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가송리동제

한국무속신앙사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서 전해지는 전형적인 풍물굿형 동제. 청량산 인근에 분포하고 있는 [공민왕](/topic/공민왕)계 신앙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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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서 전해지는 전형적인 풍물굿형 동제. 청량산 인근에 분포하고 있는 [공민왕](/topic/공민왕)계 신앙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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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명
특징가송리의 동제는 몇 [가지](/topic/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공민왕](/topic/공민왕)계 신을 모시는 일군의 신앙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청량산 꼭대기에 좌정한 공민왕을 중심으로 내살미의 공민왕 어머니, 북고리와 높은데의 부인, 가송리와 정자골, 등자다리의 딸, 새터의 사위와 같이 청량산 일대 20여 개 [마을](/topic/마을)에서 공민왕계 신을 동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 가운데 산성마을, 내살미, 가송리는 공민왕신앙의 핵심 지역이다. 특히 가송리의 신은 공민왕과 사이가 각별한 딸로 인식되어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공민왕에게 세배를 드리러 갔다. 이와같은 제의적 연대는 걸립을 통해 공민왕계 신을 모시는 다른 마을과도 이루어져 일상적, 종교적 유대를 지속하고 강화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전형적인 풍물굿형 동제이다. 가송리의 동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물과 결합되어 진행된다. 동제를 지내는 시간이 되면 풍물패가 당주 집에서 한바탕 논 뒤 [길굿](/topic/길굿)을 치면서 당으로 향하고, 도중에 단수치기를 하여 옛날에 당이 있던 곳과 [수구맥이](/topic/수구맥이)에 인사를 올린다. 당에 도착해서도 풍물을 치고 난 뒤 진설을 한다. 또 [서낭신](/topic/서낭신)이 음식을 드시는 동안 진법치기를 하여 서낭신을 즐겁게 하며, 거리당제를 올리는 동안에도 계속 풍물을 친다. 이처럼 모든 제차(祭次)가 풍물과 결합된 까닭에 대해 주민들은 “서낭님이풍물을 좋아해서 그렇다”라고 말한다. 이 마을의 열두 채 또는 열두 마치 가락과 진법치기는 경상도 풍물의 고형을 잘 간직한 것이다.

셋째, [치마](/topic/치마)저고리가 신체가 된다. 일반적으로 동신의 신체는 나무 또는 돌과 같은 자연물이거나 [위패](/topic/위패) 또는 신위와 같은 인공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는 치마저고리를 신체로 인식하고 있으며, 여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징가송리의 동제는 몇 [가지](/topic/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공민왕](/topic/공민왕)계 신을 모시는 일군의 신앙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청량산 꼭대기에 좌정한 공민왕을 중심으로 내살미의 공민왕 어머니, 북고리와 높은데의 부인, 가송리와 정자골, 등자다리의 딸, 새터의 사위와 같이 청량산 일대 20여 개 [마을](/topic/마을)에서 공민왕계 신을 동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 가운데 산성마을, 내살미, 가송리는 공민왕신앙의 핵심 지역이다. 특히 가송리의 신은 공민왕과 사이가 각별한 딸로 인식되어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공민왕에게 세배를 드리러 갔다. 이와같은 제의적 연대는 걸립을 통해 공민왕계 신을 모시는 다른 마을과도 이루어져 일상적, 종교적 유대를 지속하고 강화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전형적인 풍물굿형 동제이다. 가송리의 동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물과 결합되어 진행된다. 동제를 지내는 시간이 되면 풍물패가 당주 집에서 한바탕 논 뒤 [길굿](/topic/길굿)을 치면서 당으로 향하고, 도중에 단수치기를 하여 옛날에 당이 있던 곳과 [수구맥이](/topic/수구맥이)에 인사를 올린다. 당에 도착해서도 풍물을 치고 난 뒤 진설을 한다. 또 [서낭신](/topic/서낭신)이 음식을 드시는 동안 진법치기를 하여 서낭신을 즐겁게 하며, 거리당제를 올리는 동안에도 계속 풍물을 친다. 이처럼 모든 제차(祭次)가 풍물과 결합된 까닭에 대해 주민들은 “서낭님이풍물을 좋아해서 그렇다”라고 말한다. 이 마을의 열두 채 또는 열두 마치 가락과 진법치기는 경상도 풍물의 고형을 잘 간직한 것이다.

