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화재를 막기 위한 액막이 풍속의 하나로 [마을](/topic/마을) 주민 전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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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정연학 |
정의 | 화재를 막기 위한 액막이 풍속의 하나로 [마을](/topic/마을) 주민 전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제의. | 정의 | 화재를 막기 위한 액막이 풍속의 하나로 [마을](/topic/마을) 주민 전체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제의. | 내용 | 화재를 막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topic/가지)가 있으나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민간에서 개인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굴뚝](/topic/굴뚝)이나 [지붕](/topic/지붕)에 막걸리․소금․쌀뜨물․물(간수) 등을 뿌리는 형태이다. 굴뚝이나 지붕은 화기와 직접 연결된 곳으로, 이곳을 잘 위하면 화재가 나지 않는다고 믿어 행해진 결과로 보인다. 또한 집 안의 네 귀퉁이나 [기둥](/topic/기둥) 등지에 이것들을 뿌리기도 한다. 두 번째는 화재 예방을 위한 부적을 붙여 화재를 막고자 하는 형태이다. 민간에서는 화기를 막기 위한 부적을 붙이는데 보통 ‘수(水) 자’가 보인다. 세 번째는 [마을](/topic/마을)공동체 단위에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제의를 드리는 것으로, 보통 [풍수](/topic/풍수)적으로 화기가 서린 마을에서 지낸다. 함평수문리불막이제는 세 번째 사례에 해당된다. ‘수(水) 자’를 거꾸로 붙이기도 한다. 이는 물이 쏟아진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1. 제의 명칭 : 화재를 막기 위한 제의를 ‘불막이제’라고 부른다.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에서는 ‘불제’, ‘불막이굿’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불막이제는 음력 이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지낸다. 제를 이월 초하룻날에 지내는 것은 그믐이 넘어[서고](/topic/서고) 새로 시작되는 날이기에 깨끗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전리에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당산제가 끝나면 불막이제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2. 제의 과정 : 여느 마을제사가 그러하듯이 [제관](/topic/제관)을 선정하고 [금줄](/topic/금줄)을 두르는 것은 일반적인 행위이다. 불막이제에서 보이는 독특한 것이 바닷물과 [우물](/topic/우물)물을 길어 오는 일이다. 대전리의 경우 바닷물을 길어 오는 일은 마을에서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의 몫이다. 물론 젊은이 가운데 깨끗한 사람을 선정한다. 대전리에서 바닷가까지는 4㎞정도 떨어져 있으며, 1990년쯤까지만 하더라도 물[지게](/topic/지게)를 지고 두 사람이 새벽에 물을 뜨러 갔다. 두 사람이 가는 이유는 교대로 물지게를 지기 위함이다. 그러나 경운기와 트럭이 등장하면서 물을 운반하는 것은 이것들로 대치되었다. 바닷물은 탁하면 안 되기 때문에 바다 중간에 들어가 깨끗한 물을 퍼 온다. 두 동이의 물이면 불막이제에 쓰고도 남는다. 물 한 동이의 양은 두 말 정도이다. 우물물은 마을에서 가장 먼저 생긴 웃샘의 물을 쓴다. 물을 뜨러 가기 전에 사람들은 목욕을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삼색과일, 백설기시루, 포, 도라지, 고사리, 무채, 청주 등을 놓는다. 제물 마련에 들어가는 경비는 당산제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때 수렴한 돈으로 충당한다. 제의 진행은 풍물을 치면서 제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간수 물을 담은 항아리를 꺼내 확인하고, 물을 보충하고, 항아리를 다시 묻고, 제사를 지내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대전리에서는 제관과 풍물패가 세 개의 항아리가 묻혀 있는 ‘진등’이라는 곳으로 이동해 윗마을에서 아랫마을에 해당하는 물항아리를 순서대로 열어 본다. 물이 줄어든 항아리에는 미리 준비한 바닷물과 우물물을 반반씩 섞어 채운다. 그리고 돌로 된 뚜껑을 덮고 그 위에 흙을 덮는다. 항아리는 각각 넉 되의 물이 들어가는 크기이며, 1m 간격으로 묻혀 있다. 항아리 위로는 70㎝가량 흙으로 덮는다. 