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

한국무속신앙사전
삼한시대에 마한의 신성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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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에 마한의 신성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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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대
정의삼한시대에 마한의 신성지역.
정의삼한시대에 마한의 신성지역.
참조[천군](/topic/천군)
참고문헌소도고 (손진태, 조선민족문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48)
三國志, 갈반지 소고 (서영대, 종교학연구 2, 한국종교학연구회, 1979)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소도와 부도 (송화섭, 한국문화와역사민속, 신아출판사, 2003)
참조[천군](/topic/천군)
참고문헌소도고 (손진태, 조선민족문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48)
三國志, 갈반지 소고 (서영대, 종교학연구 2, 한국종교학연구회, 1979)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소도와 부도 (송화섭, 한국문화와역사민속, 신아출판사, 2003)
내용소도의 존재를 전하는 기본 [사료](/topic/사료)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이다. 이에 따르면 삼한의 소국에는 소도라는 별읍(別邑)이 있어 북과 방울을 매단 장대를 세워 놓고 귀신에게 제사했다. 또 도망자가 피신해 오면 잡아내지 못하여 도적질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소도를 설립한 뜻은 불교와 같지만 선악의 판별 기준은 불교와 달랐다고 한다. 여기서 삼한의 소국이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성장한 군소 정치집단을 말한다. 각각의 소국은 국읍(國邑)을 중심으로 다수의 읍락(邑落)으로 구성되었고, 읍락과는 다른 별읍(別邑)도 있었다. 즉 소도는 방울과 북을 매단 장대를 세워 놓고 귀신을 제사하는 신성지역인 것이다. 이때 삼한에서 오월의 파종의례와 시월의 [수확](/topic/수확)의례를 귀신에게 제사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귀신은 농경신으로 여겨진다. 또 장대는 어딘가에 계시던 농경신이 제사의 장소로 내려오는 하강 통로이며, 방울과 북은 농경신에게 의례의 장소를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소도는 세속적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신성지역, 즉 아실럼(asylum)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는 삼한사회 정치권력의 미성숙과 이로 말미암은 사회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소도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다. 우선 소도가 한자어인지 우리말인지부터가 논란거리이다. 즉 소도를 한자어로 보아 그 말뜻을 ‘소생부활의 길’(범죄자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는 곳)로 보는 설과 우리말로 보아 ‘높이 솟은 곳’ 또는 ‘솟대’로 풀이하는 설이 있다. 현재 [마을](/topic/마을)신앙에서 볼 수 있는 솟대와의 관련성 여부도 논란거리이다. 소도에서 솟대가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소도와 솟대는 별개라는 주장도 있다. 대전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농경문 청동기의 갈라진 나뭇[가지](/topic/가지)들에 새가 한 마리씩 올라가 있는 그림을 소도로 해석하는 것도 소도를 솟대와 관련해 본 결과이다. 그리고 삼한 소국에는 [천군](/topic/천군)(天君)이란 제사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천군과 소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즉 천군이 소도를 관할했다는 입장에 따르면 소도의 귀신은 천신을 뜻하는 것이 된다. 이에 비해 천군은 하늘을 제사하는 제사장이고 소도는 귀신을 제사하는 곳이므로 별개라는 입장이 있다.

