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성읍리포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쪽에 위치한 표선면의 중산간 [마을](/topic/마을)에 속하는 성읍1리 주민들이 지내는 유교식 마을제사. 매년 음력 정월 상정일(上丁日) 또는 [상해일](/topic/상해일)(上亥日)에 마을의 대표 11명을 [제관](/topic/제관)(祭官)으로 선정하여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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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쪽에 위치한 표선면의 중산간 [마을](/topic/마을)에 속하는 성읍1리 주민들이 지내는 유교식 마을제사. 매년 음력 정월 상정일(上丁日) 또는 [상해일](/topic/상해일)(上亥日)에 마을의 대표 11명을 [제관](/topic/제관)(祭官)으로 선정하여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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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정의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쪽에 위치한 표선면의 중산간 [마을](/topic/마을)에 속하는 성읍1리 주민들이 지내는 유교식 마을제사. 매년 음력 정월 상정일(上丁日) 또는 [상해일](/topic/상해일)(上亥日)에 마을의 대표 11명을 [제관](/topic/제관)(祭官)으로 선정하여 지낸다.
정의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쪽에 위치한 표선면의 중산간 [마을](/topic/마을)에 속하는 성읍1리 주민들이 지내는 유교식 마을제사. 매년 음력 정월 상정일(上丁日) 또는 [상해일](/topic/상해일)(上亥日)에 마을의 대표 11명을 [제관](/topic/제관)(祭官)으로 선정하여 지낸다.
내용1. [제관](/topic/제관) 선정 : 성읍1리 주민들의 무사풍요를 기원하는 포제의 제관은 성읍1리 [마을](/topic/마을)향회에서 선정한다. 제관은 집안이 우수하고 몸이 깨끗한 사람으로 정하였다. 장가를 [가지](/topic/가지) 않았거나 상처(喪妻)한 사람, [상복](/topic/상복)을 입은 사람은 제관으로 선정하는 것을 피했다고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여느 때와 달리 대단한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행동을 조심할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과 다투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을 자제하고 부인과도 내외를 한다. 흉사(凶事)에 다니지 아니하고, 병원이 있는 방향을 피하여 돌아간다. 젊은 딸이 있는 경우 이웃이나 친척 집으로 보내 있을지도 모를 부정할 수 있는 일을 미연에 방비하게 하였다.

