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귀

한국무속신앙사전
정월 초하루나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전후한 날 밤에 인가에 내려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간다고 하는 귀신. ‘야광귀(夜光鬼)’ 또는 ‘신발귀신’이라고도 한다. 이 귀신이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가져가면 신발의 주인은 일 년 동안 운수가 불길하다고 믿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신발을 방 안에 숨기고 문 밖에는 체를 걸어두는 풍속이 있다. 이것을 ‘야광귀 쫓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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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나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전후한 날 밤에 인가에 내려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간다고 하는 귀신. ‘야광귀(夜光鬼)’ 또는 ‘신발귀신’이라고도 한다. 이 귀신이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가져가면 신발의 주인은 일 년 동안 운수가 불길하다고 믿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신발을 방 안에 숨기고 문 밖에는 체를 걸어두는 풍속이 있다. 이것을 ‘야광귀 쫓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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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자
정의정월 초하루나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전후한 날 밤에 인가에 내려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간다고 하는 귀신. ‘야광귀(夜光鬼)’ 또는 ‘신발귀신’이라고도 한다. 이 귀신이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가져가면 신발의 주인은 일 년 동안 운수가 불길하다고 믿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신발을 방 안에 숨기고 문 밖에는 체를 걸어두는 풍속이 있다. 이것을 ‘야광귀 쫓기’라고 한다.
정의정월 초하루나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을 전후한 날 밤에 인가에 내려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간다고 하는 귀신. ‘야광귀(夜光鬼)’ 또는 ‘신발귀신’이라고도 한다. 이 귀신이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가져가면 신발의 주인은 일 년 동안 운수가 불길하다고 믿어,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신발을 방 안에 숨기고 문 밖에는 체를 걸어두는 풍속이 있다. 이것을 ‘야광귀 쫓기’라고 한다.
내용야광귀는 정초 캄캄한 밤에 인가로 와 사람들의 [신발](/topic/신발)을 몰래 가져가는 귀신이다. 이 귀신이 신발을 가져가면 신발의 주인은 일 년 동안 운수가 불길하다고 믿는다. 이때 운수가 불길하다는 것은 아프거나 다치거나 죽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귀신이 신발을 신어보지 못하도록 해야 하기에 신발을 방 안에 감춰 두거나 엎어 놓기도 하며, 체를 [마루](/topic/마루) 벽이나 [대문](/topic/대문) 등에 걸어 두기도 한다. 체를 걸어두는 이유는 체의 구멍 세는 것을 좋아하는 야광귀가 체 구멍을 세다가 틀려서 처음부터 다시 또 세다가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그냥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광귀가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이름을 보면 밤에 환하게 빛이 나는 귀신으로 여겨지지만 이런 내용이 나타나는 자료는 없다. 다만 이 귀신이 실재한다고 믿는 가운데 그 피해를 막기 위해 신발을 감추거나 집 안에 체를 걸어두기에 야광귀 신앙은 ‘신발 감추기’ 또는 ‘체 걸기’로 상징될 수 있다. 야광귀 신앙의 실체를 알고자 한다면 신발 감추기와 체 걸기 등이 나타나는 민속 현상을 중심으로 이 신앙의 실상을 고찰해야 한다.

야광귀나 야광귀와 관련된 신앙은 『[경도잡지](/topic/경도잡지)』를 비롯한 조선시대 후기의 각종 세시기에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이 귀신을 야광귀(경도잡지․[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 야유광(夜遊狂, 조수삼의 세시기), 야귀왕(세시기속), 야괴(夜怪)․야묘(夜猫)([세시풍요](/topic/세시풍요)), 귀물(농제속담), 야광신(한양세시기․[해동죽지](/topic/해동죽지)), 앙광이(해동죽지) 등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조사된 자료에서는 야광귀라는 명칭보다 신발귀신(경기), 야귀할멈(경기북부), 달귀구신(충북), 마고할미(충북), 톳재비(경남 거창), 고마이(경남 고성․사천)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야광신은 문헌에는 주로 정월 초에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자료를 보면 정초는 극히 드물고 정월 열나흗날, 보름, 열엿샛날 등 밤에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월 열나흗날로 나타나는 곳은 경기도, 충청도 등이다. 강원도와 경북은 거의 열엿샛날로 나타난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정월 열엿샛날을 ‘[귀신날](/topic/귀신날)’로 생각하는 곳이 많다. 현재 야광신 신앙도 이처럼 귀신날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곳이 많은 편이다. 귀신날은 귀신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날이므로, 사람들은 매사에 조심하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은 ‘귀신달굼불(귀신불)’이라 하여 일 년 동안 모아둔 머리카락, 고춧대, [목화](/topic/목화)씨, 노간주나무 등을 함께 넣고 태운다. 나쁜 냄새로 귀신을 쫓기 위함이다. [[복숭아](/topic/복숭아)나무](/topic/복숭아나무), 두릅나무, 엄나무 등의 [가지](/topic/가지)를 대문에 걸어 놓기도 한다. 귀신을 쫓기 위해 칼질을 많이 하기도 하고, 귀신의 머리를 깬다고 하여 [방아](/topic/방아)를 찧거나 [널뛰기](/topic/널뛰기)를 하는 곳도 있다. 귀신날 밤이면 집집마다 야광귀가 신발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부엌](/topic/부엌)이나 방 안에 감추고, 마루․벽․대문 등에 체를 걸어 놓기도 한다. 신발 감추기와 체 걸기 두 가지를 다 하는 곳도 있지만, 신발만 감추거나 체 걸기만 하는 곳도 많다.