한편 소도는 자료와 여러 연구를 살펴볼 때 삼한시대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존속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신라의 [최치원](/topic/최치원)(崔致遠)은 「봉암사지증대사탑비(鳳巖寺智證大師碑)」에서 백제에 소도의례가 있다고 했고, 소도와 같은 신성지역이 불교 수용 이후 사찰로 변했다는 연구도 있다. 나아가 소도 유적을 찾는 노력이 있으며, 심지어 일본 쓰시마의 신역(神域)인 솟도(卒土)의 기원을 삼한의 소도에서 구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소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내용소도의 존재를 전하는 기본 [사료](/topic/사료)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이다. 이에 따르면 삼한의 소국에는 소도라는 별읍(別邑)이 있어 북과 방울을 매단 장대를 세워 놓고 귀신에게 제사했다. 또 도망자가 피신해 오면 잡아내지 못하여 도적질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소도를 설립한 뜻은 불교와 같지만 선악의 판별 기준은 불교와 달랐다고 한다. 여기서 삼한의 소국이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성장한 군소 정치집단을 말한다. 각각의 소국은 국읍(國邑)을 중심으로 다수의 읍락(邑落)으로 구성되었고, 읍락과는 다른 별읍(別邑)도 있었다. 즉 소도는 방울과 북을 매단 장대를 세워 놓고 귀신을 제사하는 신성지역인 것이다. 이때 삼한에서 오월의 파종의례와 시월의 [수확](/topic/수확)의례를 귀신에게 제사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귀신은 농경신으로 여겨진다. 또 장대는 어딘가에 계시던 농경신이 제사의 장소로 내려오는 하강 통로이며, 방울과 북은 농경신에게 의례의 장소를 알리는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소도는 세속적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신성지역, 즉 아실럼(asylum)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는 삼한사회 정치권력의 미성숙과 이로 말미암은 사회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소도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다. 우선 소도가 한자어인지 우리말인지부터가 논란거리이다. 즉 소도를 한자어로 보아 그 말뜻을 ‘소생부활의 길’(범죄자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는 곳)로 보는 설과 우리말로 보아 ‘높이 솟은 곳’ 또는 ‘솟대’로 풀이하는 설이 있다. 현재 [마을](/topic/마을)신앙에서 볼 수 있는 솟대와의 관련성 여부도 논란거리이다. 소도에서 솟대가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소도와 솟대는 별개라는 주장도 있다. 대전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농경문 청동기의 갈라진 나뭇[가지](/topic/가지)들에 새가 한 마리씩 올라가 있는 그림을 소도로 해석하는 것도 소도를 솟대와 관련해 본 결과이다. 그리고 삼한 소국에는 [천군](/topic/천군)(天君)이란 제사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천군과 소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즉 천군이 소도를 관할했다는 입장에 따르면 소도의 귀신은 천신을 뜻하는 것이 된다. 이에 비해 천군은 하늘을 제사하는 제사장이고 소도는 귀신을 제사하는 곳이므로 별개라는 입장이 있다.

한편 소도는 자료와 여러 연구를 살펴볼 때 삼한시대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존속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신라의 [최치원](/topic/최치원)(崔致遠)은 「봉암사지증대사탑비(鳳巖寺智證大師碑)」에서 백제에 소도의례가 있다고 했고, 소도와 같은 신성지역이 불교 수용 이후 사찰로 변했다는 연구도 있다. 나아가 소도 유적을 찾는 노력이 있으며, 심지어 일본 쓰시마의 신역(神域)인 솟도(卒土)의 기원을 삼한의 소도에서 구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소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三韩时代马韩的神圣区域。

传说“苏涂”存在的基本史料为《三国志· 魏书·东夷传》。据传,在三韩有一个叫做苏涂的别邑( 区分于政治区域的地区),将系有鼓和铃的长竿立起祭祀鬼。由于苏涂为神圣区域,逃犯来此处躲避时无法被抓捕,因而据说三韩的偷盗案件较多。即苏涂是将系有铃鼓的长竿立起,祭祀鬼的神圣区域。此处所说的三韩小国,是指以铁器文化为基础,在朝鲜半岛南部地区发展起来的小规模政治集团。

据估测, 长竿是农耕神降临至祭祀场所的通道,铃鼓的角色则为告知农耕神仪礼场所。同时,苏涂具有世俗权力无法触及的神圣区域——即庇护所的性质。
Sodo was a sacred district in Mahan, one of the Three Han States of ancient Korea, circa 1st–3rd centuries.

Details about Sodo can be found in the Chinese history book Sanguozhi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in the “Account of Dongyi” chapter of the volume History of the Wei Dynasty. The book describes a district called Sodo in the Three Han States that was independent of the boundaries of political administration, where spirits were worshipped through rituals using a pole attached with a rattle and drum. The district was sacred, and refugees fled there for protection, which resulted in widespread burglary, the book records. The Three Han States were small political entities based on metal culture that had formed in the southern parts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ole is viewed as the channel for the descent of an agricultural god to the venue of the ritual, and the rattle and drum used to signal to the god the directions to the site. Sodo was, in effect, an asylum of sorts, a sacred place unreached by secular authority.
Sodo era un distrito sagrado en Mahan, uno de los tres estados formados por confederaciones de tribus, que se llaman Samhan en la región central y sur de la península coreana durante el siglo 《y el siglo》.