항아리를 다 묻으면 유교식 [제복](/topic/제복)을 입은 제관들이 제사를 지낸다. [축문](/topic/축문)은 제사가 끝나면 사른다. 제사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음복](/topic/음복)을 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축문 내용은 천지의 모든 신에게 마을의 평안을 비는 내용이다. 維歲次 辛巳二月丁巳 金相來 敢昭告于 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 山王海王土地諸位之神 恭修歲事于 全南 咸平郡 孫佛面 大田里 三災八亂 疾病苦厄 民安 維時保佑 實賴神休敢以 酒饌敬伸 尊獻 尙饗 | 내용 | 화재를 막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topic/가지)가 있으나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민간에서 개인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굴뚝](/topic/굴뚝)이나 [지붕](/topic/지붕)에 막걸리․소금․쌀뜨물․물(간수) 등을 뿌리는 형태이다. 굴뚝이나 지붕은 화기와 직접 연결된 곳으로, 이곳을 잘 위하면 화재가 나지 않는다고 믿어 행해진 결과로 보인다. 또한 집 안의 네 귀퉁이나 [기둥](/topic/기둥) 등지에 이것들을 뿌리기도 한다. 두 번째는 화재 예방을 위한 부적을 붙여 화재를 막고자 하는 형태이다. 민간에서는 화기를 막기 위한 부적을 붙이는데 보통 ‘수(水) 자’가 보인다. 세 번째는 [마을](/topic/마을)공동체 단위에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제의를 드리는 것으로, 보통 [풍수](/topic/풍수)적으로 화기가 서린 마을에서 지낸다. 함평수문리불막이제는 세 번째 사례에 해당된다. ‘수(水) 자’를 거꾸로 붙이기도 한다. 이는 물이 쏟아진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1. 제의 명칭 : 화재를 막기 위한 제의를 ‘불막이제’라고 부른다.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에서는 ‘불제’, ‘불막이굿’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불막이제는 음력 이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지낸다. 제를 이월 초하룻날에 지내는 것은 그믐이 넘어[서고](/topic/서고) 새로 시작되는 날이기에 깨끗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전리에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당산제가 끝나면 불막이제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2. 제의 과정 : 여느 마을제사가 그러하듯이 [제관](/topic/제관)을 선정하고 [금줄](/topic/금줄)을 두르는 것은 일반적인 행위이다. 불막이제에서 보이는 독특한 것이 바닷물과 [우물](/topic/우물)물을 길어 오는 일이다. 대전리의 경우 바닷물을 길어 오는 일은 마을에서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의 몫이다. 물론 젊은이 가운데 깨끗한 사람을 선정한다. 대전리에서 바닷가까지는 4㎞정도 떨어져 있으며, 1990년쯤까지만 하더라도 물[지게](/topic/지게)를 지고 두 사람이 새벽에 물을 뜨러 갔다. 두 사람이 가는 이유는 교대로 물지게를 지기 위함이다. 그러나 경운기와 트럭이 등장하면서 물을 운반하는 것은 이것들로 대치되었다. 바닷물은 탁하면 안 되기 때문에 바다 중간에 들어가 깨끗한 물을 퍼 온다. 두 동이의 물이면 불막이제에 쓰고도 남는다. 물 한 동이의 양은 두 말 정도이다. 우물물은 마을에서 가장 먼저 생긴 웃샘의 물을 쓴다. 물을 뜨러 가기 전에 사람들은 목욕을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삼색과일, 백설기시루, 포, 도라지, 고사리, 무채, 청주 등을 놓는다. 제물 마련에 들어가는 경비는 당산제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때 수렴한 돈으로 충당한다. 제의 진행은 풍물을 치면서 제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간수 물을 담은 항아리를 꺼내 확인하고, 물을 보충하고, 항아리를 다시 묻고, 제사를 지내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대전리에서는 제관과 풍물패가 세 개의 항아리가 묻혀 있는 ‘진등’이라는 곳으로 이동해 윗마을에서 아랫마을에 해당하는 물항아리를 순서대로 열어 본다. 물이 줄어든 항아리에는 미리 준비한 바닷물과 우물물을 반반씩 섞어 채운다. 그리고 돌로 된 뚜껑을 덮고 그 위에 흙을 덮는다. 항아리는 각각 넉 되의 물이 들어가는 크기이며, 1m 간격으로 묻혀 있다. 항아리 위로는 70㎝가량 흙으로 덮는다. 항아리를 다 묻으면 유교식 [제복](/topic/제복)을 입은 제관들이 제사를 지낸다. [축문](/topic/축문)은 제사가 끝나면 사른다. 