야광귀의 유래에 대해서는 유득공이 관심을 기울여서 설명했다. 그는 『경도잡지』에서 “구귀(癯鬼)는 음식을 먹지 못해 바짝 여윈 귀신을 뜻한다. 어떤 이는 ‘야광이 구귀를 뜻한다고 하며, 그러기에 구광(癯光)이라 해야 마땅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는 것은 한자 ‘야(夜)’의 음과 ‘야윌 구(癯)’라는 글자의 훈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틀린 것이고, ‘약왕(藥王)’이라는 음이 와전되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약왕의 형상이 추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무서워하며, 이런 이유에서 어린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보는 것이다. 약왕은 약왕보살의 준말로,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스물다섯 보살 가운데 하나이다. 좋은 약을 값없이 남에게 주어 중생들의 심신의 병고를 덜어주고 고쳐주는 보살이다. 야광귀 신앙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인 일본에도 있기 때문에 비교연구를 해야 그 유래나 기원을 밝힐 수 있다.

야광귀가 잡아갈 사람을 고를 때 특별히 신발을 신어본다는 것에는 신발이 곧 한 개인을 상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인식은 동북아시아에서 상당히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진(晉)나라의 갈홍(葛洪)이 쓴 『신선전(神仙傳)』에는 신선이 죽은 것을 나타낼 때 ‘신발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신발을 감추는 것에 대해 조선시대 후기의 어떤 세시기는 정초에 신발을 잃어버릴까 봐, 또는 비에 젖을까 봐 그렇게 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야광귀 신앙의 핵심은 ‘체’라고 할 수 있다. 이 귀신의 피해를 막기 위해 왜 체를 사용하고, 이 귀신은 왜 체의 눈을 센다고 했느냐가 의문의 핵심이다. 이는 눈[目]의 기능과 관계가 있다. 눈에는 물건을 알아 살피는 힘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민간에는 눈을 많이 가진 것이 귀신에게 두려움을 주고, 또 물러가게 한다는 믿음이 있다. 이는 장례식의 행렬 앞에 네 눈을 가진 [방상시](/topic/방상시)[方相氏] 가면을 세우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이 신앙에서 귀신이 체의 구멍을 센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체의 구멍을 눈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체의 구멍은 많은 눈이 모인 것이고, 체는 야광귀보다 더 무섭고 능력이 있는 존재인 셈이다. 그러기에 야광귀는 체를 두려워하여 그것의 눈을 세고 또 세며 시간을 보내다 날이 새면 돌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체의 구멍이 아주 작아 세기 어렵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문헌에서는 야광귀 신앙이 어린아이들과 관련하여 언급되기도 한다. 야광귀는 어린아이들의 신발을 좋아한다거나 아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무서워서 신발을 감추고 일찍 잔다는 얘기가 그런 내용이다. 그러나 현재 채록된 자료를 보면 충북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린이와 관련된 내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야광귀 신앙은 문헌만을 보면 주로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던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현행 조사자료를 보면 제주도를 제외하고 거의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서울, 경기, 충북지역에서는 비교적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함경도, 강원도, 경북지역에서는 16일인 귀신날과 결부되어 있다. 이에 비해 충남, 전라도지역은 전승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야광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인지 정월에 야광귀를 쫓기 위해 신발을 숨기거나 체를 거는 집이 별로 없다.
내용야광귀는 정초 캄캄한 밤에 인가로 와 사람들의 [신발](/topic/신발)을 몰래 가져가는 귀신이다. 이 귀신이 신발을 가져가면 신발의 주인은 일 년 동안 운수가 불길하다고 믿는다. 이때 운수가 불길하다는 것은 아프거나 다치거나 죽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귀신이 신발을 신어보지 못하도록 해야 하기에 신발을 방 안에 감춰 두거나 엎어 놓기도 하며, 체를 [마루](/topic/마루) 벽이나 [대문](/topic/대문) 등에 걸어 두기도 한다. 체를 걸어두는 이유는 체의 구멍 세는 것을 좋아하는 야광귀가 체 구멍을 세다가 틀려서 처음부터 다시 또 세다가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그냥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광귀가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이름을 보면 밤에 환하게 빛이 나는 귀신으로 여겨지지만 이런 내용이 나타나는 자료는 없다. 다만 이 귀신이 실재한다고 믿는 가운데 그 피해를 막기 위해 신발을 감추거나 집 안에 체를 걸어두기에 야광귀 신앙은 ‘신발 감추기’ 또는 ‘체 걸기’로 상징될 수 있다. 야광귀 신앙의 실체를 알고자 한다면 신발 감추기와 체 걸기 등이 나타나는 민속 현상을 중심으로 이 신앙의 실상을 고찰해야 한다.

