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반곡리산신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 서림[마을](/topic/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싸리나무홰에 불을 놓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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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 서림[마을](/topic/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싸리나무홰에 불을 놓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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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복
정의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 서림[마을](/topic/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싸리나무홰에 불을 놓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정의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 서림[마을](/topic/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싸리나무홰에 불을 놓아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례.
내용산신제의 신격은 [마을](/topic/마을) 뒤편에 있는 국사봉 산신이다. 반곡리의 주산(主山)이 되는 국사봉은 해발 338m에 불과하지만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예부터 영험한 산으로 치성을 받아 왔다. 산신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 밤 11시에 거행된다. 이를 위해 정월 초이튿날 아침이 되면 대동계장과 총무가 만나 [화주](/topic/화주)(化主), 축관, 공양주(供養主)를 비롯해 거정꾼과 급수꾼을 뽑는다.

1. [제관](/topic/제관)의 선정과 역할 : 화주는 산신제를 주관하는 제관으로서 역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마을에서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이 닿는 사람을 원칙으로 하되 상주(喪主)와 출산한 집, 부정한 여성이 있는 가정은 엄격히 가려서 화주를 선정한다. 화주의 임무는 산신제에 올릴 청수를 뜨고 소지를 잘 접어서 [갈[무리](/topic/무리)](/topic/갈무리)하는 일이다. [축문](/topic/축문)을 쓰고 [독축](/topic/독축)을 담당하는 축관은 대동계원 가운데 학식이 있는 원로 중에서 선임되는 것이 통례이다. 공양주는 산신제의 음식을 준비하는 역원이다. 특히 메를 짓고 떡을 만드는 것이 주된 일이며,과거에는 화주의 집에서 떡[방아](/topic/방아)를 찧었다. 거정꾼은 ‘거정잽이’라고도 하는데 [금줄](/topic/금줄)치기, [황토](/topic/황토)펴기, 제단 만들기, 샘 청소하기 등 당일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필요한 온갖 심부름을 담당한다. 급수꾼은 제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과 기타 허드렛물을 전담하는 역원이다. 산신제 당일인 초사흗날 아침에 공동[우물](/topic/우물)을 퍼내어서 깨끗이 한 뒤 그 물을 길어서 제기를 닦는다. 이 밖에 거정꾼과 함께 화주를 보좌하여 심부름을 담당하고, 산신제가 시작될 무렵에 싸리나무홰에 불을 댕긴다.

제관과 심부름꾼으로 선정되면 [대문](/topic/대문) 앞에 왼새끼로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황토를 대문 앞에 한줌씩 뿌려두는 것을 ‘황토를 편다’고 한다. 이때부터 각 역원의 집은 산제를 마칠 때까지 모든 주민의 출입이 금지된다. 화주를 비롯한 역원들은 외출을 삼간 채 찬물로 목욕재계하며,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마을에서도 주민들은 산신제를 앞두고 고기를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산신제 당일 저녁에는 전 주민이 목욕재계를 하는 등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성을 들인다. 심지어 황토를 펴기 이전에 외출한 사람은 제사가 끝난 뒤에야 마을로 돌아올 수 있으며, 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산신제가 끝나야 동구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2. 싸리나무하기 : 산신제에 사용하는 홰는 싸리나무로 만든다. 잡목이나 삭정이를 섞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이다. 싸리나무가 귀했던 때에는 20~30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화목원정을 떠나기도 했고, 산림법이 매우 엄하던 일제강점기에는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몰래 싸리나무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손이 있는 집은 누구나 예외 없이 싸리나무 한 다발을 가져오는 것이 불문율이다. 마을의 안녕과 각 가정의 액운을 소멸시키기 위해 산신제를 지내는 만큼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화목을 준비한다. 마을에서는 싸리나무를많이 해야 그해 가정이 무탈하고 길하다는 속설이 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근래에는 다소 시들해져서 원하는 가정에 한해 싸리나무를 수거하고 있으며, 서림마을에서만 30가구 안팎이 참여한다. 이를 위해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싸리나무를 하러 간다. 각 가정에서 준비한 화목 다발에는 [대주](/topic/대주)의 이름을 쓰고 홰를 엮는 데 필요한 새끼줄 서너 발을 꼬아서 함께 제출한다. 이는 각 가정에서 가져온 싸리나무는 자신이 꼰 새끼로 묶는다는 의미이다.