2. 제청(祭廳) : 제단이 있는 곳에 제청을 마련한 것은 1983년쯤이다. 그 이전에는 개인 집을 제청으로 정해 입재를 하였으며, 이장이나 개발위원장 등 마을 내에서 직책이 있는 사람의 집이 주로 선정되었다. 좀 잘 사는 사람의 집이어야 경제력도 있고, 집안 내의 공간도 넓어서 여러 사람의 제관이 들어와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 집을 제청으로 정해 입재할 때는 닷새 동안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일단 제관들이 제청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만 생활하여만 했다. 목욕도 가마솥에 물을 끓여 하고, 제의 봉행 전날에는 직접 희생을 손질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때 제관의 식사는 제관의 사가(私家)에서 준비해 제청으로 가져와 올렸다. 경제력이 약한 집안의 사람들은 이 때문에도 제관 선정을 기피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관들의 식사를 제청에서 공동으로 준비하여 이용하게 된 것도 제단 내에 제청을 꾸미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3. 입재 : 제관들은 사흘 동안의 입재 정성을 통해 제의 봉행에 임하였다. 첫날 아침 9시쯤 입재 [상견례](/topic/상견례), 둘째 날 희생 등 제물 준비 및 봉하는 의식, 셋째 날 제의 봉행 및 [음복](/topic/음복)의 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날 상견례에서는 [헌관](/topic/헌관)뿐만 아니라 집사들도 한 해의 무사 안녕을 서로에게 축원하는 인사를 하게 된다. 상견례가 끝나면 식사를 한다. 그 이후에 제관들은 헌관방과 집사방을 통해 직분에 맞는 소임에 대해 익히게 된다. 대축 집사는 헌관들 앞에서 종이를 잘라 헌관과 집사들의 직분을 적은 집사방을 작성하여 헌관과 마을 원로들의 점검을 받아 제청 내에 붙인다.
둘째 날에는 희생과 여러 제물을 준비한다. 포제에 제물로 사용되는 ‘메’는 도량서직 네 가지를 쓰던 것을 좁쌀, [수수](/topic/수수)쌀, 흰쌀, 찹쌀을 한 되씩 준비해 올린다. 희생(犧牲)으로는 검은 수퇘지로, 통째로 손질하여 올린다. 물론 모혈(毛血)도 함께 준비했다가 올린다. 녹포(鹿脯)로 상어, 생선으로 옥돔, 쇠고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사과](/topic/사과), 배, 곶감, 밤, [대추](/topic/대추), 밀감 등 과일과 채소로 청저(靑菹)로 쓸 ‘[미나리](/topic/미나리)채’와 근저로 쓸 ‘무채’를 준비한다. 소금과 폐백([창호지](/topic/창호지), [옥양목](/topic/옥양목)), 향저(香箸, 향나무 젓가락) 다섯 개, 제주(祭酒)로 청주(淸酒)를 준비한다. 이 밖에도 향, 초(초롱 포함), 칼, 홀기(笏記), [축문](/topic/축문)(祝文), 지방(紙榜)을 준비한다. 하단 제물로는 대미로 쌀 한 되, 중미로 [메밀](/topic/메밀)쌀 한 되, [소미](/topic/소미)로 [기장](/topic/기장)쌀 한 되, 생선 구운 것 한 [마리](/topic/마리), 과일 일곱 가지, 돼지 내장 삶은 것 전부, 제주로 소주 한 병을 준비한다.

4. 제비(祭費) : 물자나 제물을 구입하는 등 제의 봉행에 따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초기에는 불턱(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와 불을 피우는 곳)을 나눈 집마다 분담할 수 있는 제미(祭米)를 거출하여 운영하였다고 한다. 그 후 생활이 바뀌면서 쌀을 갹출하는 풍습은 돈을 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가구당 2,000원에서 5,000원의 제향비(祭享費)를 마을향회에서 갹출하기로 결정하게 되면 각 동의 반장들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거두어 활용하였다고 한다.

5. [제복](/topic/제복)(祭服) : 예전에는 제관에 선정된 사람들은 제각각 직분에 맞는 제복을 준비해 입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1994년쯤부터 마을 공동으로 준비한 제복을 이용하고, 마을회에서 주관하여 매해 [세탁](/topic/세탁)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관들의 제복으로 [유건](/topic/유건)(儒巾)과 녹색의 도복(道服), 행경(行俓)이 갖추어져 있다.

6. 진설(陳設) : 자정이 가까워오는 밤 10시 50분쯤이 되면 ‘메’ 재료로 올린 좁쌀과 차좁쌀, 곤쌀과 찹쌀을 내려 ‘메’를 치기 시작한다. 11시 30분쯤이 되면 메가 완성된다. 이때 제관들은 [한복](/topic/한복)과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손질하고 그 위에 제복을 차려입기 시작한다.
제복을 차려입은 제관들은 제단으로 옮겨간다. 이때 청년회원과 집사들은 준비한 제물을 함께 옮겨간다. 어둠을 밝히는 사각 초롱불에 의지하면서 ‘새’를 깐 제단 내에 제물을 진설하면 제의 준비는 전부 끝난다.

7. 제차 : 포제는 집례가 부르는 홀기에 따라 헌관들이 집사의 안내를 받아 제장에서 제의가 이루어진다. 준비례-전폐례-[초헌](/topic/초헌)례-[아헌](/topic/아헌)례-[종헌](/topic/종헌)례-음복례-철변두-망료례-마침례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이하게도 제의에 동참한 원로, 청년회원 등 [참례](/topic/참례)자들을 위한 참배례는 포함되지 않는다.

