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신흥동도서낭제

한국무속신앙사전
강원도 동해시 신흥동의 여러 [마을](/topic/마을)들이 함께 모여서 행하는 서낭제. 1980년 동해시가 탄생한 다음부터 신흥동내 골골마다 행하던 서낭제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지금은 신흥동전체가 모여 지내는 서낭제, 즉 도(都)서낭제 하나만 남아 있다.
definition
강원도 동해시 신흥동의 여러 [마을](/topic/마을)들이 함께 모여서 행하는 서낭제. 1980년 동해시가 탄생한 다음부터 신흥동내 골골마다 행하던 서낭제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지금은 신흥동전체가 모여 지내는 서낭제, 즉 도(都)서낭제 하나만 남아 있다.
mp3Cnt
0
wkorname
이한길
정의강원도 동해시 신흥동의 여러 [마을](/topic/마을)들이 함께 모여서 행하는 서낭제. 1980년 동해시가 탄생한 다음부터 신흥동내 골골마다 행하던 서낭제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지금은 신흥동전체가 모여 지내는 서낭제, 즉 도(都)서낭제 하나만 남아 있다.
정의강원도 동해시 신흥동의 여러 [마을](/topic/마을)들이 함께 모여서 행하는 서낭제. 1980년 동해시가 탄생한 다음부터 신흥동내 골골마다 행하던 서낭제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지금은 신흥동전체가 모여 지내는 서낭제, 즉 도(都)서낭제 하나만 남아 있다.
내용신흥동에는 본래 복상골, 서학골, 용소골, 관말 등 여러 자연촌락들에서 행하던 서낭제가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관말의 서낭제로 흡수통합되어서 오늘날 신흥동의 서낭제가 되었다. 그래서 도서낭제라고 한다. 현재 이 [마을](/topic/마을)의 제의는 ‘단오성황제’로 명명하고 있다.

1. 제의 일시 : 제의는 본래 정월에 날을 받아서 0시에 행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워낙 날씨가 춥고 마을의 어른들이 설을 쇠러 역귀성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마을에 [제관](/topic/제관)을 할 주민들이 없게 되었라고 한다. 이 때문에 2006년부터 서낭제의 날짜를 5월 5일로 정하고 오전 11시에 제의를 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단옷날이 성황님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2. 당집과 당목 : 당집은 처음에 서학골로 가는 다리 건너 오른편 둔덕의 무덤 부근에 위치하였다. 옛 [서낭당](/topic/서낭당)은 빈지로 벽채를 친 목조건축물로, [지붕](/topic/지붕)에는 청석을 올려놓아 나무지붕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도록 했다. 당 내부에는 [철마](/topic/철마)가 있었고, [위패](/topic/위패) 대신에 신위 세 분의 명칭을 [한지](/topic/한지)에 써서 벽에 붙여 놓았다. 그러나 광복이 되기 [직전](/topic/직전) 일본인들이 서낭당을 불태운 후에 이후 제의가 중단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뒤 박형순, 박용순, 양경모 등의 주민이 이 주축이 되어 서낭당을 새로 건립하면서 초등학교(지금은 폐교) 앞으로 위치를 옮겨 목조로 집을 짓고 [기와](/topic/기와)를 얹어서 제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당집은 달방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었다. 그때 고유제를 지내고 목조를 뜯어 불에 태우면서 술잔을 부어 놓고 “잠시 다른 데 가 계십시오”하고 절을 했다. 당시 제당 안에 있던 철마 한쌍(암수)이 이 과정에 분실되었다. 주민들은 당집의 수몰 보상비를 받아서 지금의 자리에 당집을 벽돌로 새로 건축하였다. 그 후 2005년에 비가 새는 것을 막고, 지붕과 벽을 새로 칠하고, 당 내부의 [장판](/topic/장판)을 교체하고, 문도 수리하고, [천장](/topic/천장)도 손질하고, 신을 모시는 [주독](/topic/주독)도 세 개를 제작하여 놓는 등 다시 당집을 수리하였다. 현재의 당집 크기는 가로 약 518㎝, 세로 약 334㎝, 높이 약 253㎝이고, 벽[돌담](/topic/돌담)이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돌아야 제단이 있다. 무속인들이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면서 제당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들이 수시로 당 청소를 하고 있다.