3. 금줄치기와 샘품기 : 정월 초사흗날 아침이 되면 마을 어귀에 황토를 편다. 황토펴기는 대동계 총무가 제물을 구입해 오면 진행한다. 거정꾼이 깨끗한 황토를 준비하여 길 양쪽에 세 무더기씩 갖다 놓으면 그 뒤편에 금줄을 친다. 예전에는 논두렁길을 제외하고 사방으로 통하는 좁은 길에도 모두 왼새끼를 둘렀으나 요즘에는 일일이 다 따를 수가 없어마을 앞 두 곳에만 친다. 이와 같이 동구 밖에 황토를 펴고 금줄을 드리우면 마을 주민들과 외부인의 출입이 전면 통제된다. 과거에는 장정들에게 파수를 맡겨 초사흗날 아침부터 산신제를 마칠 때까지 마을 어귀를 지키도록 했다. 거정꾼과 급수꾼은 공동우물을 말끔히 청소한 다음 샘물을 퍼낸다. 일단 청소를 마친 우물은 화주와 역원 외에는 접근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각 가정에서 필요한 식수는 하루 전에 미리 길어다 놓아야 한다. 우물에서 맑은 물이 고이면 가장 먼저 산신제에 올릴 청수를 뜬다. 화주는 청수동이에 물을 담아 제물이 보관된 방에 안치한다. 그런 다음 공양주는 샘물을 길어서 떡쌀과 두부콩을 씻고, 급수꾼은 제기를 닦는다.

4. 황토제단 만들기 반곡리산신제는 별도의 제당이나 신위가 없다. 또한 산신제의 대상 신이 국사봉 산신령임에도 제를 지내는 장소는 마을 앞 논[배미](/topic/배미)이다. 이는 국사봉의 지맥이 반곡리를 휘돌아서 마을 어귀에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정월 초사흗날 정오를 전후하여 임시로 제단을 만들어 제당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깨끗한 황토가 사용된다. 황토제단은 가로 180㎝, 세로 110㎝, 높이 20㎝ 규모로 조성된다. 이때 제단의 방향은 반곡리 동남쪽에 위치한 왕대봉 중앙을 향하도록 한다. 이것은 산신령의 좌정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토제단 옆에는 메와 떡시루를 올릴 [아궁이](/topic/아궁이) 2개도 미리 파 놓는다.

5. 싸리나무홰 엮기 : 각 가정에서 준비한 싸리나무는 초이튿날 오후부터 초사흗날 오전 사이에 마을회관 [마당](/topic/마당)에서 수거한다. 화목이 속속 도착하면 점심을 먹은 뒤에 싸리나무홰를 엮는 작업을 한다. 싸리나무홰는 2개를 엮는다. 예전에는 반곡리 아랫뜸과 윗뜸에서 하나씩 홰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두 마을 간에는 서로 홰를 크게 만들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것은 상대편보다 홰를 크게 만들어야 운수가 좋고 액운을 물리친다는 속설이 전하기 때문이다. 홰를 엮는 과정에는 몇 [가지](/topic/가지) 불문율이 있다. 우선 새끼줄로묶은 매듭이 반드시 일직선이 되도록 일치시켜야 한다. 홰를 묶는 매듭의 수는 딱히 홀수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싸리나무 다발(가구 수)과 동일한 수로 묶는 것이 관행이다. 이는 가정마다 정성을 기울여서 싸리나무홰를 준비한다는 의미이다. 싸리나무홰가 완성되면 어깨에 메고 제장까지 운반하여 황토제단 양옆에 세운다. 이때 반드시 나무를 묶은 매듭의 전면이 산신이 좌정한 왕대봉의 한복판을 향하도록 한다.

6. 제물의 준비 : 산신제의 비용은 50만 원가량이 소요되며, 이는 대동계의 자산에서 충당한다. 제물은 돼지머리(돈족 네 개 포함), 메, 팥고물떡, [통북어](/topic/통북어), 삼색실과, 삼탕, 청수 등이다. 대동계의 자산이 충만했을 때에는 통돼지를 잡기도 했으나 지금은 희생물로 돼지 한 마리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돼지머리 밑에 돈족(豚足) 네 개를 진설하여 바친다.또한 통북어는 본래 30마리를 한꺼번에 올렸지만 역시 부족한 예산 탓에 10마리로 줄였다. 이처럼 다른 마을의 동제에 비해 유독 많은 통북어를 진설하는 까닭은 집집마다 한 마리를 충남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 2003.1.3(음), 강성복 바친다는 정성을 들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 밖에 탕은 육탕(肉湯)·소탕(素湯)·어탕(魚湯) 세 가지를 쓰고, 술대신 청수를 올린다.

