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당왕신

한국무속신앙사전
한강을 중요한 운송로로 이용하던 시절에 이 교통의 장애(암초와 여울 등)지역들에 세워진 [화주](/topic/화주)당(化主堂)에서 모시는 주신. 매(鷹)+당(堂)+왕신(王神) 또는 매(鷹)+대왕신(大王神)의 합성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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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중요한 운송로로 이용하던 시절에 이 교통의 장애(암초와 여울 등)지역들에 세워진 [화주](/topic/화주)당(化主堂)에서 모시는 주신. 매(鷹)+당(堂)+왕신(王神) 또는 매(鷹)+대왕신(大王神)의 합성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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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정의한강을 중요한 운송로로 이용하던 시절에 이 교통의 장애(암초와 여울 등)지역들에 세워진 [화주](/topic/화주)당(化主堂)에서 모시는 주신. 매(鷹)+당(堂)+왕신(王神) 또는 매(鷹)+대왕신(大王神)의 합성어로 보인다.
정의한강을 중요한 운송로로 이용하던 시절에 이 교통의 장애(암초와 여울 등)지역들에 세워진 [화주](/topic/화주)당(化主堂)에서 모시는 주신. 매(鷹)+당(堂)+왕신(王神) 또는 매(鷹)+대왕신(大王神)의 합성어로 보인다.
내용[화주](/topic/화주)당은 화주와 당의 합성어로, 들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보인다. 이른바 선박의 주인이라는 의미의 화주(化主)들이 정성을 들인 당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날 화주당이라고 하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남아 있는 서울굿의 무가와 무속인들이 고유명사로 관념하는 이른바 ‘물건너 화주당’이다. 이 화주당의 주신격은 ‘매당왕신’이며, 이 신격의 좌정담이 전해지고 있다.

매당왕신을 주신으로 모신 화주당은 ‘뚝섬 화주당’ 또는 ‘충렬(忠烈) 화주당’으로 불린다. 원래의 위치는 한강변 언덕이었으나 현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주택가에 있다. 현재 이곳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아직도 굿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공개를 꺼리고 있다.

‘물건너 화주당 매당(매)왕신’이라는 관용어구는 서울굿의 무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한강 이남에 있었기에 ‘물 건너’가 되고, 이곳이 배를 이용한 운송업자인 화주(化主)들이 정성을 들인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매당왕신’, ‘매대왕신’이라는 고유한 신격을 모시고 있음을 이 관용어구에서 짐작할 수 있다.

‘화주당 매당(대)왕신’의 좌정담은 1934년(단기4267년) 최상수에 의해 채록된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상수의 『한국민간전설집』의 문면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3백 수 십년 전, 이조(李朝) 인조왕(仁祖王) 때 경기도(京畿道) 광주(光州) 유수(留守) 이서(李曙)는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축성(築城) 공사를 둘로 나누어, 남쪽은 부하의 이인고(李寅皐)에게, 북쪽은 중(僧) 벽암(碧岩)에게 각각 분담시키었다.

이인고는 그날부터 낮과 밤, 일심단성으로 오로지 축성에만 노력하여 돌 하나, 흙 한줌에도 정성을 들여 침식을 잊다 시피 몰두하였다. 그러는 중에 축성 자금이 부족하였으므로 마침내 자기의 사재(私財)까지 전부 던지었다. 그러하였지만 공사를 준공하기에는 아직도 자금은 부족하고 해서 공사는 하루 이틀 늦어만 가고 있었다. 그 반면 벽암의 공사는 착착 진행이 되어서 기일 안에 준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가(官家)에서 받은 공사비 중에서 남은 금액까지도 관가에 반납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정직한 이인고는 점점 의심을 받게 되어 이인고는 사리사욕을 탐하고 주색(酒色)에 빠져서 공사를 게을리한다 는 벽암의 터무니없이 헐어 말함에 의하여 관가에서는 이것을 믿게 되어 불운하게도 그는서장대(西將臺)에서 참수형(斬首刑)을 받게 되었다.