3. 신위 : 신위는 성황지신, 토지지신, 여역지신 등 3위이다. 서낭은 암서낭이라고 한다. 서낭의 성별은 서낭당을 만든 다음 처음에 올리는 이의 성별을 따져 결정하는데, 이 마을의 서낭당을 중수할 때 여성이 먼저 찾아와 제향했기 때문에 암서낭이 된 것이다.

4. [축문](/topic/축문)과 홀기 : 축문과 홀기는 예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것이었는데, 동해시로 행정구역이 변경 되기 전에 마을 이장이었던 김해수라는 분이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본래이곳의 주민이 아니었는데, 백복령 도로공사 관련자로 왔다가 이 마을 사람과 결혼하면서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축문과 축문에 붙어 있는 [진설도](/topic/진설도)가 강원도 동해시 효가동의 구(舊)축문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서 그가 만든 축문은 창작한 것이 아니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5. 제관 : 정월에 제향할 때에는 생기를 보아서 [헌관](/topic/헌관) 세명을 선정했다. 그러나 단오날로 날짜를 변경한 후로는 생기를 보지 않고 [초헌](/topic/초헌)관은 무조건 통장이 하고, [아헌](/topic/아헌)관은 노인회에서 결정하며, [종헌](/topic/종헌)관은 마을회의 참석자 중에서 연장자로 선정한다. 이들은 보통 7~10일 전에 선정하며, 선정한 다음 제관들에게 [망지](/topic/망지)를 주고 [마련방](/topic/마련방)에 올린다.

마련방에 오른 제관과 제집사는 초헌, 아헌, 종헌, 대축(大祝), 집례(執禮), 전례(典禮), 찬인(贊引), 봉향(奉香), 봉로(奉爐), [헌작](/topic/헌작)(獻爵), 전작(奠爵), 집사(執事), 동창(東唱), 서창(西唱), 공수(供需), 도신(禱神) 등의 직책이 부여된다. 공수는 음식을 장만하는 집이며, 도신은 삼척 지역에서도 곧잘 발견되는 용어로서 복재(卜-) 같은 기능을하며 제의를 주관하는 제관이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상갓집에 가서는 안 되는 등 가리는 것이 많다.

6. 제물 : 제물은 통장이 단오 전날에 묵호중앙시장으로 가서 구입한다. 제물은 제관의 부인들이 장만한다. [제상](/topic/제상)은 한 상을 차리지만 메는 세 그릇을 올리되, 백설기는 쌀 한말로 준비한다. 희생은 쇠머리를 사용한다. 생선은 주둥이와 꼬리는 치지 않은 채 가자미 다섯 마리, 곤들매기 다섯 마리를 쪄서 사용하며, 문어는 한 마리를 올리고 포는 북어포이다. 과일은 [삼실과](/topic/삼실과)(곶감, 밤, [대추](/topic/대추)), [사과](/topic/사과), 배를 사용하며 과줄은 사용하지만 과자는 사용하지 않는다. 두부전도 올리며, 채소는 무채와 콩나물이다. 탕은 어물탕, 맹탕, 육탕 등 3탕을 올린다. 제주는 청주를 사용한다. 제주는 제일(祭日) 일주일 전에 성황당 [마당](/topic/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누룩과 쌀 등을 넣은 술단지를 묻어서 만들었다. 그때유사는 입에 한지를 물고 정성을 들여 술을 담는데 서너 말을 빚는다. 제주로 쓰고 남은 것은 제관들이 [음복](/topic/음복)도 하고, 이튿날 무당을 불러와서 굿을 할 때 사용하였다. 지금은무당을 부르지 않는다.

7. 제의 절차 : [금줄](/topic/금줄)은 당집과 음식을 장만하는 회관에만 치고, 제관 집에는 치지 않는다. 당집은 일 년 내내 금줄을 쳐 놓은 상태지만 제의를 행하기 전에 금줄을 새것으로바꾼다. 이 마을에서는 제의를 지내기에 앞서 연습을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를 ‘강(講)’이고 이때 제대로 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기도 하였지만 최근에는 이 과정이 없어졌다고 한다.