제물 구입은 섣달그믐쯤 면 소재지인 연산에 [대목장](/topic/대목장)이 다가오면 대동계 총무가 전년 산신제 때 작성한 물목기(物目記)를 참조하여 필요한 물품을 상인에게 미리 주문해 둔다. 그리고 정월 초사흗날 새벽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시장을 오갈 때에는 부정한 것을 목격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물건 값을 흥정하지 말고 상인이 달라는 대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구입한 제물은 화주 집 방 하나를 비우고 정갈하게 보관한다. 제물이 있는 방에는 역원 외에 그 집의 안주인도 출입할 수 없다. 제기는 매년 새 것을 구입하는 것이 관례이며, 그해 사용한 그릇은 화주의 몫이 된다. 제물 준비는 공양주가 전담한다. 특히 떡가루는 화주 집에서 [절구](/topic/절구)통으로 손수 방아를 찧고,두부 역시 [맷돌](/topic/맷돌)에 콩을 갈아서 만든다. 이때 공양주는 침이 튀지 않도록 흰 종이로 만든 입마개를 착용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일이 금기를 다 지킬 수 없어 떡방아는 방앗간을이용하고 두부는 시장에서 구입한다.

7. 산신제 : 초사흗날 저녁이 되면 마을회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역원들은 제물(청수 제외)을 들고 제장으로 향한다. 싸리나무홰를 세운 마을 앞에 도착하면 낮에 준비해 둔 화목으로 화톳불을 놓는다. 불길이 주변을 환히 비추는 가운데 공양주는 시루에 떡가루(한 말)를 넣고 아궁이에 올린다. 땔감은 잡목이나 삭정이가 섞이지 않은 싸리나무이다. 시루가 안치되면 거정꾼은 징을 울린다. 집 안에서 징소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부녀자들은 초사흗날 [고사](/topic/고사)에 올릴 ‘마짐시루([마중시루](/topic/마중시루))’를 아궁이에 올리고, 떡시루에 희뿌연 김이 오르면 메를 짓기 시작한다. 떡이 다 익으면 시루를 떼면서 다시 징을 친다. 이 소리를 듣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화주는 비로소 청수동이를 들고 제장으로 향하고, 축관은 축문과 소지종이를 가지고 온다. 각 가정에서는 두 번째 징소리가 울리면 마짐시루를 장독으로 옮기고 고사 준비를 서두른다.

자시가 임박하여 화주와 축관이 제장으로 들어서면 거정꾼은 황토제단 위에 짚을 깐다. 이윽고 화주와 축관은 공양주가 준비한 제물을 하나하나 진설한다. 진설이 완료되면 화주와 축관은 제단 앞에 서 있고, 거정꾼과 급수꾼은 긴 장대에 불을 붙여 싸리나무홰 꼭대기에 불을 댕긴다. 잠시 뒤 징을 잡은 거정꾼은 세 번째로 징을 쳐서 산신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때부터 화주와 축관은 거정꾼과 공양주의 시중을 받아 산신제를 지낸다. 이와 동시에 각 가정에서도 마짐시루를 [장독대](/topic/장독대)에 진설하고 치성을 드린다.