형을 집행하기 전에 그는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이 신이 죽기는 합니다마는 신이 죽은 뒤에는 그 진부를 알 것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으나, 윗자리에 앉은 이는 이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곧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었다. 그러자 번쩍이는 칼날에 비참하게도 이인고의 목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 피 흐르는 목에서 한 마리의 매가 날아 나와서이인고의 시체를 돌고 장대 근처의 바위 위에 앉아 무서운 눈초리로 군중을 흘겨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것을 본 군중은 이상하여 그 매가 앉아 있던 바위로 쫓아가 보니 매는 없고 다만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이리하여 그 바위를 매바위 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뒤에 관가에서는 꿈에서 깨어난 것같이 실지 조사를 해 본 결과 벽암이 쌓은 성은 한 곳도 정성 들인 곳이 없이 허술하였으나 이인고가 분담하여 쌓은 성은 금성 철벽같이 견고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나중에야 안 관가에서는 많은 돈을 하사하여 서장대 근처에다 [사당](/topic/사당)을 세워 청량당(淸凉堂) 이라 하고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그런데 이인고 부인 송씨(宋氏)도 역시 남편에 못지 않은 충렬한 부인이었다. 남편이 축성비 부족으로 낮과 밤으로 고심하는 것을 보고 하루는 그가 남편에게 멀리 여러 고을을돌아다녀서 기부금을 받아 그 축성비로 대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표연히 집을 나선 지 여러 달 만에 많은 액수의 기부금을 얻어서 이것을 배에 싣고 세밭나루[三田渡]에다달았을 때, 뜻밖에도 남편이 죽었다는 슬픈 [부고](/topic/부고)를 접하자 통분한 나머지 한강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관가에서는 그 부인의 충의를 또한 가상하게 여기고 그 강가 언덕 위에 사당을 세워 그 영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최상수의 채록 시기와 유사한 1938년 일본인 학자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와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도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에서 매당왕신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옛날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에 공사의 지휘감독을 맡았던 홍대감이, 평소 청렴결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 비용을 횡령했다는 간인(奸人)의 중상모략으로 마침내사형에 처해[지게](/topic/지게)되었다. 목을 치는 사람이 그의 목을 자르자 갑자기 한 마리의 매가 날개가 묶인 채 그의 목에서 나와 서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홍대감의 욕심 없고 정직함을 증명하게 되었고, 그 매를 그의 영혼으로 믿고서 그를 매당왕신이라 칭하고 사당을 세워 이를 제사지냈다. 남한산 위의 화주당(化主堂)이 그것이며, 그의 처 산활부인(山活夫人)도 이 남편의 사형을 애통해하며 뚝섬 교외 한강변의 저자도(渚子島)에서 자살했으므로 그곳에도 충렬화주당(忠烈化主堂)이 세워져 있다. 현재 그것은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많은 귀신과 인간의 원한을 봉하고 금하는 하나의 무당(巫堂)으로 되어 있다.

이 두 문면을 비교하면 매당왕신은 실존 인물이라는 점이 공통점이지만 이인고와 홍대감으로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그가 죽은 자리, 이른바 매바위 근처에 지은 당의 이름이 청량당과 화주당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그 부인이 자결한 곳이 삼전도(三田渡, 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있던 나루), 저자도(渚子島, 지금의 서울 옥수동과 압구정동 사이에 있던 섬, 이 섬의 흙을 공사에 이용하게 되면서 현재는 수몰되어 있음)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남한산성을 축조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장수와 관련되고, 그 장수가 매(鷹)로 변화여 신으로 좌정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가 죽은 장소보다 그의 부인이 죽은 장소가 오늘날 말하는 ‘물건너 화주당’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현재 남한산성에 남아있는 청량당과 동일한 신화로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

화주당은 그 신의 유래담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주신격이 매당(대)왕신이기보다는 그의 부인으로 보이지만 배우자를 함께 모시는 관념에 의해 매당(대)왕신도 함께 주신으로 모셔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서울굿의 무가에 보면 매당왕신보다는 그 부인에게 더 강조점이 놓여져 있다. 이들 신격이 호명되는 것이 ‘호구’, ‘말명’, ‘가망’이기때문이다. 서울굿에서 호구는 천연두 등에 죽은 영혼이거나 무속적 성지(聖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죽은 여성신이다. 무속적 성지라 함은 오늘날도 서울 무속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당들과 관련 있다. [금성당](/topic/금성당), 국사당, 관왕묘, 화주당, 수풀당 등이다. 이들 호구는 부정거리의 청배와 불사거리 등에 등장한다. 말명은 무당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무업을 하다 죽은 무녀는 말명이 된다. 가망은 불명확한 신격, 조상과 관련된 신격으로 이해된다.

