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리당산

한국무속신앙사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1동 1206-23[번지](/topic/번지)에 소재한 대리[마을](/topic/마을)의 제당. 당산나무인 팽나무는 1982년 11월4일에 ‘천연기념물 제309호 구포동 팽나무’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12월16일에 지정 범위를 대리당산 전체로 확대하여 ‘구포동 당숲’으로 지정되었다. 통칭 대리당산으로 불리지만 당산나무인 팽나무와 금정산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山神閣), 고당할매를 모시는 고당각(姑堂閣) 등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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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구포1동 1206-23[번지](/topic/번지)에 소재한 대리[마을](/topic/마을)의 제당. 당산나무인 팽나무는 1982년 11월4일에 ‘천연기념물 제309호 구포동 팽나무’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12월16일에 지정 범위를 대리당산 전체로 확대하여 ‘구포동 당숲’으로 지정되었다. 통칭 대리당산으로 불리지만 당산나무인 팽나무와 금정산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山神閣), 고당할매를 모시는 고당각(姑堂閣) 등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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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길
정의부산광역시 북구 구포1동 1206-23[번지](/topic/번지)에 소재한 대리[마을](/topic/마을)의 제당. 당산나무인 팽나무는 1982년 11월4일에 ‘천연기념물 제309호 구포동 팽나무’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12월16일에 지정 범위를 대리당산 전체로 확대하여 ‘구포동 당숲’으로 지정되었다. 통칭 대리당산으로 불리지만 당산나무인 팽나무와 금정산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山神閣), 고당할매를 모시는 고당각(姑堂閣) 등으로 구분된다.
정의부산광역시 북구 구포1동 1206-23[번지](/topic/번지)에 소재한 대리[마을](/topic/마을)의 제당. 당산나무인 팽나무는 1982년 11월4일에 ‘천연기념물 제309호 구포동 팽나무’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12월16일에 지정 범위를 대리당산 전체로 확대하여 ‘구포동 당숲’으로 지정되었다. 통칭 대리당산으로 불리지만 당산나무인 팽나무와 금정산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山神閣), 고당할매를 모시는 고당각(姑堂閣) 등으로 구분된다.
내용1. 내부 구조, 제구(祭具), 신체 : 산신각의 제단(앞면 103㎝, 옆면 34㎝, 높이 72㎝, 두께 10㎝) 위에는‘금정산제당영신지위(金井山祭堂靈神之位)’라고 쓴 나무 [위패](/topic/위패)(가로 9㎝, 세로 27㎝, 두께 0.8㎝)가 놓여 있다. 위패 앞에는 [촛대](/topic/촛대)·[향로](/topic/향로)·청수기 등이 놓여 있으며, 오른쪽에는 산신도(가로 41㎝, 세로 71㎝)가 있다.
고당각의 제단(앞면 411㎝, 옆면 52㎝, 높이 68㎝, 두께 7.5㎝) 위에는 ‘금정산고당영신지위(金井山姑堂靈神之位)’라고 쓴 나무 위패(가로 9㎝, 세로 27㎝, 두께 0.8㎝)가 놓여 있다. 위패의 좌우에는 청수기가 있고, 그 앞에는 향로가 있다. 위패 오른쪽에는 흰 [고깔](/topic/고깔)을 쓴 삼불제석도(가로 41㎝, 세로 71㎝)가 있으며 그 좌우로 촛대가 자리 잡고있다. 삼불제석도 앞에도 향로가 놓여 있다. 이 고당각은 산신각에 비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당산제에 필요한 각종 제기와 [제복](/topic/제복) 등은 모두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

2. 제의 날짜와 제의 횟수 : 당산제의 제일은 정월 열나흗날 자정이며 매년 한 차례 제를 올리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재에는 다른 단체의 주도에 의해 한 차례가 더 치제되고 있다. 매년 10월 낙동문화원에서‘낙동민속예술제’를 개최한다. 행사일 오전 10시에 문화원장, 지역의 기관이나 민속예술 관련 단체장 등을 중심으로 제의가 이루어진다. 또 고정적으로 낙동민속예술제 행사에 참여하는 무속인 이미자도 당일 오전 8시쯤 무속식으로 제의를 올리고 있다.

