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고사

한국무속신앙사전
보름고사
농군들의 명절인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을 기해서 각 가정에서 절식(節食)을 마련해 집안의 신령과 조상께 올리는 [고사](/topic/고사). 음력 정월 열나흗날부터 보름날까지 집안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다양한 고사를 드린다. 열흘날에는 고사떡을 마련하여 집안 신령에게 치성을 드려 집안의 화평을 보장받고, 보름날에는 [약밥](/topic/약밥)이나 [오곡](/topic/오곡)밥 등을 준비해서 조상과 집안의 신령을 대접한다. 이미 설날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농군의 명절인 대보름을 맞아 다시 한 번 새로운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차원에서 베푸는 의례들이다. 풍년을 상징하는 대보름달처럼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떡과 밥을 넉넉하게 마련해서 차례도 지내고 이웃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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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들의 명절인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을 기해서 각 가정에서 절식(節食)을 마련해 집안의 신령과 조상께 올리는 [고사](/topic/고사). 음력 정월 열나흗날부터 보름날까지 집안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다양한 고사를 드린다. 열흘날에는 고사떡을 마련하여 집안 신령에게 치성을 드려 집안의 화평을 보장받고, 보름날에는 [약밥](/topic/약밥)이나 [오곡](/topic/오곡)밥 등을 준비해서 조상과 집안의 신령을 대접한다. 이미 설날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농군의 명절인 대보름을 맞아 다시 한 번 새로운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차원에서 베푸는 의례들이다. 풍년을 상징하는 대보름달처럼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떡과 밥을 넉넉하게 마련해서 차례도 지내고 이웃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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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경
정의농군들의 명절인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을 기해서 각 가정에서 절식(節食)을 마련해 집안의 신령과 조상께 올리는 [고사](/topic/고사). 음력 정월 열나흗날부터 보름날까지 집안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다양한 고사를 드린다. 열흘날에는 고사떡을 마련하여 집안 신령에게 치성을 드려 집안의 화평을 보장받고, 보름날에는 [약밥](/topic/약밥)이나 [오곡](/topic/오곡)밥 등을 준비해서 조상과 집안의 신령을 대접한다. 이미 설날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농군의 명절인 대보름을 맞아 다시 한 번 새로운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차원에서 베푸는 의례들이다. 풍년을 상징하는 대보름달처럼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떡과 밥을 넉넉하게 마련해서 차례도 지내고 이웃과 나눈다.
정의농군들의 명절인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을 기해서 각 가정에서 절식(節食)을 마련해 집안의 신령과 조상께 올리는 [고사](/topic/고사). 음력 정월 열나흗날부터 보름날까지 집안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다양한 고사를 드린다. 열흘날에는 고사떡을 마련하여 집안 신령에게 치성을 드려 집안의 화평을 보장받고, 보름날에는 [약밥](/topic/약밥)이나 [오곡](/topic/오곡)밥 등을 준비해서 조상과 집안의 신령을 대접한다. 이미 설날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지만 농군의 명절인 대보름을 맞아 다시 한 번 새로운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차원에서 베푸는 의례들이다. 풍년을 상징하는 대보름달처럼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떡과 밥을 넉넉하게 마련해서 차례도 지내고 이웃과 나눈다.
역사대보름은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로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 권1 사금갑(射琴匣)조에 신라 소지왕의 목숨을 구한 까마귀와 쥐에게 보답하기 위해 [찰밥](/topic/찰밥)[糯飯]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 「점반(粘飯)」에는 대보름 즈음에 찰밥을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두 기록을 통해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대보름 절식은 [약밥](/topic/약밥)이 아니라 찰밥으로 볼 수 있다. 『목은집』에 이색에게 남산 무당집에서 약밥을 보내왔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대에 약밥과 찰밥 두 종류가 식용되고 있었지만 대보름 절식은 약밥이 아니라 찰밥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찰밥과 약밥이 모두 대보름 절식으로 등장한다. 찰밥과 관련한 내용은 『동안선생속집』에서 “찰밥[糯飯]을 얻으러 오는 이 있으면 어디에 쓰려는지 아는가? 찰밥의 유래는 신라에서 비롯된 것인데, 병자가 스물 한 집의 찰밥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찰밥은 오늘날처럼 민간에서 나누어 먹던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약밥은 찰밥의 일종이지만 다양한 것을 곁들인 좀 더 고급화된 음식이다.『상원리곡(上元俚曲)』에 “곶감과 [대추](/topic/대추)살 찹쌀과 섞어 밥 짓고, 하얀 잣알에 기름 같은 꿀을 버[무리](/topic/무리)네, 집집마다 약밥 짓는 일 풍속을 이루어, 까마귀의 제사 대신 조상사당에 제사 지내네.”라는 기록이 있다. 약밥으로 까마귀 제사 대신 조상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대보름 제사는 [유자](/topic/유자)들 사이에서 까마귀 제사라는 의미가 약화되고 조상에 대한 명절차례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해동죽지](/topic/해동죽지)』에서는 “찹쌀밥으로 까마귀에게 제사한 [고사](/topic/고사)가 있지만 그것이 와전되어 제사음식이 되었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조상 제사와의 연관성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택당선생별집』에서는 사대부가에서 [사당](/topic/사당)에 상원 속절일(俗節日)에 올리는 대표적인 절식으로 약반을 꼽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대보름 절식이 찰밥과 약밥으로 이원화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실제 조선시대에 약밥을 표현하는 용어는 약밥[藥飯], 삶은밥[煮飯], 종밀(粽蜜), 찰밥[糯飯], 꿀음식[蜜餌], 찰밥[秫飯], 향반(香飯) 등으로 다양하다. 이는 대보름 절식이 약밥과 찰밥으로 구분됨을 보여 준다. 찰밥은 민간에서 나누어 먹는 음식을 지칭하는 경향이 강하고, 약밥은 조상 제사의 제물로 언급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계층에 따라 절식의 종류를 달리했음을 의미한다.