아카마쓰 지조와 아키바 다카시가 1930년대 서울 무녀 배경재(裴敬載)에게서 채록한 문서에 등장하는 매당왕신과 그 부인은 다음과 같다.

시위들하소사
설명도대신말명(서울明圖大神萬明),
사위삼당말명(四位三堂萬明)
국내(國內)로 뎨당말명(諸堂萬明),
그연에상산말명(上山萬明)
열네아기당자말명, 수영반장말명
육조삼말(六曹三府), 부군말명(府君萬明),
배용남산에 불사말명(佛事萬明)
물건너화주당(化主堂),
매당왕신(鷹堂王神)의 산활말명왕십리수풀당(壽佛堂)에 열네애기자겨말명
동관암, 남관암, 정전(正殿)은 대전말명(大殿萬明)
[부정]

시위들하소사
만신의 설명도대신가망, 사위도삼당가망
궁외로졔당가망, 금성의대신가망
그연상산(德物上山)가망, 안산(內山)은 대국(大國)이라
천자대국의사신가망
한[우물](/topic/우물)섯우물에 물마누라룡[궁가](/topic/궁가)망
안말우리밧말우리선왕가망
수영반장가망육조삼말(六曹三府)의 부군가망, 배용남산에 불사가망
물건너화주당에 매당왕신(鷹堂王神) 산활가망 [가망]
(전략)
육조삼말에 부군호구
안남산졔졀국수(國師)밧남산도리태자
국가원당호구
물건너화주당에 매당왕신 산활호구 [호구]

무가의 문면에 따라 부인이 두 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를 매당(대)왕신의 처와 첩으로 관념한다. 1987년 김태곤?? 매대왕신 외에 대신할머니, 대신할아버지, 임씨할머니, 삼불제석, 칠성, 큰마님, 작은마님, 용[장군](/topic/장군), 신장, 곽곽선생, 은씨사신할아버지, 사신할아버지, 엄씨대신할머니, 박씨대신할머니 등을 모시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즉 여기서 ‘큰마님’, ‘작은마님’이 바로 처와 첩을 의미하게 된다.
참고문헌한국민간전설집 (최상수, 통문관, 1984)
서울시 동제당 조사 (장주근, 한국민속논고, 계몽사, 1986)
동신신앙 (김태곤, 서울 육백년사-민속, 서울특별시, 1990)
교통 (음성직, 한국대우신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하 (赤松智城·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1)
내용[화주](/topic/화주)당은 화주와 당의 합성어로, 들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보인다. 이른바 선박의 주인이라는 의미의 화주(化主)들이 정성을 들인 당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날 화주당이라고 하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남아 있는 서울굿의 무가와 무속인들이 고유명사로 관념하는 이른바 ‘물건너 화주당’이다. 이 화주당의 주신격은 ‘매당왕신’이며, 이 신격의 좌정담이 전해지고 있다.

매당왕신을 주신으로 모신 화주당은 ‘뚝섬 화주당’ 또는 ‘충렬(忠烈) 화주당’으로 불린다. 원래의 위치는 한강변 언덕이었으나 현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주택가에 있다. 현재 이곳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아직도 굿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공개를 꺼리고 있다.

‘물건너 화주당 매당(매)왕신’이라는 관용어구는 서울굿의 무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한강 이남에 있었기에 ‘물 건너’가 되고, 이곳이 배를 이용한 운송업자인 화주(化主)들이 정성을 들인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매당왕신’, ‘매대왕신’이라는 고유한 신격을 모시고 있음을 이 관용어구에서 짐작할 수 있다.

‘화주당 매당(대)왕신’의 좌정담은 1934년(단기4267년) 최상수에 의해 채록된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인 것으로 파악된다. 최상수의 『한국민간전설집』의 문면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3백 수 십년 전, 이조(李朝) 인조왕(仁祖王) 때 경기도(京畿道) 광주(光州) 유수(留守) 이서(李曙)는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축성(築城) 공사를 둘로 나누어, 남쪽은 부하의 이인고(李寅皐)에게, 북쪽은 중(僧) 벽암(碧岩)에게 각각 분담시키었다.