8. 하단제 : 포제를 마치고 나면 제단 아래쪽에 마련된 하단으로 이동하여 진설한다. 하단에는 3위의 신(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제수임신, 마을민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염제신, 육축의 번성과 [농업](/topic/농업)의 번성을 관장하는 목동신)이 모셔져 있다. 이들을 위하는 제의에서는 이장이 제관이 된다. 홀기나 별도의 형식은 없으나 우선 이장이 제단 앞으로 나와 사배를 올린다. 그리고 잔으로 올리는 [헌작](/topic/헌작)을 드리고 조금 물러나 무릎을 꿇으면 대축이 나와 축문을 내려 고축한다. 이러는 과정을 삼 신위에게 별도로 고하고 물러난다. 그리고 다시 잔을 올리고 물러나면 옆에 있는 집사들이 축문을 내려 소지를 하고 하단제를 전부 마친다.

9. 음복(飮福) : 제청으로 돌아온 제관들은 제복을 벗어놓는다. 제관과 집사들은 물론 일부 참여자들도 함께 음복을 한다. 음복에는 희생으로 올린 돼지 두 마리를 삶아서 음복에 충당한다.
참고문헌제주도 [마을](/topic/마을)제 종합보고서-제주 유교식 마을제의 전승현장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진흥본부 박물관운영부, 2010)
내용1. [제관](/topic/제관) 선정 : 성읍1리 주민들의 무사풍요를 기원하는 포제의 제관은 성읍1리 [마을](/topic/마을)향회에서 선정한다. 제관은 집안이 우수하고 몸이 깨끗한 사람으로 정하였다. 장가를 [가지](/topic/가지) 않았거나 상처(喪妻)한 사람, [상복](/topic/상복)을 입은 사람은 제관으로 선정하는 것을 피했다고 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여느 때와 달리 대단한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행동을 조심할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과 다투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을 자제하고 부인과도 내외를 한다. 흉사(凶事)에 다니지 아니하고, 병원이 있는 방향을 피하여 돌아간다. 젊은 딸이 있는 경우 이웃이나 친척 집으로 보내 있을지도 모를 부정할 수 있는 일을 미연에 방비하게 하였다.

2. 제청(祭廳) : 제단이 있는 곳에 제청을 마련한 것은 1983년쯤이다. 그 이전에는 개인 집을 제청으로 정해 입재를 하였으며, 이장이나 개발위원장 등 마을 내에서 직책이 있는 사람의 집이 주로 선정되었다. 좀 잘 사는 사람의 집이어야 경제력도 있고, 집안 내의 공간도 넓어서 여러 사람의 제관이 들어와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 집을 제청으로 정해 입재할 때는 닷새 동안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일단 제관들이 제청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안에서만 생활하여만 했다. 목욕도 가마솥에 물을 끓여 하고, 제의 봉행 전날에는 직접 희생을 손질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때 제관의 식사는 제관의 사가(私家)에서 준비해 제청으로 가져와 올렸다. 경제력이 약한 집안의 사람들은 이 때문에도 제관 선정을 기피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관들의 식사를 제청에서 공동으로 준비하여 이용하게 된 것도 제단 내에 제청을 꾸미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3. 입재 : 제관들은 사흘 동안의 입재 정성을 통해 제의 봉행에 임하였다. 첫날 아침 9시쯤 입재 [상견례](/topic/상견례), 둘째 날 희생 등 제물 준비 및 봉하는 의식, 셋째 날 제의 봉행 및 [음복](/topic/음복)의 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날 상견례에서는 [헌관](/topic/헌관)뿐만 아니라 집사들도 한 해의 무사 안녕을 서로에게 축원하는 인사를 하게 된다. 상견례가 끝나면 식사를 한다. 그 이후에 제관들은 헌관방과 집사방을 통해 직분에 맞는 소임에 대해 익히게 된다. 대축 집사는 헌관들 앞에서 종이를 잘라 헌관과 집사들의 직분을 적은 집사방을 작성하여 헌관과 마을 원로들의 점검을 받아 제청 내에 붙인다.
둘째 날에는 희생과 여러 제물을 준비한다. 포제에 제물로 사용되는 ‘메’는 도량서직 네 가지를 쓰던 것을 좁쌀, [수수](/topic/수수)쌀, 흰쌀, 찹쌀을 한 되씩 준비해 올린다. 희생(犧牲)으로는 검은 수퇘지로, 통째로 손질하여 올린다. 물론 모혈(毛血)도 함께 준비했다가 올린다. 녹포(鹿脯)로 상어, 생선으로 옥돔, 쇠고기를 준비한다. 그리고 [사과](/topic/사과), 배, 곶감, 밤, [대추](/topic/대추), 밀감 등 과일과 채소로 청저(靑菹)로 쓸 ‘[미나리](/topic/미나리)채’와 근저로 쓸 ‘무채’를 준비한다. 소금과 폐백([창호지](/topic/창호지), [옥양목](/topic/옥양목)), 향저(香箸, 향나무 젓가락) 다섯 개, 제주(祭酒)로 청주(淸酒)를 준비한다. 이 밖에도 향, 초(초롱 포함), 칼, 홀기(笏記), [축문](/topic/축문)(祝文), 지방(紙榜)을 준비한다. 하단 제물로는 대미로 쌀 한 되, 중미로 [메밀](/topic/메밀)쌀 한 되, [소미](/topic/소미)로 [기장](/topic/기장)쌀 한 되, 생선 구운 것 한 [마리](/topic/마리), 과일 일곱 가지, 돼지 내장 삶은 것 전부, 제주로 소주 한 병을 준비한다.