약밥[藥飯]은 보름날의 절식이기는 했지만 부잣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세시잡영(歲時雜詠)』에 “수많은 단사 알갱이 하나로 모은 듯, 가난한 사람들은 맛보기 어렵다네, 어찌 알랴 언제나 먹는 부호한 자녀들, 항상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네.”로 표현하였다. 『매월당시집(梅月堂詩集)』에도 “새봄에 벌써 상원이 되었네, 집이 빈한하여 약밥이 없고, 모아둔 것도 없어 풀뿌리나 먹네.”라는 내용이 있다. 절식이라고는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하는 힘든 날이 대보름이기 때문에 비싼 약밥은 마련하지 못하였다. 대보름의 힘든 상황은 『덕양유고(德陽遺稿)』에 “정월 15일 저녁에 늙은 농부들이 성가퀴에 모이네, 농사일을이야기 하면서 달이 뜨는 것을 기다리네. … 어른들은 [농기구](/topic/농기구)를 손보고 어린이는 소의 여물을 준비하네, 전 해의 가을에 장마가 길어서 밭마다 소출이 적었네, 솥을 팔아서 [기장](/topic/기장) 죽이라도 마련하고 돈을 빌려서 세금을 낼 것이네, 봄이 돌아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처자식은 울음소리를 낼 것이네…”이라 표현하였다. 이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이라 해도 대다수 [농민](/topic/농민)은 굶주림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식은 사치일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민간적인 방법으로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찰밥과 약으로 먹던 묵은 나물이었다.

대보름은 고려시대 9대 속절에 해당되는 큰 명절이었다. 명절 절식은 명절을 기리는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이다. 비록 소찬인 나물이지만 그것에도 특별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에는 “묵은 나물([호박](/topic/호박)이나 무 등의 껍질)을 먹으면 더위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세시잡영』에는 호박[고지](/topic/고지), 박고지, 무말랭이 등이 소개되어 있다. 『해동죽지』에는 “옛 풍속에 정월대보름날이면 집집마다 지난해에 마련해 둔 나물을 먹어 일 년 동안의 질병을 없앴으니, 이를 묵은 나물이라고 한다. … 그 중에서도 검푸른 무시래기, 온갖 병 없애는 최고의 약방문이라네.”가 주목된다. 이처럼 찰밥과 묵은 나물은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보름을 견디도록 하는 주요한 약방문이었다. 특별하게 만든 별식이자 보약을 마련했으니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비록 기록을 통해 민간에서 차례를 지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사대부가의 사당차례와 마찬[가지](/topic/가지)로 민간에서도 찰밥과 묵은 나물로 [보름차례](/topic/보름차례)를 지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형태와 내용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날로 가절(佳節)이다. 보름달을 처음 맞이하는 시기이므로 보름달의 넉넉함처럼 생활도 넉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한 [고사](/topic/고사)를 지낸다. 보름이라 할 때 그 전날인 열 나흗날부터 대보름날까지를 일컫는다. 이날 민간에서는 ‘농군의 명절’이라고 한다. 농사준비를 시작하는 첫날이기 때문에 풍년을 희구하는 마음을 담아 다양한 정성을 기울인다. 이러한 보름에 특별한 절식을 마련해서 집안의 신령을 비롯하여 조상께 고사를 올린다. 열 나흗날에는 [오곡](/topic/오곡)밥을 지어 먹고 나누기도 하며, 액막이를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오곡밥은 [수수](/topic/수수), 팥, 조, 찹쌀 등을 넣고 마련한다. 전라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이 밥을 풍년을 기원하며 먹는다. 그러나 전라남도 전 지역과 충청남도의 아산시에서는 집 안에 끼어 있는 액을 막기 위해 먹기보다 집 안 곳곳에 뿌린다. 전라도에서는 이 밥을 ‘잡귀밥’, ‘거릿밥’, ‘물애밥’, ‘허튼밥’, ‘진대밥’, ‘[텃밥](/topic/텃밥)’이라고 한다. 특히 집터가 센 집에서는 반드시 마련한다. 아산지역에서는 특별히 부르는 명칭은 없으며 부정을 막기 위해 오곡밥을 뿌린다.

