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전북 정읍시 옹동면 오성리에서 전승되는 굿. 이 굿은 2005년 12월 16일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기능보[유자](/topic/유자)는 무녀 [전금순](/topic/전금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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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송화섭 |
정의 | 전북 정읍시 옹동면 오성리에서 전승되는 굿. 이 굿은 2005년 12월 16일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기능보[유자](/topic/유자)는 무녀 [전금순](/topic/전금순)이다. | 내용 | 호남 지방의 무당은 당골·[단골](/topic/단골)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유형으로는 세습무로 분류된다. 단골의 어원에 대하여 단군, [천군](/topic/천군), Tengri에서 나왔다는 고대 제사장의 유래설이 있는가 하면 신단과 신당을 모시는 [마을](/topic/마을)·고을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제 유래설이 있다. 호남 지방의 단골들은 자기 집에 신단을 갖고 있거나 성황당, 영신당을 관리하는 자로서 단골네, 당골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은 단골을 무당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를 단골애미·단골어멈, 남자를 단골애비·당골아범 등으로 친근하게 호칭하면서 마을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하다. 호남 당골굿의 일반적인 내용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 당골의 역할 : 호남 지방에서 당골은 큰 마을단위로 존재하였다. 당골은 개개인의 제액초복을 관장하고, 공동체의 제의를 주관하는 사제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마을 주민들은 세시·절기에 따라 당골집에 찾아가 제물을 신단에 바치면서 집안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축원굿을 요청하기도 하고, 당골은 마을공동체의 수호신이 [봉안](/topic/봉안)된 성황당 및 신당에 찾아가 의례를 주관하기도 한다. 이처럼 호남 지방에서 마을 주민들과 사제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매우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오늘날 자주 다니는 가게나 식당을 단골집이라고 부르는 것도 전통마을에서 마을 주민들과 당골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였음을 말해주는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당골은 마치 오늘날 카운슬러와 같은 존재였다. 마을 주민들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단골을 찾아가 의논하고 상담하였다. 당골은 언제든지 굿을 요청하면 의례를 주관하였고, 마을 주민들은 단골의 생계를 책임지는 정도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조선조 유교사회의 전통적인 질서 속에서 무속행위를 음사(陰邪)의 대상으로 규제했으나 민간에서는 신당을 관리하는 당골들을 찾아가 굿을 하는 관행은 끊어지지 않았다. 2. 당골과 마을주민 : 당골과 마을 주민들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당골은 마을 주민들이 생활하는 데 액살과 재앙을 물리치고 방어하는 등 불안적인 요인을 제거해주고, 주민들은 당골이 마을에 오랫동안 거주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다. 당골들에게는 여름과 가을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립을 하거나 전곡을 거둬들이는 관행이 있었다. 당골의 걸립에는 여름철에 행하는 마른걸립과 가을철에 행하는 징걸립이 있다. 