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흥리포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 [마을](/topic/마을)에서 매년 정월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택일](/topic/택일)하여 벌이는 마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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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 [마을](/topic/마을)에서 매년 정월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택일](/topic/택일)하여 벌이는 마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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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식
특징상단제와 하단제를 나누어서 행하고, 다시 해신제를 별도로 행한다. 포제를 지낸 뒤에 그 [제물](/topic/제물)로 당신에게 고하고 잠수굿을 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당에 대한 의례는 앞서기도 하고 뒤따르기도 한다. 신흥리[마을](/topic/마을)은 뒤따르는 경우이다. 유교식 용신제, 무속식 잠수굿을 남녀별로 따로 행하는 사례인 점도 특별하다.
포제와 잠수굿이 바로 이어지는 점 역시 특별하다. 유교식 마을제와 무속식 마을제가 연이어 이루어지는 셈이다. 비슷한 사례로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를 들 수 있다. 동복리에서는 포제를 지낸 뒤에 당굿을 벌인다.
특징상단제와 하단제를 나누어서 행하고, 다시 해신제를 별도로 행한다. 포제를 지낸 뒤에 그 [제물](/topic/제물)로 당신에게 고하고 잠수굿을 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당에 대한 의례는 앞서기도 하고 뒤따르기도 한다. 신흥리[마을](/topic/마을)은 뒤따르는 경우이다. 유교식 용신제, 무속식 잠수굿을 남녀별로 따로 행하는 사례인 점도 특별하다.
포제와 잠수굿이 바로 이어지는 점 역시 특별하다. 유교식 마을제와 무속식 마을제가 연이어 이루어지는 셈이다. 비슷한 사례로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를 들 수 있다. 동복리에서는 포제를 지낸 뒤에 당굿을 벌인다.
정의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 [마을](/topic/마을)에서 매년 정월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택일](/topic/택일)하여 벌이는 마을제.
정의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 [마을](/topic/마을)에서 매년 정월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택일](/topic/택일)하여 벌이는 마을제.
내용신흥리에서는 포제를 위한 제단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마을](/topic/마을)회관 2층에 마련된 공간에서 행제를 한다. 이곳을 흔히 ‘[제방](/topic/제방)(祭房)’이라고 한다. 1층의 경로당을 제청으로 삼고 정성을 들인다. 제청은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한쪽에 [제관](/topic/제관)들이 기거하는 곳을 정해 두고 나머지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공간으로 삼는다. ‘포제동산’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제단이 따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관련 전승이나 기록이 없어 상세한 내력은 알 길이 없다.

신흥리에서는 포제를 지낼 때 해신제를 함께 지낸다. 포제는 상단제, 하단제로 나뉜다. 상단제는 [포신](/topic/포신)을 위한 것이다. 포신은 마을 전체의 안녕과 [생업](/topic/생업)의 풍등(豐登)을 돕는 신이다. 하단제는 다수의 하위신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마을을 떠도는 [무주고혼](/topic/무주고혼)을 포함한다. 이들을 잘 대접해야 탈이 없다고 한다. 해신제는 해신을 위한 것이다. 해신은 바다일의 안전과 해산물의 풍등을 돕는 신이다.

본래 제일, 제관 등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은 마을회의에서 이루어졌다. 제일은 정월 첫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골랐다. 마을에 상이 나거나 화재가 발생하면 포제를 연기하였다. 제관은 덕 있는 사람, 연령 많은 사람 순으로 정한다. 부부가 해로하는 이여야 한다. 아내가 먼저 사망한 경우는 제관 자격이 없다. 마을이 작아서 성씨나 동네를 안배하는 일은 없다. 소집사는 장가든 사람 가운데 고른다. 요즘에는 제관 선정 방법이 바뀌었다. 제관은 노인회에서 선정한다. 집례, 알자 등 소제관과 해신제 제관은 이장이 선정한다. 과거에는 개인 집을 제청으로 삼았다. 향장(鄕長)과 두로(頭老) 등 원로들이 해마다 적절한 방위를 보아 선정하였다. 깨끗한 집, 상중(喪中)이 아닌 집이어야 하였다. 주인은 제관에 포함되지 아니하였고, 안주인은 식사 준비를 도와야 하였다.