열 나흗날 저녁에는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고사떡을 마련한다. ‘[정월떡](/topic/정월떡)’, ‘농사시루’라 할 정도로 풍년을 희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때 드리는 고사를 ‘[정월고사](/topic/정월고사)’라 한다. 10월에 추수하여 떡을 쪄서 집안 신령을 위하는 것보다 소략하게 행하지만 농사의 첫 시간을 농사시루로 시작한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깊다. 보통 대보름 이전에 [안택](/topic/안택)을 했기에 정월고사는 안택에 흡수되기도 한다. 그러나 굿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서는 별도로 행하기도 하였다. 작은 정성으로 마련한 떡 한 시루를 놓고 집안의 신령께 한 해의 풍년을 희구하였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전날 마련한 오곡밥이 아니라 새로 밥을 짓는다. 찹쌀밥이나 흰쌀밥을 짓는다. 이 밥은 풍년을 희구하는 마음에서 짓기 때문에 ‘농사밥’이라고 부른다. 대보름날 먹는 밥이라 하여 ‘[보름밥](/topic/보름밥)’이라고도 한다. 이 밥은 묵은 나물과 김을 반찬 삼아 먹는다. 이들 절식은 명절을 맞아 준비한 것이지만 집 안에 모신 조상과 신령을 무시할 수 없어서 정성껏 대접한다. 유교 예제에는 없는 전통적인 관행이어서 차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거행한다. 전라도, 경상도 지역과 충청도와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조상 차례를 올리기 이전에 집안의 여러 신령에게 음식을 올린다.
역사대보름은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로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 권1 사금갑(射琴匣)조에 신라 소지왕의 목숨을 구한 까마귀와 쥐에게 보답하기 위해 [찰밥](/topic/찰밥)[糯飯]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 「점반(粘飯)」에는 대보름 즈음에 찰밥을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두 기록을 통해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대보름 절식은 [약밥](/topic/약밥)이 아니라 찰밥으로 볼 수 있다. 『목은집』에 이색에게 남산 무당집에서 약밥을 보내왔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대에 약밥과 찰밥 두 종류가 식용되고 있었지만 대보름 절식은 약밥이 아니라 찰밥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찰밥과 약밥이 모두 대보름 절식으로 등장한다. 찰밥과 관련한 내용은 『동안선생속집』에서 “찰밥[糯飯]을 얻으러 오는 이 있으면 어디에 쓰려는지 아는가? 찰밥의 유래는 신라에서 비롯된 것인데, 병자가 스물 한 집의 찰밥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찰밥은 오늘날처럼 민간에서 나누어 먹던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약밥은 찰밥의 일종이지만 다양한 것을 곁들인 좀 더 고급화된 음식이다.『상원리곡(上元俚曲)』에 “곶감과 [대추](/topic/대추)살 찹쌀과 섞어 밥 짓고, 하얀 잣알에 기름 같은 꿀을 버[무리](/topic/무리)네, 집집마다 약밥 짓는 일 풍속을 이루어, 까마귀의 제사 대신 조상사당에 제사 지내네.”라는 기록이 있다. 약밥으로 까마귀 제사 대신 조상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대보름 제사는 [유자](/topic/유자)들 사이에서 까마귀 제사라는 의미가 약화되고 조상에 대한 명절차례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해동죽지](/topic/해동죽지)』에서는 “찹쌀밥으로 까마귀에게 제사한 [고사](/topic/고사)가 있지만 그것이 와전되어 제사음식이 되었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조상 제사와의 연관성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택당선생별집』에서는 사대부가에서 [사당](/topic/사당)에 상원 속절일(俗節日)에 올리는 대표적인 절식으로 약반을 꼽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대보름 절식이 찰밥과 약밥으로 이원화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실제 조선시대에 약밥을 표현하는 용어는 약밥[藥飯], 삶은밥[煮飯], 종밀(粽蜜), 찰밥[糯飯], 꿀음식[蜜餌], 찰밥[秫飯], 향반(香飯) 등으로 다양하다. 이는 대보름 절식이 약밥과 찰밥으로 구분됨을 보여 준다. 찰밥은 민간에서 나누어 먹는 음식을 지칭하는 경향이 강하고, 약밥은 조상 제사의 제물로 언급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계층에 따라 절식의 종류를 달리했음을 의미한다.

