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서울ㆍ경기 지역 굿의 계면거리와 동해안 지역 굿의 계면굿에서 모셔지는 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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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최성진 |
정의 | 서울ㆍ경기 지역 굿의 계면거리와 동해안 지역 굿의 계면굿에서 모셔지는 신. | 내용 및 지역사례 | [동해안별신굿](/topic/동해안별신굿)의 계면굿은 ‘걸립거리’, ‘제면굿’, ‘제민굿’이라고도 불린다. 계면굿의 신격은 계면할머니이다. 계면굿은 무당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굿거리로, 여기서 계면할머니는 [무조신](/topic/무조신)(巫祖神)으로 표현되고 있다. 무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반집에 딸이 태어난다.(고귀한 신분) 며느리와 딸에게 신이 내린다.(영신과의 만남) 며느리나 딸을 집에서 내보낸다.(버림받음) 딸이 산중에서 살면서 공을 들인다.(시련의 극복) 딸이 혼인한다.(혼인) 아들과 딸을 낳는다.(자녀 출산) 며느리나 딸이 계면할머니가 된다.(신으로 좌정) 며느리와 딸이 삼농사를 짓는데 계면할머니가 딸을 편든다.(후계자 다툼) 계면할머니가 걸립을 다니며 [단골](/topic/단골)을 가려서 축복과 저주를 내린다.(신유) 며느리가 개[가죽](/topic/가죽) 장구를 만들어 굿을 한다.(무구 제작과 후계자 선정) 무가의 연행이 끝난 후 계면놀이를 연행한다. 계면놀이는 사우놀이, 놋동우 놀이, [계면떡](/topic/계면떡) 팔기 놀이, 논밭사기 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우놀이는 굿을 맡은 주무가 거의 전적으로 놀이를 진행하면서 반주를 맡은 잽이를 상대역으로 삼아 말을 주고받기도 하고, 관중이나 [제관](/topic/제관)들을 일시적인 상대역으로 삼아 놀이를 진행하기도 한다. 사우놀이는 걸립 할매의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면서 ‘내가 몇 년 만에 이 [마을](/topic/마을) 별신굿에 찾아왔는데 처녀 때 딸 일곱을 낳고, 시집가서 여섯을 더 낳아서 합하면 열 셋이며, 그 다음에 딸을 시집보냈는데 사위를 찾는다’는 내용의 놀음이다. 사우놀이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자녀 생산은 무녀 스스로 신성성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의적 측면에서 풍작을 가져오려는 주술종교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놋동우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면할머니가 왔다가 굿을 한 거리 해야지. 나는 이제 도가 차 [가지](/topic/가지)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라고 말한 후 제팔([자바라](/topic/자바라))을 마을 주민 머리 위에 얹어 놓고 군웅장수를 모시자라는 간단한 무가를 부른다. 그다음 제팔을 놋동우라고 하고 입에 문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놋도 받으러 오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이 별비를 [시주](/topic/시주)하고 나면 무녀는 입에 물고 있던 제팔을 입에서 뗀다. 놋동우놀이에서 군웅신을 모신 다음에 놋동우를 무는 것이 자녀들의 안녕을 빌고 신의 위력을 나타낸다는 점은 계면할머니가 자녀의 운명을 관장하는 현실적 기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서 계면떡 팔기 놀이가 진행된다. 여기서 계면떡은 여러 종류의 씨앗으로 설명되며, [곡물](/topic/곡물)의 씨는 [식물](/topic/식물)의 알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곡령(穀靈)이라는 관념을 파생시켜 재생, 부활, 생성력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계면떡놀이는 무당의 단골 구역에서 집집마다 자루를 메고 다니며 동냥할 때 감사의 표시로 약소하게 준비한 떡을 나누어주던 일차적 의미에서 벗어나 무조신인 계면할머니가 생명과 존재와 풍요를 관장하는 신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무녀가 계면떡을 담았던 [바구니](/topic/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왼쪽으로 두 바퀴, 오른쪽으로 두 바퀴를 돈 다음 땅에 바구니를 떨어뜨려서 바구니의 터진 부분이 위로 나오면 밭을 사고, 바구니의 불록한 부분이 위로 나오면 논을 사는 논밭 사고팔기 놀이도 이어진다. 논을 사든 밭을 사든 무녀는 마을 주민을 축원한 다음 연행을 종료한다. 에서 논과 밭을 사는 내용은 계면할머니의 생산신적 성격을 강화시켜 준다. 서울굿에서는 창부거리 다음에 계면거리를 한다. 현재 서울 지역에서 전승되는 굿이 본래의 것인지 의문이 있다. 즉 서울의 계면거리가 애초에 이러한 형태였는지에 관한 것이다. 기록이나 서울굿의 구대인의 말에 따르면 꼭 이러한 굿만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가령 창부거리 뒤에 말명굿이 있었는데 이 말명굿이 계면거리였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굿에서 계면거리의 신격은 계면각시이다. 계면거리에서는 만신이 남[치마](/topic/치마)와 은하[몽두리](/topic/몽두리)를 입고서 [당악](/topic/당악)[장단](/topic/장단)에 춤을 추며 계면공수를 한 다음 [떡타령](/topic/떡타령)을 한다. 그리고 떡을 나누어 주고 계면노랫가락을 부르면서 연행을 마친다. 연행 절차는 본풀이 없이 놀이로만 이루어진다. 이 거리의 요점은 굿거리를 할 때 은하몽두리를 입거나 평복을 입고서 진행한다는 것과 모판에 떡을 들고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떡을 파는 행위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서울굿의 아주 유명한 떡타령을 한다. 일 년 열두 달의 떡에 대한 타령인 떡타령은 실제 이상의 주술적인 생산력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떡타령은 요긴한 의미를 지닌다. 특이한 점은 “돌러를 왔소 돌러를 왔소 삼십 칠관 돌러를 왔소”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이 긴요한 것으로 결국 애동기자 애동만신이 처음에 [내림굿](/topic/내림굿)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시주걸립을 다닌 전례(前例)를 나타내면서 이들에 대한 당골판을 상기시키는 절차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떡타령에서는 걸립을 다닌 전례와 내림굿에서의 신어머니와 [신딸](/topic/신딸) 관계가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서울굿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강신무권의 내림굿을 이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해안의 계면굿과 서울굿의 계면거리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결국 계면에 있다. 계면은 매우 다면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계면’이라는 말은 여자 무당의 조상이거나 조령을 뜻한다. 이 말은 크게는 조상 또는 여자 무당의 만신몸주인 조령을 말하기도 하고, 작게는 대신말명으로 현존하는 무당의 영혼을 말하기도 한다. 걸립은 세습무당이 굿 또는 자신의 생활을 위하여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곡식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걸립행위를 동해안 별신굿에서는 ‘계면굿’의 연행과정에서 무가와 놀이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세습무권에서 무당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무당이 당골이 되고 마을 사람들이 신도가 된다. 또한 강신무의 경우 처음 무당이 되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으로, 강신자(降神者)는 내림굿을 하기 전에 마을을 돌면서 각각 당골집을 정하러 다닌다. 흔히 당골집은 일곱 집이나 스물 한집 등 7의 배수를 정한다고 하지만 일정한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당골집을 방문해 공수를 주면서 신점을 쳐 주고 걸립하는 것을 ‘계면돌기’, ‘계면놀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때의 무녀를 ‘계면각시’라고 한다. 이는 서울굿에서 나타난다. | 참고문헌 | 제면굿 연구 (김헌선, 미발표 논문) 한국서사무가 연구 (홍태한, 민속원,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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