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공청

한국무속신앙사전
무부들의 조직체이며 지방관아의 전통예술 공연을 담당하던 기관. 악공(樂工)은 관아에서 음악을 담당하던 음악인들을 말하며, 악공청은 그 일을 관장하던 조직체를 지칭한다. 지역에 따라 교방청, 취고청, 장악청, 신청, [재인청](/topic/재인청), 공인청 등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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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부들의 조직체이며 지방관아의 전통예술 공연을 담당하던 기관. 악공(樂工)은 관아에서 음악을 담당하던 음악인들을 말하며, 악공청은 그 일을 관장하던 조직체를 지칭한다. 지역에 따라 교방청, 취고청, 장악청, 신청, [재인청](/topic/재인청), 공인청 등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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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엽
정의무부들의 조직체이며 지방관아의 전통예술 공연을 담당하던 기관. 악공(樂工)은 관아에서 음악을 담당하던 음악인들을 말하며, 악공청은 그 일을 관장하던 조직체를 지칭한다. 지역에 따라 교방청, 취고청, 장악청, 신청, [재인청](/topic/재인청), 공인청 등으로도 불렸다.
참조[재인청](/topic/재인청)
참고문헌[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赤松智城·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1)
여수 영당, 풍어굿, 악공청 (이경엽 외, 민속원, 2007)
내용조선시대 군영의 악공 역을 맡은 사람들은 대개 무계 출신 무부들이었다. 무부들이 담당한 공역(公役)은 중앙의 장악청이나 지방의 관아·병영에 소속되어 악공이나 취고수(吹鼓手), 세악수(細樂手)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무부들을 악공이나 세악수로 선발한 것은 이들이 대대로 무업에 종사해온 전문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이들 음악인들은 군현의 제례, 연향, 고을 수령의 행차, 과제 급제자의 문희연 등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무부들은 자신들의 결속을 도모하고 관청의 공식 행사나 지역의 사적 행사를 관할하기 위해 무부계를 조직하고 엄격한 규율을 정해 운영했다. 이 조직은 각 군현에 있었고, 행정조직처럼 도 단위로 연결되어 전국을 관할하는 ‘팔도도산주(八道都山主)’의 지휘를 받았다. 악공청은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지방 관아의 공적 활동과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건물이 있고 공식 문서들을 구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악공청은 전국적으로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여수 악공청, 진도 장악청, 장흥 신청[장악청], 나주 신청 등이 있다. 여수 악공청은 전라좌수영과 연결된 기관이었으며, 좌수영이 폐영(廢營)되면서 해체되었다가 1939년에 재건되었다. 재건 이후 악공청 사람들은 지역 유지들이 주도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하거나 음악을 전수하는 기능을 수행했으며, 광복 이후 혼란기를 거치면서 와해되었다. 여수 악공청은 여수시 동산동에 있었으며, 지금도 관련 자료가 남아 있다.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100여 명의 무부 이름을 기록한 『선생안(先生案)』과 ‘악공청수혜서(樂工廳樹惠序)’ 등의 [현판](/topic/현판) 자료가 남아 있다. 그리고 후손들에 의해 매년 주요 명절마다 선생안 제사가 설행되고 있다. 여수 악공청 자료는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5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도 장악청은 진도읍 성내리에 있었으며 각지의 [광대](/topic/광대)들이 모여 음악을 익히던 공간이었다. 한일합병 이전까지는 광대들이 60여 호 모여 살았지만 1930년 중반에는 20여 호 60여 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장흥 신청은 장흥군 장흥읍 기양리에 있었다. 신청 문서인 「신청완문(神廳完文)」의 작성 시기를 순조 32년(1832)으로 볼 때 늦어도 19세기 초에는 설립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894년에 해체되었다가 1919년에 중건됐으며, 지역 유지들의 찬조를 받으며 음악 전수기관의 역할을 수행했다. 장흥 신청은 1930년대에 해체되지만 그 후예들에 의해 지역의 예술활동은 지속되었다. 나주 신청은 나주 북문[北門町] 쪽에 있었고 1930년대에는 ‘기생음악합숙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나주 신청은 나주 지역 전통예술 전승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집문당한국신화의 연구서대석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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