3. [제관](/topic/제관)의 선정과 금기 : 제관의 선정은 [마을](/topic/마을) 풍물패가 앞세운 [대잡이](/topic/대잡이)를 통해 이듬해의 제주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마을 청년을 중심으로 구성된 풍물패가 당산에 모여 풍물을 울린다. 이때 한 사람이 [천왕대](/topic/천왕대)라 불리는 큰 대를 앞세운다. 이들은 고당각 앞으로 가서 문을 열고 절을 하면서 “고당할매가 올해 편히 계실 곳을 정해 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아뢴다. 그러면 고당할매신이 감응한 표시로 큰 대의 윗부분부터 떨리기 시작한다. 대의 떨림이 차츰 아래로 내려오면 대잡이가 다시 “고당할매가 앞을 서셔서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하고, 그 뒤 대잡이와 풍물패는 모두 마을로 향한다.
천왕대가 이끄는 대로 대잡이는 이듬해 제관이 될 집으로 들어간다. 상 위에 촛불을 밝히고 [정화수](/topic/정화수) 세 그릇을 올려놓은 그 집에서는 이들을 맞이하며 천왕대를 향해 절을 한다. 그리고 “고당할매, 오신다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서 좌정하십시오”라고 하며 고당할매를 방으로 모신다.
‘구[포대](/topic/포대)리당숲보존회’ 회장이자 10년 동안 제관을 지낸 김갑수(1947년생)에 따르면 이러한 천왕대잡이를 통한 제관의 선정 방식은 1998년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관의 금기 기간이 1년이나 되고 이 금기의 엄격함 때문에 정상적인 개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을에서는 아무도 제관직을 맡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1998년 대리당산 인근에 위치한 ‘낙동민속보존회’에 당산제 기금을 기탁하고 제의를 부탁하였다. 이에 따라 낙동민속보존회에서는 회원들 가운데 덕망 있는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여2년 동안 대리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
대리당산제는 2001년 ‘구포대리애향회’와 ‘대리향우회’가 주축이 되어 다시 마을 주민들에 의해 거행되었다. 이때부터는 대잡이를 행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추천에 의해제관이 정해졌다. 단 대리마을 출신자만 제관이 될 수 있다. 제관은 마을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 청빈하고 인품이 고매한 사람 가운데 선정되었다.
제관의 금기도 일 년에서 제일 전후 3개월씩 총 6개월로 단축되었다. 2004년부터 제관의 금기 기간은 다시 3개월로 단축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에 제관은 지인들의 경조사 등 부정한 소지가 있는 곳에는 참가할 수 없으며, 제일 전후 15일 동안은 부부간의 합방도 금지된다. 또 일주일 전부터는 매일 냉수 목욕으로 몸을 정갈히 해야 한다.

4. 제물의 구입과 제수 준비 : 제물은 당산제 2~3일 전에 제관이 혼자 시장에 가서 구입한다. 구입하는 제물의 종류와 수량은 일반적인 가정 제사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제관은 제물을 구입할 때 결코 값을 흥정해서는 안 된다. 또 상품도 최상급의 것만 구입해야 하고, 지불하는 돈도 깨끗한 것만을 사용한다. 제관이 제물 구입을 마치면 제관의아내 또는 어머니가 당산제 전날 제관의 집에서 제물을 조리한다.

5. 제의 절차 : 과거 당산제의 구체적인 제의 절차에 대해서는 정확한 고증 없이 개략적인 내용만 전해진다. 현재의 방식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topic/가지)이다. 먼저 전체 제의 과정이 간소화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산신제, 고당할매제, 시석제, 목신제의 순서로 제의 전 과정이 이루어졌다. 시석제는 고당각 앞에서 잡신을 대접하는 것이며, 목신제는 종이에 밥을 싸서 바치는 것이다. 현재에는 산신제, 고당할매제만 지내는 것으로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다음으로 제의에 참여하는 사람 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제관이 단독으로 유교적 절차에 따라 제의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에는 제관 외에도 두 명의 집사, 북구청장, 구포1동장, 구포 대리애향회 회원, 낙동문화원 회원 등이제의에 참여하고 있다.
