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대왕

한국무속신앙사전
김부대왕
신라 제56대 왕(재위, 927~935)으로서 성은 김(金), 이름은 부(傅)이며 후대에 [마을](/topic/마을)공동체 신으로 추앙된 인물신격.
definition
신라 제56대 왕(재위, 927~935)으로서 성은 김(金), 이름은 부(傅)이며 후대에 [마을](/topic/마을)공동체 신으로 추앙된 인물신격.
mp3Cnt
0
wkorname
김창일
정의신라 제56대 왕(재위, 927~935)으로서 성은 김(金), 이름은 부(傅)이며 후대에 [마을](/topic/마을)공동체 신으로 추앙된 인물신격.
정의신라 제56대 왕(재위, 927~935)으로서 성은 김(金), 이름은 부(傅)이며 후대에 [마을](/topic/마을)공동체 신으로 추앙된 인물신격.
내용역사적 인물이 신격화되는 중요한 동인(動因)은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라는 요건 등을 지녀야 한다. [경순왕](/topic/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비운의 왕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신격으로 추앙받게 하는 계기가 된다. 즉 비극적 삶에 대한 연민이 신격화에 크게 작용한 것이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자 고려 태조는 경순왕을 우대한다. 장녀 낙랑공주를 경순왕의 아내로 삼게 하고,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하면서 정승공에 봉하여 위계(位階)를 태자 위에 놓이게 하는 등 대우를 해 준다.

개경에 도착한 경순왕은 고려 태조에게 칭신(稱臣)하겠다는 글을 보내게 되고, 태조가 일단 물리쳤으나, 고려의 신하들은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땅에 두 임금이 없다”고 하면서 경순왕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을 간청하여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고려 태조가 특별대우를 해 주긴 했지만 일국의 왕으로서 삶과 신하로서의 삶은 비교할 수 없는 급격한 신분 변동임이 틀림없다. 경순왕이 귀부하기 위해 개경으로 가는 광경을『고려사(高麗史)』에서 묘사하고 있다.

"신라왕이 백료(百僚)를 거느리고 왕도를 떠남에 사인(士人)과 서민(庶民)들이 다 뒤를 따르는지라. 향차(香車) 보마(寶馬)가 연달아 30리에 뻗치고, 길을 가득 메워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을 둘러친 것 같았다."

이러한 일은 일찍이 유래가 없던 사건으로 백성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자신이 통치하던 나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은 민중에게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게 하고,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로서 경순왕이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즉 나라를 양도한 무능력한 왕으로서의 면모는 숨어 들고 백성들을 위해 천년을 이어온 왕조를 포기한 면이 강조된 것이다. 이로써 경순왕은 민중의 영웅으로 부각되면서 차츰 영험함을지닌 신으로 추앙을 받게 되어 나라를 수호하는 호국룡 또는 [마을](/topic/마을) 수호신으로 부활한다. 민중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행위나 세세한 사적을 기억하기보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적 시각을 투영시켜 새롭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내용역사적 인물이 신격화되는 중요한 동인(動因)은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라는 요건 등을 지녀야 한다. [경순왕](/topic/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비운의 왕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신격으로 추앙받게 하는 계기가 된다. 즉 비극적 삶에 대한 연민이 신격화에 크게 작용한 것이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자 고려 태조는 경순왕을 우대한다. 장녀 낙랑공주를 경순왕의 아내로 삼게 하고,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하면서 정승공에 봉하여 위계(位階)를 태자 위에 놓이게 하는 등 대우를 해 준다.

개경에 도착한 경순왕은 고려 태조에게 칭신(稱臣)하겠다는 글을 보내게 되고, 태조가 일단 물리쳤으나, 고려의 신하들은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땅에 두 임금이 없다”고 하면서 경순왕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을 간청하여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고려 태조가 특별대우를 해 주긴 했지만 일국의 왕으로서 삶과 신하로서의 삶은 비교할 수 없는 급격한 신분 변동임이 틀림없다. 경순왕이 귀부하기 위해 개경으로 가는 광경을『고려사(高麗史)』에서 묘사하고 있다.

