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내창마을산제

한국무속신앙사전
무주내창마을산제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내창[마을](/topic/마을)에서 행해지는 마을 제의. 마을 당산에서 지내는 ‘산제’와 마을 어귀 정자나무에서 지내는 ‘길산제’를 통칭하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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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내창[마을](/topic/마을)에서 행해지는 마을 제의. 마을 당산에서 지내는 ‘산제’와 마을 어귀 정자나무에서 지내는 ‘길산제’를 통칭하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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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내창[마을](/topic/마을)에서 행해지는 마을 제의. 마을 당산에서 지내는 ‘산제’와 마을 어귀 정자나무에서 지내는 ‘길산제’를 통칭하는 명칭.
유래 및 역사북창리 내창[마을](/topic/마을)의 지명은 마을이 기대고 있는 적상산(赤裳山, 1034m)의 지형적, 역사적 특성에 기인한다. 적상산의 모습은 마치 종 모양과 같아 정상부에 닿기 위해서는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일찍부터 이곳에 산성을 쌓아 군사적 요새로 활용하였으며, 국가의 중요 [사료](/topic/사료)를 보관하는 사고(史庫)를 두었다. 적상산 주변으로는산성과 사고의 보급품 및 군량미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여러 곳 있었다. 그중 북쪽에 위치한 창고를 ‘북창’이라 부른 데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곧 ‘북창’의 설치와 정주민의 정착은 마을공동체의 형성을 가져왔으며, 이와 더불어 마을 제의도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창마을산제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마을 주민들의 구전에 의해 마을 제의와 관련된 설화 및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내창마을산제는 마을 당산에 위치한 산제당과 마을 아래 정자나무 두 곳에서 제의가 이루어진다. 원래 산제당의 위치는 당산에 있지 않았다. 마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고을 원님이 말을 타고 안국사에 올라갈 때 ‘산드래’라는 곳에만 다다르면 말이 움직이지 않아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루는 산제당에 붙어 있는 종이를 떼어 날렸더니지금의 산제당 자리에 와서 붙었다. 그래서 그 자리로 산제당을 옮기고 나자 더 이상 말이 멈춰 서지 않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무렵까지도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과 시월 열나흗날에 정성들여 마련한 제물을 올려 산제(산신제)와 길산제([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냈다. 그러나 마을 인구가 줄고 산신제에 소요되는 비용도 적지 않아 음력 시월의 산신제는 지내지 않게 되었다.
형태 및 특징북창리 내창[마을](/topic/마을) 어귀에는 비슷한 간격으로 서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느티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넘는다. 지금의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이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따라 마을과 안국사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지금도 옛길을 짐작할 만한 작은 길이 있고, 가운데 느티나무의 길 양쪽으로는 [돌탑](/topic/돌탑)이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어귀는 마을 안골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과 적상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수구(水口)에 해당하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수구맥이](/topic/수구맥이)’라고 하여 여기에 심은 느티나무가 수구를 막고 튼튼히 하여 마을의 좋은 기운이 쉽게 빠져나[가지](/topic/가지) 못하게 하며, 밖에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한다고 여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또 이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정기나무(정자나무)’라 부르고 있다. 그중 맨 아래에 있는 느티나무에는 제단을 만들어 놓고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에 ‘산제(山祭, 산신제)’와 함께 ‘길산제([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낸다.

마을 어귀에서 안길을 따라 올라가면 유독 다른 곳보다 키가 크고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한 숲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산신제를 모시는 당산(堂山)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동산’이라 부른다. 이 동산 숲은 영험하고 신성하다고 여겨 아무도 함부로 해치거나 나무를 베어내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은 ‘동산’과 ‘정기나무’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자 마을의 성쇠를 좌우하는 성스러운 공간(sacred place)으로 여기고 있다.

내창마을산제당은 1994년 무렵 블록을 세우고 벽체를 시멘트로 마감한 다음 슬레이트 [지붕](/topic/지붕)을 얹어 개축하였다. 흙집으로 지어진 산제당이 허물어지고 낡음으로써 군에서 자금을지원받아 그 자리에 지금의 산제당을 새로 지은 것이다. 산제당은 정방형의 평면이며, 내부에는 정면으로 산신도(마을 주민들은 ‘탱화’라고 부른다)와 함께 제물을 올릴 수 있도록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무속인들 사이에 내창마을산제당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어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을 막고 산신도가 손상될 것을 방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출입문을 단단히 채우고 있다.
정의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내창[마을](/topic/마을)에서 행해지는 마을 제의. 마을 당산에서 지내는 ‘산제’와 마을 어귀 정자나무에서 지내는 ‘길산제’를 통칭하는 명칭.
유래 및 역사북창리 내창[마을](/topic/마을)의 지명은 마을이 기대고 있는 적상산(赤裳山, 1034m)의 지형적, 역사적 특성에 기인한다. 적상산의 모습은 마치 종 모양과 같아 정상부에 닿기 위해서는 가파른 경사를 올라야 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일찍부터 이곳에 산성을 쌓아 군사적 요새로 활용하였으며, 국가의 중요 [사료](/topic/사료)를 보관하는 사고(史庫)를 두었다. 적상산 주변으로는산성과 사고의 보급품 및 군량미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여러 곳 있었다. 그중 북쪽에 위치한 창고를 ‘북창’이라 부른 데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곧 ‘북창’의 설치와 정주민의 정착은 마을공동체의 형성을 가져왔으며, 이와 더불어 마을 제의도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창마을산제의 유래와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마을 주민들의 구전에 의해 마을 제의와 관련된 설화 및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내창마을산제는 마을 당산에 위치한 산제당과 마을 아래 정자나무 두 곳에서 제의가 이루어진다. 원래 산제당의 위치는 당산에 있지 않았다. 마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고을 원님이 말을 타고 안국사에 올라갈 때 ‘산드래’라는 곳에만 다다르면 말이 움직이지 않아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루는 산제당에 붙어 있는 종이를 떼어 날렸더니지금의 산제당 자리에 와서 붙었다. 그래서 그 자리로 산제당을 옮기고 나자 더 이상 말이 멈춰 서지 않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무렵까지도 마을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과 시월 열나흗날에 정성들여 마련한 제물을 올려 산제(산신제)와 길산제([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냈다. 그러나 마을 인구가 줄고 산신제에 소요되는 비용도 적지 않아 음력 시월의 산신제는 지내지 않게 되었다.
형태 및 특징북창리 내창[마을](/topic/마을) 어귀에는 비슷한 간격으로 서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느티나무의 수령은 500년이 넘는다. 지금의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이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따라 마을과 안국사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지금도 옛길을 짐작할 만한 작은 길이 있고, 가운데 느티나무의 길 양쪽으로는 [돌탑](/topic/돌탑)이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어귀는 마을 안골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과 적상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수구(水口)에 해당하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수구맥이](/topic/수구맥이)’라고 하여 여기에 심은 느티나무가 수구를 막고 튼튼히 하여 마을의 좋은 기운이 쉽게 빠져나[가지](/topic/가지) 못하게 하며, 밖에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한다고 여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또 이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정기나무(정자나무)’라 부르고 있다. 그중 맨 아래에 있는 느티나무에는 제단을 만들어 놓고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에 ‘산제(山祭, 산신제)’와 함께 ‘길산제([거리제](/topic/거리제))’를 지낸다.