셋째, [치마](/topic/치마)저고리가 신체가 된다. 일반적으로 동신의 신체는 나무 또는 돌과 같은 자연물이거나 [위패](/topic/위패) 또는 신위와 같은 인공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는 치마저고리를 신체로 인식하고 있으며, 여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의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서 전해지는 전형적인 풍물굿형 동제. 청량산 인근에 분포하고 있는 [공민왕](/topic/공민왕)계 신앙 가운데 하나이다.
정의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서 전해지는 전형적인 풍물굿형 동제. 청량산 인근에 분포하고 있는 [공민왕](/topic/공민왕)계 신앙 가운데 하나이다.
참조[공민왕](/topic/공민왕)
참고문헌고려 [공민왕](/topic/공민왕)과 임시수도 안동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안동시, 2004)
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참조[공민왕](/topic/공민왕)
참고문헌고려 [공민왕](/topic/공민왕)과 임시수도 안동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안동시, 2004)
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내용동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과 단오에 지내며, 제당으로는 ‘부인당’과 ‘산신각’이 있다. 부인당은 [공민왕](/topic/공민왕)의 딸을 모시는 곳이다. 여신을 모시기에 부인당이라 부른다. 산신각에는 이 [마을](/topic/마을)의 주산인 입칠봉(이치봉) 산신령을 모신다. 산신령은 부인보다 낮은 존재로 인식된다. 공민왕 또는 부인이 호랑이(산신령)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부인이 산신령보다 높다는 것이다. 부인당은 왼쪽, 산신각은 오른쪽에 각각 위치한다. 두 당모두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topic/기와집)이다. 원래 산신각은 없었으나 1992년에 외부인의 도움으로 신축했다.부인당 내부 벽에는 ‘부인의 옷’이라 하여 [치마](/topic/치마)저고리 수십벌 이 걸려 있다. 마을 주민이나 출향한 사람들이 서낭님께 정성을 바치기 위해 올린 것이다. 이 옷이 [서낭신](/topic/서낭신)의신체(神體)가 되기 때문에 별도의 신위나 [위패](/topic/위패)는 마련하지 않는다. 산신각 내부에는 동자를 거느린 산신령이 호랑이를 탄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제물을 올리는 선반이 가로로 놓여 있다. 두 당의 내부는 3.3㎡가 안 될 정도로 좁다.

[제관](/topic/제관)은 당주 한 명과 다수의 유사•[헌관](/topic/헌관) 등으로 구성된다. 당주는 동제의 주재자로서 정월동제와 단오동제 전반을 주관하고, 제사에 필요한 도구와 풍물을 보관하며, [동답](/topic/동답)을관리한다. 제관은 65세 이상으로 누가 봐도 ‘깨끗한 사람’이면 가능하며, 제사에만 참여할 뿐 다른 역할은 없다.

원래 이 마을에서는 서낭대를 내려 당주를 뽑았다. 정월 초이튿날 아침에 주민들이 부인당에 모여‘나림(내림)’을 받는다. 나림을 받을 때에는 신기 있는 사람이 경을 읽고신을 청한 다음 “서낭님 어느 집으로 가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대가 저절로 움직여 당주가 될 사람 집을 찾아간다. 서낭대가 어느 집 앞에 멈추면 집 주인은[자리](/topic/자리)를 펴서 서낭대를 맞이하고 그 앞에 쌀그릇을 올린 소반을 놓고 절을 한다. 절을 마치면 풍물패와 구경꾼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잔치판을 벌인다. 1990년대 말부터서낭대를 내리지 않고 마을회의를 거쳐 당주를 뽑는다.2005년에는 호주들이 초이튿날 오전 10시에 마을회관에 모여 당주를 뽑았다.