제사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음복](/topic/음복)을 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축문 내용은 천지의 모든 신에게 마을의 평안을 비는 내용이다. 維歲次 辛巳二月丁巳 金相來 敢昭告于 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 山王海王土地諸位之神 恭修歲事于 全南 咸平郡 孫佛面 大田里 三災八亂 疾病苦厄 民安 維時保佑 實賴神休敢以 酒饌敬伸 尊獻 尙饗 | 의의 | 화재는 한 번에 큰 재물과 인명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존재이다. 그러기에 궁궐이나 절, 민간에서는 불기운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주술적인 조치를 하였다. 조선왕조는 궁궐의 화재 발생을 관악산의 화기 때문이라고 보고 궁궐 앞에 해태상을 세우고, 남[대문](/topic/대문)에는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적은 [현판](/topic/현판)을 세로로 건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崇禮門의 ‘禮’는 오행 중 불[火]에 해당하고, 세로로 문구를 쓴 것은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기에 결국 불로써 불을 막으려는 주술적 행위이다. [마을](/topic/마을)에 세운 솟대에 물새를 올리는 이유도 마을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이다. 절이나 민간에서도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소금이나 물 같은 상징물을 이용한다. 경북 청도군의 [운문사](/topic/운문사)에서는 음력 정월 스무날쯤에 소금을 담은 단지를 불당 뒤에 묻고, [해인사](/topic/해인사)에서도 절 경내 주위 여러 곳에 [소금단지](/topic/소금단지)를 묻어 절 앞 화산(火山)의 화기를 누른다. 민간에서도 간수를 땅에 묻어 마을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제의를 행한다. 불막이제는 [풍수](/topic/풍수)지리적인 자연관을 이용하여 화재를 막으려는 속신이다. [화재막이](/topic/화재막이)에 쓰이는 소금은 바닷물의 결정체로서 거대한 물을 의미하며, 물과 불이 상극(水火相剋)이라는 이치를 이용해 불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민간에서 [기둥](/topic/기둥)에 ‘수(水)’ 자를 거꾸로 붙여 화기를 누르고자 한 것도 수화상극(水火相剋)의 단편적인 예이다. [상량문](/topic/상량문)에 ‘용(龍)’ 자나 ‘귀(龜)’ 자를 쓰는 것이나 문돌쩌귀를 거북 모양으로 만드는 것도 이들 [동물](/topic/동물)이 수신(水神)적 존재이기 때문에 집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것이다. 불막이제는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였거나 풍수적으로 화기가 서려 있다는 마을에서 행하고 있다. 간수를 담은 단지의 물은 용을 상징하며, 수신인 용의 힘으로 화재를 막으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아리에 간물을 채우는 것은 용신의 신성력을 담는 것이며, 간물 자체가 용신일 수 있다. 정해진 날 깨끗한 곳에서 간물을 뜨거나 간물항아리가 묻혀 있는 자리에 함부로 갈 수 없는 것도 바로 신이 깃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는 불기운을 막겠다는 속신으로 소금, 바닷물, 물, 술 등 불과 상극인 물의 성질을 지닌 물질을 이용해 마을의 화기를 막으려고 한 것이다. 이것들을 뿌리는 행위는 화재를 진압하는 의미이며, [지붕](/topic/지붕)에 주로 뿌리는 것은 예전에 초[가지](/topic/가지)붕이 불에 잘 탔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 간물단지신앙의 용신신앙적 성격 (김명자, 月山任東權博士頌壽紀念論文集 民俗學會 篇, 월산임동권박사송희기념논문편찬위원회, 1986) 화재예방-[불막이제](/topic/불막이제) (정연학, 민속소식 69, 국립민속박물관, 2001) 불액막이 풍습 (이건욱, 민속소식 80, 국립민속박물관, 2002) 충청남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전라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 의의 | 화재는 한 번에 큰 재물과 인명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존재이다. 그러기에 궁궐이나 절, 민간에서는 불기운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주술적인 조치를 하였다. 