂아 주는 [어사화](/topic/어사화)를 모방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장식을 깃대 상부에 꽂아 놓는 것은 고기잡이에서 장원을 하게 해 달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topic/가지)로 깃대에 주저리를 다섯 개 매단 것도 바다에 나가 다섯 차례의 만선을 하게 해 달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섯 배 가득 고기를 잡아서 팔 수 있게 해 달라는 풍어의 의미로 뱃기에 주저리를 매달아 세우고 당제를 지내는 것이다.
지역사례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산자뜸의 [마을](/topic/마을) 주민은 야산과 주택 대지의 경계 부분에 대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이 경계 부분에 단지를 놓고 주저리로 덮어 놓았다. 이것을 [업가리](/topic/업가리)라고 한다. 족제비나 구렁이, 두꺼비 등의 업신을 위할 목적으로 [봉안](/topic/봉안)한 [신물](/topic/신물)(神物)이라는 것이다. 주저리를 씌운 업가리는 경기도 지역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사례이다.

충북 옥천 지역에는 마을 어귀에 놓여 있는 선돌이나 [돌탑](/topic/돌탑)의 머릿돌에 간혹 주저리를 씌우기도 한다. 선돌이나 탑의 머릿돌은 그 자체가 암석인 까닭에 눈과 비를 맞아도 손상될 염려가 없다. 그럼에도 주저리를 씌우는 까닭은 선돌이나 탑의 머릿돌을 사람의 두상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로 충남 공주 ․ 금산 ․ 대전 등에서는 동제를 지내기 전에 선돌과 탑의 머릿돌에 [한지](/topic/한지)를 씌우고 왼새끼로 묶어 두기도 한다. 이를 ‘옷 입히기’라고 하는데, 이는 마을신을 위해 묵은 옷을 벗기고 새옷으로 갈아입힌다는 폐백의 의미이다.

경기도 용인시 일대에서는 주저리형의 당집이 등장하기도 한다. 즉 건물 형식의 당집 대신 [볏짚](/topic/볏짚)을 터주가리 모양으로 엮어서 산제당으로 모신 것이다. 짚으로 이엉을 얹듯이 엮은 이 제당은 높이 1.5~2m, 둘레 3m 내외의 비교적 큰 규모인데, 마을에서는 속칭 ‘터주가리’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쇠말](/topic/쇠말)을 안치하거나 동제를 모시는 날 터주가리 속에 [제상](/topic/제상)을 안치하고 제를 지내기도 한다. 또한 마을에 따라서는 산제당의 제기(祭器)를 보관할 목적으로 주저리를 씌우기도 한다.

전남 진도에서는 풍요를 기원할 목적으로 유지깃대에 주저리를 매달아 놓았다. [버섯](/topic/버섯) 모양의 주저리를 엮어 깃대에 매달아 놓았는데, 그 이면에는 [생업](/topic/생업)의 풍요의지가 깃들어 있다.

충남 당진군 송악읍 고대리에서는 고기잡이와 관련된 주저리달기 풍속이 전한다. 이 주저리달기는 고기잡이의 결과를 축하하고 또한 과시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196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어민들이 목선을 사용하여 고기잡이를 하였다. 따라서 이동 시에는 해류와 바람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원거리 고기잡이 때에는 해류의 이동과 바람의 방향 및 세기를 이용하여 돛배로 항해하였다. 고대리 안섬을 비롯한 서해안 어부들은 정초부터 연평도에 나가 고기잡이를 많이 하였다. 정초로부터 봄철에 이르는 연평도 고기잡이에서는 주로 조기를 잡았다. 그런데 해류와 돛을 활용한 이동인 까닭에 이동 자체가 순조롭지 못하였다. 특정 장소에 한 번 이동하게 되면 의도하는 곳으로의 이동은 다음 물때까지 기다려야 하였다. 따라서 한 장소에서 오랜 기간 고기를 잡는 것이 목선 어부들의 관행이었다. 일정한 지역에서 머무는 기간은 물때를 기준으로 보름부터 두 달 정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이처럼 특정 장소에서 오랜 기간 고기를 잡는데 만선이 되면 현장에서 잡은 고기를 거래하였다. 잡은 고기를 팔아넘겨야 창고가 비게 되고 다시 잡은 고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에는 고기를 사러 다니는 상선이 있었는데 이들 상선에 고기를 팔아넘겼다. 현장에서 팔아넘기는 고기는 부두의 어시장에 넘기는 값에 비해 비교적 싼 편이었다. 보통 제값보다 20~40% 싼 값으로 고기를 넘겼다고 한다.

이렇게 보름에서 두 달 또는 그 이상의 기간에 고기를 잡고 나면 어부들은 자신의 고향 포구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때 그동안 잡거나 판 고기의 양에 비례해서 주저리를 [뱃기](/topic/뱃기)에 단다. 관행상 잡아서 판 고기가 한 배일 경우 하나의 주저리를 달고, 다섯 배인 경우는 다섯 개의 주저리를 단다. 이처럼 잡아서 판 양 만큼의 주저리를 뱃기에 매달아 뱃머리에 세우고 고향의 포구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멀리 포구가 보이면 풍장을 울리며 흥겨운 리듬의 를 한다. 일명 이라고도 불리는 는 선창자가 [앞소리](/topic/앞소리)를 매기고 후창자가 [뒷소리](/topic/뒷소리)를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리듬이 매우 빠르고 경쾌하다.

한편 주민들은 포구에 나와 목선의 귀환을 맞이한다. 그리고 부두 가까이 배가 다가오면 뱃기를 통하여 누구네 배가 들어오는지를 살핀다. 또 배가 보다 가까이 오면 뱃기에 걸린 주저리를 보고 얼마나 많은 고기를 잡았는지를 확인하고, 해당 배의 선주를 비롯한 선원들의 가족에게 축하인사를 건넨다. 선주와 선원들의 가족 역시 이 주저리를 보고 고기잡이의 풍흉을 인지한다.

이러한 전통에 유래하여 송악읍 안섬에서는 제당의 한 쪽에 [봉죽기](/topic/봉죽기)를 세워 놓고 당제를 지낸다. 봉죽기는 일종의 뱃기라고 할 수 있는데, 뱃기의 상부에 서리화를 꽂고 깃대에 주저리를 매단 것이다. 여기에서 서리화는 조선시대 과거급제자의 [모자](/topic/모자)에 꽂아 주는 [어사화](/topic/어사화)를 모방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장식을 깃대 상부에 꽂아 놓는 것은 고기잡이에서 장원을 하게 해 달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topic/가지)로 깃대에 주저리를 다섯 개 매단 것도 바다에 나가 다섯 차례의 만선을 하게 해 달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섯 배 가득 고기를 잡아서 팔 수 있게 해 달라는 풍어의 의미로 뱃기에 주저리를 매달아 세우고 당제를 지내는 것이다.
동문선조선민속지秋葉隆1993
서울대학교 출판부한국무속과 연희이두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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