마른걸립은 악대를 구성하지 않고 전곡을 거둬들이는 방식이고, 징걸립은 악대를 편성하여 [[마당](/topic/마당)굿](/topic/마당굿)·철륭굿·조왕굿·샘굿 등을 쳐주고 쌀·[보리](/topic/보리)·콩·깨 등 [곡물](/topic/곡물)과 금전을 받는 방식이다. 걸립을 달리 ‘동냥’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처럼 무당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천대받게 된 것도 낮은 신분과 사회적 차별에 주민들에게 동냥을 하는 관행이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걸립은 당골들이 마을 주민들의 정신적인 정서 안정과 마을공동제례를 주관하는 자에게 지불하는 대가라고 할 수 있는데, 천민과 같은 신분에서 경제적인 능력을 마을 주민들에게 의탁하며 구걸하는 행위처럼 비쳐진 것이다. 3. 당골판 : 마을은 당골에게 경제적인 소득을 제공하는 판이었다. 당골들은 큰 마을이나 작은 마을 몇 개를 묶어서 당골판을 형성하였다. 당골판은 무당에게 무업권과 [생업](/topic/생업)권을 보장해 주는 일종의 판권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당골판은 무당에게 재산권과 같은 효용의 가치를 지녔으며, 무당들은 당골판에서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당골끼리도 서로 당골판을 침해하지 않고 당골의 독점권을 상호 인정하면서 서로 돕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다. 따라서 타 지역의 당골들이 자기의 당골판에 들어와 굿하는 것은 침해 행위로서 용납되지 않았다. 당골판은 호남 지방의 무당들이 정착성이 강하고 세습성이 높은 배경과 풍토를 만들어 주었다. 강신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굿을 할 수 있는 이동성이 강한 반면에 호남 지방의 당골들은 당골판을 떠나면 무업생활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당골판이 당골의 생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강신무들은 판을 중시하지 않지만 세습무들에게 판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당골판의 관할권은 생업권과 직결되는 관계로 권리가 이양되기도 하고 소유권처럼 매매되거나 거래되기도 하였다. 호남지방의 무당들에게는 당골판을 마치 재산권 행사하듯이 사고파는 관행도 있었다. 4. 당골의 통혼과 세습 : 당골들은 생업 때문에 당골판을 쉽게 떠날 수가 없다. 당골판은 당골들이 세습무로서 세대전승이 이뤄질 수 있는 직접적인 요인을 제공하였다. 농촌에서 당골이 무업 외에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당골에게 있어서 무업은 숙명적인 생업이었다. 신분상 당골끼리 혼인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당골 집안 사이에 [통혼권](/topic/통혼권)이 형성되었다. 자연스럽게 무업은 시어머니에서 며느리에게 이어지는 세대전승이 이뤄지고, 따라서 무업은 세습되어 갔다. 이러한 호남 지방의 당골들을 부계 계승의 세습무라 고 한다. 세습무는 집안환경과 혈연적인 관계에서 무업을 생업으로 하는 신분을 갖는다. 당골 집안에서 부인이 소리와 춤을 담당한다면 남편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topic/악사)의 역할을 담당한다. 당골 집안의 구성원들이 모이면 소리·춤·악기를 연주하고 재주를 부리는 [판굿](/topic/판굿)이 벌어진다. 가을철에 징걸립이 시작되면 [걸립패](/topic/걸립패)는 [꽹과리](/topic/꽹과리), 장구, 북, [피리](/topic/피리), 젓대, [소고](/topic/소고) 등으로 악대를 구성하고 [줄타기](/topic/줄타기)와 땅재주를 하는 당골들을 동원하여 당골판굿을 벌인다. 농촌에서 당골들은 [굿놀이](/topic/굿놀이)를 주관하는 재인으로서 오늘날 연예인과 같은 역할도 수행하였다. 당골들은 가무에 능하고 재기가 뛰어나 가창력과 춤솜씨와 [기악](/topic/기악)이 어우러진 판굿을 연출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집단이었다. 근대화 과정 이후 신분제가 해체되면서 당골의 후손들이 국악계나 연예계로 진출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반면에 당골들이 자식들의 출세를 위하여 신분을 감추거나 무업을 포기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결과 요즘 농촌에서 당골네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5. 