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군

한국무속신앙사전
삼한(三韓)시대에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맡아보던 제사장(祭司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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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三韓)시대에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맡아보던 제사장(祭司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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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
정의삼한(三韓)시대에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맡아보던 제사장(祭司長).
정의삼한(三韓)시대에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맡아보던 제사장(祭司長).
참조[소도](/topic/소도)
참고문헌한국사강좌I-고대 (이기백, 일조각, 1982)
한국민속학개설 (이두현 외, 일조각, 1991)
한국의 풍속사I (김용덕, 도서출판 밀알, 1994)
三國志, 晉書, 後漢書, 한국공동체신앙의 역사 (이기태, 한국민속사입문, 지식산업사, 1996)
한국 민속의 세계 9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한국민속문화대[사전](/topic/사전) (김용덕, 도서출판 창솔, 2004)
참조[소도](/topic/소도)
참고문헌한국사강좌I-고대 (이기백, 일조각, 1982)
한국민속학개설 (이두현 외, 일조각, 1991)
한국의 풍속사I (김용덕, 도서출판 밀알, 1994)
三國志, 晉書, 後漢書, 한국공동체신앙의 역사 (이기태, 한국민속사입문, 지식산업사, 1996)
한국 민속의 세계 9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한국민속문화대[사전](/topic/사전) (김용덕, 도서출판 창솔, 2004)
내용제정(祭政)이 분리되어 있던 삼한시대에는 정치적 통치자인 주수(主帥)와 제사를 주관하는 전문적 사제인 천군(天君)이 있었다. 각 지역 집단에서 천군이라는 사제자를 선택하여 천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재하게 하였으며, 천군은 귀족이 지배하는 지역 사회의 대표자이지만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 유동적인 [제관](/topic/제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천군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진서(晉書)』 등에 보인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귀신을 몹시 섬기기 때문에 고을마다 한 사람을 뽑아 세워서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주장하게 한다. 이 사람을 천군이라 부른다.”라고 하였고,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도 “여러 나라의 고을에서는 각각 한 사람이 천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장하게 한다. 이 사람을 천군이라 하고 또 소도(蘇塗)를 세운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라고 하였다. 『진서(晉書)』 「사이전(四夷傳)」 마한조(馬韓條)에는 “나라마다 각각 한 사람을 세워 천신에게 제사를 올리게 하는데, 이 사람을 천군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삼한에서의 제천의례는 귀족의 지배 영역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여러 나라에는 각각 따로 읍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라고 하였다. 이 소도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삼국지』에는 “사방에서 도망해 온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돌아[가지](/topic/가지) 않는다. … 그들이 소도를 세운 뜻은 마치 불가에서 절을 세우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후한서』에는 “언제나 5월이 되어 [밭갈이](/topic/밭갈이)가 끝나면 귀신에게 제사 드리고 밤낮으로 술 마시고 놀면서 여럿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데 한 사람이 춤을 추면 수십 명이 따라 춤을 춘다. 10월이 되어 농사일이 다 끝나면 또다시 이와 같이 논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 가무오락을 즐기기 전에 먼저 천군이 농경 제천의례를 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귀족에 의해 행해지던 각 지역의 제의에는 예부터 부족의 독자적인 가무와 악기의 연주가 있었다. 이러한 각 부족의 음악은 저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서 부족 전통의 상징이 되어 왔다. 5월과 10월에 귀신에게 제사지낸다고 하면서 천신이라 표현하지 않고 귀신이라 표기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사례를 볼 때 귀신은 천신을 비롯한 많은 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대 해석된다.

각 국은 사회적으로 귀족 연합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집권체제로의 전환을 맞이하면서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지역신을 흡수하여 제사의 체계를 일원화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정치구조의 변화는 이전까지 귀족이 지배하던 영역 중심의 공동체신앙 일부가 중앙집권체제 형식으로 변화되었으며, 일부는 귀족의 지배 영역에서 정착하게 되어 지역공동체 신앙으로 변화하였음을 암시한다. 이후 각 제의는 왕 중심의 천신제로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귀족 단위의 제의는 음사(陰祀)의 범주에 속하게 되고, 이것이 민간 중심의 집단신앙 형태로 분화 발전하게 된다. 민간 중심의 집단신앙은 음사에 포함됨으로써 더 이상 지배체제의 이념이 될 수 없고 하층민의 신앙으로 전락하여 중앙권력에서 분리된 지역공동체 신앙으로 정착하게 된다.
내용제정(祭政)이 분리되어 있던 삼한시대에는 정치적 통치자인 주수(主帥)와 제사를 주관하는 전문적 사제인 천군(天君)이 있었다. 각 지역 집단에서 천군이라는 사제자를 선택하여 천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재하게 하였으며, 천군은 귀족이 지배하는 지역 사회의 대표자이지만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 유동적인 [제관](/topic/제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천군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진서(晉書)』 등에 보인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귀신을 몹시 섬기기 때문에 고을마다 한 사람을 뽑아 세워서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주장하게 한다. 이 사람을 천군이라 부른다.”라고 하였고,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도 “여러 나라의 고을에서는 각각 한 사람이 천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장하게 한다. 이 사람을 천군이라 하고 또 소도(蘇塗)를 세운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라고 하였다. 『진서(晉書)』 「사이전(四夷傳)」 마한조(馬韓條)에는 “나라마다 각각 한 사람을 세워 천신에게 제사를 올리게 하는데, 이 사람을 천군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삼한에서의 제천의례는 귀족의 지배 영역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여러 나라에는 각각 따로 읍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라고 하였다. 이 소도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삼국지』에는 “사방에서 도망해 온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돌아[가지](/topic/가지) 않는다. … 그들이 소도를 세운 뜻은 마치 불가에서 절을 세우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후한서』에는 “언제나 5월이 되어 [밭갈이](/topic/밭갈이)가 끝나면 귀신에게 제사 드리고 밤낮으로 술 마시고 놀면서 여럿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는데 한 사람이 춤을 추면 수십 명이 따라 춤을 춘다. 10월이 되어 농사일이 다 끝나면 또다시 이와 같이 논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 가무오락을 즐기기 전에 먼저 천군이 농경 제천의례를 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귀족에 의해 행해지던 각 지역의 제의에는 예부터 부족의 독자적인 가무와 악기의 연주가 있었다. 이러한 각 부족의 음악은 저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서 부족 전통의 상징이 되어 왔다. 5월과 10월에 귀신에게 제사지낸다고 하면서 천신이라 표현하지 않고 귀신이라 표기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사례를 볼 때 귀신은 천신을 비롯한 많은 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대 해석된다.

각 국은 사회적으로 귀족 연합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집권체제로의 전환을 맞이하면서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지역신을 흡수하여 제사의 체계를 일원화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정치구조의 변화는 이전까지 귀족이 지배하던 영역 중심의 공동체신앙 일부가 중앙집권체제 형식으로 변화되었으며, 일부는 귀족의 지배 영역에서 정착하게 되어 지역공동체 신앙으로 변화하였음을 암시한다. 이후 각 제의는 왕 중심의 천신제로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귀족 단위의 제의는 음사(陰祀)의 범주에 속하게 되고, 이것이 민간 중심의 집단신앙 형태로 분화 발전하게 된다. 민간 중심의 집단신앙은 음사에 포함됨으로써 더 이상 지배체제의 이념이 될 수 없고 하층민의 신앙으로 전락하여 중앙권력에서 분리된 지역공동체 신앙으로 정착하게 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서울새남굿1998
서울새남굿의 굿상차림심우성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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