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생촌마을당산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생촌[마을](/topic/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마을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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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생촌[마을](/topic/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마을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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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인주
정의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생촌[마을](/topic/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마을제사.
정의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생촌[마을](/topic/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마을제사.
내용1. 제당 구성 : 당산은 천룡당산, 고랑뜸샘, 양지뜸샘, 할아버지당산, 할머니당산으로 모두 다섯 곳이다. 천룡당산은 [마을](/topic/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수령이 약 500년, 높이 12m, 둘레 2.6m인 소나무이다. 고랑뜸샘과 양지뜸샘은 정추당산이라 부른다. 할아버지당산은 내당산․정자나무당산이라고도 부르며, 마을 중앙에 있는 팽나무이다. 이 팽나무는 1975년쯤 태풍으로 인해 큰 [가지](/topic/가지)가 부러졌으나 바로 옆에 있는 집이나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가지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산으로 옮겨 두었다고 한다. 또 1988년 여름 [풍수](/topic/풍수)해로 당산목이 동강나자 1990년 2월 그곳에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할머니당산은 외당산․독당산이라 부르며, 마을 입구 왼쪽 논에 세워진 자연석(입석)이다.

2. 당산제 준비 : 제사는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새벽 1시쯤에 지낸다. 비가 내려도 그대로 진행된다. [제관](/topic/제관)을 정한 후나 정월 초하룻날 이후 마을에 초상이 나면 제관이 아닌 사람만 참여하고, 열이튿날 이후에 초상이 나면 제사가 끝날 때까지 운구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관 집에서 초상이 나면 제사 지낼 날을 다시 정한다. 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루부터 제를 모실 때까지 전혀 굿소리를 내지 아니한다. 음력 정월 초닷샛날쯤 마을회의에서 나이와 대보름날의 일진에 맞추어 제주, 축관, [화주](/topic/화주) 등 세 사람을 선정한다. 이들은 일진을 봐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에 맞아야 하고, 궂은 곳에 간 적이 없어야 하며 집안에 우환이 없는 정결한 사람이어야 한다. 적당한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두 사람만 뽑기도 한다. 세 사람 가운데 연장자가 [헌관](/topic/헌관), 학덕이 있는 자가 축관, 젊은 사람이 집사(화주)가 된다.
제관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운이 좋고 장소가 편리한 사람의 집을 택하여 열이튿날부터 사흘 동안 숙식을 함께하며 제사 모실 준비를 한다. 제관들이 사용하는 방에는 가족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마루](/topic/마루)에 발을 쳐서 차단한다. 제관들은 선정된 이튿날부터 비린 것은 물론 육고기까지도 일절 먹지 아니하는 등 여러 가지 금기를 지킨다. 마을 사람들도 초상집이나 궂은 곳에 가지 않는 등 함께 근신한다.
열이튿날 새벽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한 명은 집에서 새끼를 꼬고, 두 명은 제물을 사러 장에 간다. 새끼는 왼새끼로 100여 발 꼰다. 이때 절대로 침을 뱉어서 꼬아서는 안 되기에 곁에 물그릇을 두고 사용한다. 새끼를 꼬면서 침을 뱉었을 경우 다시 꼬아야 한다. 이렇게 꼬아 놓은 왼새끼는 열사흗날 5당산과 마을 입구, 화주집 등에 청소를 하고 나서 치는 [금줄](/topic/금줄)로 사용한다. 천룡당산에는 [제상](/topic/제상)을 만든다. 대나무를 베어다가 네 [기둥](/topic/기둥)을 만들고 대를 엮어 위에 깐 것이다. 제사가 끝나면 제상은 그대로 놓아두고 이듬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청소할 때 소각한다. 할머니당산에는 지난해 감아놓은 줄을 청소하여 인근 논에 뿌려 [퇴비](/topic/퇴비)로 사용한다. 그리고 금줄은 쇠말뚝으로 구멍을 뚫어 대나무를 꽂아서 치고, 대나무를 꽂은 양편에 [황토](/topic/황토)를 한 줌씩 띄엄띄엄 놓는다. 금줄을 친 날부터는 마을 사람들도 비린 생선이나 육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제사 비용은 예전엔 호구전이라 하여 돈이나 쌀을 집집마다 성의껏 갹출해 사용했다. 그러다가 1980년 제11회 남도문화제에 출전하여 [민속놀이](/topic/민속놀이) 부문에서 받은 우수상 시상금(60만원)과 1981년 범죄 없는 마을 시상금(300만원)으로 마을 공동답 2,000㎡를 구입하여 1983년부터는 그 소출을 제사 경비로 사용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은 마을에서 충당한다.
제물로는 비린 생선이나 육고기는 사지 않고 채소류․[삼실과](/topic/삼실과)․건포 등을 마련한다. 제기 및 제반 집기(시루, 물동이, 바가지, 그릇 등)는 새로 구입한다. 물건 값은 깎지 않고 상인이 달라는 대로 지불한다. 이렇게 새로 구입한 제기와 집기는 제사를 지낸 뒤 화주 집에서 쓰게 된다.
제수는 열나흗날에 장만하며 여자는 참여할 수 없다. 화주는 입마개를 쓰고, [화장실](/topic/화장실)에 다녀오면 반드시 목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음식을 절제한다. 음식을 조리할 때는 양념을 하되 고춧가루는 사용하지 않고 간도 맞추지 않는다. 제물은 메 네 그릇, 갱(미역에 찬물만 부은 국) 네 그릇, 제주(막걸리), 편(작은 팥시루떡), 무숙채․콩나물․고사리 등(3채 또는 5채), 조기, [대추](/topic/대추)․밤․감(또는 곶감)․배․[사과](/topic/사과)(3과 또는 5과), [메밀](/topic/메밀)범벅 등이다. 메밀범벅은 [메밀묵](/topic/메밀묵)으로, 제물로 사용하지 않고 도깨비밥으로 사용한다.