약밥[藥飯]은 보름날의 절식이기는 했지만 부잣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세시잡영(歲時雜詠)』에 “수많은 단사 알갱이 하나로 모은 듯, 가난한 사람들은 맛보기 어렵다네, 어찌 알랴 언제나 먹는 부호한 자녀들, 항상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네.”로 표현하였다. 『매월당시집(梅月堂詩集)』에도 “새봄에 벌써 상원이 되었네, 집이 빈한하여 약밥이 없고, 모아둔 것도 없어 풀뿌리나 먹네.”라는 내용이 있다. 절식이라고는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하는 힘든 날이 대보름이기 때문에 비싼 약밥은 마련하지 못하였다. 대보름의 힘든 상황은 『덕양유고(德陽遺稿)』에 “정월 15일 저녁에 늙은 농부들이 성가퀴에 모이네, 농사일을이야기 하면서 달이 뜨는 것을 기다리네. … 어른들은 [농기구](/topic/농기구)를 손보고 어린이는 소의 여물을 준비하네, 전 해의 가을에 장마가 길어서 밭마다 소출이 적었네, 솥을 팔아서 [기장](/topic/기장) 죽이라도 마련하고 돈을 빌려서 세금을 낼 것이네, 봄이 돌아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처자식은 울음소리를 낼 것이네…”이라 표현하였다. 이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이라 해도 대다수 [농민](/topic/농민)은 굶주림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식은 사치일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민간적인 방법으로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찰밥과 약으로 먹던 묵은 나물이었다.

대보름은 고려시대 9대 속절에 해당되는 큰 명절이었다. 명절 절식은 명절을 기리는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이다. 비록 소찬인 나물이지만 그것에도 특별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에는 “묵은 나물([호박](/topic/호박)이나 무 등의 껍질)을 먹으면 더위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세시잡영』에는 호박[고지](/topic/고지), 박고지, 무말랭이 등이 소개되어 있다. 『해동죽지』에는 “옛 풍속에 정월대보름날이면 집집마다 지난해에 마련해 둔 나물을 먹어 일 년 동안의 질병을 없앴으니, 이를 묵은 나물이라고 한다. … 그 중에서도 검푸른 무시래기, 온갖 병 없애는 최고의 약방문이라네.”가 주목된다. 이처럼 찰밥과 묵은 나물은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보름을 견디도록 하는 주요한 약방문이었다. 특별하게 만든 별식이자 보약을 마련했으니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비록 기록을 통해 민간에서 차례를 지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사대부가의 사당차례와 마찬[가지](/topic/가지)로 민간에서도 찰밥과 묵은 나물로 [보름차례](/topic/보름차례)를 지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형태와 내용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날로 가절(佳節)이다. 보름달을 처음 맞이하는 시기이므로 보름달의 넉넉함처럼 생활도 넉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한 [고사](/topic/고사)를 지낸다. 보름이라 할 때 그 전날인 열 나흗날부터 대보름날까지를 일컫는다. 이날 민간에서는 ‘농군의 명절’이라고 한다. 농사준비를 시작하는 첫날이기 때문에 풍년을 희구하는 마음을 담아 다양한 정성을 기울인다. 이러한 보름에 특별한 절식을 마련해서 집안의 신령을 비롯하여 조상께 고사를 올린다. 열 나흗날에는 [오곡](/topic/오곡)밥을 지어 먹고 나누기도 하며, 액막이를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오곡밥은 [수수](/topic/수수), 팥, 조, 찹쌀 등을 넣고 마련한다. 전라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이 밥을 풍년을 기원하며 먹는다. 그러나 전라남도 전 지역과 충청남도의 아산시에서는 집 안에 끼어 있는 액을 막기 위해 먹기보다 집 안 곳곳에 뿌린다. 전라도에서는 이 밥을 ‘잡귀밥’, ‘거릿밥’, ‘물애밥’, ‘허튼밥’, ‘진대밥’, ‘[텃밥](/topic/텃밥)’이라고 한다. 특히 집터가 센 집에서는 반드시 마련한다. 아산지역에서는 특별히 부르는 명칭은 없으며 부정을 막기 위해 오곡밥을 뿌린다.

열 나흗날 저녁에는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고사떡을 마련한다. ‘[정월떡](/topic/정월떡)’, ‘농사시루’라 할 정도로 풍년을 희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때 드리는 고사를 ‘[정월고사](/topic/정월고사)’라 한다. 10월에 추수하여 떡을 쪄서 집안 신령을 위하는 것보다 소략하게 행하지만 농사의 첫 시간을 농사시루로 시작한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깊다. 보통 대보름 이전에 [안택](/topic/안택)을 했기에 정월고사는 안택에 흡수되기도 한다. 그러나 굿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서는 별도로 행하기도 하였다. 작은 정성으로 마련한 떡 한 시루를 놓고 집안의 신령께 한 해의 풍년을 희구하였다.