아래 내용은 2005년 거행된 대리당산제의 제의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당산제 당일 저녁 9시부터 제관의 어머니는 산신각과 고당각에 제물 차림을 마친 뒤, 11시부터 메와 탕을 준비하여 12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산신각의 경우 [제상](/topic/제상)의 맨 아랫줄에는 왼쪽부터 곶감, [대추](/topic/대추), 밤, 배, [사과](/topic/사과), 귤을 놓는다. 중간 줄에는 돼지생고기, 두부전, [고구마](/topic/고구마)튀김, 사탕, 과자, 홍합산적, 상어산적, 조기, 민어를 차린다. 위패와 가장 가까운 마지막 줄에는 떡, 나물(고사리, [시금치](/topic/시금치), 콩나물, 도라지), 메와 탕을 놓는다. 산신도 아래 오른쪽 끝에는 북어를 세워 놓는다. 고당각은 제상이 산신각에 비해 긴 편이다. 이에 따라 제물의 수도 한두 가지 많다. 위패를 중심으로 맨 앞줄 왼쪽부터 과자, 밤, 대추, 곶감, 홍합산적, 상어산적, 서대, 고구마튀김을 진설한다. 둘째 줄에는 떡,두부전, 생선을 놓는다. 위패와 가장 가까운 줄에는 유과, 나물, 메, 탕을 두 그릇씩 놓고 그 옆에 북어를 세운다. 또 위패 오른쪽에 있는 삼불제석도 앞에도 삶은 돼지머리,배, 사과, [참외](/topic/참외), [수박](/topic/수박), 바나나, 귤 등을 놓는다.
제물의 진설이 끝나고 자정이 되면 산신각에서 제관이 가운데 앉고, 양 옆으로 두 명의 집사가 선다. 제관은 오른쪽 집사의 지시에 따라 제의를 진행한다. 먼저 향을 사르고 술을 부어 향 위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세 번 돌린 뒤 제단에 잔을 올린다. 집사가 숟가락을 꽂고 제관은 [축문](/topic/축문)을 읽는다. 이후 술 한 잔을 다시 올린 뒤 제관은 삼배(三拜)한다. 제관이 물러나고 북구청장, 구포1동장이 잔을 올리고 삼배한다. 고당각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제의를 치른다. 제의가 끝나면 제관은 축문을 태우고 [음복](/topic/음복)한다. 그리고 남은음식을 모두 거두어 경로당으로 가져가서 다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6. 유래담 : 세종대왕 시절 구포대리마을에 김초시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웃의 가난한 선비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웃 마을 부잣집에서 매파를 보내어 그녀에게 청혼하였으나 그녀는 거절한다. 그녀를 흠모하던 부잣집 도령은 무당을 찾아가서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자기와 연분을 맺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무당은 돈에 눈이 멀어 갖은 사술을 부려 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얼마 후 과거를 보러 길을 떠나는 선비에게 김초시의 딸은 자신의 이름을 수놓은 손수건을 정표로 준다. 선비는 팽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땅에 꽂고 지팡이가 자라나면 자신이 성공한 것으로 알고 기다려 달라고 한다. 하지만 선비는 인적이 드문 산길을 가다가 도령이 보낸 자객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낭자는 지팡이에 물을 주고 가꾸면서 수없이 기도와 절을 하면서 선비의 과거 급제와 금의환향을 기원한다. 지팡이에는 어느덧 새순이 돋고 잎이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삼년 뒤 구포 감동진 장터에 온 장사꾼으로부터 김낭자의 이름을 수놓은 손수건을 지닌 한 선비가 산길에서 피살되어 수년 전에 죽었다는 비보를 접한 낭자는 그 뒤 한시도 팽나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결국 그 팽나무에 기댄 채 죽는다. 낭자는 죽어서 그 나무의 영신이 되었으며, 낭자가 기대어 죽?? 마침내 한 그루로 된 쌍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그해부터 마을에는 3년을 계속해서 화재가 수없이 나고, 가뭄과 홍수와 병마가 온 동네를 휩쓰는 등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살인을 사주한 이웃 도령도 미쳐서 앞 강물에 뛰어들어 죽게 된다. 재앙이 거듭되자 마을 원로들은 낭자의 노여움을 사서 고을에 재앙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길일을 받아 낭자와 선비의 영혼 [혼례식](/topic/혼례식)을 성대하게 치러 주었다. 그리고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당산제를 정성껏 지내어 영신을 위로해 주니 그 달부터는 마을의 모든 재앙이 사라[지게](/topic/지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부산의 당제 (김승찬 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상 (국립민속박물관, 2007)
내용1. 내부 구조, 제구(祭具), 신체 : 산신각의 제단(앞면 103㎝, 옆면 34㎝, 높이 72㎝, 두께 10㎝) 위에는‘금정산제당영신지위(金井山祭堂靈神之位)’라고 쓴 나무 [위패](/topic/위패)(가로 9㎝, 세로 27㎝, 두께 0.8㎝)가 놓여 있다. 위패 앞에는 [촛대](/topic/촛대)·[향로](/topic/향로)·청수기 등이 놓여 있으며, 오른쪽에는 산신도(가로 41㎝, 세로 71㎝)가 있다.