3. 당산제 진행 : 제사는 대보름날 새벽 1시 이전에 시작한다. 제관들은 옷을 갈아입고 떡시루와 메 등 제물을 [지게](/topic/지게)에 지고 천룡당산으로 간다. 제관 이외에 아무도 따라갈 수 없다. 천룡당산, 양지뜸샘, 고랑뜸샘, 나무당산(내당산), 독당산(외당산) 등 5당산을 차례로 돌면서 제사를 올린다. 천룡제에서는 모든 제물을 사용하고, 다음 4당산제에서는 천룡제에서 사용한 제물을 4분의 1씩 다른 그릇에 덜어서 사용한다. 제의는 진설-[분향](/topic/분향)-[초헌](/topic/초헌)-[독축](/topic/독축)(축관이 축과 [비손](/topic/비손)축원문을 읽음. 비손축원문은 상황에 따라 그 자리에서 읊었으나 요즈음은 종이에 써서 읽는다.)-[아헌](/topic/아헌)-[종헌](/topic/종헌)-소지-[음복](/topic/음복)-[헌식](/topic/헌식)의 순서로 진행된다. [축문](/topic/축문)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 干支 某月干支某日干支十五日干支
幼學 某祭官 (姓名) 敢昭告于
天龍之神 天作高山 鎭此南方 大闢村閭
居民生活 實賴神休 少幼吉慶 耆老益壽
斥禍降福 士子登科 農夫積廩 永世是寧
今以吉辰 齋誠祈祝 神其佑之
謹以 淸酌脯果 祗薦于神 尙饗


維歲次 干支 某月干支某日干支十五日干支
幼學 某祭官 (姓名) 敢昭告于
井甃之神 源泉洋 環周里閭
生民活潑 德澤潤沾 福祿沈長藏
今以吉辰 齋誠祈祝 神其佑之
謹以 淸酌庶羞 祗薦于神 尙饗


維歲次 干支 某月干支某日干支十五日干支
幼學 某祭官 (姓名) 敢昭告于
社壇之神 環周村閭 鎭此生民
保護衆生 防禦疾苦 呵禁不祥
今以吉辰 齋誠祈祝 神其佑之
謹以 酒果 祗薦于神 神其佑之 尙饗


년으로는 ○○년이옵고 월로는 정월이옵고 일로는 15일이옵나이다. 한 장의 소지라도 만장의 소지장으로 알으시고 받아 주시옵소서. 생촌 각 생제원 남녀노소 없이 다 길영하시옵고 부자자효 형제우애하고 부화부순하게 해 주시옵고, 국사를 위하여 군대에 가 있는 젊은 청년들도 책임 완수하오며 사자등과 농부적경하오며 우마경축도 일생월생하며 질병제악을 다 축송하여 소멸케 하옵시고, 매사가 태평하게 지내게 하여 주시고 남녀 다 재수도 복도 수명도 많이 주시옵소서. 간단한 축원이지만 태산같이 높고 서해바다같이 널리 받아 주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하나이다.