야광귀나 야광귀와 관련된 신앙은 『[경도잡지](/topic/경도잡지)』를 비롯한 조선시대 후기의 각종 세시기에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이 귀신을 야광귀(경도잡지․[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 야유광(夜遊狂, 조수삼의 세시기), 야귀왕(세시기속), 야괴(夜怪)․야묘(夜猫)([세시풍요](/topic/세시풍요)), 귀물(농제속담), 야광신(한양세시기․[해동죽지](/topic/해동죽지)), 앙광이(해동죽지) 등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조사된 자료에서는 야광귀라는 명칭보다 신발귀신(경기), 야귀할멈(경기북부), 달귀구신(충북), 마고할미(충북), 톳재비(경남 거창), 고마이(경남 고성․사천)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야광신은 문헌에는 주로 정월 초에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자료를 보면 정초는 극히 드물고 정월 열나흗날, 보름, 열엿샛날 등 밤에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월 열나흗날로 나타나는 곳은 경기도, 충청도 등이다. 강원도와 경북은 거의 열엿샛날로 나타난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정월 열엿샛날을 ‘[귀신날](/topic/귀신날)’로 생각하는 곳이 많다. 현재 야광신 신앙도 이처럼 귀신날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곳이 많은 편이다. 귀신날은 귀신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날이므로, 사람들은 매사에 조심하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은 ‘귀신달굼불(귀신불)’이라 하여 일 년 동안 모아둔 머리카락, 고춧대, [목화](/topic/목화)씨, 노간주나무 등을 함께 넣고 태운다. 나쁜 냄새로 귀신을 쫓기 위함이다. [[복숭아](/topic/복숭아)나무](/topic/복숭아나무), 두릅나무, 엄나무 등의 [가지](/topic/가지)를 대문에 걸어 놓기도 한다. 귀신을 쫓기 위해 칼질을 많이 하기도 하고, 귀신의 머리를 깬다고 하여 [방아](/topic/방아)를 찧거나 [널뛰기](/topic/널뛰기)를 하는 곳도 있다. 귀신날 밤이면 집집마다 야광귀가 신발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부엌](/topic/부엌)이나 방 안에 감추고, 마루․벽․대문 등에 체를 걸어 놓기도 한다. 신발 감추기와 체 걸기 두 가지를 다 하는 곳도 있지만, 신발만 감추거나 체 걸기만 하는 곳도 많다.

야광귀의 유래에 대해서는 유득공이 관심을 기울여서 설명했다. 그는 『경도잡지』에서 “구귀(癯鬼)는 음식을 먹지 못해 바짝 여윈 귀신을 뜻한다. 어떤 이는 ‘야광이 구귀를 뜻한다고 하며, 그러기에 구광(癯光)이라 해야 마땅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는 것은 한자 ‘야(夜)’의 음과 ‘야윌 구(癯)’라는 글자의 훈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틀린 것이고, ‘약왕(藥王)’이라는 음이 와전되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약왕의 형상이 추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무서워하며, 이런 이유에서 어린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보는 것이다. 약왕은 약왕보살의 준말로,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스물다섯 보살 가운데 하나이다. 좋은 약을 값없이 남에게 주어 중생들의 심신의 병고를 덜어주고 고쳐주는 보살이다. 야광귀 신앙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인 일본에도 있기 때문에 비교연구를 해야 그 유래나 기원을 밝힐 수 있다.