반곡리산신제에는 술을 올리지 않는다. 제차는 [분향](/topic/분향)-재배-독축-재배-소지의 순으로 진행하는데 고된 준비 과정에 비하면 매우 단순한 편이다. 소지는 모두 30장을 올리되 10장씩나누어 모둠소지를 올린다. 산신제를 마치면 화주는 동구 밖으로 제물을 옮기고 혼자서 재배한다. 산신제가 진행되는 동안 싸리나무횃불은 점점 거세게 타올라 온 마을을 삼킬 듯한 기세로 화기를 토해 낸다. 주민들은 횃불이 잘 타야 산신제의 효험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아래뜸과 위뜸 주민들은 서로 자신의 홰가 먼저 소각되어야 액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편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산신제를 마치면 화주는 삼색실과와 떡을 조금씩 떼어서 동서남북 사방을 향해 세번씩 던진다. 이것은제장에 깃든 모든 잡귀를 풀어먹이는 일종의 ‘[해물리기](/topic/해물리기)’ 의식이다. 화주 일행은 즉석에서 [음복](/topic/음복)을 나눈 뒤 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과 함께 조촐한 주연의 시간을 보낸다. 계원들은 매년 산신제를 마친 날인 정월 초나흗날에 한자리에 모여서 기금을 결산하고 마을일을 논의하고 주민들은 마을잔치를 베풀면서 화합을 다진다.
내용산신제의 신격은 [마을](/topic/마을) 뒤편에 있는 국사봉 산신이다. 반곡리의 주산(主山)이 되는 국사봉은 해발 338m에 불과하지만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예부터 영험한 산으로 치성을 받아 왔다. 산신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 밤 11시에 거행된다. 이를 위해 정월 초이튿날 아침이 되면 대동계장과 총무가 만나 [화주](/topic/화주)(化主), 축관, 공양주(供養主)를 비롯해 거정꾼과 급수꾼을 뽑는다.

1. [제관](/topic/제관)의 선정과 역할 : 화주는 산신제를 주관하는 제관으로서 역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마을에서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이 닿는 사람을 원칙으로 하되 상주(喪主)와 출산한 집, 부정한 여성이 있는 가정은 엄격히 가려서 화주를 선정한다. 화주의 임무는 산신제에 올릴 청수를 뜨고 소지를 잘 접어서 [갈[무리](/topic/무리)](/topic/갈무리)하는 일이다. [축문](/topic/축문)을 쓰고 [독축](/topic/독축)을 담당하는 축관은 대동계원 가운데 학식이 있는 원로 중에서 선임되는 것이 통례이다. 공양주는 산신제의 음식을 준비하는 역원이다. 특히 메를 짓고 떡을 만드는 것이 주된 일이며,과거에는 화주의 집에서 떡[방아](/topic/방아)를 찧었다. 거정꾼은 ‘거정잽이’라고도 하는데 [금줄](/topic/금줄)치기, [황토](/topic/황토)펴기, 제단 만들기, 샘 청소하기 등 당일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필요한 온갖 심부름을 담당한다. 급수꾼은 제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물과 기타 허드렛물을 전담하는 역원이다. 산신제 당일인 초사흗날 아침에 공동[우물](/topic/우물)을 퍼내어서 깨끗이 한 뒤 그 물을 길어서 제기를 닦는다. 이 밖에 거정꾼과 함께 화주를 보좌하여 심부름을 담당하고, 산신제가 시작될 무렵에 싸리나무홰에 불을 댕긴다.

제관과 심부름꾼으로 선정되면 [대문](/topic/대문) 앞에 왼새끼로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황토를 대문 앞에 한줌씩 뿌려두는 것을 ‘황토를 편다’고 한다. 이때부터 각 역원의 집은 산제를 마칠 때까지 모든 주민의 출입이 금지된다. 화주를 비롯한 역원들은 외출을 삼간 채 찬물로 목욕재계하며,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마을에서도 주민들은 산신제를 앞두고 고기를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산신제 당일 저녁에는 전 주민이 목욕재계를 하는 등 부정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성을 들인다. 심지어 황토를 펴기 이전에 외출한 사람은 제사가 끝난 뒤에야 마을로 돌아올 수 있으며, 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산신제가 끝나야 동구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2. 싸리나무하기 : 산신제에 사용하는 홰는 싸리나무로 만든다. 잡목이나 삭정이를 섞지 않는 것이 오랜 관행이다. 싸리나무가 귀했던 때에는 20~30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화목원정을 떠나기도 했고, 산림법이 매우 엄하던 일제강점기에는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몰래 싸리나무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손이 있는 집은 누구나 예외 없이 싸리나무 한 다발을 가져오는 것이 불문율이다. 마을의 안녕과 각 가정의 액운을 소멸시키기 위해 산신제를 지내는 만큼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화목을 준비한다. 마을에서는 싸리나무를많이 해야 그해 가정이 무탈하고 길하다는 속설이 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근래에는 다소 시들해져서 원하는 가정에 한해 싸리나무를 수거하고 있으며, 서림마을에서만 30가구 안팎이 참여한다. 이를 위해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싸리나무를 하러 간다. 각 가정에서 준비한 화목 다발에는 [대주](/topic/대주)의 이름을 쓰고 홰를 엮는 데 필요한 새끼줄 서너 발을 꼬아서 함께 제출한다. 이는 각 가정에서 가져온 싸리나무는 자신이 꼰 새끼로 묶는다는 의미이다.