독당산까지 다섯 당산에 올리는 제사가 다 끝나면 맨 나중에 도깨비바우(마을 입구 다리 밑)에 가서 메밀범벅을 미리 깔아 놓은 짚 위에 부어 주면서 “물 우게 김서방, 물 아래 박서방 많이 묵고 물러가거라”라는 말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온다. 제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일절 풍물소리는 내지 아니한다.

제사는 새벽 4시쯤 끝난다. 제관들은 화주 집으로 가서 음식을 먹고 쉰다. 이들은 예전에는 사흘 뒤에나 숙식하고 있는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나 지금은 보름날 아침 정결한 마을 대표 두 명이 제관들이 있는 집으로 가서 제사 비용 등을 결산하고 음식을 먹어 주기 때문에 이틀만에 나올 수 있다. 제주 가족들은 제사가 끝난 뒤 일 년 동안 궂은 곳에 가지 않고 궂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지금은 6개월 정도 지킨다.

4.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와 줄감기 : 대보름날 아침 9시쯤 마을 사람들은 식사를 하고 [나발](/topic/나발)소리가 들리면 짚 한 다발씩을 들고 당산 끝에 모여 용줄을 꼬기 시작한다. 중심에 큰 새끼줄 두 개를 놓고 그 위에 일곱 가닥의 짚으로 용줄을 들인다. 당산 주변의 정자나무 4그루를 한 바퀴 감을 정도(약 40〜50m)면 알맞은 길이가 된다. [농악](/topic/농악)대가 당산 끝을 세 번 돌고 재배하면 남자들은 어깨에 줄을 멘 다음 농악대를 앞세우고 고랑뜸샘, 천룡, 양지뜸샘 순으로 돌며 굿을 친다. 옛날에는 5당산을 차례로 돌았으나 지금은 3당산만 돌고 있다. 당산을 다 돌고 나서 마을 앞길로 내려와서 남녀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한다. 총각들은 여자 편이 된다. 보통 세 번 싸워서 두 번 이겨야 한다. 줄다리기를 할 때 서로 회초리 등을 이용해 상대방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결과는 언제나 내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놀이를 벌인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독당산(외당산) 입석에다 줄을 감아 놓는다. 줄은 밑에서부터 감아 올라가 두 겹 내지 세 겹이 되도록 머리를 위로 향하게 하여 오른쪽으로 감는다.

5. [[마당](/topic/마당)밟이](/topic/마당밟이) : 줄감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마당밟이 굿을 친다. 이때 화주 집과 부정한 집은 치지 않는다.
내용1. 제당 구성 : 당산은 천룡당산, 고랑뜸샘, 양지뜸샘, 할아버지당산, 할머니당산으로 모두 다섯 곳이다. 천룡당산은 [마을](/topic/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수령이 약 500년, 높이 12m, 둘레 2.6m인 소나무이다. 고랑뜸샘과 양지뜸샘은 정추당산이라 부른다. 할아버지당산은 내당산․정자나무당산이라고도 부르며, 마을 중앙에 있는 팽나무이다. 이 팽나무는 1975년쯤 태풍으로 인해 큰 [가지](/topic/가지)가 부러졌으나 바로 옆에 있는 집이나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가지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산으로 옮겨 두었다고 한다. 또 1988년 여름 [풍수](/topic/풍수)해로 당산목이 동강나자 1990년 2월 그곳에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할머니당산은 외당산․독당산이라 부르며, 마을 입구 왼쪽 논에 세워진 자연석(입석)이다.