제의 전날 제관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출발한다. 이들이 제당에 도착하면 봉로가 붙여 놓은 짚불을 타넘고 제당으로 들어가서 양초를 켜고 진설한다. 제의는 마을에 전승되는 홀기가 있어 홀기에 준하여 진행한다. 제사가 끝나면 소지를 올리는데 도신이 우선 올린 후 반장들이 올린다. 이전에는 각자 이름을 부르면서 소지를 여러 장 올렸지만지금은 반별로 모든 내용을 미리 한 장에 써서 올린다. 소지를 마치면 도신이 [꽹과리](/topic/꽹과리)를 치면서 마을의 평안을 빌고 명태를 제당에 걸어 놓고 신위 세 분을 위해 한지 석 장을접어 역시 제당에 걸어 둔다. 끝으로 참제자들은 간단히 음복례를 행한 다음 회관으로 이동하여 주민들과 함께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8. [영험담](/topic/영험담) : 성황신은 영험하여서 제사 때 부정한 사람이 오면 짐승이 나타나 부정한 사람에게 모래를 퍼부어 [공포](/topic/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 사람 집에도 나타나 해코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정한 사람은 서낭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또 부정한 사람이 제물을 사러 가면 짐승이 길가에 나타나 소란을 피운다고 한다. 그래서 제물 준비는 항상 깨끗한 사람이 준비했다.

9. 제비(祭費) : 비용은 50~60만 원 정도 이다. 마을기금으로 모두 충당할 수 있지만 서낭제사에 성의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가구당 3,000원을 갹출한다. 그 밖에도 성금도 받으며, 출향인사 가운데 서낭제를 지낼 때 협찬을 하는 이들도 있다. 50여 년 전에 서낭답이 있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

또 신흥동에서는 혹 비용이 모자랄 것 같으면 강(예행연습)을 할 때 헌관들에게 일종의 협찬금을 거두었다. 협찬금을 거둘 때 재미를 주기 위해 제의 연습 때 잘하면 잘했다고 헌금을 내라 하였고, 반대로 못하면 서투르다고 하여 벌금을 내라고 하였다. 결국 헌관을 하면 무조건 헌금을 내야 했다.
내용신흥동에는 본래 복상골, 서학골, 용소골, 관말 등 여러 자연촌락들에서 행하던 서낭제가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관말의 서낭제로 흡수통합되어서 오늘날 신흥동의 서낭제가 되었다. 그래서 도서낭제라고 한다. 현재 이 [마을](/topic/마을)의 제의는 ‘단오성황제’로 명명하고 있다.

1. 제의 일시 : 제의는 본래 정월에 날을 받아서 0시에 행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워낙 날씨가 춥고 마을의 어른들이 설을 쇠러 역귀성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마을에 [제관](/topic/제관)을 할 주민들이 없게 되었라고 한다. 이 때문에 2006년부터 서낭제의 날짜를 5월 5일로 정하고 오전 11시에 제의를 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단옷날이 성황님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2. 당집과 당목 : 당집은 처음에 서학골로 가는 다리 건너 오른편 둔덕의 무덤 부근에 위치하였다. 옛 [서낭당](/topic/서낭당)은 빈지로 벽채를 친 목조건축물로, [지붕](/topic/지붕)에는 청석을 올려놓아 나무지붕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도록 했다. 당 내부에는 [철마](/topic/철마)가 있었고, [위패](/topic/위패) 대신에 신위 세 분의 명칭을 [한지](/topic/한지)에 써서 벽에 붙여 놓았다. 그러나 광복이 되기 [직전](/topic/직전) 일본인들이 서낭당을 불태운 후에 이후 제의가 중단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뒤 박형순, 박용순, 양경모 등의 주민이 이 주축이 되어 서낭당을 새로 건립하면서 초등학교(지금은 폐교) 앞으로 위치를 옮겨 목조로 집을 짓고 [기와](/topic/기와)를 얹어서 제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당집은 달방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었다. 그때 고유제를 지내고 목조를 뜯어 불에 태우면서 술잔을 부어 놓고 “잠시 다른 데 가 계십시오”하고 절을 했다. 당시 제당 안에 있던 철마 한쌍(암수)이 이 과정에 분실되었다. 주민들은 당집의 수몰 보상비를 받아서 지금의 자리에 당집을 벽돌로 새로 건축하였다. 그 후 2005년에 비가 새는 것을 막고, 지붕과 벽을 새로 칠하고, 당 내부의 [장판](/topic/장판)을 교체하고, 문도 수리하고, [천장](/topic/천장)도 손질하고, 신을 모시는 [주독](/topic/주독)도 세 개를 제작하여 놓는 등 다시 당집을 수리하였다. 현재의 당집 크기는 가로 약 518㎝, 세로 약 334㎝, 높이 약 253㎝이고, 벽[돌담](/topic/돌담)이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돌아야 제단이 있다. 무속인들이 수시로 이곳을 드나들면서 제당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들이 수시로 당 청소를 하고 있다.

