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고동부군당

한국무속신앙사전
서울의 한강 유역에 위치한 [마을](/topic/마을)을 수호하는 부군신을 모신 당. 1973년 11월 26일에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200-2[번지](/topic/번지)에 있다.
definition
서울의 한강 유역에 위치한 [마을](/topic/마을)을 수호하는 부군신을 모신 당. 1973년 11월 26일에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200-2[번지](/topic/번지)에 있다.
mp3Cnt
0
wkorname
김은희
정의서울의 한강 유역에 위치한 [마을](/topic/마을)을 수호하는 부군신을 모신 당. 1973년 11월 26일에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200-2[번지](/topic/번지)에 있다.
내용본당의 내부에는 정면과 왼쪽 벽면에 태조 내외 및 삼불제석의 화분이 모셔져 있고, 그 아래쪽 삼면으로 제물을 진설할 수 있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서빙고동부군당의 제의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 유교식 제례를 기본으로 하여 대체로 3년 주기로 한 번 무당의 굿이 함께 열린다. 예전에는 굿 비용이 충분하게 추렴되면 무당의 굿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유교식 제례만 했다고 한다. 현재는 유교식 제례만 올린다.

1978년에 조사된 서빙고동부군당굿에서는 유교식 제례를 마친 후 [마을](/topic/마을) 노인회를 중심으로 한 부군당굿이 열렸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정초 차례를 지내고 부군당에 올라와 부군님 내외에게 세배를 드린 뒤, 마을 어르신들께 정초 문안을 올렸다. 정월 초하루는 한강변의 인근 마을에서도 부군당굿이 열리는 등 대단한 축제의 날이었다. 부군당굿에서 핵심 굿거리는 성주거리라고 할 수 있다. 성주거리에서 성주대를 잡아 성주신을 부군당에 좌정시켜 모심으로써 일 년 동안에 마을 주민들이 안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부군당굿이 열리는 현장에서 마을 주민들은 공동체로서의 결속을 다지고, 마지막에 신이 드신 음식을 함께 먹음으로 동질감을 만들어 간다.

서빙고동부군당굿은 ‘서빙고동 부군당 치성위원회(西氷庫洞 府君堂 致誠委員會)’가 결성되어 이 단체가 실질적인 제를 주관하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9명의 임원이 [제관](/topic/제관)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치성위원회와 함께 [단골](/topic/단골)[만신](/topic/만신)인 당주무당은 장씨 할머니로 불리는 장남옥 만신이 당제일(堂祭日)이 되면 마을 주민들을 위한 축원발원의 기도를 올린다.
참고문헌서울민속대관 1-민간신앙편 (서울특별시, 1990)
한국의 향토신앙 (장주근, 을유문화사, 1998)
역사서빙고동부군당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서빙고동부군당에는 부군당 중수기 2점, 위원들의 이름을 기록한 [현판](/topic/현판) 3점이 등 총 5개의 현판이 있다. 당내의 [서까래](/topic/서까래)에 걸려 있는 현판에 ‘崇禎紀元上之十三乙亥四月十八日重建’이라는 기록을 미루어 보아 늦어도 인조 13년(1635)에는 당이 세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판의 크기는 가로 75cm, 세로 25cm이다.

또한 인조 13년의 중건 기록과 함께 ‘老人稧座目幷序’라고 쓰인 현판의 끝에는 ‘辛卯五月’이라는 기록과 ‘里中稧員座目’이라는 내용과 함께 ‘光武七年癸卯五月’이라는 기록이 있어 인조 이후 지속적으로 부군당이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지금의 서빙고동부군당은 일제강점기의 초기인 1910년대에 일본군이 특무대 훈련장을 만들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서빙고동부군당에 모시고 있는 화분은 무속적 자료로서도 중요하지만 조선시대 회화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시내와 인근 지역 부군당에 모셔진 신상의 그림은 민간회화의 전통과 기법적 특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형태서빙고동부군당은 총 265㎡의 규모에 신을 모신 부군당 본당과 그 왼편으로 [제물](/topic/제물)청이 있으며, 본당의 왼쪽 뒤편으로 터주대가 놓여 있다.

본당의 형태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10㎡ 안팎의 [기와](/topic/기와)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 [한옥](/topic/한옥)이다. 제물청은 50㎡ 규모의 기와 맞배지붕집으로, 하주청이라고 부른다. 하주청에는 부군당굿을 준비하기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부엌](/topic/부엌), 쉴 수 있는 [마루](/topic/마루), [온돌](/topic/온돌)방과 함께 제기와 기물들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있다.

부군당의 정면에는 당의 주신(主神)인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topic/이성계)(李成桂, 1335~1408)와 그 부인의 화분이 나란히 모셔져 있고, 그 왼쪽 벽면에는 삼불제석(三佛帝釋)이 모셔져 있다. 강씨부인(康氏婦人)으로 알려져 있는 이태조 부인상은 두 손을 맞잡고 있는 형태이며 좌우에 시녀가 한 사람씩 서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무·굿과 음식 12005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서울진오기굿 연구변지선2007
민속원서울굿의 이해최진아2007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