2. 당산제 준비 : 제사는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새벽 1시쯤에 지낸다. 비가 내려도 그대로 진행된다. [제관](/topic/제관)을 정한 후나 정월 초하룻날 이후 마을에 초상이 나면 제관이 아닌 사람만 참여하고, 열이튿날 이후에 초상이 나면 제사가 끝날 때까지 운구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관 집에서 초상이 나면 제사 지낼 날을 다시 정한다. 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루부터 제를 모실 때까지 전혀 굿소리를 내지 아니한다. 음력 정월 초닷샛날쯤 마을회의에서 나이와 대보름날의 일진에 맞추어 제주, 축관, [화주](/topic/화주) 등 세 사람을 선정한다. 이들은 일진을 봐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에 맞아야 하고, 궂은 곳에 간 적이 없어야 하며 집안에 우환이 없는 정결한 사람이어야 한다. 적당한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두 사람만 뽑기도 한다. 세 사람 가운데 연장자가 [헌관](/topic/헌관), 학덕이 있는 자가 축관, 젊은 사람이 집사(화주)가 된다.
제관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운이 좋고 장소가 편리한 사람의 집을 택하여 열이튿날부터 사흘 동안 숙식을 함께하며 제사 모실 준비를 한다. 제관들이 사용하는 방에는 가족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마루](/topic/마루)에 발을 쳐서 차단한다. 제관들은 선정된 이튿날부터 비린 것은 물론 육고기까지도 일절 먹지 아니하는 등 여러 가지 금기를 지킨다. 마을 사람들도 초상집이나 궂은 곳에 가지 않는 등 함께 근신한다.
열이튿날 새벽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한 명은 집에서 새끼를 꼬고, 두 명은 제물을 사러 장에 간다. 새끼는 왼새끼로 100여 발 꼰다. 이때 절대로 침을 뱉어서 꼬아서는 안 되기에 곁에 물그릇을 두고 사용한다. 새끼를 꼬면서 침을 뱉었을 경우 다시 꼬아야 한다. 이렇게 꼬아 놓은 왼새끼는 열사흗날 5당산과 마을 입구, 화주집 등에 청소를 하고 나서 치는 [금줄](/topic/금줄)로 사용한다. 천룡당산에는 [제상](/topic/제상)을 만든다. 대나무를 베어다가 네 [기둥](/topic/기둥)을 만들고 대를 엮어 위에 깐 것이다. 제사가 끝나면 제상은 그대로 놓아두고 이듬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청소할 때 소각한다. 할머니당산에는 지난해 감아놓은 줄을 청소하여 인근 논에 뿌려 [퇴비](/topic/퇴비)로 사용한다. 그리고 금줄은 쇠말뚝으로 구멍을 뚫어 대나무를 꽂아서 치고, 대나무를 꽂은 양편에 [황토](/topic/황토)를 한 줌씩 띄엄띄엄 놓는다. 금줄을 친 날부터는 마을 사람들도 비린 생선이나 육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제사 비용은 예전엔 호구전이라 하여 돈이나 쌀을 집집마다 성의껏 갹출해 사용했다. 그러다가 1980년 제11회 남도문화제에 출전하여 [민속놀이](/topic/민속놀이) 부문에서 받은 우수상 시상금(60만원)과 1981년 범죄 없는 마을 시상금(300만원)으로 마을 공동답 2,000㎡를 구입하여 1983년부터는 그 소출을 제사 경비로 사용하고 있다. 부족한 부분은 마을에서 충당한다.
제물로는 비린 생선이나 육고기는 사지 않고 채소류․[삼실과](/topic/삼실과)․건포 등을 마련한다. 제기 및 제반 집기(시루, 물동이, 바가지, 그릇 등)는 새로 구입한다. 물건 값은 깎지 않고 상인이 달라는 대로 지불한다. 이렇게 새로 구입한 제기와 집기는 제사를 지낸 뒤 화주 집에서 쓰게 된다.
제수는 열나흗날에 장만하며 여자는 참여할 수 없다. 화주는 입마개를 쓰고, [화장실](/topic/화장실)에 다녀오면 반드시 목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음식을 절제한다. 음식을 조리할 때는 양념을 하되 고춧가루는 사용하지 않고 간도 맞추지 않는다. 제물은 메 네 그릇, 갱(미역에 찬물만 부은 국) 네 그릇, 제주(막걸리), 편(작은 팥시루떡), 무숙채․콩나물․고사리 등(3채 또는 5채), 조기, [대추](/topic/대추)․밤․감(또는 곶감)․배․[사과](/topic/사과)(3과 또는 5과), [메밀](/topic/메밀)범벅 등이다. 메밀범벅은 [메밀묵](/topic/메밀묵)으로, 제물로 사용하지 않고 도깨비밥으로 사용한다.