"신라왕이 백료(百僚)를 거느리고 왕도를 떠남에 사인(士人)과 서민(庶民)들이 다 뒤를 따르는지라. 향차(香車) 보마(寶馬)가 연달아 30리에 뻗치고, 길을 가득 메워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을 둘러친 것 같았다."

이러한 일은 일찍이 유래가 없던 사건으로 백성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자신이 통치하던 나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은 민중에게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게 하고,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로서 경순왕이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즉 나라를 양도한 무능력한 왕으로서의 면모는 숨어 들고 백성들을 위해 천년을 이어온 왕조를 포기한 면이 강조된 것이다. 이로써 경순왕은 민중의 영웅으로 부각되면서 차츰 영험함을지닌 신으로 추앙을 받게 되어 나라를 수호하는 호국룡 또는 [마을](/topic/마을) 수호신으로 부활한다. 민중은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행위나 세세한 사적을 기억하기보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적 시각을 투영시켜 새롭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역사김부대왕([경순왕](/topic/경순왕))은 927년 후백제 [견훤](/topic/견훤)의 신라 침공으로 경애왕이 사망한 뒤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긴 했으나 이미 후백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영토는 날로 줄어 왕경을 제외한 국토 대부분을 잃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국가재정을 지탱할 길이 막힌 데다 민심마저 떠난 최악의 상황이었다. 또한 935년에는 후백제의 왕인 견훤이 장남 신검(神劍)을 비롯한 형제들에 의해 유폐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금산(金山)의 불사(佛寺)에 유폐된 견훤은 3개월 뒤 탈출하여 고려로 망명한다. 이렇듯 신라를 둘러싼 정세가 더 이상 고려의 보호국 처지에서 나라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게 되자 경순왕은 935년 고려에 귀부(歸附)한다. 고려 태조는 유화정책을 펴 경순왕에게 유화궁(柳花宮)과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하고 정승공(政丞公)에 봉하였다. 신라의 마지막왕이자 고려 초의 문신으로 살다가 978년에 일생을 마쳤다. 능은 경기도 연천군에 있으며 1975년 6월25일에 ‘사적 제244호’로 지정되었다.
역사김부대왕([경순왕](/topic/경순왕))은 927년 후백제 [견훤](/topic/견훤)의 신라 침공으로 경애왕이 사망한 뒤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긴 했으나 이미 후백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영토는 날로 줄어 왕경을 제외한 국토 대부분을 잃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국가재정을 지탱할 길이 막힌 데다 민심마저 떠난 최악의 상황이었다. 또한 935년에는 후백제의 왕인 견훤이 장남 신검(神劍)을 비롯한 형제들에 의해 유폐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금산(金山)의 불사(佛寺)에 유폐된 견훤은 3개월 뒤 탈출하여 고려로 망명한다. 이렇듯 신라를 둘러싼 정세가 더 이상 고려의 보호국 처지에서 나라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게 되자 경순왕은 935년 고려에 귀부(歸附)한다. 고려 태조는 유화정책을 펴 경순왕에게 유화궁(柳花宮)과 경주를 식읍으로 하사하고 정승공(政丞公)에 봉하였다. 신라의 마지막왕이자 고려 초의 문신으로 살다가 978년에 일생을 마쳤다. 능은 경기도 연천군에 있으며 1975년 6월25일에 ‘사적 제244호’로 지정되었다.
지역사례김부대왕을 신격으로 모시는 제당으로는 시흥시 군자봉 성황당, 안산시 잿머리 성황당, 우음도 음섬 성황당, 수원시 평동 벌말 당집, 인제군 김부리(金富里) 대왕각(大王閣) 등이있다. 현재 당집은 소실되었으나 충남 보령시 남포면 제석리 지석굴의 당제에서도 김부대왕을 신격으로 모시고 있다.