3. 금줄치기와 샘품기 : 정월 초사흗날 아침이 되면 마을 어귀에 황토를 편다. 황토펴기는 대동계 총무가 제물을 구입해 오면 진행한다. 거정꾼이 깨끗한 황토를 준비하여 길 양쪽에 세 무더기씩 갖다 놓으면 그 뒤편에 금줄을 친다. 예전에는 논두렁길을 제외하고 사방으로 통하는 좁은 길에도 모두 왼새끼를 둘렀으나 요즘에는 일일이 다 따를 수가 없어마을 앞 두 곳에만 친다. 이와 같이 동구 밖에 황토를 펴고 금줄을 드리우면 마을 주민들과 외부인의 출입이 전면 통제된다. 과거에는 장정들에게 파수를 맡겨 초사흗날 아침부터 산신제를 마칠 때까지 마을 어귀를 지키도록 했다. 거정꾼과 급수꾼은 공동우물을 말끔히 청소한 다음 샘물을 퍼낸다. 일단 청소를 마친 우물은 화주와 역원 외에는 접근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각 가정에서 필요한 식수는 하루 전에 미리 길어다 놓아야 한다. 우물에서 맑은 물이 고이면 가장 먼저 산신제에 올릴 청수를 뜬다. 화주는 청수동이에 물을 담아 제물이 보관된 방에 안치한다. 그런 다음 공양주는 샘물을 길어서 떡쌀과 두부콩을 씻고, 급수꾼은 제기를 닦는다.

4. 황토제단 만들기 반곡리산신제는 별도의 제당이나 신위가 없다. 또한 산신제의 대상 신이 국사봉 산신령임에도 제를 지내는 장소는 마을 앞 논[배미](/topic/배미)이다. 이는 국사봉의 지맥이 반곡리를 휘돌아서 마을 어귀에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정월 초사흗날 정오를 전후하여 임시로 제단을 만들어 제당으로 삼는다. 여기에는 깨끗한 황토가 사용된다. 황토제단은 가로 180㎝, 세로 110㎝, 높이 20㎝ 규모로 조성된다. 이때 제단의 방향은 반곡리 동남쪽에 위치한 왕대봉 중앙을 향하도록 한다. 이것은 산신령의 좌정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황토제단 옆에는 메와 떡시루를 올릴 [아궁이](/topic/아궁이) 2개도 미리 파 놓는다.

5. 싸리나무홰 엮기 : 각 가정에서 준비한 싸리나무는 초이튿날 오후부터 초사흗날 오전 사이에 마을회관 [마당](/topic/마당)에서 수거한다. 화목이 속속 도착하면 점심을 먹은 뒤에 싸리나무홰를 엮는 작업을 한다. 싸리나무홰는 2개를 엮는다. 예전에는 반곡리 아랫뜸과 윗뜸에서 하나씩 홰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두 마을 간에는 서로 홰를 크게 만들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것은 상대편보다 홰를 크게 만들어야 운수가 좋고 액운을 물리친다는 속설이 전하기 때문이다. 홰를 엮는 과정에는 몇 [가지](/topic/가지) 불문율이 있다. 우선 새끼줄로묶은 매듭이 반드시 일직선이 되도록 일치시켜야 한다. 홰를 묶는 매듭의 수는 딱히 홀수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싸리나무 다발(가구 수)과 동일한 수로 묶는 것이 관행이다. 이는 가정마다 정성을 기울여서 싸리나무홰를 준비한다는 의미이다. 싸리나무홰가 완성되면 어깨에 메고 제장까지 운반하여 황토제단 양옆에 세운다. 이때 반드시 나무를 묶은 매듭의 전면이 산신이 좌정한 왕대봉의 한복판을 향하도록 한다.