이인고는 그날부터 낮과 밤, 일심단성으로 오로지 축성에만 노력하여 돌 하나, 흙 한줌에도 정성을 들여 침식을 잊다 시피 몰두하였다. 그러는 중에 축성 자금이 부족하였으므로 마침내 자기의 사재(私財)까지 전부 던지었다. 그러하였지만 공사를 준공하기에는 아직도 자금은 부족하고 해서 공사는 하루 이틀 늦어만 가고 있었다. 그 반면 벽암의 공사는 착착 진행이 되어서 기일 안에 준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가(官家)에서 받은 공사비 중에서 남은 금액까지도 관가에 반납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정직한 이인고는 점점 의심을 받게 되어 이인고는 사리사욕을 탐하고 주색(酒色)에 빠져서 공사를 게을리한다 는 벽암의 터무니없이 헐어 말함에 의하여 관가에서는 이것을 믿게 되어 불운하게도 그는서장대(西將臺)에서 참수형(斬首刑)을 받게 되었다.

형을 집행하기 전에 그는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이 신이 죽기는 합니다마는 신이 죽은 뒤에는 그 진부를 알 것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으나, 윗자리에 앉은 이는 이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곧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었다. 그러자 번쩍이는 칼날에 비참하게도 이인고의 목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 피 흐르는 목에서 한 마리의 매가 날아 나와서이인고의 시체를 돌고 장대 근처의 바위 위에 앉아 무서운 눈초리로 군중을 흘겨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것을 본 군중은 이상하여 그 매가 앉아 있던 바위로 쫓아가 보니 매는 없고 다만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이리하여 그 바위를 매바위 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뒤에 관가에서는 꿈에서 깨어난 것같이 실지 조사를 해 본 결과 벽암이 쌓은 성은 한 곳도 정성 들인 곳이 없이 허술하였으나 이인고가 분담하여 쌓은 성은 금성 철벽같이 견고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나중에야 안 관가에서는 많은 돈을 하사하여 서장대 근처에다 [사당](/topic/사당)을 세워 청량당(淸凉堂) 이라 하고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그런데 이인고 부인 송씨(宋氏)도 역시 남편에 못지 않은 충렬한 부인이었다. 남편이 축성비 부족으로 낮과 밤으로 고심하는 것을 보고 하루는 그가 남편에게 멀리 여러 고을을돌아다녀서 기부금을 받아 그 축성비로 대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표연히 집을 나선 지 여러 달 만에 많은 액수의 기부금을 얻어서 이것을 배에 싣고 세밭나루[三田渡]에다달았을 때, 뜻밖에도 남편이 죽었다는 슬픈 [부고](/topic/부고)를 접하자 통분한 나머지 한강에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랐다.
관가에서는 그 부인의 충의를 또한 가상하게 여기고 그 강가 언덕 위에 사당을 세워 그 영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최상수의 채록 시기와 유사한 1938년 일본인 학자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와 아키바 다카시(秋葉隆)도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에서 매당왕신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옛날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에 공사의 지휘감독을 맡았던 홍대감이, 평소 청렴결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 비용을 횡령했다는 간인(奸人)의 중상모략으로 마침내사형에 처해[지게](/topic/지게)되었다. 목을 치는 사람이 그의 목을 자르자 갑자기 한 마리의 매가 날개가 묶인 채 그의 목에서 나와 서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홍대감의 욕심 없고 정직함을 증명하게 되었고, 그 매를 그의 영혼으로 믿고서 그를 매당왕신이라 칭하고 사당을 세워 이를 제사지냈다. 남한산 위의 화주당(化主堂)이 그것이며, 그의 처 산활부인(山活夫人)도 이 남편의 사형을 애통해하며 뚝섬 교외 한강변의 저자도(渚子島)에서 자살했으므로 그곳에도 충렬화주당(忠烈化主堂)이 세워져 있다. 현재 그것은 원통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많은 귀신과 인간의 원한을 봉하고 금하는 하나의 무당(巫堂)으로 되어 있다.