야광귀가 잡아갈 사람을 고를 때 특별히 신발을 신어본다는 것에는 신발이 곧 한 개인을 상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인식은 동북아시아에서 상당히 오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진(晉)나라의 갈홍(葛洪)이 쓴 『신선전(神仙傳)』에는 신선이 죽은 것을 나타낼 때 ‘신발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신발을 감추는 것에 대해 조선시대 후기의 어떤 세시기는 정초에 신발을 잃어버릴까 봐, 또는 비에 젖을까 봐 그렇게 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야광귀 신앙의 핵심은 ‘체’라고 할 수 있다. 이 귀신의 피해를 막기 위해 왜 체를 사용하고, 이 귀신은 왜 체의 눈을 센다고 했느냐가 의문의 핵심이다. 이는 눈[目]의 기능과 관계가 있다. 눈에는 물건을 알아 살피는 힘이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민간에는 눈을 많이 가진 것이 귀신에게 두려움을 주고, 또 물러가게 한다는 믿음이 있다. 이는 장례식의 행렬 앞에 네 눈을 가진 [방상시](/topic/방상시)[方相氏] 가면을 세우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이 신앙에서 귀신이 체의 구멍을 센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체의 구멍을 눈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체의 구멍은 많은 눈이 모인 것이고, 체는 야광귀보다 더 무섭고 능력이 있는 존재인 셈이다. 그러기에 야광귀는 체를 두려워하여 그것의 눈을 세고 또 세며 시간을 보내다 날이 새면 돌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체의 구멍이 아주 작아 세기 어렵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문헌에서는 야광귀 신앙이 어린아이들과 관련하여 언급되기도 한다. 야광귀는 어린아이들의 신발을 좋아한다거나 아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무서워서 신발을 감추고 일찍 잔다는 얘기가 그런 내용이다. 그러나 현재 채록된 자료를 보면 충북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린이와 관련된 내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야광귀 신앙은 문헌만을 보면 주로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던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현행 조사자료를 보면 제주도를 제외하고 거의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서울, 경기, 충북지역에서는 비교적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함경도, 강원도, 경북지역에서는 16일인 귀신날과 결부되어 있다. 이에 비해 충남, 전라도지역은 전승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야광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인지 정월에 야광귀를 쫓기 위해 신발을 숨기거나 체를 거는 집이 별로 없다.
역사조선 후기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을 기록한 각종 세시기(歲時記)에 야광귀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topic/경도잡지)(京都雜志)』 권2 세시(歲時)의 원일(元日)조에는 “야광이라는 귀신이 있다. 이 귀신은 밤에 인가에 들어와 신을 훔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신 주인은 불길하다. 아이들은 이를 두려워하여 신을 감춘 뒤 불을 끄고 일찍 잔다. [마루](/topic/마루)의 벽에 체를 걸어두면 야광귀가 와서 그 구멍을 세다가 다 못 세고, 결국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기록이 있다.

조수삼(趙秀三)의 『세시기(歲時記)』에는 정월 원조(元朝)에 “해질 무렵에 모아둔 머리카락을 태우고 밤에 [신발](/topic/신발)을 감춘다. 비록 해진 신발이나 짝 잃은 신발이라 하더라도 잃어버릴까 두려워해서이다. 머리카락을 태워 야유광(夜遊珖)을 피할 수 있다. 혹자는 머리카락을 태운 재가 쇠고기 독을 제거한다고 말한다. 신발을 감추는 것은 밤에 비가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듯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유광이라는 글자 옆에는 “모귀(耗鬼)의 이름으로 설날 인가에 들어가 신발을 훔친다. 신발을 잃으면 재악(灾惡)이 있다.”고 부기(附記)되어 있다.

면암 조운종(趙雲從)의 『세시기속(歲時記俗)』에는 “이날 밤에 신발을 문 밖에 두면 야귀왕(夜鬼王)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의 크기가 맞으면 그 신을 신고 간다.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운수가 좋지 않게 된다고 하여 아이들은 분주히 방 안에 신발을 감춘다.”면서 “가장 우스운 것은 황당무계한 속설에 속은 아이들이 방 안에 신발 감추는 풍습이다. 하늘에서 온다는 야귀왕은 누구인가.”라고 전하고 있다.

유만공(柳晩恭)의 『[세시풍요](/topic/세시풍요)(歲時風謠)』는 정조(正朝)에 야광귀를 쫓기 위해 저녁이 되면 [마당](/topic/마당)에서 머리털을 태우고 그 재를 뿌리는 풍속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도와 울루가 항상 꾸짖으며 막고 있으니 야괴가 어떻게 신발을 훔치러 올 수 있으랴.”고 적고 있다. “속설에 정초에 야괴가 신발을 훔쳐가면 불길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야괴(夜怪)를 야묘(夜猫)라고도 한다. 혹은 이날 밤에 비가 내린 것이 와전되었다.”라는 설명도 있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 원일(元日)에 “속설에 이름이 야광이라고 하는 귀신이 이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발을 두루 신어 보다가 딱 들어맞는 것을 신고 가면 그 신발의 주인은 불길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은 그것을 무서워하여 신발을 감춘 뒤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마루의 벽이나 뜰에다 걸어둔다. 야광귀는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 야광이 어떤 귀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혹시 약왕(藥王)의 음이 변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약왕의 모습이 너무 추하여 아이들을 두렵게 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고 적혀 있다.

