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두리

한국무속신앙사전
경주 지역의 독특한 민간신앙으로, 두두을(豆豆乙)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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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역의 독특한 민간신앙으로, 두두을(豆豆乙)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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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대
정의경주 지역의 독특한 민간신앙으로, 두두을(豆豆乙)이라고도 한다.
내용두두리 신앙은 신라시대부터 존재했으며,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비형랑 설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비형랑은 신라 25대 진지왕(재위 576~579)의 혼령과 도화녀라는 미녀 사이에 태어나 귀신을 부리는 존재였고, 그래서 신라 사람들은 [대문](/topic/대문)에 비형랑에 관한 노래를 붙여 귀신들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두두리 신앙은 고려시대로 이어져, 경주 출신들은 다른 지역에서 살더라도 두두리를 신앙했다. 무인집권기의 집정무인의 한사람이었던 이의민(李義旼, ?~1196)은 자신의 집에 신당을 차려놓고 두두리 신의 화상을 모셨으며, 이의민이 패망할 무렵에는 두두리 신이 울면서 이 신당을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고종 18년(1231)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는 두두리 신이 무당을 통해 무[기와](/topic/기와) 말을 제공하면 몽골군을 격퇴해 주겠다고 공언했다고 전한다.

두두리는 목랑(木郞) 또는 목매(木魅)라고도 하는데, 목매는 나무도깨비란 의미이며, 두두리는 두드린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두두리의 신체(神體)는 나무방망이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나아가 도깨비의 신체가 나무방망이였다는 설화가 전승되는 사실로 미루어, 두두리를 도깨비의 원형으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또 두두리는 대장장이의 옛날 이름이란 점에 착안하여, 금속신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두두리는 경주 남쪽 10리에 있는 왕가수(王家藪)란 수풀에서 제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가수가 지금의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두두리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사실은 두두리를 신앙하는 집단이 다리를 만들었다거나 하룻밤 사이에 연못을 메워 영묘사(靈妙寺)란 절을 지었다는 등, 각종 토목공사에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두두리 신앙 집단이 협업집단으로 공동노동에도 참여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후 두두리 신앙은 쇠퇴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그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참고문헌三國遺事
高麗史
新增東國輿地勝覽
도깨비고 (임동권, 한국민속학논고, 집문당, 1971)
목랑고 (박은용, 한국전통문화연구 2, 효성여대, 1986)
두두리(목랑) 재고 (강은해, 한국학논집 16, 계명대학교, 1989)
한국난타의 원형, 두두리 도깨비의 세계 (강은해, 예림기획,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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