Los detalles en cuanto a Sodo pueden ser encontrados en el capítulo “Cuento de Dongyi”, uno de los volúmenes del Libro de Wei del texto histórico chino 《Registros de los Tres Reinos》. Según lo descrito en el libro, el distrito llamado Sodo ubicado en Samhan era independiente de las regiones político-administrativas, donde los espíritus eran reverenciados a través de la realización de una serie de rituales con un poste erecto de madera con un sonajero y un tambor colgados en él. Sodo era un espacio sagrado, entonces los refugiados solían huir allí en busca de protección, lo que podía dar lugar al robo generalizado en aquel tiempo. Los tres estados, Samhan eran las pequeñas entidades políticas, basadas en la cultura de la Edad de los Metales que habían formado en la parte sureña de la península coreana. El poste se consideraba como una vía de descenso por parte del dios de la agricultura hacia el sitio del ritual, así como el sonajero y el tambor se utilizaban como una señal para la dirección que había que tomar para llegar al destino. De hecho Sodo servía como un asilo, lugar sagrado que estaba sin la intervención de autoridades seculares.
三韩时代马韩的神圣区域。

传说“苏涂”存在的基本史料为《三国志· 魏书·东夷传》。据传,在三韩有一个叫做苏涂的别邑( 区分于政治区域的地区),将系有鼓和铃的长竿立起祭祀鬼。由于苏涂为神圣区域,逃犯来此处躲避时无法被抓捕,因而据说三韩的偷盗案件较多。即苏涂是将系有铃鼓的长竿立起,祭祀鬼的神圣区域。此处所说的三韩小国,是指以铁器文化为基础,在朝鲜半岛南部地区发展起来的小规模政治集团。

据估测, 长竿是农耕神降临至祭祀场所的通道,铃鼓的角色则为告知农耕神仪礼场所。同时,苏涂具有世俗权力无法触及的神圣区域——即庇护所的性质。
Sodo was a sacred district in Mahan, one of the Three Han States of ancient Korea, circa 1st–3rd centuries.

Details about Sodo can be found in the Chinese history book Sanguozhi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in the “Account of Dongyi” chapter of the volume History of the Wei Dynasty. The book describes a district called Sodo in the Three Han States that was independent of the boundaries of political administration, where spirits were worshipped through rituals using a pole attached with a rattle and drum. The district was sacred, and refugees fled there for protection, which resulted in widespread burglary, the book records. The Three Han States were small political entities based on metal culture that had formed in the southern parts of the Korean peninsula.

The pole is viewed as the channel for the descent of an agricultural god to the venue of the ritual, and the rattle and drum used to signal to the god the directions to the site. Sodo was, in effect, an asylum of sorts, a sacred place unreached by secular authority.
Sodo era un distrito sagrado en Mahan, uno de los tres estados formados por confederaciones de tribus, que se llaman Samhan en la región central y sur de la península coreana durante el siglo 《y el siglo》.

Los detalles en cuanto a Sodo pueden ser encontrados en el capítulo “Cuento de Dongyi”, uno de los volúmenes del Libro de Wei del texto histórico chino 《Registros de los Tres Reinos》. Según lo descrito en el libro, el distrito llamado Sodo ubicado en Samhan era independiente de las regiones político-administrativas, donde los espíritus eran reverenciados a través de la realización de una serie de rituales con un poste erecto de madera con un sonajero y un tambor colgados en él. Sodo era un espacio sagrado, entonces los refugiados solían huir allí en busca de protección, lo que podía dar lugar al robo generalizado en aquel tiempo. Los tres estados, Samhan eran las pequeñas entidades políticas, basadas en la cultura de la Edad de los Metales que habían formado en la parte sureña de la península coreana. El poste se consideraba como una vía de descenso por parte del dios de la agricultura hacia el sitio del ritual, así como el sonajero y el tambor se utilizaban como una señal para la dirección que había que tomar para llegar al destino. De hecho Sodo servía como un asilo, lugar sagrado que estaba sin la intervención de autoridades seculares.
서울대출판부한국무속의 연구(재판)최길성1980
국립문화재연구소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경상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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