권용정(權用正)의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는 “정월 원일 밤에 아이들이 신을 감춘다. 이는 야광신이 밤에 인가를 다니다가 어린아이들의 신발을 신고 가면 그 아이는 좋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숫자 세기를 좋아하는 야광신은 체를 보면 그물눈을 세다가 헷갈려서 멈추지를 못한다고 한다. 집집마다 체를 [시렁](/topic/시렁)이나 [기둥](/topic/기둥)에 걸어두는 것은 야광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어 야광신이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고 전하면서 야광신 이름을 척발(瘠魃)로 부기하고 있다.

최영년(崔永年)의 『[해동죽지](/topic/해동죽지)(海東竹枝)』는 “옛 풍속에 야광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면 반드시 구설수가 있다고 한다. 이에 미혹된 부녀자들은 크고 작은 신들을 모두 깊숙한 곳에 감춘다. 설날 밤에 내려온다고도 하고,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날 밤에 내려온다고도 하니, 이를 앙광이라고 한다.”면서 야광신과 관련된 풍속을 시로 읊고 있다.
역사조선 후기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을 기록한 각종 세시기(歲時記)에 야광귀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topic/경도잡지)(京都雜志)』 권2 세시(歲時)의 원일(元日)조에는 “야광이라는 귀신이 있다. 이 귀신은 밤에 인가에 들어와 신을 훔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신 주인은 불길하다. 아이들은 이를 두려워하여 신을 감춘 뒤 불을 끄고 일찍 잔다. [마루](/topic/마루)의 벽에 체를 걸어두면 야광귀가 와서 그 구멍을 세다가 다 못 세고, 결국 닭이 울면 도망간다.”는 기록이 있다.

조수삼(趙秀三)의 『세시기(歲時記)』에는 정월 원조(元朝)에 “해질 무렵에 모아둔 머리카락을 태우고 밤에 [신발](/topic/신발)을 감춘다. 비록 해진 신발이나 짝 잃은 신발이라 하더라도 잃어버릴까 두려워해서이다. 머리카락을 태워 야유광(夜遊珖)을 피할 수 있다. 혹자는 머리카락을 태운 재가 쇠고기 독을 제거한다고 말한다. 신발을 감추는 것은 밤에 비가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듯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유광이라는 글자 옆에는 “모귀(耗鬼)의 이름으로 설날 인가에 들어가 신발을 훔친다. 신발을 잃으면 재악(灾惡)이 있다.”고 부기(附記)되어 있다.

면암 조운종(趙雲從)의 『세시기속(歲時記俗)』에는 “이날 밤에 신발을 문 밖에 두면 야귀왕(夜鬼王)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 발의 크기가 맞으면 그 신을 신고 간다. 신발을 잃어버린 아이는 운수가 좋지 않게 된다고 하여 아이들은 분주히 방 안에 신발을 감춘다.”면서 “가장 우스운 것은 황당무계한 속설에 속은 아이들이 방 안에 신발 감추는 풍습이다. 하늘에서 온다는 야귀왕은 누구인가.”라고 전하고 있다.

유만공(柳晩恭)의 『[세시풍요](/topic/세시풍요)(歲時風謠)』는 정조(正朝)에 야광귀를 쫓기 위해 저녁이 되면 [마당](/topic/마당)에서 머리털을 태우고 그 재를 뿌리는 풍속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도와 울루가 항상 꾸짖으며 막고 있으니 야괴가 어떻게 신발을 훔치러 올 수 있으랴.”고 적고 있다. “속설에 정초에 야괴가 신발을 훔쳐가면 불길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야괴(夜怪)를 야묘(夜猫)라고도 한다. 혹은 이날 밤에 비가 내린 것이 와전되었다.”라는 설명도 있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 원일(元日)에 “속설에 이름이 야광이라고 하는 귀신이 이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발을 두루 신어 보다가 딱 들어맞는 것을 신고 가면 그 신발의 주인은 불길하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은 그것을 무서워하여 신발을 감춘 뒤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마루의 벽이나 뜰에다 걸어둔다. 야광귀는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 야광이 어떤 귀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혹시 약왕(藥王)의 음이 변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약왕의 모습이 너무 추하여 아이들을 두렵게 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고 적혀 있다.