대보름날 아침에는 전날 마련한 오곡밥이 아니라 새로 밥을 짓는다. 찹쌀밥이나 흰쌀밥을 짓는다. 이 밥은 풍년을 희구하는 마음에서 짓기 때문에 ‘농사밥’이라고 부른다. 대보름날 먹는 밥이라 하여 ‘[보름밥](/topic/보름밥)’이라고도 한다. 이 밥은 묵은 나물과 김을 반찬 삼아 먹는다. 이들 절식은 명절을 맞아 준비한 것이지만 집 안에 모신 조상과 신령을 무시할 수 없어서 정성껏 대접한다. 유교 예제에는 없는 전통적인 관행이어서 차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거행한다. 전라도, 경상도 지역과 충청도와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조상 차례를 올리기 이전에 집안의 여러 신령에게 음식을 올린다.
지역사례대보름의 절식으로 민간에서 대표적인 것은 [오곡](/topic/오곡)밥이다. 오곡밥은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에 나오는 [찰밥](/topic/찰밥)과 맥을 함께 한다. 오곡밥이란 명칭은 후대에 붙여졌다. [수수](/topic/수수), 조, 찹쌀, 콩, 팥 등을 섞어서 찐다. 이 밥은 열 나흗날 저녁밥으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느 날과 달리 일찍 지어 먹어야 농사에서 장원을 한다고 하여 서두른다. 오곡밥은 여러 번 먹어야 좋다고 하여 아홉 번 또는 일곱 번을 먹는다. 남의 집에서 얻어먹어야 좋다고 하여 세 집을 돌며 얻기도 하고 훔쳐 먹기도 한다. 특히 오곡밥은 아이들이 얻어먹으러 다녔다. 버짐이 없어진다고 하여 될 수 있는 한 많이 먹으려 하였다. 버짐이 영양 부족으로 발생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오곡밥을 얻어먹는 것은 영양보충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전남지역에서는 오곡밥으로 액을 물리치기도 한다. 장흥군 부산면 지천리에서는 ‘허튼밥’이라 하여 대보름날 아침에 수수, 팥, 조, 찹쌀 등을 섞어서 밥을 지어 먹지 않고 새벽에 집 안 곳곳에 가져다 놓는다. 경남지역에서는 오곡밥 대신 잡곡을 집 주변에 뿌리기도 한다. 집터가 센 것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라 한다.

열 나흗날 저녁에는 집 안의 [장독대](/topic/장독대)에서 한 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고사](/topic/정월고사)를 지낸다. 가을시루와 달리 정월시루는 양을 적게 한다. 장광에 놓고 [비손](/topic/비손)한 뒤에 방안의 성주께 가져다 둔다. 한동안 두었다가 떡은 나누어 먹는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소라실에서는 집안 식구를 위해 장광에서 치성을 드리고 [마당](/topic/마당)에서 추가로 치성을 드렸다. 사업하는 아들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안정과 평안을 위해 [마당제](/topic/마당제)를 추가한 것이다. 이처럼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소찬이지만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리고 다양한 의미를 추가하였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에서는 열 나흗날 밤에 새해를 맞아 모든 것이 다 잘되게 해달라는 뜻으로 고사를 지낸다. 이는 ‘정월고사’로, 팥 [시루떡](/topic/시루떡) 한 시루를 쪄서 성주와 터주에게 올린다. 제석과 칠성에는 흰[무리](/topic/무리)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쌀가루만을 부어서 찐다. 떡이 쪄지면 제석과 칠성을 위한다. 성주([마루](/topic/마루))에 떡시루를 놓고 [대주](/topic/대주)가 [헌작](/topic/헌작) 하고 재배한다. 식구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린 뒤 떡을 떼어내 집 안 곳곳에 가져다 놓는다. 제석([안방](/topic/안방)), 대감(마루), 터주(뒤란), [대문](/topic/대문)간, [외양간](/topic/외양간), [굴뚝](/topic/굴뚝) 등에 세 쪽씩 떼어내 접시에 담아서 둔다. 변소에는 떡을 조금 떼어내 던져 넣는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서는 열 나흗날에 보름떡을 쪄서 나누어 먹는다. 떡을 찔 때 층층마다 식구의 이름을 써놓는다. 떡이 잘 쪄진 층에 이름을 써 놓은 사람은 그해에 운수가 좋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층의 사람은 액운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 훗날 심방을 불러 굿을 해준다.

넉넉하게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작게라도 보름떡을 쪄서 고사를 지내는 것에는 [농민](/topic/농민)의 소박함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을 통해 식구의 운을 점치기도 하고 가장 큰 소망인 가정의 안과태평과 풍농을 기원하기도 한다. 집 안의 여러 신령에게 조금씩이나마 떡을 돌림으로써 그들을 든든한 울타리 삼아 생활하고자 한 농민의 소박함이 깃들어 있다.

대보름날 아침밥은 전날 지어 놓은 오곡밥을 먹기도 하지만 찰밥 또는 쌀밥으로 새로 짓는 경우가 더 많다. 대보름 명절이어서 찰밥으로 차례를 지내지만 경기도와 충청도 북부 지역에서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충청도 이남의 대다수 지역에서는 ‘[보름차례](/topic/보름차례)’라 하여 조상과 집안 신령께 정성을 올린다. 이때 조상보다는 집안 신령을 위한 상을 먼저 차린다. 조상보다 신령을 우위로 관념하기 때문이다. 함께 상을 마련할 때도 조상보다 [성주상](/topic/성주상)에 먼저 음식을 올린다. 지역마다 보름차례의 방식은 다소 다르다.