고당각의 제단(앞면 411㎝, 옆면 52㎝, 높이 68㎝, 두께 7.5㎝) 위에는 ‘금정산고당영신지위(金井山姑堂靈神之位)’라고 쓴 나무 위패(가로 9㎝, 세로 27㎝, 두께 0.8㎝)가 놓여 있다. 위패의 좌우에는 청수기가 있고, 그 앞에는 향로가 있다. 위패 오른쪽에는 흰 [고깔](/topic/고깔)을 쓴 삼불제석도(가로 41㎝, 세로 71㎝)가 있으며 그 좌우로 촛대가 자리 잡고있다. 삼불제석도 앞에도 향로가 놓여 있다. 이 고당각은 산신각에 비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당산제에 필요한 각종 제기와 [제복](/topic/제복) 등은 모두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

2. 제의 날짜와 제의 횟수 : 당산제의 제일은 정월 열나흗날 자정이며 매년 한 차례 제를 올리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재에는 다른 단체의 주도에 의해 한 차례가 더 치제되고 있다. 매년 10월 낙동문화원에서‘낙동민속예술제’를 개최한다. 행사일 오전 10시에 문화원장, 지역의 기관이나 민속예술 관련 단체장 등을 중심으로 제의가 이루어진다. 또 고정적으로 낙동민속예술제 행사에 참여하는 무속인 이미자도 당일 오전 8시쯤 무속식으로 제의를 올리고 있다.

3. [제관](/topic/제관)의 선정과 금기 : 제관의 선정은 [마을](/topic/마을) 풍물패가 앞세운 [대잡이](/topic/대잡이)를 통해 이듬해의 제주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마을 청년을 중심으로 구성된 풍물패가 당산에 모여 풍물을 울린다. 이때 한 사람이 [천왕대](/topic/천왕대)라 불리는 큰 대를 앞세운다. 이들은 고당각 앞으로 가서 문을 열고 절을 하면서 “고당할매가 올해 편히 계실 곳을 정해 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아뢴다. 그러면 고당할매신이 감응한 표시로 큰 대의 윗부분부터 떨리기 시작한다. 대의 떨림이 차츰 아래로 내려오면 대잡이가 다시 “고당할매가 앞을 서셔서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하고, 그 뒤 대잡이와 풍물패는 모두 마을로 향한다.
천왕대가 이끄는 대로 대잡이는 이듬해 제관이 될 집으로 들어간다. 상 위에 촛불을 밝히고 [정화수](/topic/정화수) 세 그릇을 올려놓은 그 집에서는 이들을 맞이하며 천왕대를 향해 절을 한다. 그리고 “고당할매, 오신다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서 좌정하십시오”라고 하며 고당할매를 방으로 모신다.
‘구[포대](/topic/포대)리당숲보존회’ 회장이자 10년 동안 제관을 지낸 김갑수(1947년생)에 따르면 이러한 천왕대잡이를 통한 제관의 선정 방식은 1998년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관의 금기 기간이 1년이나 되고 이 금기의 엄격함 때문에 정상적인 개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을에서는 아무도 제관직을 맡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이 때문에 1998년 대리당산 인근에 위치한 ‘낙동민속보존회’에 당산제 기금을 기탁하고 제의를 부탁하였다. 이에 따라 낙동민속보존회에서는 회원들 가운데 덕망 있는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여2년 동안 대리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
대리당산제는 2001년 ‘구포대리애향회’와 ‘대리향우회’가 주축이 되어 다시 마을 주민들에 의해 거행되었다. 이때부터는 대잡이를 행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추천에 의해제관이 정해졌다. 단 대리마을 출신자만 제관이 될 수 있다. 제관은 마을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 청빈하고 인품이 고매한 사람 가운데 선정되었다.
제관의 금기도 일 년에서 제일 전후 3개월씩 총 6개월로 단축되었다. 2004년부터 제관의 금기 기간은 다시 3개월로 단축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에 제관은 지인들의 경조사 등 부정한 소지가 있는 곳에는 참가할 수 없으며, 제일 전후 15일 동안은 부부간의 합방도 금지된다. 또 일주일 전부터는 매일 냉수 목욕으로 몸을 정갈히 해야 한다.