3. 신위 : 신위는 성황지신, 토지지신, 여역지신 등 3위이다. 서낭은 암서낭이라고 한다. 서낭의 성별은 서낭당을 만든 다음 처음에 올리는 이의 성별을 따져 결정하는데, 이 마을의 서낭당을 중수할 때 여성이 먼저 찾아와 제향했기 때문에 암서낭이 된 것이다.

4. [축문](/topic/축문)과 홀기 : 축문과 홀기는 예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것이었는데, 동해시로 행정구역이 변경 되기 전에 마을 이장이었던 김해수라는 분이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본래이곳의 주민이 아니었는데, 백복령 도로공사 관련자로 왔다가 이 마을 사람과 결혼하면서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마을의 축문과 축문에 붙어 있는 [진설도](/topic/진설도)가 강원도 동해시 효가동의 구(舊)축문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서 그가 만든 축문은 창작한 것이 아니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5. 제관 : 정월에 제향할 때에는 생기를 보아서 [헌관](/topic/헌관) 세명을 선정했다. 그러나 단오날로 날짜를 변경한 후로는 생기를 보지 않고 [초헌](/topic/초헌)관은 무조건 통장이 하고, [아헌](/topic/아헌)관은 노인회에서 결정하며, [종헌](/topic/종헌)관은 마을회의 참석자 중에서 연장자로 선정한다. 이들은 보통 7~10일 전에 선정하며, 선정한 다음 제관들에게 [망지](/topic/망지)를 주고 [마련방](/topic/마련방)에 올린다.

마련방에 오른 제관과 제집사는 초헌, 아헌, 종헌, 대축(大祝), 집례(執禮), 전례(典禮), 찬인(贊引), 봉향(奉香), 봉로(奉爐), [헌작](/topic/헌작)(獻爵), 전작(奠爵), 집사(執事), 동창(東唱), 서창(西唱), 공수(供需), 도신(禱神) 등의 직책이 부여된다. 공수는 음식을 장만하는 집이며, 도신은 삼척 지역에서도 곧잘 발견되는 용어로서 복재(卜-) 같은 기능을하며 제의를 주관하는 제관이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상갓집에 가서는 안 되는 등 가리는 것이 많다.

6. 제물 : 제물은 통장이 단오 전날에 묵호중앙시장으로 가서 구입한다. 제물은 제관의 부인들이 장만한다. [제상](/topic/제상)은 한 상을 차리지만 메는 세 그릇을 올리되, 백설기는 쌀 한말로 준비한다. 희생은 쇠머리를 사용한다. 생선은 주둥이와 꼬리는 치지 않은 채 가자미 다섯 마리, 곤들매기 다섯 마리를 쪄서 사용하며, 문어는 한 마리를 올리고 포는 북어포이다. 과일은 [삼실과](/topic/삼실과)(곶감, 밤, [대추](/topic/대추)), [사과](/topic/사과), 배를 사용하며 과줄은 사용하지만 과자는 사용하지 않는다. 두부전도 올리며, 채소는 무채와 콩나물이다. 탕은 어물탕, 맹탕, 육탕 등 3탕을 올린다. 제주는 청주를 사용한다. 제주는 제일(祭日) 일주일 전에 성황당 [마당](/topic/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누룩과 쌀 등을 넣은 술단지를 묻어서 만들었다. 그때유사는 입에 한지를 물고 정성을 들여 술을 담는데 서너 말을 빚는다. 제주로 쓰고 남은 것은 제관들이 [음복](/topic/음복)도 하고, 이튿날 무당을 불러와서 굿을 할 때 사용하였다. 지금은무당을 부르지 않는다.