권용정(權用正)의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는 “정월 원일 밤에 아이들이 신을 감춘다. 이는 야광신이 밤에 인가를 다니다가 어린아이들의 신발을 신고 가면 그 아이는 좋지 못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숫자 세기를 좋아하는 야광신은 체를 보면 그물눈을 세다가 헷갈려서 멈추지를 못한다고 한다. 집집마다 체를 [시렁](/topic/시렁)이나 [기둥](/topic/기둥)에 걸어두는 것은 야광신이 좋아하는 것을 주어 야광신이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고 전하면서 야광신 이름을 척발(瘠魃)로 부기하고 있다.

최영년(崔永年)의 『[해동죽지](/topic/해동죽지)(海東竹枝)』는 “옛 풍속에 야광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보면 반드시 구설수가 있다고 한다. 이에 미혹된 부녀자들은 크고 작은 신들을 모두 깊숙한 곳에 감춘다. 설날 밤에 내려온다고도 하고,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날 밤에 내려온다고도 하니, 이를 앙광이라고 한다.”면서 야광신과 관련된 풍속을 시로 읊고 있다.
지역사례『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와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국립문화재연구소편)에 나타난 내용을 중심으로 야광귀 신앙의 지역별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정월 열나흗날 밤에 신발귀신이나 야귀할멈․달귀귀신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여 신발을 방 안에 숨기고 체를 걸어둔다. 성남, 군포, 김포, 구리, 남양주, 광주 등의 지역은 16일인 [귀신날](/topic/귀신날)과 관련이 있다. 구리시 갈매동에서는 16일인 귀신날 모두가 하루를 쉰다. 여자들이 일하면 음식에 벌레가 들어간다고 해서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귀신 대가리 깬다고 [널뛰기](/topic/널뛰기)를 하기도 한다. 이날 밤에는 신발을 방에 숨긴다.

강원도에서는 대부분 정월 열엿샛날인 귀신날이 야광귀 신앙과 겹쳐있다. 16일을 ‘귀신날’(화천군), ‘귀신 달구는 날’(인제군), ‘귀신 달기는 날’, ‘귀신 달래는 날’(횡성군 강림2리), ‘귀신당날’(영월군, 태백시, 인제군), ‘귀신당기날’(태백시, 평창군), ‘귀신닭날’(원주시, 정선군), ‘달귀귀신날’(횡성군, 홍천군), ‘닭이귀신날’(원주시)이라고 한다. 이것은 ‘닭이귀신’이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이날 머리카락이나 [고추](/topic/고추)씨 등을 태운다. 이를 ‘귀신달굼불’(영월군)이나 ‘귀신불’(속초시), 이렇게 하는 것을 ‘귀신 달군다(내쫓는다)’고 한다. 이날 밤 신발을 방에 들여놓거나 엎어 놓기도 하고, [대문](/topic/대문)에 체를 걸어 놓기도 한다. 홍천군에서는 신발 대신 옷을 감추기도 하며, 태백시에서는 체 대신 소나무 [가지](/topic/가지)를 꺾어다가 한 주먹만큼 거꾸로 꽂아두기도 한다.

귀신당기날에는 빨래를 하지 않고, 귀신이 따라 온다 하여 여자들은 남의 집에 가지 않으며(태백시), 머리를 빗으면 새삼(덩굴식물)이 생겨 농작물을 망치기에 머리를 빗지 않고(정선군), ‘귀신 목 자른다’, ‘귀신 골통 판다’며 칼질을 많이 하고 나무도 하며, ‘귀신 머리 깬다’고 널뛰기도 한다(춘천시). 또 ‘귀신 대가리 깬다’고 [방아](/topic/방아)도 찧고, ‘귀신 목 자른다’고 칼질을 하고 나무를 벤다(화천군). 해안가 [마을](/topic/마을)에서는 귀신에 홀린다고 출어하지 않는 곳이 많다(강릉시, 고성군, 삼척시, 속초시, 양양군).

충북에서는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야광귀가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생각하는 곳이 많다. 그런 곳에서는 이날 신발을 들여놓고 체를 건다.

야광귀는 ‘양광이’(영동읍), ‘달귀귀신’(청주시), ‘달기할미’(충주시), ‘[마고할미](/topic/마고할미)’(영동군 매곡면), ‘신발귀신’(진천군), ‘깨깨할미’(옥천군) 등으로 불린다. 영동군 매곡면 수동리에서는 이날을 마고할미가 저승에서 내려와 어린이를 잡아가는 날이라고 생각하여 신발을 들여놓고 얼기미를 문 입구에 걸어놓는다. 이를 ‘[마고할미쫓기](/topic/마고할미쫓기)’라고 한다. 옥천군에서는 섣달그믐날에 깨깨할미가 아이들의 신발을 훔치러 온다고 여긴다.