당주는 선정된 날부터 금기에 들어가고 사관을 드리기 시작한다. 사관을 드린다는 것은 당주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인당에 가서 서낭님께 인사 드리는 것을 말한다. 당주는출타할 때에도 반드시 서낭님께“어디 갑니다”라고 고하며 정성을 다한다. 사관은 보통 정월 열하룻날부터 드린다. 당주는 또 자기 집 삽짝([대문](/topic/대문)) 양쪽에 소나무를 세우고 [금줄](/topic/금줄)을 친 뒤 집에서 당으로 가는 길 양편에 [황토](/topic/황토)를 뿌린다.

제비는 다양한 방식으로 충당한다. 동네의 공유재산으로 밭 1,000㎡와 논 660㎡가 있었으나 논은 묵히고 밭 330㎡만 당주가 부친다. 본래 당주는 동답을 경작하는 대가로 일정량의 나락이나 쌀을 마을에 내놓아 제비를 쓰게 하였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풍물패가 집집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여 쌀이나 곡식을 걷어 제비에 충당하기도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려 공민왕의 딸인 서낭신이 청량산 꼭대기의 산성마을에 산신으로 좌정해 있는 공민왕신에게 ‘세배를 드리러’ 갔다. 풍물패가 서낭대를 앞세워 공민왕당에 가면 산성마을주민들이 술과 음식을 내어 대접하고, 딸이 세배하러 왔다면서 세뱃돈을 주기도 했다. 요즘은 주민들과 외지인들이 정초에 제당을 찾아 배례한 뒤 돈을놓고 간다. 이 돈을‘세뱃돈’이라고 부른다.

동제를 전승하는 조직은 서낭계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당주 한 명과 유사 두 명이 중심이 되어 서낭계를 운영했다. 당시 유사는 가사리와 쏘두들에서 한 명씩 나와 문서를 관리했다. 동회에서 ‘계[갈이](/topic/갈이)’를 할 때 지난해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보고하고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받아 결산하며, 당의 보수를 의논하고 새 유사를 선출하였다. 현재는 유사 없이 당주가 서낭계의 재산과 문서를 관리하고 밭 330㎡를 부치고 있다.

현재 서낭계는 상여계와 공동으로 운영된다. 1985년에 재정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서낭계, 상여계, 배계를 통합하였다. 그러나 새 다리가 생기면서 배계는 사라졌고, 1992년에 서낭계와 상여계는 분리되었다. 흉사에서 나오는 돈으로 깨끗하게 서낭님을 모실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기에 서낭계와 상여계가다시 통합되었다. 서낭계의 경비가 없어 매년 새롭게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흉사의 재정이라도 서낭님을 모시는 데 쓰자”라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제물은 산신당보다 부인당에 더 많이 올린다. 부인당에는 메, 미역국, 명태포, 명태탕, 백찜(백설기), 고등어, 구운 미역, 밤, [대추](/topic/대추), 감, 배, 간장, 탁주를 올린다. 나물은 쓰지 않으며, 고등어와 미역은 반드시 제장에서 불에 구워 올린다.