4. 제물의 구입과 제수 준비 : 제물은 당산제 2~3일 전에 제관이 혼자 시장에 가서 구입한다. 구입하는 제물의 종류와 수량은 일반적인 가정 제사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제관은 제물을 구입할 때 결코 값을 흥정해서는 안 된다. 또 상품도 최상급의 것만 구입해야 하고, 지불하는 돈도 깨끗한 것만을 사용한다. 제관이 제물 구입을 마치면 제관의아내 또는 어머니가 당산제 전날 제관의 집에서 제물을 조리한다.

5. 제의 절차 : 과거 당산제의 구체적인 제의 절차에 대해서는 정확한 고증 없이 개략적인 내용만 전해진다. 현재의 방식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topic/가지)이다. 먼저 전체 제의 과정이 간소화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산신제, 고당할매제, 시석제, 목신제의 순서로 제의 전 과정이 이루어졌다. 시석제는 고당각 앞에서 잡신을 대접하는 것이며, 목신제는 종이에 밥을 싸서 바치는 것이다. 현재에는 산신제, 고당할매제만 지내는 것으로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다음으로 제의에 참여하는 사람 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제관이 단독으로 유교적 절차에 따라 제의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에는 제관 외에도 두 명의 집사, 북구청장, 구포1동장, 구포 대리애향회 회원, 낙동문화원 회원 등이제의에 참여하고 있다.
아래 내용은 2005년 거행된 대리당산제의 제의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당산제 당일 저녁 9시부터 제관의 어머니는 산신각과 고당각에 제물 차림을 마친 뒤, 11시부터 메와 탕을 준비하여 12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산신각의 경우 [제상](/topic/제상)의 맨 아랫줄에는 왼쪽부터 곶감, [대추](/topic/대추), 밤, 배, [사과](/topic/사과), 귤을 놓는다. 중간 줄에는 돼지생고기, 두부전, [고구마](/topic/고구마)튀김, 사탕, 과자, 홍합산적, 상어산적, 조기, 민어를 차린다. 위패와 가장 가까운 마지막 줄에는 떡, 나물(고사리, [시금치](/topic/시금치), 콩나물, 도라지), 메와 탕을 놓는다. 산신도 아래 오른쪽 끝에는 북어를 세워 놓는다. 고당각은 제상이 산신각에 비해 긴 편이다. 이에 따라 제물의 수도 한두 가지 많다. 위패를 중심으로 맨 앞줄 왼쪽부터 과자, 밤, 대추, 곶감, 홍합산적, 상어산적, 서대, 고구마튀김을 진설한다. 둘째 줄에는 떡,두부전, 생선을 놓는다. 위패와 가장 가까운 줄에는 유과, 나물, 메, 탕을 두 그릇씩 놓고 그 옆에 북어를 세운다. 또 위패 오른쪽에 있는 삼불제석도 앞에도 삶은 돼지머리,배, 사과, [참외](/topic/참외), [수박](/topic/수박), 바나나, 귤 등을 놓는다.
제물의 진설이 끝나고 자정이 되면 산신각에서 제관이 가운데 앉고, 양 옆으로 두 명의 집사가 선다. 제관은 오른쪽 집사의 지시에 따라 제의를 진행한다. 먼저 향을 사르고 술을 부어 향 위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세 번 돌린 뒤 제단에 잔을 올린다. 집사가 숟가락을 꽂고 제관은 [축문](/topic/축문)을 읽는다. 이후 술 한 잔을 다시 올린 뒤 제관은 삼배(三拜)한다. 제관이 물러나고 북구청장, 구포1동장이 잔을 올리고 삼배한다. 고당각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제의를 치른다. 제의가 끝나면 제관은 축문을 태우고 [음복](/topic/음복)한다. 그리고 남은음식을 모두 거두어 경로당으로 가져가서 다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6. 유래담 : 세종대왕 시절 구포대리마을에 김초시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웃의 가난한 선비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웃 마을 부잣집에서 매파를 보내어 그녀에게 청혼하였으나 그녀는 거절한다. 그녀를 흠모하던 부잣집 도령은 무당을 찾아가서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자기와 연분을 맺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무당은 돈에 눈이 멀어 갖은 사술을 부려 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얼마 후 과거를 보러 길을 떠나는 선비에게 김초시의 딸은 자신의 이름을 수놓은 손수건을 정표로 준다. 선비는 팽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땅에 꽂고 지팡이가 자라나면 자신이 성공한 것으로 알고 기다려 달라고 한다. 