경기도 서부지역의 제당에서 김부대왕을 신격으로 많이 모시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시흥 군자봉 성황당과 안산 잿머리 성황당은 인접해 있으면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시흥 군자봉 성황당에서의 김부대왕은 중심 신앙 대상이며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데 반해 인근의 안산 잿머리 성황당에서의 김부대왕은 홍씨부인을 못생겼다는 이유로 소박하여 부인과 함께 장모(안씨)까지 원혼이 되게 만드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안산 잿머리 성황당에서는 원혼이 된 부인과 장모가 서희(徐熙)의 꿈에 나타나 송나라 사신행을 도왔다는 이야기로, 중심인물은 두 부인과 서희이며 김부대왕은 보조인물로서의 기능만 담당한다. 이것은 두 지역의 [유가돌기](/topic/유가돌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시흥 군자봉 성황제에서는김부대왕 서낭대 하나를 들고, 안산 잿머리 성황제에서는 안씨와 홍씨 두 개의 성황대를 들어 각각의 당에서 모시는 중심 신격이 누구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또한 시흥 군자봉 성황당에서는 부인이 안씨부인이고, 장모가 홍씨부인인데 반해 안산 잿머리 성황당에서는 홍씨가 부인이고 안씨가 장모로 뒤바뀌어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처럼 인접한 두 제당에서 안씨·홍씨부인과 김부대왕을 신으로 모신다는 상호관련성 속에서 김부대왕이 중심 역할을 하느냐 두 여인이 중심역할을 하느냐, 안씨와 홍씨가 시흥 군자봉에서는 부인과 장모로 나타나고 안산 잿머리당에서는 장모와 부인으로 나타나는 차이점이 있다.

김부대왕에 관한 설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크게 경주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호국룡형’과 [경순왕](/topic/경순왕)의 유적지를 따라 전승되는 ‘신격형’이 있다. 이들 전설은 비록현실에서는 왕으로서 무능력했을망정 죽어서는 백성들을 위하는 임금으로 묘사된다. 현실에서는 패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 경순왕의 양위가 오히려 백성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선택이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경순왕과 관련된 유적으로 경주 숭혜전(崇惠殿), 하동 경천묘(敬天廟), 보령 경모전(敬慕殿), 영주 숭은전(崇恩殿), 평창 숭인전(崇仁殿), 경주 대왕전(大王殿), 월악산덕주사(德周寺)와 세계사(世界寺)가 있다. 또 원주 용화산 미륵상과 인제 갑둔리5층석탑에 얽힌 경순왕 전설 등이 있다.

백성들은 김부대왕을 동정하고 숭앙하면서 각지에 제당과 [사당](/topic/사당)을 세웠다. 이렇듯 각지에 김부대왕을 모시는 당이 세워진 것은 민중의 신으로서 김부대왕이 그만큼 깊이 뿌리내렸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참고문헌강원도 인제군 남면 일대의 석탑 (신종원, 고문화 42·43,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93)
한국의 [마을](/topic/마을)제당 3 (국립민속박물관, 1998)
경기도의 굿 (하주성, 경기문화재단, 1999)
[경순왕](/topic/경순왕) 설화의 형성 배경과 의미 연구 (김용덕, 설화와 역사, 집문당, 2000)
수원문화의 뿌리 (김용국·설성경, 수원문화원, 2000)
수원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기전문화재연구원, 2000)
보령의 동제 (대천문화원, 2001)
경순왕의 귀부와 고려초기 신라계 세력의 기반 (황선영, 한국중세사연구 14, 한국중세사학회, 2003)
구비담론으로 본 군자봉 성황제 (장장식, 한국민속학 40, 한국민속학회, 2004)
시흥 군자봉성황제 (황인완, 巫 굿과 음식 2,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시흥군자봉 성황제의 절차와 성격 (이용범, 시흥군자봉 성황제, 시흥문화원, 2005)
한국의 성황신앙과 군자봉 성황사 (서영대, 시흥군자봉 성황제, 시흥문화원, 2005)
시흥·안산의 성황신과 성황당 설화 (송화섭, 시흥군자봉 성황제, 시흥문화원, 2005)
안산 잿머리성황제 (김헌선, 巫 굿과 음식 2,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新罗第56代王(在位,927~935),是被后人奉为村庄共同体神的人物神。