옛날에는 제비를 가구마다 일정한 현물이나 현금으로 거두어 마련하였다. 마을 경비는 내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나 포제의 제비는 모두 냈다. 지금은 마을 공금으로 해결한다. 향우회, 사업체 등에서도 기부를 한다. 마을 사람들도 제청을 찾아 조금씩 희사를 한다. 적지만 바닷가에 밀려온 풍조(風藻)를 팔아 얻은 수익도 보탬이 된다. 이렇게 해서 마련한 돈은 포제기금으로 따로 관리하고 다른 용도로 쓰지 않는다. 집사들에게 수고비를 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제관은 제청에서 일정한 기간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요즘에는 사흘 동안 합숙하며 [재계](/topic/재계)한다. 이때 마을 입구, 제청에 [금줄](/topic/금줄)을 걸어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금한다. 금줄은 포제를 지내기에 앞서 걷어낸다. 과거에는 걷어낸 금줄을 태워 없앴지만 요즘에는 원하는 사람에게 준다. [문전제](/topic/문전제), 철[갈이](/topic/갈이), [칠성제](/topic/칠성제) 등을 하는 사람들이 얻어간다. 새끼를 구하기 어려운 탓에 이러한 변화가 생겼다. 제관들은 사흘 앞둔 날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개별적으로 제청에 모인다. 과거에는 신흥리사무소에 모여 함께 제청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제청에 도착하면 먼저 3[헌관](/topic/헌관)을 모셔 앉히고 집례 이하 집사들이 절을 한다. 옛날에는 정성을 들이는 동안 큰물성창의 ‘셋물깍’에서 물을 떠다가 데워서 목욕하고, ‘셋물깍’의 물로 제물을 마련하는 데 썼다. 그러나 샘에 금줄을 치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샘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정성을 들이는 동안 식사는 제관 집에서 책임졌다. 이 때문에 여유 있는 사람을 가려 제관을 맡겼다. 제관 집에서 식사를 준비해 끼니마다 제청으로 날랐다. 헌관 이하 집사들은 제관들이 차려온 음식을 먹었다. 요즘에는 마을회관에 마련된 제청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끼니를 해결한다. 입재한 첫날 점심부터 하루 세끼의 식사를 제공한다. 제일 하루 전날 밤에는 부녀회에서 떡국을 제공한다. 예나 지금이나 돼지고기는 금한다.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주부 두 사람의 몫이다. 주부 두 명은 이장이 선정한다. 물품 구입은 부녀회에서 협조한다. 옛날에는 포제를 앞두고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하였다고 한다. 일주일 안에는 인분을 뿌리는 것도 하지 않고 ‘통시’, ‘쉐막’에서 거름도 내거나 운반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축문](/topic/축문)은 하루 전날 아침 새벽에 목욕하고 나서 썼다. 지금은 붓으로 쓰지 않고 복사해두었다가 바뀌는 대목만 채워 쓴다. 두 차례가량 행제 연습을 한다. 옛날에는 희생을 장만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희생은 돼지이다. 돼지는 두 마리를 준비한다. 포제용과 해신제용으로 두 마리가 필요하다. 포제용은 털과 내장만 제거한다. 제물로 쓰고 난 뒤에는 분육한다. 해신제용은 열두 부위로 나누되 머리와 꼬리만 제물로 쓴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의 [음복](/topic/음복)용으로 쓴다. 과거에는 돼지를 처리하는 일이 큰일이었다. 포제용은 집사들이 맡아 처리하고 해신제용은 마을 사람들이 맡아 처리하였다. 바닷가에서 불로 그슬어 돼지털을 제거하고 다시 제청으로 옮겨 나머지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양돈](/topic/양돈)장에서 전사관의 감독 아래 모든 처리를 하여 [가지](/topic/가지)고 온다.