당골의 능력 : 당골은 세습무로서 굿하는 방식에서 강신무와 차이가 있다. 첫째, 강신무는 [신내림](/topic/신내림)이라는 입무 과정을 통해 무당의 자격을 획득하지만 세습무는 혈연적 집안관계에서 무당의 지위를 얻는다. 둘째, 강신무는 [몸주신](/topic/몸주신)과 영적 교섭을 통하여 신통력을 발휘하지만 세습무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신에게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축원하는 의례를 주관한다. 셋째, 강신무는 [작두](/topic/작두)타기나 신기한 기예를 보여주지만 세습무는 소리와 춤과 악기 연주 등 예능에서 뛰어난 소질을 발휘하고 있다. 넷째, 강신무는 몸주신의 영적 능력에 의지하여 굿을 함으로써 주거 이동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세습무는 자기의 당골판을 떠나 다른 곳에서 굿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다섯째, 강신무는 개인 신방의 신단을 관리하는 데 비중을 두지만 세습무는 마을의 신당이나 고을의 성황당을 관리하는 일과 마을의 대소사에 비중을 둔다. 여섯째, 강신무가 샤먼과 같은 존재로서 위엄과 권위가 높아서 무당과 인간의 관계가 수직적이라면 세습무는 사제와 같은 존재로서 매우 서민적이고 친근하여 무당과 인간의 관계가 수평적이다. 한마디로 당골은 세습무 가계와 혼인하여 숙명적인 무업을 영유하면서 마을 주민의 요청에 따라 종교의례 또는 [일생의례](/topic/일생의례)를 돕거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제의 성격이 강하다. 6. 의례의 유형 : 당골이 주관하는 의례는 개인굿과 마을굿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굿은 주로 개인과 집안의 대소사와 관련된 것이며, 마을굿은 해안 지역에서 거행되는 [별신굿](/topic/별신굿)과 용왕굿 등 신당에서 굿을 주관하는 일이다. 개인굿은 집안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안택](/topic/안택)굿](/topic/안택굿), 제액초복을 기원하는 재수굿, 출산과 자손번창을 기원하는 칠성굿, 새로 집을 짓거나 [이사](/topic/이사)를 할 경우의 [성주굿](/topic/성주굿) 등 산 사람을 위주로 하는 굿과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거나 천도하는 오구굿 또는 씻김굿을 주관한다. 호남지방에서는 오구굿을 씻김굿이라고 부른다. 씻김굿은 주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건져 위로하는 넋건지기 씻김굿, 길거리에서 객사한 사람의 넋을 불러 위로하는 넋맞이 씻김굿, 미혼으로 객사한 원혼을 달래주는 오구씻김굿,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로하는 조상해원굿, 처녀총각을 결혼시키는 영혼혼사굿 등이 있다. 마을굿은 [당산굿](/topic/당산굿)과 별신굿을 들 수 있다. 당산굿은 유교식의 당산제와 달리 당골이 가무로서 의례를 주관하는 방식이다. 당산제는 유교식 제사 절차에 따르지만 당산굿은 전적으로 당골의 가무에 의탁한다. 지금은 당골들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고 없기에 제사 방식이 무속식에서 유교식으로 바뀌었지만 옛날의 마을굿·고을굿은 사제 역할을 담당하던 당골이 전담했다. 마을단위로 당골들이 당산제를 주관하는 게 통상적인 관습이었으나 당골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주민 가운데 깨끗한 사람을 [제관](/topic/제관)으로 선정하여 동제를 주관하거나 마을이장으로 대체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당골이 당산제를 주관하는 마을이 있으며, 사찰의 스님이 당산제에 적극 참여하는 곳도 있다. 부안 내소사에서는 당산나무가 사찰 경내와 마을에 위치하는 관계로 내소사 스님과 마을 주민들이 합동으로 당산제를 지내기도 한다. 별신굿은 사묘 또는 신당에 당신상이나 당신도가 신당에 봉안되어 있는 곳에서 당골들이 주도하는 의례를 말한다. 당골이 관리하는 신당은 성황당, 영신당, 해신당, 산제당 등이다. 그곳에 봉안된 신상은 소조상, 목각상, 소조목각상의 인물상이다. 