하지만 선비는 인적이 드문 산길을 가다가 도령이 보낸 자객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낭자는 지팡이에 물을 주고 가꾸면서 수없이 기도와 절을 하면서 선비의 과거 급제와 금의환향을 기원한다. 지팡이에는 어느덧 새순이 돋고 잎이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삼년 뒤 구포 감동진 장터에 온 장사꾼으로부터 김낭자의 이름을 수놓은 손수건을 지닌 한 선비가 산길에서 피살되어 수년 전에 죽었다는 비보를 접한 낭자는 그 뒤 한시도 팽나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결국 그 팽나무에 기댄 채 죽는다. 낭자는 죽어서 그 나무의 영신이 되었으며, 낭자가 기대어 죽?? 마침내 한 그루로 된 쌍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그해부터 마을에는 3년을 계속해서 화재가 수없이 나고, 가뭄과 홍수와 병마가 온 동네를 휩쓰는 등 재앙이 끊이지 않았다. 살인을 사주한 이웃 도령도 미쳐서 앞 강물에 뛰어들어 죽게 된다. 재앙이 거듭되자 마을 원로들은 낭자의 노여움을 사서 고을에 재앙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길일을 받아 낭자와 선비의 영혼 [혼례식](/topic/혼례식)을 성대하게 치러 주었다. 그리고 정월 열나흗날 자정에 당산제를 정성껏 지내어 영신을 위로해 주니 그 달부터는 마을의 모든 재앙이 사라[지게](/topic/지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부산의 당제 (김승찬 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상 (국립민속박물관, 2007)
역사산신각과 고당각은 1949년 5월에 건립하여 1969년에 중수하였으며, 1987년 5월 26일에 개수하였다. 1987년 당시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오지영(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3가 거주)이 사재를 들여 자신의 주도 아래 현재 상태로 산신각과 고당각을 개축하였다.
역사산신각과 고당각은 1949년 5월에 건립하여 1969년에 중수하였으며, 1987년 5월 26일에 개수하였다. 1987년 당시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오지영(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3가 거주)이 사재를 들여 자신의 주도 아래 현재 상태로 산신각과 고당각을 개축하였다.
형태‘구포동 당숲’의 지정 면적은 1,286.4㎡이며, 정사각형 형태를 이룬다. 국[가지](/topic/가지)정 문화재 대장의 규격(크기) 항목에 따르면 ‘구포 팽나무’는 수령 600년, 폭30m로 기록되어있다. 높이는 17m, 둘레가 5.5m, 가지퍼짐[樹冠幅]은 동서 21.3m와 남북 23.4m이다. 전체적으로는 우산을 펼친 모양이다.
산신각의 면적은 2 . 7 5㎡(가로 1 . 8 7m, 세로1.47m, 높이 1.7m)으로, 돌로 벽을 쌓고 그 위에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문은 [여닫이](/topic/여닫이) 외짝 알루미늄 새시로 되어 있다. 고당각의 면적은 13.62㎡(가로4.9m, 세로 2.78m, 높이 2.3m)이며 돌로 쌓은 벽에 [기와](/topic/기와)[팔작지붕](/topic/팔작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문의 형태는 산신각과 동일하다. 산신각과 고당각 모두 서북쪽을 향하고 있다.
형태‘구포동 당숲’의 지정 면적은 1,286.4㎡이며, 정사각형 형태를 이룬다. 국[가지](/topic/가지)정 문화재 대장의 규격(크기) 항목에 따르면 ‘구포 팽나무’는 수령 600년, 폭30m로 기록되어있다. 높이는 17m, 둘레가 5.5m, 가지퍼짐[樹冠幅]은 동서 21.3m와 남북 23.4m이다. 전체적으로는 우산을 펼친 모양이다.
산신각의 면적은 2 . 7 5㎡(가로 1 . 8 7m, 세로1.47m, 높이 1.7m)으로, 돌로 벽을 쌓고 그 위에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문은 [여닫이](/topic/여닫이) 외짝 알루미늄 새시로 되어 있다. 고당각의 면적은 13.62㎡(가로4.9m, 세로 2.78m, 높이 2.3m)이며 돌로 쌓은 벽에 [기와](/topic/기와)[팔작지붕](/topic/팔작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문의 형태는 산신각과 동일하다. 산신각과 고당각 모두 서북쪽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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