하루 전날 저물기 전에 제물을 봉하는 의식을 행한다. 제청의 금줄을 걷어내고 제물을 2층 제장으로 옮긴다. 제관, 집사들이 모여 제물 봉하는 의식을 행한다. 집례가 고하는 대로 제물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제상](/topic/제상)에 올려 봉한다. 제물마다 일일이 [백지](/topic/백지)로 띠를 만들어 묶는다. 이때 제관과 집사는 모두 [제복](/topic/제복)으로 갖추어 입었다가 끝나면 벗어서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 차림으로 대기한다. 3헌관, 집례, 대축, 알자는 청금(靑衿)을 입는다. 나머지는 하늘색 두루마기를 입는다. 3헌관은 갓, 나머지는 [유건](/topic/유건)을 각각 쓴다. [행전](/topic/행전)은 차지만 [버선](/topic/버선) 대신 [양말](/topic/양말)을 신는다. 현재 이용하는 제복은 10여 년 전에 마련한 것이며, 제기와 함께 제방에 보관해 둔다. 밤 9시 반쯤에 봉한 제물을 진설하고 축문을 올린다. 그리고 쌀자루를 [부엌](/topic/부엌)으로 보내 메를 짓게 한다. 메는 포신, 해신의 몫 두 그릇을 산메로 짓는다. 과거에는 도량서직에 해당하는 쌀을 섞어 쪄냈으나 지금은 쌀로만 짓는다.

옛날 사가(私家)를 제청으로 이용할 때에는 제장으로 이동하는 일을 매우 조심스럽게 하였다. 이때는 주민, 특히 여자가 돌아다니는 것을 금하였다. 제관 일행을 가로지르는 불경을 저지를까 염려해서이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미리 [골목](/topic/골목)마다 지켜 서서 불상사를 방지했다. 집사(희생), [초헌](/topic/초헌)관․[아헌](/topic/아헌)관․[종헌](/topic/종헌)관, 집례(폐백), 대축(축문), 알자(쌀 구덕), 기타(하단제, 해신제 제물) 순서로 이동하였다.

행제는 11시쯤에 준비하여 11시 30분에 시작하며, 대개 12시가 되기 이전에 끝난다. 포제는 상단제, 하단제로 나뉘고 해신제가 따른다. 상단제는 마을회관 2층의 제장에서 지낸다. 하단제는 마을회관 옆 한쪽 공간에서 행한다. 해신제는 바닷가에 따로 마련된 해신제단에서 행한다. 상단제가 끝나면 이어서 하단제를 한다. 하단제 제관이 단헌[단작](/topic/단작)하고 고축하여 마친다. 해신제는 상단제를 위한 메를 진설하면 해신제단으로 출발하여 상단제의 시작과 동시에 지낸다. 역시 해신제 제단이 단헌단작하고 고축하여 마친다. 어선이 있는 이들이 함께 따른다. 그곳에서 돼지머리로 음복을 한다. 본래 해신제는 포구 한쪽 귀퉁이에서 지낸 것이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불편이 따르기 때문에 7, 8년 전에 시유지에 담을 두르고 제단을 마련하였다.

제사를 마치면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제장으로 올라가 배례를 한다. 음복은 마을 남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한다. 이 자리에서 포제와 관련된 수입 지출의 결산보고가 간단히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분육이 중요한 일이었다. 전사관이 남은 고기를 헌관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나서 나누어 주었다. 머리와 전각은 초헌관 몫이었다. 나머지도 상하에 따라 차례로 나누었다. 목, 후각, 숭(가슴) 등을 우선으로 쳤다. 집사는 나머지 자르기 좋은 것으로 조금씩 나누었다. 헌관 집에서 매 끼니 식사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고기를 많이 준 것이다. 이 밖에 상중이어서 상식(喪食)을 올리는 집, 연로한 어른이 사는 집에도 고기를 조금씩 보내었다.

한편 전각 하나는 남겨 두었다가 이날 아침 잠수굿이 초감제로 넘어가면 가지고 간다. 이때 3헌관, 이장이 굿청에 가서 절을 하고 산을 받는다.
내용신흥리에서는 포제를 위한 제단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마을](/topic/마을)회관 2층에 마련된 공간에서 행제를 한다. 이곳을 흔히 ‘[제방](/topic/제방)(祭房)’이라고 한다. 1층의 경로당을 제청으로 삼고 정성을 들인다. 제청은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한쪽에 [제관](/topic/제관)들이 기거하는 곳을 정해 두고 나머지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공간으로 삼는다. ‘포제동산’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제단이 따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관련 전승이나 기록이 없어 상세한 내력은 알 길이 없다.