7. 제의 절차 : [금줄](/topic/금줄)은 당집과 음식을 장만하는 회관에만 치고, 제관 집에는 치지 않는다. 당집은 일 년 내내 금줄을 쳐 놓은 상태지만 제의를 행하기 전에 금줄을 새것으로바꾼다. 이 마을에서는 제의를 지내기에 앞서 연습을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를 ‘강(講)’이고 이때 제대로 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기도 하였지만 최근에는 이 과정이 없어졌다고 한다.

제의 전날 제관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출발한다. 이들이 제당에 도착하면 봉로가 붙여 놓은 짚불을 타넘고 제당으로 들어가서 양초를 켜고 진설한다. 제의는 마을에 전승되는 홀기가 있어 홀기에 준하여 진행한다. 제사가 끝나면 소지를 올리는데 도신이 우선 올린 후 반장들이 올린다. 이전에는 각자 이름을 부르면서 소지를 여러 장 올렸지만지금은 반별로 모든 내용을 미리 한 장에 써서 올린다. 소지를 마치면 도신이 [꽹과리](/topic/꽹과리)를 치면서 마을의 평안을 빌고 명태를 제당에 걸어 놓고 신위 세 분을 위해 한지 석 장을접어 역시 제당에 걸어 둔다. 끝으로 참제자들은 간단히 음복례를 행한 다음 회관으로 이동하여 주민들과 함께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8. [영험담](/topic/영험담) : 성황신은 영험하여서 제사 때 부정한 사람이 오면 짐승이 나타나 부정한 사람에게 모래를 퍼부어 [공포](/topic/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 사람 집에도 나타나 해코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정한 사람은 서낭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또 부정한 사람이 제물을 사러 가면 짐승이 길가에 나타나 소란을 피운다고 한다. 그래서 제물 준비는 항상 깨끗한 사람이 준비했다.

9. 제비(祭費) : 비용은 50~60만 원 정도 이다. 마을기금으로 모두 충당할 수 있지만 서낭제사에 성의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가구당 3,000원을 갹출한다. 그 밖에도 성금도 받으며, 출향인사 가운데 서낭제를 지낼 때 협찬을 하는 이들도 있다. 50여 년 전에 서낭답이 있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는 않는다.

또 신흥동에서는 혹 비용이 모자랄 것 같으면 강(예행연습)을 할 때 헌관들에게 일종의 협찬금을 거두었다. 협찬금을 거둘 때 재미를 주기 위해 제의 연습 때 잘하면 잘했다고 헌금을 내라 하였고, 반대로 못하면 서투르다고 하여 벌금을 내라고 하였다. 결국 헌관을 하면 무조건 헌금을 내야 했다.
지역사례동해시에는 여러 곳에서 도서낭제가 있었다. 지금은 군부대 용지개발로 인하여 사라진 용정동에도 도서낭제가 있었고, 예전의 달방동도 도서낭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서낭제는 삼척시와 양양군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원덕읍 이천리 서낭제, 양양군 서면 서림리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삼척군지 (삼척군, 1988)
강원도 양양군 서낭제 전승중단원인에 관한 고찰 (이한길, 민속학연구 21, 국립민속박물관, 2007)
삼척화력 1·2호기 건설사업 예정부지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이한길, 관동대학교박물관, 2009)
동해시서낭제 (이한길, 민속원, 2010)
지역사례동해시에는 여러 곳에서 도서낭제가 있었다. 지금은 군부대 용지개발로 인하여 사라진 용정동에도 도서낭제가 있었고, 예전의 달방동도 도서낭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서낭제는 삼척시와 양양군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원덕읍 이천리 서낭제, 양양군 서면 서림리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삼척군지 (삼척군, 1988)
강원도 양양군 서낭제 전승중단원인에 관한 고찰 (이한길, 민속학연구 21, 국립민속박물관, 2007)
삼척화력 1·2호기 건설사업 예정부지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이한길, 관동대학교박물관, 2009)
동해시서낭제 (이한길, 민속원, 2010)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