충남에서는 천안․아산․부여․홍성 등지에서 야광귀 신앙이 나타나고, 기타 지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나는 지역에서는 주로 14일이나 15일과 관련 있고, 특정한 귀신 이름은 없다. 또 주로 신발 감추기만 한다.

전북 역시 야광귀 신앙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원심곡마을에서는 정월 열나흗날에 방문 입구에다 체를 매달아 둔다. 이렇게 하면 도깨비가 그 구멍을 세다가 날이 밝아 돌아가기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남에서도 영암, 강진 등과 같은 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야광귀 신앙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영암군에서는 정초에 신발을 숨기고, 강진읍에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방 안에 신을 들여놓고 잔다.

이에 반해 경북지역에서는 이것이 정월 16일인 귀신날(귀신단오날)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야광귀라는 명칭은 나타나지 않지만 귀신을 막기 위해 이날 신발을 감추거나 체를 걸어두는 곳이 많다.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는 이날 종이에 ‘귀신달갈날’이라고 써서 대문에 붙여 놓고 개똥으로 불을 피운 뒤 대문에 체를 걸어둔다. 신발은 엎어 놓는다. 또 귀신이 솔잎을 헤아리는 사이에 날이 새라고 방문에 솔잎을 꽂아 두기도 한다. 울진군의 경우 정월 열엿샛날은 ‘구신단날’이나 ‘구신날’이라고 하며, 이날은 귀신들이 활동하는 날이어서 나들이를 하면 귀신한테 맞아 죽는다는 말이 전해 온다. 이 때문에 이날에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가지 않고 바다에도 나가지 않는다. 또 신발은 감추고, 문 밖에는 체를 걸어둔다. 울릉도에는 귀신날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나 예전에 ‘손님’, 즉 마마가 [번지](/topic/번지)면 아이가 많이 죽었기 때문에 문 앞에 체를 걸어두어 귀신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경남에서는 야광귀 신앙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 많다. 그러나 거창군에서는 정월 그믐날 밤 신발귀신인 톳재비가 오기 때문에 신발을 방 안에 들여놓는다고 한다. 밀양지역에서는 설날 밤에 야광귀가 내려오기 때문에 체를 걸어두는 곳이 많다. 고성지역에서는 16일을 ‘암고마이날’, 17일을 ‘숫고마이날’이라고 하면서 16일에 신발을 집 안으로 들여놓는다.
참고문헌京都雜志
東國歲時記
歲時風謠
朝鮮の鬼神 (朝鮮總督府, 1930)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한국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6)
조선대세시기Ⅰ․Ⅱ (국립민속박물관, 2003~2005)
한국세시풍속[사전](/topic/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지역사례『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와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국립문화재연구소편)에 나타난 내용을 중심으로 야광귀 신앙의 지역별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정월 열나흗날 밤에 신발귀신이나 야귀할멈․달귀귀신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여 신발을 방 안에 숨기고 체를 걸어둔다. 성남, 군포, 김포, 구리, 남양주, 광주 등의 지역은 16일인 [귀신날](/topic/귀신날)과 관련이 있다. 구리시 갈매동에서는 16일인 귀신날 모두가 하루를 쉰다. 여자들이 일하면 음식에 벌레가 들어간다고 해서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귀신 대가리 깬다고 [널뛰기](/topic/널뛰기)를 하기도 한다. 이날 밤에는 신발을 방에 숨긴다.

강원도에서는 대부분 정월 열엿샛날인 귀신날이 야광귀 신앙과 겹쳐있다. 16일을 ‘귀신날’(화천군), ‘귀신 달구는 날’(인제군), ‘귀신 달기는 날’, ‘귀신 달래는 날’(횡성군 강림2리), ‘귀신당날’(영월군, 태백시, 인제군), ‘귀신당기날’(태백시, 평창군), ‘귀신닭날’(원주시, 정선군), ‘달귀귀신날’(횡성군, 홍천군), ‘닭이귀신날’(원주시)이라고 한다. 이것은 ‘닭이귀신’이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이날 머리카락이나 [고추](/topic/고추)씨 등을 태운다. 이를 ‘귀신달굼불’(영월군)이나 ‘귀신불’(속초시), 이렇게 하는 것을 ‘귀신 달군다(내쫓는다)’고 한다. 이날 밤 신발을 방에 들여놓거나 엎어 놓기도 하고, [대문](/topic/대문)에 체를 걸어 놓기도 한다. 홍천군에서는 신발 대신 옷을 감추기도 하며, 태백시에서는 체 대신 소나무 [가지](/topic/가지)를 꺾어다가 한 주먹만큼 거꾸로 꽂아두기도 한다.