신흥리에서는 포제를 지낼 때 해신제를 함께 지낸다. 포제는 상단제, 하단제로 나뉜다. 상단제는 [포신](/topic/포신)을 위한 것이다. 포신은 마을 전체의 안녕과 [생업](/topic/생업)의 풍등(豐登)을 돕는 신이다. 하단제는 다수의 하위신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마을을 떠도는 [무주고혼](/topic/무주고혼)을 포함한다. 이들을 잘 대접해야 탈이 없다고 한다. 해신제는 해신을 위한 것이다. 해신은 바다일의 안전과 해산물의 풍등을 돕는 신이다.

본래 제일, 제관 등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은 마을회의에서 이루어졌다. 제일은 정월 첫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골랐다. 마을에 상이 나거나 화재가 발생하면 포제를 연기하였다. 제관은 덕 있는 사람, 연령 많은 사람 순으로 정한다. 부부가 해로하는 이여야 한다. 아내가 먼저 사망한 경우는 제관 자격이 없다. 마을이 작아서 성씨나 동네를 안배하는 일은 없다. 소집사는 장가든 사람 가운데 고른다. 요즘에는 제관 선정 방법이 바뀌었다. 제관은 노인회에서 선정한다. 집례, 알자 등 소제관과 해신제 제관은 이장이 선정한다. 과거에는 개인 집을 제청으로 삼았다. 향장(鄕長)과 두로(頭老) 등 원로들이 해마다 적절한 방위를 보아 선정하였다. 깨끗한 집, 상중(喪中)이 아닌 집이어야 하였다. 주인은 제관에 포함되지 아니하였고, 안주인은 식사 준비를 도와야 하였다.

옛날에는 제비를 가구마다 일정한 현물이나 현금으로 거두어 마련하였다. 마을 경비는 내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나 포제의 제비는 모두 냈다. 지금은 마을 공금으로 해결한다. 향우회, 사업체 등에서도 기부를 한다. 마을 사람들도 제청을 찾아 조금씩 희사를 한다. 적지만 바닷가에 밀려온 풍조(風藻)를 팔아 얻은 수익도 보탬이 된다. 이렇게 해서 마련한 돈은 포제기금으로 따로 관리하고 다른 용도로 쓰지 않는다. 집사들에게 수고비를 줄 정도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제관은 제청에서 일정한 기간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요즘에는 사흘 동안 합숙하며 [재계](/topic/재계)한다. 이때 마을 입구, 제청에 [금줄](/topic/금줄)을 걸어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금한다. 금줄은 포제를 지내기에 앞서 걷어낸다. 과거에는 걷어낸 금줄을 태워 없앴지만 요즘에는 원하는 사람에게 준다. [문전제](/topic/문전제), 철[갈이](/topic/갈이), [칠성제](/topic/칠성제) 등을 하는 사람들이 얻어간다. 새끼를 구하기 어려운 탓에 이러한 변화가 생겼다. 제관들은 사흘 앞둔 날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개별적으로 제청에 모인다. 과거에는 신흥리사무소에 모여 함께 제청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제청에 도착하면 먼저 3[헌관](/topic/헌관)을 모셔 앉히고 집례 이하 집사들이 절을 한다. 옛날에는 정성을 들이는 동안 큰물성창의 ‘셋물깍’에서 물을 떠다가 데워서 목욕하고, ‘셋물깍’의 물로 제물을 마련하는 데 썼다. 그러나 샘에 금줄을 치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샘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정성을 들이는 동안 식사는 제관 집에서 책임졌다. 이 때문에 여유 있는 사람을 가려 제관을 맡겼다. 제관 집에서 식사를 준비해 끼니마다 제청으로 날랐다. 헌관 이하 집사들은 제관들이 차려온 음식을 먹었다. 요즘에는 마을회관에 마련된 제청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끼니를 해결한다. 입재한 첫날 점심부터 하루 세끼의 식사를 제공한다. 제일 하루 전날 밤에는 부녀회에서 떡국을 제공한다. 예나 지금이나 돼지고기는 금한다.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주부 두 사람의 몫이다. 주부 두 명은 이장이 선정한다. 물품 구입은 부녀회에서 협조한다. 옛날에는 포제를 앞두고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하였다고 한다. 일주일 안에는 인분을 뿌리는 것도 하지 않고 ‘통시’, ‘쉐막’에서 거름도 내거나 운반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축문](/topic/축문)은 하루 전날 아침 새벽에 목욕하고 나서 썼다. 지금은 붓으로 쓰지 않고 복사해두었다가 바뀌는 대목만 채워 쓴다. 두 차례가량 행제 연습을 한다. 옛날에는 희생을 장만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희생은 돼지이다. 돼지는 두 마리를 준비한다. 포제용과 해신제용으로 두 마리가 필요하다. 포제용은 털과 내장만 제거한다. 제물로 쓰고 난 뒤에는 분육한다. 해신제용은 열두 부위로 나누되 머리와 꼬리만 제물로 쓴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의 [음복](/topic/음복)용으로 쓴다. 과거에는 돼지를 처리하는 일이 큰일이었다. 포제용은 집사들이 맡아 처리하고 해신제용은 마을 사람들이 맡아 처리하였다. 바닷가에서 불로 그슬어 돼지털을 제거하고 다시 제청으로 옮겨 나머지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양돈](/topic/양돈)장에서 전사관의 감독 아래 모든 처리를 하여 [가지](/topic/가지)고 온다.