3. 당산제 진행 : 제사는 대보름날 새벽 1시 이전에 시작한다. 제관들은 옷을 갈아입고 떡시루와 메 등 제물을 [지게](/topic/지게)에 지고 천룡당산으로 간다. 제관 이외에 아무도 따라갈 수 없다. 천룡당산, 양지뜸샘, 고랑뜸샘, 나무당산(내당산), 독당산(외당산) 등 5당산을 차례로 돌면서 제사를 올린다. 천룡제에서는 모든 제물을 사용하고, 다음 4당산제에서는 천룡제에서 사용한 제물을 4분의 1씩 다른 그릇에 덜어서 사용한다. 제의는 진설-[분향](/topic/분향)-[초헌](/topic/초헌)-[독축](/topic/독축)(축관이 축과 [비손](/topic/비손)축원문을 읽음. 비손축원문은 상황에 따라 그 자리에서 읊었으나 요즈음은 종이에 써서 읽는다.)-[아헌](/topic/아헌)-[종헌](/topic/종헌)-소지-[음복](/topic/음복)-[헌식](/topic/헌식)의 순서로 진행된다. [축문](/topic/축문)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 干支 某月干支某日干支十五日干支
幼學 某祭官 (姓名) 敢昭告于
天龍之神 天作高山 鎭此南方 大闢村閭
居民生活 實賴神休 少幼吉慶 耆老益壽
斥禍降福 士子登科 農夫積廩 永世是寧
今以吉辰 齋誠祈祝 神其佑之
謹以 淸酌脯果 祗薦于神 尙饗


維歲次 干支 某月干支某日干支十五日干支
幼學 某祭官 (姓名) 敢昭告于
井甃之神 源泉洋 環周里閭
生民活潑 德澤潤沾 福祿沈長藏
今以吉辰 齋誠祈祝 神其佑之
謹以 淸酌庶羞 祗薦于神 尙饗


維歲次 干支 某月干支某日干支十五日干支
幼學 某祭官 (姓名) 敢昭告于
社壇之神 環周村閭 鎭此生民
保護衆生 防禦疾苦 呵禁不祥
今以吉辰 齋誠祈祝 神其佑之
謹以 酒果 祗薦于神 神其佑之 尙饗


년으로는 ○○년이옵고 월로는 정월이옵고 일로는 15일이옵나이다. 한 장의 소지라도 만장의 소지장으로 알으시고 받아 주시옵소서. 생촌 각 생제원 남녀노소 없이 다 길영하시옵고 부자자효 형제우애하고 부화부순하게 해 주시옵고, 국사를 위하여 군대에 가 있는 젊은 청년들도 책임 완수하오며 사자등과 농부적경하오며 우마경축도 일생월생하며 질병제악을 다 축송하여 소멸케 하옵시고, 매사가 태평하게 지내게 하여 주시고 남녀 다 재수도 복도 수명도 많이 주시옵소서. 간단한 축원이지만 태산같이 높고 서해바다같이 널리 받아 주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하나이다.

독당산까지 다섯 당산에 올리는 제사가 다 끝나면 맨 나중에 도깨비바우(마을 입구 다리 밑)에 가서 메밀범벅을 미리 깔아 놓은 짚 위에 부어 주면서 “물 우게 김서방, 물 아래 박서방 많이 묵고 물러가거라”라는 말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온다. 제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일절 풍물소리는 내지 아니한다.

제사는 새벽 4시쯤 끝난다. 제관들은 화주 집으로 가서 음식을 먹고 쉰다. 이들은 예전에는 사흘 뒤에나 숙식하고 있는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으나 지금은 보름날 아침 정결한 마을 대표 두 명이 제관들이 있는 집으로 가서 제사 비용 등을 결산하고 음식을 먹어 주기 때문에 이틀만에 나올 수 있다. 제주 가족들은 제사가 끝난 뒤 일 년 동안 궂은 곳에 가지 않고 궂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지금은 6개월 정도 지킨다.

