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신사

한국무속신앙사전
태백산신을 모시기 위해 세운 신사. 경상북도와 강원도 접경에 있는 태백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天祭壇)은 1991년 10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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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신을 모시기 위해 세운 신사. 경상북도와 강원도 접경에 있는 태백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天祭壇)은 1991년 10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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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옥
정의태백산신을 모시기 위해 세운 신사. 경상북도와 강원도 접경에 있는 태백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天祭壇)은 1991년 10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내용천제단은 구령단(九靈壇), 구령탑(九靈塔), 마고탑(麻姑塔)이라 하기도 한다. 천제단은 천왕단(天王檀)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topic/장군)단(將軍檀), 남쪽에는 이보다 작은 하단의 3기로 구성되었으며 적석으로 쌓았다. 천왕단은 위는 원형이고 아래는 사각형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 때문이다. 현재 태백시에서 거행하는 [태백제](/topic/태백제)(太白祭)는 태백신사에서 제사를 지내던 전통을 이어받은 축제이다.
참고문헌한국민속대[사전](/topic/사전) 2 (민족문화사, 1991)
[조선무속고](/topic/조선무속고) (이능화, 동문선, 1995)
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편 (국립민속박물관, 2006)
역사태백산에 제사를 지낸 기록은 신라시대부터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 「신라본기(新羅本紀) 1 일성이사금조(逸聖尼師今條)」에 “일성이사금 왕 5년 겨울 10월에 북쪽으로 순행하다 친히 태백산에서 천제를 올리다.”라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삼척도호부조(三陟都護府條)」에는 “태백산은 삼척부의 서남쪽에 있는데 신라 때 오악(五嶽) 가운데 북악(北岳)이라 하였다. 산꼭대기에는 신사가 있는데 이름을 태백천왕당(太白天王堂)이라 한다. 여러 고을 백성들이 봄 가을로 천제를 올린다.”고 하였다.

성현(成俔, 1439~1504)의 『허백당집(虛白堂集)』 「신당퇴우설(神堂退牛說)」에 “그 산은 동쪽으로 뻗어 대해(大海)에 임하여 삼척부(三陟府)가 되었고, 서쪽으로는 영춘(永春), 남쪽으로는 죽계(竹溪) 등 두 고을을 이루었다. 산이 높아도 [사전](/topic/사전)(祀典)에 실리지 않는 것은 백성에게 시공(施功)이 없었기 때문이다. 3도의 사람들이 산정(山頂)에 당을 지어 신상을 만들어 모셔 놓고 제사를 올렸다. 세시(歲時)에는 왕래하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고, 제사를 마치게 되면 각각 신좌전(神座前)에 소를 매어 놓고 돌아갔다가 사흘 후에 돌아와 소를 몰고 가는데 이를 퇴우(退牛)라 한다”고 했다. “소를 신좌전에 매어 놓고 돌아갈 때는 조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뒤를 돌아보면 신이 벌을 준다는 것이다. 해마다 사월 초파일이 되면 그 신이 읍의 성황에 내려온다고 하여 읍인들은 깃대를 만들고 북과 [피리](/topic/피리)를 성대히 갖추어 읍리의 집에 둔다. 그리고 읍인들은 이곳에 몰려들어 기도를 드린다. 이렇게 계속하여 허일(虛日)이 없을 정도로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5월 5일이 되면 환산시킨다. 이 신에게 제사드릴 때는 조그마한 선미(鮮米)라도 먼저 [제상](/topic/제상)(祭床)에 올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를 입는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삼척도호부조」에는 “신라 파사왕(婆娑王) 때 태백산 정상에 단을 쌓고 ‘청우(請雨)’를 제물로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며,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으로 중사의 제를 올리던 곳이다. 산꼭대기에는 세간에서 말하는 천왕당이 있어 강원도와 경상도의 인접 고을 사람들이 봄·가을로 제사한다. 제사를 할 때에는 신좌 앞에 소를 매어 놓고 사흘이 지난 후에 부에서 그 소를 거두어 가 쓰는데 이름하여 퇴우(退牛)라 한다.”고 하였다.

[허목](/topic/허목)(許穆, 1595~1682)의『미수기언(眉叟記言)』「괴조(怪條)」에서는 “무지한 백성들이 백두옹(白頭翁)을 가리켜 태백산(太白山) 신령이라 하는데, 태백사(太白祠)의 기도로 길흉을 점친다”고 한다. 「퇴우조(退牛條)」에서는 “원근(遠近)에 서로 다투어 가면서 태백신에게 재액(災厄)을 기도했다. 또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소를 신사(神祠) 밑에 매어 놓고 축언을 마치면 소를 그냥 두고 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면 신에게 바치는 소를 아낀다 하여 신이 [흠향](/topic/흠향)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당](/topic/사당) 아래 있는 소를 산 밑의 사람들이 잡아먹어도 아무런 재액이 없었다. 이것을 퇴우라 했는데 관부에서 이 말을 듣고 감고(監考)를 정하여 날마다 관청에 드리게 했다. 그러다가 충학(沖學)이란 산승(山僧)이 그 사(祠)를 불 지르자 요사(妖祠)가 없어졌고, 감고도 폐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목민심서(牧民心書)』「예전(禮典) 6조」에는 “김치(金緻)가 영동에 관찰사로 와서 태백신사(太白神祠)를 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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