하루 전날 저물기 전에 제물을 봉하는 의식을 행한다. 제청의 금줄을 걷어내고 제물을 2층 제장으로 옮긴다. 제관, 집사들이 모여 제물 봉하는 의식을 행한다. 집례가 고하는 대로 제물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제상](/topic/제상)에 올려 봉한다. 제물마다 일일이 [백지](/topic/백지)로 띠를 만들어 묶는다. 이때 제관과 집사는 모두 [제복](/topic/제복)으로 갖추어 입었다가 끝나면 벗어서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 차림으로 대기한다. 3헌관, 집례, 대축, 알자는 청금(靑衿)을 입는다. 나머지는 하늘색 두루마기를 입는다. 3헌관은 갓, 나머지는 [유건](/topic/유건)을 각각 쓴다. [행전](/topic/행전)은 차지만 [버선](/topic/버선) 대신 [양말](/topic/양말)을 신는다. 현재 이용하는 제복은 10여 년 전에 마련한 것이며, 제기와 함께 제방에 보관해 둔다. 밤 9시 반쯤에 봉한 제물을 진설하고 축문을 올린다. 그리고 쌀자루를 [부엌](/topic/부엌)으로 보내 메를 짓게 한다. 메는 포신, 해신의 몫 두 그릇을 산메로 짓는다. 과거에는 도량서직에 해당하는 쌀을 섞어 쪄냈으나 지금은 쌀로만 짓는다.

옛날 사가(私家)를 제청으로 이용할 때에는 제장으로 이동하는 일을 매우 조심스럽게 하였다. 이때는 주민, 특히 여자가 돌아다니는 것을 금하였다. 제관 일행을 가로지르는 불경을 저지를까 염려해서이다. 이 때문에 청년들이 미리 [골목](/topic/골목)마다 지켜 서서 불상사를 방지했다. 집사(희생), [초헌](/topic/초헌)관․[아헌](/topic/아헌)관․[종헌](/topic/종헌)관, 집례(폐백), 대축(축문), 알자(쌀 구덕), 기타(하단제, 해신제 제물) 순서로 이동하였다.