귀신당기날에는 빨래를 하지 않고, 귀신이 따라 온다 하여 여자들은 남의 집에 가지 않으며(태백시), 머리를 빗으면 새삼(덩굴식물)이 생겨 농작물을 망치기에 머리를 빗지 않고(정선군), ‘귀신 목 자른다’, ‘귀신 골통 판다’며 칼질을 많이 하고 나무도 하며, ‘귀신 머리 깬다’고 널뛰기도 한다(춘천시). 또 ‘귀신 대가리 깬다’고 [방아](/topic/방아)도 찧고, ‘귀신 목 자른다’고 칼질을 하고 나무를 벤다(화천군). 해안가 [마을](/topic/마을)에서는 귀신에 홀린다고 출어하지 않는 곳이 많다(강릉시, 고성군, 삼척시, 속초시, 양양군).

충북에서는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야광귀가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생각하는 곳이 많다. 그런 곳에서는 이날 신발을 들여놓고 체를 건다.

야광귀는 ‘양광이’(영동읍), ‘달귀귀신’(청주시), ‘달기할미’(충주시), ‘[마고할미](/topic/마고할미)’(영동군 매곡면), ‘신발귀신’(진천군), ‘깨깨할미’(옥천군) 등으로 불린다. 영동군 매곡면 수동리에서는 이날을 마고할미가 저승에서 내려와 어린이를 잡아가는 날이라고 생각하여 신발을 들여놓고 얼기미를 문 입구에 걸어놓는다. 이를 ‘[마고할미쫓기](/topic/마고할미쫓기)’라고 한다. 옥천군에서는 섣달그믐날에 깨깨할미가 아이들의 신발을 훔치러 온다고 여긴다.

충남에서는 천안․아산․부여․홍성 등지에서 야광귀 신앙이 나타나고, 기타 지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나타나는 지역에서는 주로 14일이나 15일과 관련 있고, 특정한 귀신 이름은 없다. 또 주로 신발 감추기만 한다.

전북 역시 야광귀 신앙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원심곡마을에서는 정월 열나흗날에 방문 입구에다 체를 매달아 둔다. 이렇게 하면 도깨비가 그 구멍을 세다가 날이 밝아 돌아가기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남에서도 영암, 강진 등과 같은 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야광귀 신앙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영암군에서는 정초에 신발을 숨기고, 강진읍에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방 안에 신을 들여놓고 잔다.

이에 반해 경북지역에서는 이것이 정월 16일인 귀신날(귀신단오날)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야광귀라는 명칭은 나타나지 않지만 귀신을 막기 위해 이날 신발을 감추거나 체를 걸어두는 곳이 많다.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는 이날 종이에 ‘귀신달갈날’이라고 써서 대문에 붙여 놓고 개똥으로 불을 피운 뒤 대문에 체를 걸어둔다. 신발은 엎어 놓는다. 또 귀신이 솔잎을 헤아리는 사이에 날이 새라고 방문에 솔잎을 꽂아 두기도 한다. 울진군의 경우 정월 열엿샛날은 ‘구신단날’이나 ‘구신날’이라고 하며, 이날은 귀신들이 활동하는 날이어서 나들이를 하면 귀신한테 맞아 죽는다는 말이 전해 온다. 이 때문에 이날에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가지 않고 바다에도 나가지 않는다. 또 신발은 감추고, 문 밖에는 체를 걸어둔다. 울릉도에는 귀신날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나 예전에 ‘손님’, 즉 마마가 [번지](/topic/번지)면 아이가 많이 죽었기 때문에 문 앞에 체를 걸어두어 귀신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경남에서는 야광귀 신앙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 많다. 그러나 거창군에서는 정월 그믐날 밤 신발귀신인 톳재비가 오기 때문에 신발을 방 안에 들여놓는다고 한다. 밀양지역에서는 설날 밤에 야광귀가 내려오기 때문에 체를 걸어두는 곳이 많다. 고성지역에서는 16일을 ‘암고마이날’, 17일을 ‘숫고마이날’이라고 하면서 16일에 신발을 집 안으로 들여놓는다.
참고문헌京都雜志
東國歲時記
歲時風謠
朝鮮の鬼神 (朝鮮總督府, 1930)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한국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6)
조선대세시기Ⅰ․Ⅱ (국립민속박물관, 2003~2005)
한국세시풍속[사전](/topic/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열화당한국의 굿 10-옹진 배연신굿김수남·황루시1986
집문당한국무속사상연구김인회1988
민족문화사한국민속대사전 1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1991
문음사김금화의 무가집-거므나따에 만신 희나백성의 노래김금화1995
도서출판풀빛황루시의 우리무당 이야기황루시2000
도서출판 民俗苑한국의 굿하효길 외2002
생각의나무비단꽃 넘세-나라만신 김금화 자서전김금화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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