历史人物被神格化的直接原因是该人物具有卓越的才能,或者是悲剧事件的牺牲者等。“金傅大王”是新罗的最后一个国王,他是没有守住王国的悲剧国王,因此被人奉为神。他致使王国沦丧无能的一面被掩盖起来,而强调他为了百姓而放弃已延续千年王朝的一面。由此,金傅大王成为民众英雄,被人推崇为灵验的神,复活为守护国家的“护国龙”或“村庄守护神”。百姓们出于对金傅大王的同情和崇敬,在各地设立了祭堂和祠堂。

供奉金傅大王的祭堂有京畿道始兴市君子峰城隍堂,京畿道安山市城头里城隍堂,京畿道华城市牛音岛城隍堂,京畿道水原市坪洞荒村神堂,江原道麟蹄郡金富里大王阁等。各地设有供奉金傅大王的神堂,反过来证明金傅大王作为民众之神,已深深扎根于民众心中。
Kim Bu Daewang was the 56th king of Silla who reigned from 927 to 935, deified and worshipped by later generations as a village god.

In Korean folk religion, the deification of historical figures took place when the individual possessed extradordinary talent or fell victim to tragic circumstances. Kim Bu falls under the second category, for he was the last king of Silla, and lost his kingdom. His reputation as an incompetent defeated ruler was shadowed by the emphasis of his decision to surrender a 1, 000-year dynasty for the sake of his people, which turned him into a hero of the people, then gradually into a deity possessing miraculous powers, and finally to be reborn as a state guardian dragon or a village guardian god. Shrines were built around the country to worship the king as an object of sympathy and of reverence, including the village deity shrines at Jaenmeori in Ansan and on the island of Eumseom in Hwaseong, both in Gyeonggi Province; the shrine at Beolmal in Suwon, Gyeonggi Province; and the Great King Pavilion in the village of Kim Bu in Inje, Gangwon Province. The proliferation of shrine dedicated to Great King Kim Bu indicates that the worship of this deity as a god of the people was a deeprooted phenomenon.
Kim Bu Daewang era el quincuagésimo sexto rey del reino Silla (reinado de 927 a 935), fue deificado como un dios tutelar del pueblo por las generaciones posteriores.

Todas las figuras reales que llegaron a ser deificadas tenían una capacidad ordinaria o eran víctimas de tragedias. El rey Kim Bu el grande fue endiosado por el hecho de que él fracasó en los esfuerzos por proteger el reino Silla como el último rey del reino. Es decir, se destacó la determinación de rendirse al reino de Kim Bu Daewang y desapareció su imagen como un rey incapaz para reinar. De esta manera, el rey Kim Bu Daewang llegó a ser un héroe nacional, por lo que se convirtió en un dios tutelar del pueblo o un dragón protector del Estado. Los ciudadanos del reino Silla eleaboraron los santuarios de Kim Bu Daewang en las distintas partes para expresar su simpatía y adoración a él. Los santuarios de Kim Bu Daewang están ubicados en Seonghwangdang de Gunjabong de la ciudad de Siheung, Jaetmeori Seonghwangdang de la ciudad de Ansan, Seonghwangdang de la ciudad de Eumsung de la isla de Ueumdo, Dangjip de Beolmal de Pyeongdong de la ciudad de Suwon. Estas localidades se sitúan en la provincia de Gyeonggi-do. Además se encuentra un santuario de Kim Bu Daewang llamado Kimburi Daewanggak en la ciudad de Inje de la provincia de Gangwon-do. Teniendo todo esto en cuenta, se puede decir que la creencia del pueblo en el rey Kim Bu Daewang como una divinidad es profunda y firme.
지역사례김부대왕을 신격으로 모시는 제당으로는 시흥시 군자봉 성황당, 안산시 잿머리 성황당, 우음도 음섬 성황당, 수원시 평동 벌말 당집, 인제군 김부리(金富里) 대왕각(大王閣) 등이있다. 현재 당집은 소실되었으나 충남 보령시 남포면 제석리 지석굴의 당제에서도 김부대왕을 신격으로 모시고 있다.

