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인년

한국무속신앙사전
이어인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 보[유자](/topic/유자)(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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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 보[유자](/topic/유자)(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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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순
정의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 보[유자](/topic/유자)(무녀).
내용이어인년(李於仁連, 여, 예명 이언년)은 1894년에 충남 부여군 석성면 세습무당 집안에서 태어났다. 은산별신제의 상당굿과 하당굿을 주관하는 무당으로서 1986년 4월 6일 사망하기까지 평생 동안 굿판을 다니며 이름을 떨쳤다. 그녀의 어머니는 충남 일대에서 이름난 세습무당이었다. 이로 인해 이어인년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당골판을 다니며 굿일을 배웠다. 성장 후 은산 출신의 최씨 [박수](/topic/박수)와 결혼하였고, 노년에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2명), 손자(1명)와 함께 살았다.

1966년 2월 14일 은산별신제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에 [생업](/topic/생업)을 위해 타지로 거주지를 옮긴 적도 있지만, 1960년대 초에 다시 고향 은산면 규암으로 돌아왔다. 유상렬·백남룡과 함께 1966년 2월 15일 은산별신제 보[유자](/topic/유자)로 인정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4일 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에서 문화공로상을 받았다.

은산별신제 상당굿과 하당굿을 주관하던 이어인년은 세습무녀로서 자신의 모든 기예를 둘째 손녀 최매순에게 전수하고자 각별히 정성을 쏟았다. 최매순 역시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열심히 굿을 익힌 결과, 1975년 1월 20일 11세의 어린 나이에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생으로 선정되었다. 이어서 1980년 12월 31일 이수자로 선정된 최매순은 은산별신제 무의식을 전승하면서 1979년 국악예술고등학교에 입학([판소리](/topic/판소리) 전공)하여 학업을 마쳤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굿판을 다니던 최매순은 10대 후반인 1980년 무렵 무업에 의욕을 잃기 시작하면서 1982년 은산별신제 대제에 불참하였다. 최매순은 고등학교 졸업 후 주변의 권유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면서 비로소 1984년에 이어인년·한시우와 함께 은산별신제 대제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다가 1986년 이어인년이 [별세](/topic/별세)하면서 가족들의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최매순은 1992년 3월 이후 전승활동을 완전히 중단하였다. 이어인년이 작고하기 전까지 자신의 모든 무예능을 전수했던 손녀 최매순은 1994년에 31세의 젊은 나이로 병을 얻어 요절하였다.

최매순이 무업과 멀어지자 이어인년은 은산별신제 보존회원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부여 은산면 홍산리 출신의 강신무녀 한시우를 제자로 들여 학습시켰지만 한시우의 기량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은산별신제 보유자로 인정된 [황남희](/topic/황남희)가 은산별신제 무녀로 입문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한시우는 1980년 4월 1일 은산별신제에 입문하여 4년 뒤 전수생을 거쳐 1989년에 이수자로 선정되었다. 한시우는 이어인년이 숨지기 전 2년 남짓 이어인년으로부터 무학습을 하였고, 이 후에는 황남희와 함께 은산별신제 대제에 참여하였다. 한시우는 1992년 은산별신제 전수교육조교 선정을 위한 추천 과정에서 후보자 자리를 황남희에게 내준 후 활동을 중단하고 상경하였다가 1995년에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인년 작고 후 은산별신제 보유단체로서 보존회(1986년 11월 1일 보유단체 인정)가 발족되었다. 한시우는 활동을 중단하였다가 사망하였고, 이어인년의 무의식을 온전하게 학습받았다고 전해지는 손녀 최매순 역시 요절하자 황남희는 이어인년의 무가채록본과 비디오 자료를 통해 나름대로 무가와 굿을 정립하여야 했다. 황남희는 충남 서천 출생으로 부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과 경기도 등지에서 살다 안성으로 출가하였다. 30세 무렵에 신을 받아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무업에 종사하였다. 1978년에 황남희는 부여 은산면 안저울에 있는 외가에 놀러갔다가 은산별신제 보존회원을 모집하고 있는 보유자 차진용의 권유를 받아 1980년에 은산으로 [이사](/topic/이사)를 했다. 그러나 1986년 7월 1일 전수생으로 선정되기 전까지 황남희는 이어인년으로부터 본격적인 무학습을 받지 못하였다. 1982년, 1984년 은산별신제 대제 때에도 두 차례 모두 이어인년의 굿을 관람하는 정도였다. 대제에 참석하지 못한 황남희는 이어인년의 사망과 최매순의 활동 저조로 한시우와 함께 1986년 3월 29일 처음으로 대제에 참여하였다. 1991년 7월 1일 이수자로 선정된 황남희는 1989년에 이수자가 된 한시우를 제치고 추천 받아 전수교육조교에 선정되었고 1998년 6월 5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호 은산별신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황남희와 함께 은산별신제 무의식을 전승하였던 이일구는 2001년 6월 27일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되고 1990년 3월 은산별신제에 처음 참여하였다.
참고문헌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8-은산별신제 (문화재관리국, 1965)
무형문화재예능조사연구보고서 249-은산별신제 (문화재관리국,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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