충남 서천군 서면 도둔리에서는 성주상은 크기를 작게 할 뿐 [조상상](/topic/조상상)과 동일한 제물을 올린다. 비린 것은 올리지 않기 때문에 산적이나 생선 등은 마련하지 않는다. 또 조상상에는 고깃국을 올려도 나머지 신령을 위하는 상에는 멸치로 국물을 내어 국을 마련한다. 성주상에는 밥만 한 그릇 올릴 뿐 수저는 올리는 않는다. 신령은 냄새로 운감하므로 수저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조상상은 모시는 조상의 수대로 밥을 마련해 올린다. 이때 밥그릇 중앙에 숟가락을 꽂아 둔다. 잔을 올리고 단배를 하기도 하고 절을 하지 않기도 한다. 성주상 이외에 장광의 터주께도 동일하게 제물을 마련해 올리기도 하지만 거의 드물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두음리에서는 일 년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새벽 3시에 찰밥, 국, 탕을 각기 솥째 준비한다. 일찍 준비하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준비한 음식은 이웃에게 나누어준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서는 찰밥을 큰 양푼에 가득 담아서 방안의 [윗목](/topic/윗목) 방바닥에 놓는다. 밥 위에는 숟가락을 있는 대로 모두 꽂고 전날 지은 오곡밥도 남아 있으면 한 그릇 퍼다 놓는다. 상만 차려 둘 뿐 절은 하지 않는다.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에서는 방 안에 선영상, 성주상, 지앙상을 차린다. 조상상 아래에는 존[자리](/topic/자리)를 깐다. 이 자리는 조상과 삼신을 위할 때만 깐다. 오른쪽에 성주상, 왼쪽에 선영상을 놓는다. 상 사이의 빈 공간에는 짚을 깔고 [삼신상](/topic/삼신상)을 올린다. 산모가 있다면 미역국을 끓여 올린다. 상 위에는 조상 수대로 밥과 국을 올린다. 성주상에는 밥과 국을 각기 한 그릇씩 올린다. 조상상 앞쪽에는 오곡밥과 쌀밥을 큰 양푼에 각기 가득 담아 놓고 집에 있는 숟가락을 모두 꺼내서 꽂아 둔다. 이것은 조상과 함께 다니러 온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상에 올리지 않고 땅에 놓는다. 그런 다음 잔을 올리고 재배를 한다.

경상도지역에서는 조상상과 더불어 성주상을 마련한다. 집 안에 시준을 모시고 있다면 시준상도 함께 마련한다. [부엌](/topic/부엌)에는 조왕을 위해서도 별도의 상을 차린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 동래리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보름밥](/topic/보름밥)’을 짓는다. 메밥과 찰밥을 각기 지어 한 그릇씩 올린다. 부엌의 조왕에서 밥을 짓기 때문에 조왕께 먼저 제물을 올린다. 조왕소지를 올린 뒤 식구 수대로 소지를 올린다. 그러고 나서 방 안에 조상상을 올린다. 양푼에 밥을 가득 담고 숟가락을 꽂아 둔다. 이 밥은 마당에서는 놓지 않는다.
지역사례대보름의 절식으로 민간에서 대표적인 것은 [오곡](/topic/오곡)밥이다. 오곡밥은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에 나오는 [찰밥](/topic/찰밥)과 맥을 함께 한다. 오곡밥이란 명칭은 후대에 붙여졌다. [수수](/topic/수수), 조, 찹쌀, 콩, 팥 등을 섞어서 찐다. 이 밥은 열 나흗날 저녁밥으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느 날과 달리 일찍 지어 먹어야 농사에서 장원을 한다고 하여 서두른다. 오곡밥은 여러 번 먹어야 좋다고 하여 아홉 번 또는 일곱 번을 먹는다. 남의 집에서 얻어먹어야 좋다고 하여 세 집을 돌며 얻기도 하고 훔쳐 먹기도 한다. 특히 오곡밥은 아이들이 얻어먹으러 다녔다. 버짐이 없어진다고 하여 될 수 있는 한 많이 먹으려 하였다. 버짐이 영양 부족으로 발생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오곡밥을 얻어먹는 것은 영양보충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전남지역에서는 오곡밥으로 액을 물리치기도 한다. 장흥군 부산면 지천리에서는 ‘허튼밥’이라 하여 대보름날 아침에 수수, 팥, 조, 찹쌀 등을 섞어서 밥을 지어 먹지 않고 새벽에 집 안 곳곳에 가져다 놓는다. 경남지역에서는 오곡밥 대신 잡곡을 집 주변에 뿌리기도 한다. 집터가 센 것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라 한다.