경기도 서부지역의 제당에서 김부대왕을 신격으로 많이 모시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시흥 군자봉 성황당과 안산 잿머리 성황당은 인접해 있으면서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시흥 군자봉 성황당에서의 김부대왕은 중심 신앙 대상이며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데 반해 인근의 안산 잿머리 성황당에서의 김부대왕은 홍씨부인을 못생겼다는 이유로 소박하여 부인과 함께 장모(안씨)까지 원혼이 되게 만드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안산 잿머리 성황당에서는 원혼이 된 부인과 장모가 서희(徐熙)의 꿈에 나타나 송나라 사신행을 도왔다는 이야기로, 중심인물은 두 부인과 서희이며 김부대왕은 보조인물로서의 기능만 담당한다. 이것은 두 지역의 [유가돌기](/topic/유가돌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시흥 군자봉 성황제에서는김부대왕 서낭대 하나를 들고, 안산 잿머리 성황제에서는 안씨와 홍씨 두 개의 성황대를 들어 각각의 당에서 모시는 중심 신격이 누구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또한 시흥 군자봉 성황당에서는 부인이 안씨부인이고, 장모가 홍씨부인인데 반해 안산 잿머리 성황당에서는 홍씨가 부인이고 안씨가 장모로 뒤바뀌어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처럼 인접한 두 제당에서 안씨·홍씨부인과 김부대왕을 신으로 모신다는 상호관련성 속에서 김부대왕이 중심 역할을 하느냐 두 여인이 중심역할을 하느냐, 안씨와 홍씨가 시흥 군자봉에서는 부인과 장모로 나타나고 안산 잿머리당에서는 장모와 부인으로 나타나는 차이점이 있다.

김부대왕에 관한 설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크게 경주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호국룡형’과 [경순왕](/topic/경순왕)의 유적지를 따라 전승되는 ‘신격형’이 있다. 이들 전설은 비록현실에서는 왕으로서 무능력했을망정 죽어서는 백성들을 위하는 임금으로 묘사된다. 현실에서는 패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 경순왕의 양위가 오히려 백성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선택이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경순왕과 관련된 유적으로 경주 숭혜전(崇惠殿), 하동 경천묘(敬天廟), 보령 경모전(敬慕殿), 영주 숭은전(崇恩殿), 평창 숭인전(崇仁殿), 경주 대왕전(大王殿), 월악산덕주사(德周寺)와 세계사(世界寺)가 있다. 또 원주 용화산 미륵상과 인제 갑둔리5층석탑에 얽힌 경순왕 전설 등이 있다.

백성들은 김부대왕을 동정하고 숭앙하면서 각지에 제당과 [사당](/topic/사당)을 세웠다. 이렇듯 각지에 김부대왕을 모시는 당이 세워진 것은 민중의 신으로서 김부대왕이 그만큼 깊이 뿌리내렸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참고문헌강원도 인제군 남면 일대의 석탑 (신종원, 고문화 42·43,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93)
한국의 [마을](/topic/마을)제당 3 (국립민속박물관, 1998)
경기도의 굿 (하주성, 경기문화재단, 1999)
[경순왕](/topic/경순왕) 설화의 형성 배경과 의미 연구 (김용덕, 설화와 역사, 집문당, 2000)
수원문화의 뿌리 (김용국·설성경, 수원문화원, 2000)
수원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기전문화재연구원, 2000)
보령의 동제 (대천문화원, 2001)
경순왕의 귀부와 고려초기 신라계 세력의 기반 (황선영, 한국중세사연구 14, 한국중세사학회, 2003)
구비담론으로 본 군자봉 성황제 (장장식, 한국민속학 40, 한국민속학회, 2004)
시흥 군자봉성황제 (황인완, 巫 굿과 음식 2,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시흥군자봉 성황제의 절차와 성격 (이용범, 시흥군자봉 성황제, 시흥문화원, 2005)
한국의 성황신앙과 군자봉 성황사 (서영대, 시흥군자봉 성황제, 시흥문화원, 2005)
시흥·안산의 성황신과 성황당 설화 (송화섭, 시흥군자봉 성황제, 시흥문화원, 2005)
안산 잿머리성황제 (김헌선, 巫 굿과 음식 2,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新罗第56代王(在位,927~935),是被后人奉为村庄共同体神的人物神。

