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렴

한국무속신앙사전
김옥렴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3호 행당동 아기씨당굿 예능보[유자](/topic/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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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3호 행당동 아기씨당굿 예능보[유자](/topic/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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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정의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3호 행당동 아기씨당굿 예능보[유자](/topic/유자).
내용김옥렴은 1936년에 행당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이다. 친할머니인 쪽집게방 고송자, 어머니인 이쁜이 김묘순, 어진이 김옥렴으로 이어지는 신줄 있는 [만신](/topic/만신)이다. 17세 때 [신병](/topic/신병)이 시작되었지만 신을 받지 않으려고 눌림굿을 받으며 견디다가 결국 41세 때 정식으로 내림을 받았다. 늦은 나이에 무업에 들어섰지만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것이 굿일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전통적인 서울굿의 실상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왕십리를 중심으로 한 서울굿의 동쪽제 굿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

아기씨당과의 인연은 친할머니 고송자로부터 시작된다. [점사](/topic/점사)가 족집게 같다고 붙여진 쪽집게방 고송자는 팔관동 태생이지만 내림을 받은 이후에는 왕십리에 자리를 잡고 활동하였다. 그의 친정 일가가 아기씨당의 열쇠[고지](/topic/고지)기였기에 아기씨당과 인연을 맺게 됐다. 과거 아기씨당은 행당동에 세 곳이 있었다. 살군당•양지당•수풀당으로 김옥렴이 당주를 맡고 있는 곳은 살군당이다. 양지당은 유실됐다.

고송자는 자손이 없어 조카 김현세를 양자로 들이고, 대를 물리기 위해 첫째 며느리가 있음에도 둘째 며느리 김묘분을 맞아들이게 한다. 김묘분은 13세 때 왕십리 청빼미를 신어머니로 두었고, 17세 때 김현세에게 시집와서는 고송자와 함께 굿을 하였다. 김옥렴은 일찍 신을 받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이들의 수발을 드는 이른바 시봉 노릇을 하는 등 굿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있었다. 김옥렴은 개인적으로 남의 굿일을 다니는 이른바 청승 무당은 아니기에 모든 굿거리에 대한 기예를 갖추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것이 전통적인 것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름대로 이론적 안목이 있는 만신이다. 또한 행동이 반듯하고, [단골](/topic/단골)과 학자 등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밝고 친절하여 따뜻함을 주는 만신이다. 현재 거주하는 곳은 성동구 행당1동 128-901호로, 개인 신당이면서 살림하는 집과 별채로 꾸며진 아기씨당이 붙어 있다. 개인 신당에는 100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는 무신도 14점 등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무구들을 간직하고 있다.
참고문헌성동구의 민간신앙 (최래옥 외, 성동문화원, 2005)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서울시,경기도,강원도편 (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05)
서울굿의 동쪽제와 서쪽제 비교 (고영희, 비교민속학 29, 비교민속학회, 2005)
서울굿의 다양성과 구조 (김헌선, 한국무속학 12, 한국무속학회, 2006)
서울지역 당신화 연구-행당동 아기씨당을 중심으로 (고영희, 서울굿의 이해, 민속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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