제물은 다른 마을의 제관보다 먼저 구입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를 “[수지](/topic/수지)로 한다”고 한다. 제물 장보기는 당주의 몫이다. 당주는 정월 열나흗날 새벽에 자동차로 안동 신시장에까지 나가서 어물, 과일, 술을 구입한다. 제물을 구입할 때에는 가격을 흥정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잡담을 나누지도 않는다. 면 소재지에 있는 떡집에 들러서 쌀을 맡겼다가 돌아오는 길에 떡을 찾아온다. 떡에는 어떠한 조미료도 넣지 않는다. 제주로는 요즘 탁주를 사서 쓴다. 원래 술은 입재일 2~3일 전에 당주가 직접 빚어서 썼다. 구입한 제물은 당주 집에 보관하며, 조리는 당주 부인 몫이다. 제물장을 보고 온 당주는 당을 청소하고, 땔나무를 마련하며, 제장에 금줄을 친다. 부인당과 산신당 주위에도 금줄을 친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 6시 무렵에 당주는 식사 후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한다. 8시 무렵에 제관과 풍물패는 당주 집에 모여 술을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당](/topic/마당)에서 풍물을 치며 한바탕 놀이를 한다. 9시 20분에 제물을 실은 차는 먼저 출발하고 제관과 풍물패는 질매구를 치고 따라가면서 단수치기를 한다. 단수치기는 옛날 당이 있던 곳과수구맥이 쪽을 보면서 “[서낭당](/topic/서낭당) 서낭당 서낭서낭 서낭당”이라고 구음(口音)하고 가락을 치며 세 번 절하는 것이다.

당에 도착하자마자 풍물패는 원을 그리며 한바탕 풍물을 치고 다른 쪽에서는 불을 지핀다. 제관은 고등어를 불에 굽고, 제물이 익으면 부인당과 산신각 순서로 진설한다. 두당에 차린 제물은 양에서 차이가 있으나 진설 방식은 동일하다. 진설하고 난 뒤 바로 부정을 물린다. 부정치기는 솔잎뭉치에 물을 묻혀 당 주위에 뿌리면서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10시가 조금 넘어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다. 먼저 당주가 꿇어앉아 부인당에 석 잔, 산신각에 단잔을 각각 올리고 [참례](/topic/참례)자가 모두 합동으로 사배를 한다. 그런 다음 당의 문을닫고 신들이 음식을 드시는 동안 진법치기를 한다. 진법치기는 제관과 풍물패가 원진과 미지기진을 펼치면서 윗마당과 아랫마당을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삼삼구배’ 또는 ‘삼삼진법’이라 하여 아홉 번을 오르내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에 따라 적게 하기도 한다. [꽹과리](/topic/꽹과리) 네 명, 북 한 명, 징 세 명, [소고](/topic/소고) 두 명으로 구성된 풍물패는 원진을지을 때에는 흥겹고 빠른 [삼채](/topic/삼채)와 휘모리를 치고, 미지기진으로 윗마당과 아랫마당을 오르내릴 때에는 굿거리를 친다.

진법치기를 끝내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서낭소지, 산신소지, 대동소지, 우마소지, 자동차소지, 당주소지, 호구소지, 참례자소지 순서로 올린다. 호구소지의 경우 가송리 주민들은 모두 올리지만 쏘두들과 올미재의 경우 오는 사람들 것만 올려준다. 참례자의 소지는 연장자, 이장, 일반인 순으로 올린다. 이 밖에 출향 인사들이 소지를 올리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소지올리기를 마치면 [음복](/topic/음복)을 한다.

자정 무렵부터 거리당제를 올린다. 거리당제는“일곱 골짜기의 잡귀들을 대접하여 초군들이 나무하고 풀을 베러 갈 때 잘 보살펴 달라”는 뜻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느티나무앞에 술 일곱 잔과 스무 개 정도의 백찜 조각을 올린 상을 차린다. 예전에는 떡을 좁쌀로 만들었으며 ‘약떡’이라 불렀다. 약떡을 먹으면 일 년 내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주민들과 아이들이 주워 먹었다. 제관은 상 앞에서 골짜기를 향해 주문을 외며 칼끝이 바깥쪽(골짜기 방향)을 향할 때까지 계속 던진다. 칼끝이 바깥쪽을 향하면 그제야 술을 뿌리고 잔을 상 위에 엎어둔다. 이어서 제관들이 재배하고 당주가 삼배하면 거리당제가 마치는 것으로 모든 동제가 끝이난다.
내용동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과 단오에 지내며, 제당으로는 ‘부인당’과 ‘산신각’이 있다. 부인당은 [공민왕](/topic/공민왕)의 딸을 모시는 곳이다. 여신을 모시기에 부인당이라 부른다. 산신각에는 이 [마을](/topic/마을)의 주산인 입칠봉(이치봉) 산신령을 모신다. 산신령은 부인보다 낮은 존재로 인식된다. 공민왕 또는 부인이 호랑이(산신령)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부인이 산신령보다 높다는 것이다. 부인당은 왼쪽, 산신각은 오른쪽에 각각 위치한다. 두 당모두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topic/기와집)이다. 원래 산신각은 없었으나 1992년에 외부인의 도움으로 신축했다.부인당 내부 벽에는 ‘부인의 옷’이라 하여 [치마](/topic/치마)저고리 수십벌 이 걸려 있다. 마을 주민이나 출향한 사람들이 서낭님께 정성을 바치기 위해 올린 것이다. 이 옷이 [서낭신](/topic/서낭신)의신체(神體)가 되기 때문에 별도의 신위나 [위패](/topic/위패)는 마련하지 않는다. 산신각 내부에는 동자를 거느린 산신령이 호랑이를 탄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제물을 올리는 선반이 가로로 놓여 있다. 두 당의 내부는 3.3㎡가 안 될 정도로 좁다.