4. 제비(祭費) : 물자나 제물을 구입하는 등 제의 봉행에 따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초기에는 불턱(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와 불을 피우는 곳)을 나눈 집마다 분담할 수 있는 제미(祭米)를 거출하여 운영하였다고 한다. 그 후 생활이 바뀌면서 쌀을 갹출하는 풍습은 돈을 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가구당 2,000원에서 5,000원의 제향비(祭享費)를 마을향회에서 갹출하기로 결정하게 되면 각 동의 반장들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거두어 활용하였다고 한다.

5. [제복](/topic/제복)(祭服) : 예전에는 제관에 선정된 사람들은 제각각 직분에 맞는 제복을 준비해 입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1994년쯤부터 마을 공동으로 준비한 제복을 이용하고, 마을회에서 주관하여 매해 [세탁](/topic/세탁)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관들의 제복으로 [유건](/topic/유건)(儒巾)과 녹색의 도복(道服), 행경(行俓)이 갖추어져 있다.

6. 진설(陳設) : 자정이 가까워오는 밤 10시 50분쯤이 되면 ‘메’ 재료로 올린 좁쌀과 차좁쌀, 곤쌀과 찹쌀을 내려 ‘메’를 치기 시작한다. 11시 30분쯤이 되면 메가 완성된다. 이때 제관들은 [한복](/topic/한복)과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손질하고 그 위에 제복을 차려입기 시작한다.
제복을 차려입은 제관들은 제단으로 옮겨간다. 이때 청년회원과 집사들은 준비한 제물을 함께 옮겨간다. 어둠을 밝히는 사각 초롱불에 의지하면서 ‘새’를 깐 제단 내에 제물을 진설하면 제의 준비는 전부 끝난다.

7. 제차 : 포제는 집례가 부르는 홀기에 따라 헌관들이 집사의 안내를 받아 제장에서 제의가 이루어진다. 준비례-전폐례-[초헌](/topic/초헌)례-[아헌](/topic/아헌)례-[종헌](/topic/종헌)례-음복례-철변두-망료례-마침례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이하게도 제의에 동참한 원로, 청년회원 등 [참례](/topic/참례)자들을 위한 참배례는 포함되지 않는다.