4.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와 줄감기 : 대보름날 아침 9시쯤 마을 사람들은 식사를 하고 [나발](/topic/나발)소리가 들리면 짚 한 다발씩을 들고 당산 끝에 모여 용줄을 꼬기 시작한다. 중심에 큰 새끼줄 두 개를 놓고 그 위에 일곱 가닥의 짚으로 용줄을 들인다. 당산 주변의 정자나무 4그루를 한 바퀴 감을 정도(약 40〜50m)면 알맞은 길이가 된다. [농악](/topic/농악)대가 당산 끝을 세 번 돌고 재배하면 남자들은 어깨에 줄을 멘 다음 농악대를 앞세우고 고랑뜸샘, 천룡, 양지뜸샘 순으로 돌며 굿을 친다. 옛날에는 5당산을 차례로 돌았으나 지금은 3당산만 돌고 있다. 당산을 다 돌고 나서 마을 앞길로 내려와서 남녀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한다. 총각들은 여자 편이 된다. 보통 세 번 싸워서 두 번 이겨야 한다. 줄다리기를 할 때 서로 회초리 등을 이용해 상대방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결과는 언제나 내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놀이를 벌인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독당산(외당산) 입석에다 줄을 감아 놓는다. 줄은 밑에서부터 감아 올라가 두 겹 내지 세 겹이 되도록 머리를 위로 향하게 하여 오른쪽으로 감는다.

5. [[마당](/topic/마당)밟이](/topic/마당밟이) : 줄감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마당밟이 굿을 친다. 이때 화주 집과 부정한 집은 치지 않는다.
의의생촌[마을](/topic/마을)당산제는 호남지방의 서부지역과 산악지역 마을신앙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민속신앙적 가치가 있다. 즉 제당이 다섯 곳이기는 하지만 핵심은 2당 구성이라는 부분은 산악지역 마을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고, 제사를 마치고 나서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를 하고 이 줄을 입석에 감아 놓는 것은 호남지방의 서부지역 마을신앙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장성군 [마을](/topic/마을)사-삼계면 (장성군, 1991)
장성군의 문화유적 (조선대학교박물관, 1999)
의의생촌[마을](/topic/마을)당산제는 호남지방의 서부지역과 산악지역 마을신앙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민속신앙적 가치가 있다. 즉 제당이 다섯 곳이기는 하지만 핵심은 2당 구성이라는 부분은 산악지역 마을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고, 제사를 마치고 나서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를 하고 이 줄을 입석에 감아 놓는 것은 호남지방의 서부지역 마을신앙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장성군 [마을](/topic/마을)사-삼계면 (장성군, 1991)
장성군의 문화유적 (조선대학교박물관, 1999)
유래생촌[마을](/topic/마을)당산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성씨는 장흥 고씨(長興 高氏)이고, 1800년쯤에 광산 김씨(光山 金氏), 1820년쯤에 경주 김씨(慶州 金氏)가 이주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촌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9㎞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고산(526.7m)의 동남 기슭 두 개의 골짜기에 형성된 동향마을이다. 6․25전쟁을 치르는 2년 동안 당산제를 중단했을 때 마을 어른들의 꿈에 당산신이 “배고프다. 추워죽겠으니 옷을 입혀 달라”하여 서둘러 당산제를 모시고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를 하여 독당산(할머니당산)에 줄을 감아 주었다고 한다. 그 뒤 1980년 제11회 남도문화제에 출연하여 [민속놀이](/topic/민속놀이)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유래생촌[마을](/topic/마을)당산제는 마을이 형성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성씨는 장흥 고씨(長興 高氏)이고, 1800년쯤에 광산 김씨(光山 金氏), 1820년쯤에 경주 김씨(慶州 金氏)가 이주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촌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9㎞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고산(526.7m)의 동남 기슭 두 개의 골짜기에 형성된 동향마을이다. 6․25전쟁을 치르는 2년 동안 당산제를 중단했을 때 마을 어른들의 꿈에 당산신이 “배고프다. 추워죽겠으니 옷을 입혀 달라”하여 서둘러 당산제를 모시고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를 하여 독당산(할머니당산)에 줄을 감아 주었다고 한다. 그 뒤 1980년 제11회 남도문화제에 출연하여 [민속놀이](/topic/민속놀이)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慵齋叢話
樂學軌範
三國遺事
한국의 민속임동권197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한국민속대관 31982
계몽사한국민속논고장주근1986
창솔한국민속문화대전김용덕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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