[제관](/topic/제관)은 당주 한 명과 다수의 유사•[헌관](/topic/헌관) 등으로 구성된다. 당주는 동제의 주재자로서 정월동제와 단오동제 전반을 주관하고, 제사에 필요한 도구와 풍물을 보관하며, [동답](/topic/동답)을관리한다. 제관은 65세 이상으로 누가 봐도 ‘깨끗한 사람’이면 가능하며, 제사에만 참여할 뿐 다른 역할은 없다.

원래 이 마을에서는 서낭대를 내려 당주를 뽑았다. 정월 초이튿날 아침에 주민들이 부인당에 모여‘나림(내림)’을 받는다. 나림을 받을 때에는 신기 있는 사람이 경을 읽고신을 청한 다음 “서낭님 어느 집으로 가면 좋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대가 저절로 움직여 당주가 될 사람 집을 찾아간다. 서낭대가 어느 집 앞에 멈추면 집 주인은[자리](/topic/자리)를 펴서 서낭대를 맞이하고 그 앞에 쌀그릇을 올린 소반을 놓고 절을 한다. 절을 마치면 풍물패와 구경꾼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잔치판을 벌인다. 1990년대 말부터서낭대를 내리지 않고 마을회의를 거쳐 당주를 뽑는다.2005년에는 호주들이 초이튿날 오전 10시에 마을회관에 모여 당주를 뽑았다.

당주는 선정된 날부터 금기에 들어가고 사관을 드리기 시작한다. 사관을 드린다는 것은 당주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인당에 가서 서낭님께 인사 드리는 것을 말한다. 당주는출타할 때에도 반드시 서낭님께“어디 갑니다”라고 고하며 정성을 다한다. 사관은 보통 정월 열하룻날부터 드린다. 당주는 또 자기 집 삽짝([대문](/topic/대문)) 양쪽에 소나무를 세우고 [금줄](/topic/금줄)을 친 뒤 집에서 당으로 가는 길 양편에 [황토](/topic/황토)를 뿌린다.

제비는 다양한 방식으로 충당한다. 동네의 공유재산으로 밭 1,000㎡와 논 660㎡가 있었으나 논은 묵히고 밭 330㎡만 당주가 부친다. 본래 당주는 동답을 경작하는 대가로 일정량의 나락이나 쌀을 마을에 내놓아 제비를 쓰게 하였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풍물패가 집집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여 쌀이나 곡식을 걷어 제비에 충당하기도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려 공민왕의 딸인 서낭신이 청량산 꼭대기의 산성마을에 산신으로 좌정해 있는 공민왕신에게 ‘세배를 드리러’ 갔다. 풍물패가 서낭대를 앞세워 공민왕당에 가면 산성마을주민들이 술과 음식을 내어 대접하고, 딸이 세배하러 왔다면서 세뱃돈을 주기도 했다. 요즘은 주민들과 외지인들이 정초에 제당을 찾아 배례한 뒤 돈을놓고 간다. 이 돈을‘세뱃돈’이라고 부른다.