8. 하단제 : 포제를 마치고 나면 제단 아래쪽에 마련된 하단으로 이동하여 진설한다. 하단에는 3위의 신(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는 제수임신, 마을민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염제신, 육축의 번성과 [농업](/topic/농업)의 번성을 관장하는 목동신)이 모셔져 있다. 이들을 위하는 제의에서는 이장이 제관이 된다. 홀기나 별도의 형식은 없으나 우선 이장이 제단 앞으로 나와 사배를 올린다. 그리고 잔으로 올리는 [헌작](/topic/헌작)을 드리고 조금 물러나 무릎을 꿇으면 대축이 나와 축문을 내려 고축한다. 이러는 과정을 삼 신위에게 별도로 고하고 물러난다. 그리고 다시 잔을 올리고 물러나면 옆에 있는 집사들이 축문을 내려 소지를 하고 하단제를 전부 마친다.

9. 음복(飮福) : 제청으로 돌아온 제관들은 제복을 벗어놓는다. 제관과 집사들은 물론 일부 참여자들도 함께 음복을 한다. 음복에는 희생으로 올린 돼지 두 마리를 삶아서 음복에 충당한다.
참고문헌제주도 [마을](/topic/마을)제 종합보고서-제주 유교식 마을제의 전승현장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진흥본부 박물관운영부, 2010)
역사성읍1리에서 포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제관](/topic/제관)건기(祭官建記)』라는 기록에 따르면 제관으로는 [초헌](/topic/초헌)관(初獻官), [아헌](/topic/아헌)관(亞獻官), [종헌](/topic/종헌)관(終獻官), 전사관(奠祀官)에 차헌관(次獻官)을 선정하여 운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집사로는 집례(集禮), 대축(大祝), 찬인(贊人), 찬자(讚者), 알자(謁者), 봉향(奉香), 봉로(奉爐), 봉작(奉酌), 전작(奠酌), 사준(司樽), 취반(炊飯), 도예차 등 모두 17제관이 [마을](/topic/마을) 사람 가운데 선정되어 포제에 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농경 중심의 [생업](/topic/생업) 형태가 다양한 업종으로 바뀌면서 제관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1982년부터 제관의 수를 줄였다고 한다. 우선 지금까지 별도로 운영하던 준소(樽所)를 제단 안으로 옮김으로써 준소를 담당한 집사의 수를 줄였으며, 부녀회에서 제청 내 음식 준비 등을 담당함으로써 취반(炊飯)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헌관](/topic/헌관)과 집사의 유고를 대비하여 운영한 예차 헌관과 도예차도 별도로 임명하지 않고 운영하도록 조정하였다고 한다.
역사성읍1리에서 포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제관](/topic/제관)건기(祭官建記)』라는 기록에 따르면 제관으로는 [초헌](/topic/초헌)관(初獻官), [아헌](/topic/아헌)관(亞獻官), [종헌](/topic/종헌)관(終獻官), 전사관(奠祀官)에 차헌관(次獻官)을 선정하여 운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집사로는 집례(集禮), 대축(大祝), 찬인(贊人), 찬자(讚者), 알자(謁者), 봉향(奉香), 봉로(奉爐), 봉작(奉酌), 전작(奠酌), 사준(司樽), 취반(炊飯), 도예차 등 모두 17제관이 [마을](/topic/마을) 사람 가운데 선정되어 포제에 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농경 중심의 [생업](/topic/생업) 형태가 다양한 업종으로 바뀌면서 제관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1982년부터 제관의 수를 줄였다고 한다. 우선 지금까지 별도로 운영하던 준소(樽所)를 제단 안으로 옮김으로써 준소를 담당한 집사의 수를 줄였으며, 부녀회에서 제청 내 음식 준비 등을 담당함으로써 취반(炊飯)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헌관](/topic/헌관)과 집사의 유고를 대비하여 운영한 예차 헌관과 도예차도 별도로 임명하지 않고 운영하도록 조정하였다고 한다.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동해안진오귀굿 중 장수굿의 짜임새와 장단 구조원일1996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진도씻김굿의 음악적 구조 연구박환영1996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경남ㆍ경북 동해안 무악 비교 연구장휘주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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