열 나흗날 저녁에는 집 안의 [장독대](/topic/장독대)에서 한 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고사](/topic/정월고사)를 지낸다. 가을시루와 달리 정월시루는 양을 적게 한다. 장광에 놓고 [비손](/topic/비손)한 뒤에 방안의 성주께 가져다 둔다. 한동안 두었다가 떡은 나누어 먹는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소라실에서는 집안 식구를 위해 장광에서 치성을 드리고 [마당](/topic/마당)에서 추가로 치성을 드렸다. 사업하는 아들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안정과 평안을 위해 [마당제](/topic/마당제)를 추가한 것이다. 이처럼 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소찬이지만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리고 다양한 의미를 추가하였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에서는 열 나흗날 밤에 새해를 맞아 모든 것이 다 잘되게 해달라는 뜻으로 고사를 지낸다. 이는 ‘정월고사’로, 팥 [시루떡](/topic/시루떡) 한 시루를 쪄서 성주와 터주에게 올린다. 제석과 칠성에는 흰[무리](/topic/무리)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쌀가루만을 부어서 찐다. 떡이 쪄지면 제석과 칠성을 위한다. 성주([마루](/topic/마루))에 떡시루를 놓고 [대주](/topic/대주)가 [헌작](/topic/헌작) 하고 재배한다. 식구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를 올린 뒤 떡을 떼어내 집 안 곳곳에 가져다 놓는다. 제석([안방](/topic/안방)), 대감(마루), 터주(뒤란), [대문](/topic/대문)간, [외양간](/topic/외양간), [굴뚝](/topic/굴뚝) 등에 세 쪽씩 떼어내 접시에 담아서 둔다. 변소에는 떡을 조금 떼어내 던져 넣는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서는 열 나흗날에 보름떡을 쪄서 나누어 먹는다. 떡을 찔 때 층층마다 식구의 이름을 써놓는다. 떡이 잘 쪄진 층에 이름을 써 놓은 사람은 그해에 운수가 좋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층의 사람은 액운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 훗날 심방을 불러 굿을 해준다.

넉넉하게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작게라도 보름떡을 쪄서 고사를 지내는 것에는 [농민](/topic/농민)의 소박함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을 통해 식구의 운을 점치기도 하고 가장 큰 소망인 가정의 안과태평과 풍농을 기원하기도 한다. 집 안의 여러 신령에게 조금씩이나마 떡을 돌림으로써 그들을 든든한 울타리 삼아 생활하고자 한 농민의 소박함이 깃들어 있다.

대보름날 아침밥은 전날 지어 놓은 오곡밥을 먹기도 하지만 찰밥 또는 쌀밥으로 새로 짓는 경우가 더 많다. 대보름 명절이어서 찰밥으로 차례를 지내지만 경기도와 충청도 북부 지역에서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충청도 이남의 대다수 지역에서는 ‘[보름차례](/topic/보름차례)’라 하여 조상과 집안 신령께 정성을 올린다. 이때 조상보다는 집안 신령을 위한 상을 먼저 차린다. 조상보다 신령을 우위로 관념하기 때문이다. 함께 상을 마련할 때도 조상보다 [성주상](/topic/성주상)에 먼저 음식을 올린다. 지역마다 보름차례의 방식은 다소 다르다.

충남 서천군 서면 도둔리에서는 성주상은 크기를 작게 할 뿐 [조상상](/topic/조상상)과 동일한 제물을 올린다. 비린 것은 올리지 않기 때문에 산적이나 생선 등은 마련하지 않는다. 또 조상상에는 고깃국을 올려도 나머지 신령을 위하는 상에는 멸치로 국물을 내어 국을 마련한다. 성주상에는 밥만 한 그릇 올릴 뿐 수저는 올리는 않는다. 신령은 냄새로 운감하므로 수저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조상상은 모시는 조상의 수대로 밥을 마련해 올린다. 이때 밥그릇 중앙에 숟가락을 꽂아 둔다. 잔을 올리고 단배를 하기도 하고 절을 하지 않기도 한다. 성주상 이외에 장광의 터주께도 동일하게 제물을 마련해 올리기도 하지만 거의 드물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두음리에서는 일 년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새벽 3시에 찰밥, 국, 탕을 각기 솥째 준비한다. 일찍 준비하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준비한 음식은 이웃에게 나누어준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서는 찰밥을 큰 양푼에 가득 담아서 방안의 [윗목](/topic/윗목) 방바닥에 놓는다. 밥 위에는 숟가락을 있는 대로 모두 꽂고 전날 지은 오곡밥도 남아 있으면 한 그릇 퍼다 놓는다. 상만 차려 둘 뿐 절은 하지 않는다.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에서는 방 안에 선영상, 성주상, 지앙상을 차린다. 조상상 아래에는 존[자리](/topic/자리)를 깐다. 이 자리는 조상과 삼신을 위할 때만 깐다. 오른쪽에 성주상, 왼쪽에 선영상을 놓는다. 상 사이의 빈 공간에는 짚을 깔고 [삼신상](/topic/삼신상)을 올린다. 산모가 있다면 미역국을 끓여 올린다. 상 위에는 조상 수대로 밥과 국을 올린다. 성주상에는 밥과 국을 각기 한 그릇씩 올린다. 조상상 앞쪽에는 오곡밥과 쌀밥을 큰 양푼에 각기 가득 담아 놓고 집에 있는 숟가락을 모두 꺼내서 꽂아 둔다. 이것은 조상과 함께 다니러 온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상에 올리지 않고 땅에 놓는다. 그런 다음 잔을 올리고 재배를 한다.