동제를 전승하는 조직은 서낭계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당주 한 명과 유사 두 명이 중심이 되어 서낭계를 운영했다. 당시 유사는 가사리와 쏘두들에서 한 명씩 나와 문서를 관리했다. 동회에서 ‘계[갈이](/topic/갈이)’를 할 때 지난해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보고하고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받아 결산하며, 당의 보수를 의논하고 새 유사를 선출하였다. 현재는 유사 없이 당주가 서낭계의 재산과 문서를 관리하고 밭 330㎡를 부치고 있다.

현재 서낭계는 상여계와 공동으로 운영된다. 1985년에 재정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서낭계, 상여계, 배계를 통합하였다. 그러나 새 다리가 생기면서 배계는 사라졌고, 1992년에 서낭계와 상여계는 분리되었다. 흉사에서 나오는 돈으로 깨끗하게 서낭님을 모실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기에 서낭계와 상여계가다시 통합되었다. 서낭계의 경비가 없어 매년 새롭게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흉사의 재정이라도 서낭님을 모시는 데 쓰자”라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제물은 산신당보다 부인당에 더 많이 올린다. 부인당에는 메, 미역국, 명태포, 명태탕, 백찜(백설기), 고등어, 구운 미역, 밤, [대추](/topic/대추), 감, 배, 간장, 탁주를 올린다. 나물은 쓰지 않으며, 고등어와 미역은 반드시 제장에서 불에 구워 올린다.

제물은 다른 마을의 제관보다 먼저 구입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를 “[수지](/topic/수지)로 한다”고 한다. 제물 장보기는 당주의 몫이다. 당주는 정월 열나흗날 새벽에 자동차로 안동 신시장에까지 나가서 어물, 과일, 술을 구입한다. 제물을 구입할 때에는 가격을 흥정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잡담을 나누지도 않는다. 면 소재지에 있는 떡집에 들러서 쌀을 맡겼다가 돌아오는 길에 떡을 찾아온다. 떡에는 어떠한 조미료도 넣지 않는다. 제주로는 요즘 탁주를 사서 쓴다. 원래 술은 입재일 2~3일 전에 당주가 직접 빚어서 썼다. 구입한 제물은 당주 집에 보관하며, 조리는 당주 부인 몫이다. 제물장을 보고 온 당주는 당을 청소하고, 땔나무를 마련하며, 제장에 금줄을 친다. 부인당과 산신당 주위에도 금줄을 친다.

정월 열나흗날 저녁 6시 무렵에 당주는 식사 후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한다. 8시 무렵에 제관과 풍물패는 당주 집에 모여 술을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당](/topic/마당)에서 풍물을 치며 한바탕 놀이를 한다. 9시 20분에 제물을 실은 차는 먼저 출발하고 제관과 풍물패는 질매구를 치고 따라가면서 단수치기를 한다. 단수치기는 옛날 당이 있던 곳과수구맥이 쪽을 보면서 “[서낭당](/topic/서낭당) 서낭당 서낭서낭 서낭당”이라고 구음(口音)하고 가락을 치며 세 번 절하는 것이다.

당에 도착하자마자 풍물패는 원을 그리며 한바탕 풍물을 치고 다른 쪽에서는 불을 지핀다. 제관은 고등어를 불에 굽고, 제물이 익으면 부인당과 산신각 순서로 진설한다. 두당에 차린 제물은 양에서 차이가 있으나 진설 방식은 동일하다. 진설하고 난 뒤 바로 부정을 물린다. 부정치기는 솔잎뭉치에 물을 묻혀 당 주위에 뿌리면서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10시가 조금 넘어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다. 먼저 당주가 꿇어앉아 부인당에 석 잔, 산신각에 단잔을 각각 올리고 [참례](/topic/참례)자가 모두 합동으로 사배를 한다. 그런 다음 당의 문을닫고 신들이 음식을 드시는 동안 진법치기를 한다. 진법치기는 제관과 풍물패가 원진과 미지기진을 펼치면서 윗마당과 아랫마당을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삼삼구배’ 또는 ‘삼삼진법’이라 하여 아홉 번을 오르내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에 따라 적게 하기도 한다. [꽹과리](/topic/꽹과리) 네 명, 북 한 명, 징 세 명, [소고](/topic/소고) 두 명으로 구성된 풍물패는 원진을지을 때에는 흥겹고 빠른 [삼채](/topic/삼채)와 휘모리를 치고, 미지기진으로 윗마당과 아랫마당을 오르내릴 때에는 굿거리를 친다.