당신 역시 [장군](/topic/장군)도, 산신도, 칠성도, 용왕도, 할미도 등 인물상을 그림으로 그려서 봉안해놓았다. 당골들은 이러한 신들과 신상·당신도가 봉안된 신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일을 해왔다. 신당은 당골이 무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버팀목이다. 별신굿은 마을단위로는 정월 보름과 2월 초하루에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단오절에 성황당에서 행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예부터 별신굿은 무당들이 참여하여 주도하는 관행이 있다. 비교적 별신굿의 전승력이 강한 곳은 해안지역이다. 부안 위도 대리 마을에서는 정월 초이튿날에 당골과 악사들의 주도하에 원당제와 용왕굿을 지내오고 있다. 이 밖에 당골들의 [비손](/topic/비손) 행위로서 [홍[수맥](/topic/수맥)이](/topic/홍수맥이), 잔밥맥이기, [삼재풀이](/topic/삼재풀이), 살풀이, 덕물림 등이 있다. 7. 호남 당골굿의 특징 : 호남 지방의 당골은 가무의 능력이 뛰어나 그들이 주관하는 판굿은 예술성이 높고 연희적 요소가 강하다. 당골의 소리와 춤에서 극적 요소가 강하고 굿에 따라 무가와 [춤사위](/topic/춤사위)가 다르며, 악사 및 잽이에 맞추어 소리와 춤이 연출된다. 호남 당골굿에서 연행되는 무가, [무악](/topic/무악), 무무 등의 특징을 살펴보면 당골굿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무가는 [칠성풀이](/topic/칠성풀이), [장자풀이](/topic/장자풀이), 제석풀이 등 서사무가가 발달하였다. 서사무가는 영웅적인 인물이 묘사되거나 우주창생과 인간의 신이한 탄생을 소재로 하는 [무속신화](/topic/무속신화)의 요소가 깃들어 있는 문학적 장르로 분류되기도 한다. 호남 지역에서도 전북 지역은 서사무가가 발달한 반면에 전남 지역은 서정무가가 발달하였다. 당골들이 무가를 전달하는 데에는 [육자배기](/topic/육자배기)[토리](/topic/토리)와 [판소리](/topic/판소리)의 [성음](/topic/성음)이 뒤섞여 있다. 당골은 무가의 [사설](/topic/사설)을 창과 [아니리](/topic/아니리)로 [구연](/topic/구연)하며, 육자배기 가락이 구성지다. 이로 인해 당골 집안에서 국악인을 배출하는 경향이 높다. 당골굿에 등장하는 굿악기는 장구·징·꽹가리 등이 기본이며, 큰 굿을 할 때에는 피리·[해금](/topic/해금)·젓대·[아쟁](/topic/아쟁) 등이 등장한다. 이러한 악기로 연주하는 호남 지방의 무속음악을 [시나위](/topic/시나위)라 하여 [삼현육각](/topic/삼현육각)이 동원되는 것이 정석이라고 했을 때 당골들은 직접 장구와 징을 두드리며 앉아서 [독경](/topic/독경)을 할 경우 안진반 [장단](/topic/장단), 물방구 장단, 외장구 장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당골들의 시나위 음악에 맞춘 가창력은 국악의 맥이 무속음악에서 발현되었음을 말해준다. 당골들이 악사들의 반주에 맞추어 추는 춤은 장단과 가락이 완만하며 느리다. 전통굿에서 강신무의 춤이 수직적인 도무(跳舞) 형태라면 세습무의 춤은 수평적인 선무(旋舞)가 주를 이룬다. 춤의 유형은 [지전춤](/topic/지전춤)·[바라춤](/topic/바라춤)·고베춤으로 지전을 손에 들거나 몸에 걸치고 춤을 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복](/topic/무복)은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소복 또는 [한복](/topic/한복)이다. 호남 지방의 당골굿은 제의성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예술성과 연희성이 뛰어나다. | 참고문헌 | 전라도 씻김굿 (최길성, 열화당, 198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1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전북의 무가 (전북도립국악원, 2000) 강신무, [세습무](/topic/세습무)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용범, 한국무속학 7, 한국무속학회, 2003) 전북지역 무당굿 연구 (이영금,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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