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묵

한국무속신앙사전
충청남도 지역 가정신앙에서 [안택](/topic/안택)을 할 때 도깨비 터에 올리는 [메밀](/topic/메밀)로 만든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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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지역 가정신앙에서 [안택](/topic/안택)을 할 때 도깨비 터에 올리는 [메밀](/topic/메밀)로 만든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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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정의충청남도 지역 가정신앙에서 [안택](/topic/안택)을 할 때 도깨비 터에 올리는 [메밀](/topic/메밀)로 만든 묵.
정의충청남도 지역 가정신앙에서 [안택](/topic/안택)을 할 때 도깨비 터에 올리는 [메밀](/topic/메밀)로 만든 묵.
내용[메밀](/topic/메밀)의 알맹이를 갈아 만든 앙금을 풀처럼 쑤어 식혀서 굳힌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때 충청도 지역에서는 메밀묵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이 있었을 정도로 지역음식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메밀묵을 많이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정신앙에서도 도깨비를 달래는 음식으로 메밀묵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메밀묵 덩[어리](/topic/어리)는 돌처럼 기운을 눌러 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업화와 주택의 변[화로](/topic/화로) 인해 이러한 풍속은 사라졌다.
참고문헌雅言覺非, 충청도명물 진천메물묵 (박찬희, 별건곤 24, 1929)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내용[메밀](/topic/메밀)의 알맹이를 갈아 만든 앙금을 풀처럼 쑤어 식혀서 굳힌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때 충청도 지역에서는 메밀묵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이 있었을 정도로 지역음식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메밀묵을 많이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정신앙에서도 도깨비를 달래는 음식으로 메밀묵을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메밀묵 덩[어리](/topic/어리)는 돌처럼 기운을 눌러 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업화와 주택의 변[화로](/topic/화로) 인해 이러한 풍속은 사라졌다.
참고문헌雅言覺非, 충청도명물 진천메물묵 (박찬희, 별건곤 24, 1929)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역사[메밀](/topic/메밀)은 한반도 자생 작물이다. 이것의 알맹이로 묵을 쑤어 먹은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메밀묵과 관련된 고대 문헌이나 고고학적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역사 이래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조선후기 문헌에 [녹두](/topic/녹두)묵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메밀묵은 매우 일상적인 음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메밀의 한자어는 교맥(蕎麥)이며 조선에서는 ‘모밀’이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일제강점기 때 잡지 『별건곤』에서는 ‘메물묵’이라고 적었다.
역사[메밀](/topic/메밀)은 한반도 자생 작물이다. 이것의 알맹이로 묵을 쑤어 먹은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메밀묵과 관련된 고대 문헌이나 고고학적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역사 이래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조선후기 문헌에 [녹두](/topic/녹두)묵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메밀묵은 매우 일상적인 음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메밀의 한자어는 교맥(蕎麥)이며 조선에서는 ‘모밀’이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일제강점기 때 잡지 『별건곤』에서는 ‘메물묵’이라고 적었다.
형태『별건곤』에서는 “한주발 그득하게 갓다놋는데 쳠경보면 국수장국인가하고 속기가 쉽다. 그것은 무엇보담 묵이 국수발과 갓치 가늘은 까닭이다. 비비기는 대개는 고[기장](/topic/기장)ㅅ국에 비벼서 먹는데”라고 적었다. 사각형의 [도토리](/topic/도토리)묵과 달리 [메밀](/topic/메밀)묵은 국수처럼 길게 썰어서 큰 밥그릇에 담고 여기에 쇠고기 삶은 국물을 부은 다음에 양념을 쳐서 비벼 먹는다. 그러나 가정신앙의 [제물](/topic/제물)로 사용할 경우 덩[어리](/topic/어리)째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태『별건곤』에서는 “한주발 그득하게 갓다놋는데 쳠경보면 국수장국인가하고 속기가 쉽다. 그것은 무엇보담 묵이 국수발과 갓치 가늘은 까닭이다. 비비기는 대개는 고[기장](/topic/기장)ㅅ국에 비벼서 먹는데”라고 적었다. 사각형의 [도토리](/topic/도토리)묵과 달리 [메밀](/topic/메밀)묵은 국수처럼 길게 썰어서 큰 밥그릇에 담고 여기에 쇠고기 삶은 국물을 부은 다음에 양념을 쳐서 비벼 먹는다. 그러나 가정신앙의 [제물](/topic/제물)로 사용할 경우 덩[어리](/topic/어리)째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사례예전에 시골이나 산골에서는 도깨비가 잘 나오는 집이나 장소를 도깨비터라고 불렀다. 조사보고에 따르면 충남지역에서는 [안택](/topic/안택)고사를 지낼 때 집안에 도깨비터라고 여겨지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반드시 [메밀](/topic/메밀)묵을 올렸다고 한다. 집을 지을 때도 집터의 기운이 셀 것 같으면 울안의 네 귀퉁이에 메밀묵을 갖다 놓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사용하는 메밀묵은 메밀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지역사례예전에 시골이나 산골에서는 도깨비가 잘 나오는 집이나 장소를 도깨비터라고 불렀다. 조사보고에 따르면 충남지역에서는 [안택](/topic/안택)고사를 지낼 때 집안에 도깨비터라고 여겨지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반드시 [메밀](/topic/메밀)묵을 올렸다고 한다. 집을 지을 때도 집터의 기운이 셀 것 같으면 울안의 네 귀퉁이에 메밀묵을 갖다 놓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사용하는 메밀묵은 메밀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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