6. 제물의 준비 : 산신제의 비용은 50만 원가량이 소요되며, 이는 대동계의 자산에서 충당한다. 제물은 돼지머리(돈족 네 개 포함), 메, 팥고물떡, [통북어](/topic/통북어), 삼색실과, 삼탕, 청수 등이다. 대동계의 자산이 충만했을 때에는 통돼지를 잡기도 했으나 지금은 희생물로 돼지 한 마리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돼지머리 밑에 돈족(豚足) 네 개를 진설하여 바친다.또한 통북어는 본래 30마리를 한꺼번에 올렸지만 역시 부족한 예산 탓에 10마리로 줄였다. 이처럼 다른 마을의 동제에 비해 유독 많은 통북어를 진설하는 까닭은 집집마다 한 마리를 충남 논산시 양촌면 반곡리, 2003.1.3(음), 강성복 바친다는 정성을 들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 밖에 탕은 육탕(肉湯)·소탕(素湯)·어탕(魚湯) 세 가지를 쓰고, 술대신 청수를 올린다.

제물 구입은 섣달그믐쯤 면 소재지인 연산에 [대목장](/topic/대목장)이 다가오면 대동계 총무가 전년 산신제 때 작성한 물목기(物目記)를 참조하여 필요한 물품을 상인에게 미리 주문해 둔다. 그리고 정월 초사흗날 새벽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시장을 오갈 때에는 부정한 것을 목격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물건 값을 흥정하지 말고 상인이 달라는 대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구입한 제물은 화주 집 방 하나를 비우고 정갈하게 보관한다. 제물이 있는 방에는 역원 외에 그 집의 안주인도 출입할 수 없다. 제기는 매년 새 것을 구입하는 것이 관례이며, 그해 사용한 그릇은 화주의 몫이 된다. 제물 준비는 공양주가 전담한다. 특히 떡가루는 화주 집에서 [절구](/topic/절구)통으로 손수 방아를 찧고,두부 역시 [맷돌](/topic/맷돌)에 콩을 갈아서 만든다. 이때 공양주는 침이 튀지 않도록 흰 종이로 만든 입마개를 착용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일이 금기를 다 지킬 수 없어 떡방아는 방앗간을이용하고 두부는 시장에서 구입한다.

7. 산신제 : 초사흗날 저녁이 되면 마을회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역원들은 제물(청수 제외)을 들고 제장으로 향한다. 싸리나무홰를 세운 마을 앞에 도착하면 낮에 준비해 둔 화목으로 화톳불을 놓는다. 불길이 주변을 환히 비추는 가운데 공양주는 시루에 떡가루(한 말)를 넣고 아궁이에 올린다. 땔감은 잡목이나 삭정이가 섞이지 않은 싸리나무이다. 시루가 안치되면 거정꾼은 징을 울린다. 집 안에서 징소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부녀자들은 초사흗날 [고사](/topic/고사)에 올릴 ‘마짐시루([마중시루](/topic/마중시루))’를 아궁이에 올리고, 떡시루에 희뿌연 김이 오르면 메를 짓기 시작한다. 떡이 다 익으면 시루를 떼면서 다시 징을 친다. 이 소리를 듣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화주는 비로소 청수동이를 들고 제장으로 향하고, 축관은 축문과 소지종이를 가지고 온다. 각 가정에서는 두 번째 징소리가 울리면 마짐시루를 장독으로 옮기고 고사 준비를 서두른다.

자시가 임박하여 화주와 축관이 제장으로 들어서면 거정꾼은 황토제단 위에 짚을 깐다. 이윽고 화주와 축관은 공양주가 준비한 제물을 하나하나 진설한다. 진설이 완료되면 화주와 축관은 제단 앞에 서 있고, 거정꾼과 급수꾼은 긴 장대에 불을 붙여 싸리나무홰 꼭대기에 불을 댕긴다. 잠시 뒤 징을 잡은 거정꾼은 세 번째로 징을 쳐서 산신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때부터 화주와 축관은 거정꾼과 공양주의 시중을 받아 산신제를 지낸다. 이와 동시에 각 가정에서도 마짐시루를 [장독대](/topic/장독대)에 진설하고 치성을 드린다.