조선왕조는 궁궐의 화재 발생을 관악산의 화기 때문이라고 보고 궁궐 앞에 해태상을 세우고, 남[대문](/topic/대문)에는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적은 [현판](/topic/현판)을 세로로 건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崇禮門의 ‘禮’는 오행 중 불[火]에 해당하고, 세로로 문구를 쓴 것은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이기에 결국 불로써 불을 막으려는 주술적 행위이다. [마을](/topic/마을)에 세운 솟대에 물새를 올리는 이유도 마을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이다. 절이나 민간에서도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소금이나 물 같은 상징물을 이용한다. 경북 청도군의 [운문사](/topic/운문사)에서는 음력 정월 스무날쯤에 소금을 담은 단지를 불당 뒤에 묻고, [해인사](/topic/해인사)에서도 절 경내 주위 여러 곳에 [소금단지](/topic/소금단지)를 묻어 절 앞 화산(火山)의 화기를 누른다. 민간에서도 간수를 땅에 묻어 마을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제의를 행한다. 불막이제는 [풍수](/topic/풍수)지리적인 자연관을 이용하여 화재를 막으려는 속신이다. [화재막이](/topic/화재막이)에 쓰이는 소금은 바닷물의 결정체로서 거대한 물을 의미하며, 물과 불이 상극(水火相剋)이라는 이치를 이용해 불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민간에서 [기둥](/topic/기둥)에 ‘수(水)’ 자를 거꾸로 붙여 화기를 누르고자 한 것도 수화상극(水火相剋)의 단편적인 예이다. [상량문](/topic/상량문)에 ‘용(龍)’ 자나 ‘귀(龜)’ 자를 쓰는 것이나 문돌쩌귀를 거북 모양으로 만드는 것도 이들 [동물](/topic/동물)이 수신(水神)적 존재이기 때문에 집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것이다. 불막이제는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였거나 풍수적으로 화기가 서려 있다는 마을에서 행하고 있다. 간수를 담은 단지의 물은 용을 상징하며, 수신인 용의 힘으로 화재를 막으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항아리에 간물을 채우는 것은 용신의 신성력을 담는 것이며, 간물 자체가 용신일 수 있다. 정해진 날 깨끗한 곳에서 간물을 뜨거나 간물항아리가 묻혀 있는 자리에 함부로 갈 수 없는 것도 바로 신이 깃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민간에서는 불기운을 막겠다는 속신으로 소금, 바닷물, 물, 술 등 불과 상극인 물의 성질을 지닌 물질을 이용해 마을의 화기를 막으려고 한 것이다. 이것들을 뿌리는 행위는 화재를 진압하는 의미이며, [지붕](/topic/지붕)에 주로 뿌리는 것은 예전에 초[가지](/topic/가지)붕이 불에 잘 탔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 간물단지신앙의 용신신앙적 성격 (김명자, 月山任東權博士頌壽紀念論文集 民俗學會 篇, 월산임동권박사송희기념논문편찬위원회, 1986) 화재예방-[불막이제](/topic/불막이제) (정연학, 민속소식 69, 국립민속박물관, 2001) 불액막이 풍습 (이건욱, 민속소식 80, 국립민속박물관, 2002) 충청남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전라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 유래 |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에서 불막이제를 언제부터 지낸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다만 유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노승이 절터를 찾는 중에 노승봉에서 내려와 수문리를 보았다. 그 터가 [명당](/topic/명당)이었으나 앞산 [마루](/topic/마루)에 화기(火氣)가 있어 안타까워하였다. 그리고 노승산으로 올라가는 고개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을 보고 절터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때 [마을](/topic/마을)의 한 노인을 만나 “이 마을은 계속 번창할 것이나 화재가 많은 것이 염려되고, 계곡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노승에게 액막이하는 방법을 묻자 노승은 “화기는 막을 수 있지만 낭떠러지는 어찌할 수 없다”고 가르쳐 주었다. 노인은 화기 막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낭떠러지는 차차 대책을 세우겠다고 부탁했다. 