이 두 문면을 비교하면 매당왕신은 실존 인물이라는 점이 공통점이지만 이인고와 홍대감으로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그가 죽은 자리, 이른바 매바위 근처에 지은 당의 이름이 청량당과 화주당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그 부인이 자결한 곳이 삼전도(三田渡, 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있던 나루), 저자도(渚子島, 지금의 서울 옥수동과 압구정동 사이에 있던 섬, 이 섬의 흙을 공사에 이용하게 되면서 현재는 수몰되어 있음)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남한산성을 축조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장수와 관련되고, 그 장수가 매(鷹)로 변화여 신으로 좌정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가 죽은 장소보다 그의 부인이 죽은 장소가 오늘날 말하는 ‘물건너 화주당’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현재 남한산성에 남아있는 청량당과 동일한 신화로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

화주당은 그 신의 유래담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주신격이 매당(대)왕신이기보다는 그의 부인으로 보이지만 배우자를 함께 모시는 관념에 의해 매당(대)왕신도 함께 주신으로 모셔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서울굿의 무가에 보면 매당왕신보다는 그 부인에게 더 강조점이 놓여져 있다. 이들 신격이 호명되는 것이 ‘호구’, ‘말명’, ‘가망’이기때문이다. 서울굿에서 호구는 천연두 등에 죽은 영혼이거나 무속적 성지(聖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죽은 여성신이다. 무속적 성지라 함은 오늘날도 서울 무속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당들과 관련 있다. [금성당](/topic/금성당), 국사당, 관왕묘, 화주당, 수풀당 등이다. 이들 호구는 부정거리의 청배와 불사거리 등에 등장한다. 말명은 무당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무업을 하다 죽은 무녀는 말명이 된다. 가망은 불명확한 신격, 조상과 관련된 신격으로 이해된다.

아카마쓰 지조와 아키바 다카시가 1930년대 서울 무녀 배경재(裴敬載)에게서 채록한 문서에 등장하는 매당왕신과 그 부인은 다음과 같다.

시위들하소사
설명도대신말명(서울明圖大神萬明),
사위삼당말명(四位三堂萬明)
국내(國內)로 뎨당말명(諸堂萬明),
그연에상산말명(上山萬明)
열네아기당자말명, 수영반장말명
육조삼말(六曹三府), 부군말명(府君萬明),
배용남산에 불사말명(佛事萬明)
물건너화주당(化主堂),
매당왕신(鷹堂王神)의 산활말명왕십리수풀당(壽佛堂)에 열네애기자겨말명
동관암, 남관암, 정전(正殿)은 대전말명(大殿萬明)
[부정]

시위들하소사
만신의 설명도대신가망, 사위도삼당가망
궁외로졔당가망, 금성의대신가망
그연상산(德物上山)가망, 안산(內山)은 대국(大國)이라
천자대국의사신가망
한[우물](/topic/우물)섯우물에 물마누라룡[궁가](/topic/궁가)망
안말우리밧말우리선왕가망
수영반장가망육조삼말(六曹三府)의 부군가망, 배용남산에 불사가망
물건너화주당에 매당왕신(鷹堂王神) 산활가망 [가망]
(전략)
육조삼말에 부군호구
안남산졔졀국수(國師)밧남산도리태자
국가원당호구
물건너화주당에 매당왕신 산활호구 [호구]

무가의 문면에 따라 부인이 두 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를 매당(대)왕신의 처와 첩으로 관념한다. 1987년 김태곤?? 매대왕신 외에 대신할머니, 대신할아버지, 임씨할머니, 삼불제석, 칠성, 큰마님, 작은마님, 용[장군](/topic/장군), 신장, 곽곽선생, 은씨사신할아버지, 사신할아버지, 엄씨대신할머니, 박씨대신할머니 등을 모시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즉 여기서 ‘큰마님’, ‘작은마님’이 바로 처와 첩을 의미하게 된다.
참고문헌한국민간전설집 (최상수, 통문관, 1984)
서울시 동제당 조사 (장주근, 한국민속논고, 계몽사, 1986)
동신신앙 (김태곤, 서울 육백년사-민속, 서울특별시, 1990)
교통 (음성직, 한국대우신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하 (赤松智城·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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