반곡리산신제에는 술을 올리지 않는다. 제차는 [분향](/topic/분향)-재배-독축-재배-소지의 순으로 진행하는데 고된 준비 과정에 비하면 매우 단순한 편이다. 소지는 모두 30장을 올리되 10장씩나누어 모둠소지를 올린다. 산신제를 마치면 화주는 동구 밖으로 제물을 옮기고 혼자서 재배한다. 산신제가 진행되는 동안 싸리나무횃불은 점점 거세게 타올라 온 마을을 삼킬 듯한 기세로 화기를 토해 낸다. 주민들은 횃불이 잘 타야 산신제의 효험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아래뜸과 위뜸 주민들은 서로 자신의 홰가 먼저 소각되어야 액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편과의 경쟁에서 이긴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산신제를 마치면 화주는 삼색실과와 떡을 조금씩 떼어서 동서남북 사방을 향해 세번씩 던진다. 이것은제장에 깃든 모든 잡귀를 풀어먹이는 일종의 ‘[해물리기](/topic/해물리기)’ 의식이다. 화주 일행은 즉석에서 [음복](/topic/음복)을 나눈 뒤 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과 함께 조촐한 주연의 시간을 보낸다. 계원들은 매년 산신제를 마친 날인 정월 초나흗날에 한자리에 모여서 기금을 결산하고 마을일을 논의하고 주민들은 마을잔치를 베풀면서 화합을 다진다.
역사반곡리산신제의 유래는 분명치 않지만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마을](/topic/마을)의 전통으로 구전되고 있을 뿐이다. 산신제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마을에서 보관 중인 [축문](/topic/축문)이다.축문에 ‘해동조선국(海東朝鮮國) 충청우도(忠淸右道) 연산현(連山縣) 모촌면(茅村面) 반곡리(盤谷里)’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처음 축문이 작성된 시기는 조선시대이며, 이 내용을 매년 그대로 필사해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곡리산신제는 늦어도 조선 후기의 전통을 계승해 온 동제로 추정된다.

반곡리에서 산신제를 주관하는 주체는 대동계이다. 마을에 거주하는 가구는 모두 대동계에 가입되어 있으며, [분가](/topic/분가)한 자와 다른 동네에서 [이사](/topic/이사)를 오는 사람은 기존의 신입례에 의거하여 대동계에 가입한다. 대동계에서는 산신제를 지내는데 필요한 제반 절차와 준비 과정을 문서로 기록하여 전승에 만전을 기하고있다. 문서는 이른바 「산신제 행사일람」이다. 이 문서에는 각 역원의 선정과 역할, 제물의 준비, 금기사항, 제의순서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역사반곡리산신제의 유래는 분명치 않지만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마을](/topic/마을)의 전통으로 구전되고 있을 뿐이다. 산신제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마을에서 보관 중인 [축문](/topic/축문)이다.축문에 ‘해동조선국(海東朝鮮國) 충청우도(忠淸右道) 연산현(連山縣) 모촌면(茅村面) 반곡리(盤谷里)’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처음 축문이 작성된 시기는 조선시대이며, 이 내용을 매년 그대로 필사해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곡리산신제는 늦어도 조선 후기의 전통을 계승해 온 동제로 추정된다.

반곡리에서 산신제를 주관하는 주체는 대동계이다. 마을에 거주하는 가구는 모두 대동계에 가입되어 있으며, [분가](/topic/분가)한 자와 다른 동네에서 [이사](/topic/이사)를 오는 사람은 기존의 신입례에 의거하여 대동계에 가입한다. 대동계에서는 산신제를 지내는데 필요한 제반 절차와 준비 과정을 문서로 기록하여 전승에 만전을 기하고있다. 문서는 이른바 「산신제 행사일람」이다. 이 문서에는 각 역원의 선정과 역할, 제물의 준비, 금기사항, 제의순서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의반곡리산신제는 싸리나무홰가 등장하는 의례이다. 이는 온 [마을](/topic/마을) 사람이 정성껏 준비한 횃불로 성대하게 산신을 맞이한다는 신호인 동시에 어둠을 밝혀주는 조명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싸리나무홰는 새해를 맞이하여 풍농을 예축(豫祝)하고 마을에 깃든 액운을 몰아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홰를 크게 만들어야 한 해 운수가 좋고 액운을 물리치는 데 효험이 있다는 속설에서 그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충청민속문화론 (강성복, 민속원, 2005)
의의반곡리산신제는 싸리나무홰가 등장하는 의례이다. 이는 온 [마을](/topic/마을) 사람이 정성껏 준비한 횃불로 성대하게 산신을 맞이한다는 신호인 동시에 어둠을 밝혀주는 조명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싸리나무홰는 새해를 맞이하여 풍농을 예축(豫祝)하고 마을에 깃든 액운을 몰아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는 홰를 크게 만들어야 한 해 운수가 좋고 액운을 물리치는 데 효험이 있다는 속설에서 그 숨은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충청민속문화론 (강성복, 민속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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