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입석리선돌

한국무속신앙사전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일곱 개의 돌을 쌓아 이루어진 돌. 2001년 2월 2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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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일곱 개의 돌을 쌓아 이루어진 돌. 2001년 2월 2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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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식
정의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일곱 개의 돌을 쌓아 이루어진 돌. 2001년 2월 2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정의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입석리에 있는 일곱 개의 돌을 쌓아 이루어진 돌. 2001년 2월 2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형태선돌백이라고도 부르는 화강암 재질의 이 선돌은 세 단으로 되어 있다. 하단부는 전체 높이 66㎝의 낮고 폭이 넓은 세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위에 높이 96㎝, 너비 140㎝, 두께 96∼116㎝의 돌 세 개를 올려놓아 중앙부를 이룬다. 상단부에는 전체 높이 245㎝, 너비 258㎝, 둘레 654㎝의 커다란 돌을 올려놓았다. 일곱 개의 돌이 쌓여 하나의 선돌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선돌의 전체적인 크기는 높이 407㎝, 너비 258㎝, 두께 90∼125㎝로 매우 큰 편에 속한다.

[마을](/topic/마을) 어귀에 세워진 이 선돌에서 유래하여 이 마을은 입석(立石)으로 불리고 있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선돌의 축조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기자풍속의 부녀제의 등으로 이 선돌을 믿고 있었다. 선돌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식한 주민들이 선돌을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1974년에 자발적으로 ‘선돌회’를 조직하여 관리하다가 1986년부터 매년 음력 시월 중에 택일하여 선돌제를 지내고 있다.

제의는 일반적인 유교식으로 지낸다.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의로서 수호적 기능의 대상물로 섬기고 있다.

이 선돌은 기자신앙의 대상물이기도 하다. 길에서 돌을 던져 선돌 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개인적으로 밤에 제를 지내고 돌을 던졌다.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한밤중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선돌에다 [금줄](/topic/금줄)을 두르고 음식을 차려 놓은 다음 부녀자가 제를 행하였다고 한다. 이 선돌에 얽힌 마고전설이 확인된다.


까마득한 옛날 충주 언저리를 나돌아 다니던 마고(麻姑)할미들이 우연하게 이곳에서 마주쳤다. 평소 사이가 나빠 서로 으르렁대던 두 마고할미는 서로 힘자랑을 하게 되었다. 한 마고할미가 옆에 있던 큰 돌을 냅다 던졌다. 그 돌은 논 가운데로 날아가더니 땅에 박혀 우뚝 섰다. 이것을 본 다른 마고할미가 역시 커다란 돌을 집어들더니 앞서의 할미가 던진 곳을 향해 던졌다. 그 돌은 하늘을 날아 먼젓번에 던진 돌 위에 떨어져 두 개의 돌이 겹치면서 하나의 돌처럼 되었다. 결국 여기서 벌인 두 마고할미의 힘내기는 승부를 보지 못한 채 끝났으며 두 마고할미는 각기 제 갈길로 떠났다. 이때 마고할미가 던진 돌이 입석리의 선돌이다. 지금도 이 선돌의 중간에 층이 진 것같이 보이는데 이는 두 개의 돌이 겹쳐 있어 그런 것이다.


입석리의 선돌은 원래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충북지방에서 조사된 선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며, 일곱 개의 돌로 쌓은 매우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성, 숭배와 금기의 문화 (김종대 외, 대원사, 1997)
충북의 민속문화 (이창식, 충청북도·忠北學硏究所, 2001)
한국의 성숭배문화 (이종철, 민속원, 2003)
제천시지 하권 (제천시, 2004)
형태선돌백이라고도 부르는 화강암 재질의 이 선돌은 세 단으로 되어 있다. 하단부는 전체 높이 66㎝의 낮고 폭이 넓은 세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위에 높이 96㎝, 너비 140㎝, 두께 96∼116㎝의 돌 세 개를 올려놓아 중앙부를 이룬다. 상단부에는 전체 높이 245㎝, 너비 258㎝, 둘레 654㎝의 커다란 돌을 올려놓았다. 일곱 개의 돌이 쌓여 하나의 선돌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선돌의 전체적인 크기는 높이 407㎝, 너비 258㎝, 두께 90∼125㎝로 매우 큰 편에 속한다.

[마을](/topic/마을) 어귀에 세워진 이 선돌에서 유래하여 이 마을은 입석(立石)으로 불리고 있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선돌의 축조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기자풍속의 부녀제의 등으로 이 선돌을 믿고 있었다. 선돌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식한 주민들이 선돌을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1974년에 자발적으로 ‘선돌회’를 조직하여 관리하다가 1986년부터 매년 음력 시월 중에 택일하여 선돌제를 지내고 있다.

제의는 일반적인 유교식으로 지낸다.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의로서 수호적 기능의 대상물로 섬기고 있다.

이 선돌은 기자신앙의 대상물이기도 하다. 길에서 돌을 던져 선돌 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개인적으로 밤에 제를 지내고 돌을 던졌다.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한밤중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선돌에다 [금줄](/topic/금줄)을 두르고 음식을 차려 놓은 다음 부녀자가 제를 행하였다고 한다. 이 선돌에 얽힌 마고전설이 확인된다.


까마득한 옛날 충주 언저리를 나돌아 다니던 마고(麻姑)할미들이 우연하게 이곳에서 마주쳤다. 평소 사이가 나빠 서로 으르렁대던 두 마고할미는 서로 힘자랑을 하게 되었다. 한 마고할미가 옆에 있던 큰 돌을 냅다 던졌다. 그 돌은 논 가운데로 날아가더니 땅에 박혀 우뚝 섰다. 이것을 본 다른 마고할미가 역시 커다란 돌을 집어들더니 앞서의 할미가 던진 곳을 향해 던졌다. 그 돌은 하늘을 날아 먼젓번에 던진 돌 위에 떨어져 두 개의 돌이 겹치면서 하나의 돌처럼 되었다. 결국 여기서 벌인 두 마고할미의 힘내기는 승부를 보지 못한 채 끝났으며 두 마고할미는 각기 제 갈길로 떠났다. 이때 마고할미가 던진 돌이 입석리의 선돌이다. 지금도 이 선돌의 중간에 층이 진 것같이 보이는데 이는 두 개의 돌이 겹쳐 있어 그런 것이다.


입석리의 선돌은 원래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충북지방에서 조사된 선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며, 일곱 개의 돌로 쌓은 매우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성, 숭배와 금기의 문화 (김종대 외, 대원사, 1997)
충북의 민속문화 (이창식, 충청북도·忠北學硏究所, 2001)
한국의 성숭배문화 (이종철, 민속원, 2003)
제천시지 하권 (제천시, 2004)
신구문화사제주도무속자료사전현용준1980
집문당제주도무속연구현용준1986
민속원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진성기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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