노승은 마을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수문(水門) 위의 등허리에 항아리 셋을 묻되 그 항아리에 바닷물과 [우물](/topic/우물)물을 반반씩 넣어 가득 채우고 꼭 봉한 다음 흙을 덮어서 무덤처럼 해두었다가 불이 나거든 열어 보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마을회의를 열어 이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물항아리를 사 오는 일은 ‘웃대미(윗마을)’, 뚜껑을 만드는 일은 ‘아랫대미(아랫마을)’, 항아리를 묻는 일은 ‘동그대미(중간마을)’가 각각 맡기로 정하였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당제가 끝나고 좋은 날을 가려 항아리를 묻었다. 그 후 동그대미에서 불이 나 열어 보니 가운데의 항아리만 물이 없어졌으며, 아[무리](/topic/무리) 살펴봐도 깨진 곳이 없었다. 다시 물을 채우고 묻어 두었다가 아랫마을에서 불이 나 열어 보니 역시 아래쪽 항아리만 물이 없어졌다. 윗마을에서 불이 나 열어 보았을 때 윗항아리만 물이 없어진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동쪽의 위 항아리가 ‘웃대미’, 가운데 항아리가 ‘동그대미’, 아래 항아리가 ‘아랫대미’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때부터 항아리 뚜껑을 열어 봐 물이 없어진 항아리와 관계된 마을에 불이 난다고 믿게 되었다.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면서 불이 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한편 노승이 말한 것처럼 노승봉 낭떠러지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거나 병신이 되는 사례가 빈번하자 마을에서 낭떠러지 입구를 막아 사람의 통행을 금지시켰다. 결국 낭떠러지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 유래 |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대전리에서 불막이제를 언제부터 지낸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다만 유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노승이 절터를 찾는 중에 노승봉에서 내려와 수문리를 보았다. 그 터가 [명당](/topic/명당)이었으나 앞산 [마루](/topic/마루)에 화기(火氣)가 있어 안타까워하였다. 그리고 노승산으로 올라가는 고개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을 보고 절터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때 [마을](/topic/마을)의 한 노인을 만나 “이 마을은 계속 번창할 것이나 화재가 많은 것이 염려되고, 계곡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노승에게 액막이하는 방법을 묻자 노승은 “화기는 막을 수 있지만 낭떠러지는 어찌할 수 없다”고 가르쳐 주었다. 노인은 화기 막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낭떠러지는 차차 대책을 세우겠다고 부탁했다. 노승은 마을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수문(水門) 위의 등허리에 항아리 셋을 묻되 그 항아리에 바닷물과 [우물](/topic/우물)물을 반반씩 넣어 가득 채우고 꼭 봉한 다음 흙을 덮어서 무덤처럼 해두었다가 불이 나거든 열어 보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마을회의를 열어 이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물항아리를 사 오는 일은 ‘웃대미(윗마을)’, 뚜껑을 만드는 일은 ‘아랫대미(아랫마을)’, 항아리를 묻는 일은 ‘동그대미(중간마을)’가 각각 맡기로 정하였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당제가 끝나고 좋은 날을 가려 항아리를 묻었다. 그 후 동그대미에서 불이 나 열어 보니 가운데의 항아리만 물이 없어졌으며, 아[무리](/topic/무리) 살펴봐도 깨진 곳이 없었다. 다시 물을 채우고 묻어 두었다가 아랫마을에서 불이 나 열어 보니 역시 아래쪽 항아리만 물이 없어졌다. 윗마을에서 불이 나 열어 보았을 때 윗항아리만 물이 없어진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동쪽의 위 항아리가 ‘웃대미’, 가운데 항아리가 ‘동그대미’, 아래 항아리가 ‘아랫대미’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때부터 항아리 뚜껑을 열어 봐 물이 없어진 항아리와 관계된 마을에 불이 난다고 믿게 되었다.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면서 불이 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한편 노승이 말한 것처럼 노승봉 낭떠러지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거나 병신이 되는 사례가 빈번하자 마을에서 낭떠러지 입구를 막아 사람의 통행을 금지시켰다. 결국 낭떠러지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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