행제는 11시쯤에 준비하여 11시 30분에 시작하며, 대개 12시가 되기 이전에 끝난다. 포제는 상단제, 하단제로 나뉘고 해신제가 따른다. 상단제는 마을회관 2층의 제장에서 지낸다. 하단제는 마을회관 옆 한쪽 공간에서 행한다. 해신제는 바닷가에 따로 마련된 해신제단에서 행한다. 상단제가 끝나면 이어서 하단제를 한다. 하단제 제관이 단헌[단작](/topic/단작)하고 고축하여 마친다. 해신제는 상단제를 위한 메를 진설하면 해신제단으로 출발하여 상단제의 시작과 동시에 지낸다. 역시 해신제 제단이 단헌단작하고 고축하여 마친다. 어선이 있는 이들이 함께 따른다. 그곳에서 돼지머리로 음복을 한다. 본래 해신제는 포구 한쪽 귀퉁이에서 지낸 것이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불편이 따르기 때문에 7, 8년 전에 시유지에 담을 두르고 제단을 마련하였다.

제사를 마치면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제장으로 올라가 배례를 한다. 음복은 마을 남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한다. 이 자리에서 포제와 관련된 수입 지출의 결산보고가 간단히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분육이 중요한 일이었다. 전사관이 남은 고기를 헌관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나서 나누어 주었다. 머리와 전각은 초헌관 몫이었다. 나머지도 상하에 따라 차례로 나누었다. 목, 후각, 숭(가슴) 등을 우선으로 쳤다. 집사는 나머지 자르기 좋은 것으로 조금씩 나누었다. 헌관 집에서 매 끼니 식사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고기를 많이 준 것이다. 이 밖에 상중이어서 상식(喪食)을 올리는 집, 연로한 어른이 사는 집에도 고기를 조금씩 보내었다.

한편 전각 하나는 남겨 두었다가 이날 아침 잠수굿이 초감제로 넘어가면 가지고 간다. 이때 3헌관, 이장이 굿청에 가서 절을 하고 산을 받는다.
역사이 [마을](/topic/마을)은 독립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포제를 지낸 역사도 그리 오래지 않다. 이웃 함덕리에 속해 있다가 늦은 시기에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1950~1960년대의 포제물종축홀기(酺祭物種祝笏記), 포제의식절차 등의 문건을 보존하고 있다.
역사이 [마을](/topic/마을)은 독립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포제를 지낸 역사도 그리 오래지 않다. 이웃 함덕리에 속해 있다가 늦은 시기에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1950~1960년대의 포제물종축홀기(酺祭物種祝笏記), 포제의식절차 등의 문건을 보존하고 있다.
형태유교식 제법으로 포제를 상단제와 하단제로 나누어 지내고, 별도의 장소에서 해신제를 지낸다. [마을](/topic/마을)공동체 전체의 의례와 특정한 [생업](/topic/생업)공동체의 의례를 함께 지낸다. 바다가 주요 생업 공간인 사정이 반영된 셈이다.
기능한 해 동안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함으로써 삶에 대한 활력을 고취하고 마을 공동체 전체의 유대를 확인하는 기능을 한다.
형태유교식 제법으로 포제를 상단제와 하단제로 나누어 지내고, 별도의 장소에서 해신제를 지낸다. [마을](/topic/마을)공동체 전체의 의례와 특정한 [생업](/topic/생업)공동체의 의례를 함께 지낸다. 바다가 주요 생업 공간인 사정이 반영된 셈이다.
기능한 해 동안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함으로써 삶에 대한 활력을 고취하고 마을 공동체 전체의 유대를 확인하는 기능을 한다.
의의포제와 당신앙이 어떻게 관련되는지와 남녀 의례가 철저하게 구별되는 사례로 주목할 수 있다.
의의포제와 당신앙이 어떻게 관련되는지와 남녀 의례가 철저하게 구별되는 사례로 주목할 수 있다.
아세아문화사한국 무속의 연구최길성1978
집문당한국무속연구김태곤1981
민속학회한국 무계의 분화변천김태곤1989
한울무속과 영의 세계김태곤1993
한국비교민속학회무당문화의 전통양종승1995
아세아문화사새로 쓴 한국무속최길성1999
무당의 신병과 신들림양종승2001
강신무의 사례로 본 강신무와 세습무의 유형 구분홍태한2003
강신무ㆍ세습무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용범2003
세습무 사례를 통해 살펴본 강신무ㆍ세습무의 구분 검토이경엽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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