历史人物被神格化的直接原因是该人物具有卓越的才能,或者是悲剧事件的牺牲者等。“金傅大王”是新罗的最后一个国王,他是没有守住王国的悲剧国王,因此被人奉为神。他致使王国沦丧无能的一面被掩盖起来,而强调他为了百姓而放弃已延续千年王朝的一面。由此,金傅大王成为民众英雄,被人推崇为灵验的神,复活为守护国家的“护国龙”或“村庄守护神”。百姓们出于对金傅大王的同情和崇敬,在各地设立了祭堂和祠堂。

供奉金傅大王的祭堂有京畿道始兴市君子峰城隍堂,京畿道安山市城头里城隍堂,京畿道华城市牛音岛城隍堂,京畿道水原市坪洞荒村神堂,江原道麟蹄郡金富里大王阁等。各地设有供奉金傅大王的神堂,反过来证明金傅大王作为民众之神,已深深扎根于民众心中。
Kim Bu Daewang was the 56th king of Silla who reigned from 927 to 935, deified and worshipped by later generations as a village god.

In Korean folk religion, the deification of historical figures took place when the individual possessed extradordinary talent or fell victim to tragic circumstances. Kim Bu falls under the second category, for he was the last king of Silla, and lost his kingdom. His reputation as an incompetent defeated ruler was shadowed by the emphasis of his decision to surrender a 1, 000-year dynasty for the sake of his people, which turned him into a hero of the people, then gradually into a deity possessing miraculous powers, and finally to be reborn as a state guardian dragon or a village guardian god. Shrines were built around the country to worship the king as an object of sympathy and of reverence, including the village deity shrines at Jaenmeori in Ansan and on the island of Eumseom in Hwaseong, both in Gyeonggi Province; the shrine at Beolmal in Suwon, Gyeonggi Province; and the Great King Pavilion in the village of Kim Bu in Inje, Gangwon Province. The proliferation of shrine dedicated to Great King Kim Bu indicates that the worship of this deity as a god of the people was a deeprooted phenomenon.
Kim Bu Daewang era el quincuagésimo sexto rey del reino Silla (reinado de 927 a 935), fue deificado como un dios tutelar del pueblo por las generaciones posteriores.

Todas las figuras reales que llegaron a ser deificadas tenían una capacidad ordinaria o eran víctimas de tragedias. El rey Kim Bu el grande fue endiosado por el hecho de que él fracasó en los esfuerzos por proteger el reino Silla como el último rey del reino. Es decir, se destacó la determinación de rendirse al reino de Kim Bu Daewang y desapareció su imagen como un rey incapaz para reinar. De esta manera, el rey Kim Bu Daewang llegó a ser un héroe nacional, por lo que se convirtió en un dios tutelar del pueblo o un dragón protector del Estado. Los ciudadanos del reino Silla eleaboraron los santuarios de Kim Bu Daewang en las distintas partes para expresar su simpatía y adoración a él. Los santuarios de Kim Bu Daewang están ubicados en Seonghwangdang de Gunjabong de la ciudad de Siheung, Jaetmeori Seonghwangdang de la ciudad de Ansan, Seonghwangdang de la ciudad de Eumsung de la isla de Ueumdo, Dangjip de Beolmal de Pyeongdong de la ciudad de Suwon. Estas localidades se sitúan en la provincia de Gyeonggi-do. Además se encuentra un santuario de Kim Bu Daewang llamado Kimburi Daewanggak en la ciudad de Inje de la provincia de Gangwon-do. Teniendo todo esto en cuenta, se puede decir que la creencia del pueblo en el rey Kim Bu Daewang como una divinidad es profunda y firme.
김부대왕제 진설장면
3334
김부대왕제 진설장면
김부탑 전경
3333
김부탑 전경
김부대왕각
3332
김부대왕각
김부대왕제 진설장면
3334
김부대왕제 진설장면
김부탑 전경
3333
김부탑 전경
김부대왕각
3332
김부대왕각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