진법치기를 끝내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서낭소지, 산신소지, 대동소지, 우마소지, 자동차소지, 당주소지, 호구소지, 참례자소지 순서로 올린다. 호구소지의 경우 가송리 주민들은 모두 올리지만 쏘두들과 올미재의 경우 오는 사람들 것만 올려준다. 참례자의 소지는 연장자, 이장, 일반인 순으로 올린다. 이 밖에 출향 인사들이 소지를 올리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소지올리기를 마치면 [음복](/topic/음복)을 한다.

자정 무렵부터 거리당제를 올린다. 거리당제는“일곱 골짜기의 잡귀들을 대접하여 초군들이 나무하고 풀을 베러 갈 때 잘 보살펴 달라”는 뜻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느티나무앞에 술 일곱 잔과 스무 개 정도의 백찜 조각을 올린 상을 차린다. 예전에는 떡을 좁쌀로 만들었으며 ‘약떡’이라 불렀다. 약떡을 먹으면 일 년 내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주민들과 아이들이 주워 먹었다. 제관은 상 앞에서 골짜기를 향해 주문을 외며 칼끝이 바깥쪽(골짜기 방향)을 향할 때까지 계속 던진다. 칼끝이 바깥쪽을 향하면 그제야 술을 뿌리고 잔을 상 위에 엎어둔다. 이어서 제관들이 재배하고 당주가 삼배하면 거리당제가 마치는 것으로 모든 동제가 끝이난다.
지역사례[공민왕](/topic/공민왕)계 신을 모시는 지역은 안동시와 봉화군으로 대별된다. 안동시에는 예안면 신남리의 구티미·정자골·높은데, 도산면의 가송리·단천리·원천리(내살미), 풍천면의 하회리, 풍산읍 수리, 용상동 등 아홉 개 [마을](/topic/마을)이 있다. 봉화군에는 명호면 북곡1리의 산성마을·아랫뒤실, 북곡2리의 윗뒤실, 고계1리의 고계·새터, 고계2리의 등자다리, 재산면 현동1리의 소용골, 현동3리의 [동다리](/topic/동다리) 등 여덟 개 마을이 있다. 이 밖에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와 도촌리,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와 고감리 등지에서도 공민왕 신앙이 전승되었지만 현재 단절되었다.

![마을신앙 안동가송리동제](/upload/img/20170106/20170106144214_t_.jpg)
지역사례[공민왕](/topic/공민왕)계 신을 모시는 지역은 안동시와 봉화군으로 대별된다. 안동시에는 예안면 신남리의 구티미·정자골·높은데, 도산면의 가송리·단천리·원천리(내살미), 풍천면의 하회리, 풍산읍 수리, 용상동 등 아홉 개 [마을](/topic/마을)이 있다. 봉화군에는 명호면 북곡1리의 산성마을·아랫뒤실, 북곡2리의 윗뒤실, 고계1리의 고계·새터, 고계2리의 등자다리, 재산면 현동1리의 소용골, 현동3리의 [동다리](/topic/동다리) 등 여덟 개 마을이 있다. 이 밖에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와 도촌리,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와 고감리 등지에서도 공민왕 신앙이 전승되었지만 현재 단절되었다.

![마을신앙 안동가송리동제](/upload/img/20170106/20170106144214_t_.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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