경상도지역에서는 조상상과 더불어 성주상을 마련한다. 집 안에 시준을 모시고 있다면 시준상도 함께 마련한다. [부엌](/topic/부엌)에는 조왕을 위해서도 별도의 상을 차린다. 경남 거창군 가조면 동래리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보름밥](/topic/보름밥)’을 짓는다. 메밥과 찰밥을 각기 지어 한 그릇씩 올린다. 부엌의 조왕에서 밥을 짓기 때문에 조왕께 먼저 제물을 올린다. 조왕소지를 올린 뒤 식구 수대로 소지를 올린다. 그러고 나서 방 안에 조상상을 올린다. 양푼에 밥을 가득 담고 숟가락을 꽂아 둔다. 이 밥은 마당에서는 놓지 않는다.
의의대보름날에는 만월(滿月)이 상징하는 풍요함을 통해 농사의 풍요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염원이 어우러져 많은 의례로 표출되었다. 만월의 충만함을 통해 자신들의 삶도 풍만하고 여유롭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군들은 보름을 자신의 명절로 관념하면서 이러한 믿음을 성취하고자 하였다. 새로운 해의 시작이므로 열 나흗날부터 만전을 기해 준비한다. 보름고사를 통해 집 안에 복을 초치하고, [오곡](/topic/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마련해 나누어 먹으면서 한 해의 건강을 확보하고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보름날 아침에는 [찰밥](/topic/찰밥)을 마련해 차례를 모신다. 조상뿐만 아니라 집안의 성주, 삼신께도 상을 올린다. 전통적인 관행에 따른 것이므로 유교식으로 거행하지 않는다. 새로운 출발에 앞서 또 한 번 집안의 신령께 정성껏 의례를 베푸는 것이어서 격식은 무관하다. 푸짐하게 마련한 밥을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에게까지 풀어먹이는 넉넉함 속에서 새로운 한 해의 넉넉함을 준비하는 셈이다.
참고문헌충남가정신앙의 유형 (이필영, 샤머니즘연구 3, 2000)
음력 정월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과 가정주부 (김효경, 샤머니즘연구 5, 2003)
조선대세시기 1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국립민속박물관, 2004)
牧隱集, [보름차례](/topic/보름차례) (김호태, 한국의 세시풍속[사전](/topic/사전)-정월, 2005)
한국세시풍속 1 (김명자, 민속원, 2005)
한국의 가정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5∼2008)
의의대보름날에는 만월(滿月)이 상징하는 풍요함을 통해 농사의 풍요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염원이 어우러져 많은 의례로 표출되었다. 만월의 충만함을 통해 자신들의 삶도 풍만하고 여유롭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군들은 보름을 자신의 명절로 관념하면서 이러한 믿음을 성취하고자 하였다. 새로운 해의 시작이므로 열 나흗날부터 만전을 기해 준비한다. 보름고사를 통해 집 안에 복을 초치하고, [오곡](/topic/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마련해 나누어 먹으면서 한 해의 건강을 확보하고 풍요로움을 만끽한다. 보름날 아침에는 [찰밥](/topic/찰밥)을 마련해 차례를 모신다. 조상뿐만 아니라 집안의 성주, 삼신께도 상을 올린다. 전통적인 관행에 따른 것이므로 유교식으로 거행하지 않는다. 새로운 출발에 앞서 또 한 번 집안의 신령께 정성껏 의례를 베푸는 것이어서 격식은 무관하다. 푸짐하게 마련한 밥을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에게까지 풀어먹이는 넉넉함 속에서 새로운 한 해의 넉넉함을 준비하는 셈이다.
참고문헌충남가정신앙의 유형 (이필영, 샤머니즘연구 3, 2000)
음력 정월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과 가정주부 (김효경, 샤머니즘연구 5, 2003)
조선대세시기 1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국립민속박물관, 2004)
牧隱集, [보름차례](/topic/보름차례) (김호태, 한국의 세시풍속[사전](/topic/사전)-정월, 2005)
한국세시풍속 1 (김명자, 민속원, 2005)
한국의 가정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5∼2008)
대보름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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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고사
오곡밥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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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밥 상차림
대주가 정월고사 지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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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가 정월고사 지내는 모습
마루에 정월떡을 올려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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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 정월떡을 올려둔 모습
정월고사를 지내며 장광에서 비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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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고사를 지내며 장광에서 비손하기
장광에 올려둔 정월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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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에 올려둔 정월시루
정월시루를 방안 성주께 가져다 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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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시루를 방안 성주께 가져다 둔 모습
정월고사를 지내며 장광에서 비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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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고사를 지내며 장광에서 비손하기
마당에서 비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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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차린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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