마을 어귀에서 안길을 따라 올라가면 유독 다른 곳보다 키가 크고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한 숲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산신제를 모시는 당산(堂山)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동산’이라 부른다. 이 동산 숲은 영험하고 신성하다고 여겨 아무도 함부로 해치거나 나무를 베어내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은 ‘동산’과 ‘정기나무’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자 마을의 성쇠를 좌우하는 성스러운 공간(sacred place)으로 여기고 있다.

내창마을산제당은 1994년 무렵 블록을 세우고 벽체를 시멘트로 마감한 다음 슬레이트 [지붕](/topic/지붕)을 얹어 개축하였다. 흙집으로 지어진 산제당이 허물어지고 낡음으로써 군에서 자금을지원받아 그 자리에 지금의 산제당을 새로 지은 것이다. 산제당은 정방형의 평면이며, 내부에는 정면으로 산신도(마을 주민들은 ‘탱화’라고 부른다)와 함께 제물을 올릴 수 있도록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무속인들 사이에 내창마을산제당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어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을 막고 산신도가 손상될 것을 방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출입문을 단단히 채우고 있다.
내용내창[마을](/topic/마을)산제는 [제관](/topic/제관) 선정을 제외하면 제물 마련을 비롯한 제의 준비와 의례절차 등 모든 과정이 제일(祭日)인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모두 이루어진다. 제관 선정은 여느 마을과 같이 그해 신상에 아무런 이상이 없고 복이 있는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젊은층이 마을을 떠나고 주민이 감소하면서 산제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확보하는일도 쉽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내창마을에서는 산제를 준비하는 제관 및 유사를 마을의 청장년층이 주축이 되는 개발위원회에서 맡도록 하고 있다. 다만 개발위원중 스스로를 부정하다고 여겨서 금기시하거나 꺼리는 일이 있는 사람은 산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산제에 소요되는 비용은 마을공동 소유 농경지를 경작하는 대가로 마련한다. 대체로그 농경지를 경작하는 사람이 제관과 유사 역할을 맡는다.

제일 아침이 되면 개발위원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제물 마련과 산제 준비를 위한 역할을 나눈다. 제물은 대체로 무주읍내 시장에서 구입하고, 제물 장만은 제관집에서 한다. 오후에는 산제당으로 올라가는 길과 산제당,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와 [돌탑](/topic/돌탑) 주변을 정리한다. 산제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늦은 밤이기 때문에 길게 뻗은 [가지](/topic/가지)나 길 바닥의 엉킨 잡풀들을 제거하고, 제당과 제단을 깨끗이 정리한다.

저녁 무렵 산제를 지내기에 앞서 제관을 비롯한 개발위원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풍물을 친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깽매기’라고 부른다. 산제와 길산제가 시작되기 전에 산제가 치러지는 산제당과 마을공동샘 등 마을의 주요 지점을 한바퀴 돌아오는 깽매기를 한다. 특히 마을공동샘은 마을 식수로 이용하던 곳으로, 이곳에 용왕신이 깃들어 있다고여기기 때문에 반드시 들러서 예를 표한다. ‘깽매기’는 산제를 지내기 전에 잡귀를 물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곧 산제가 시작됨을 알리는 의미이다.

내창마을산제는 밤 10시쯤에 시작된다. 제관과 개발위원들은 각기 자기가 맡은 제물과 짐 꾸러미를 들고 산제당으로 향한다. 산제당에 도착한 제관과 개발위원들은 제물을 진설한다. 내창마을에서는 옛날부터 제주(祭酒)를 청주나 막걸리가 아닌 식혜로 대신하고 있다.

![마을신앙 무주내창마을산제](/upload/img/20170106/20170106130150_t_.jpg)

메, 갱, 제주는 둘씩 올린다. 산신도에 그려진 산신할아버지와 산신할머니를 모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의의 절차와 형식은 유교식으로 치러지며, 강신-[참신](/topic/참신)-[독축](/topic/독축)-소지-사신 순으로 진행된다. 2007년 [축문](/topic/축문)은 다음과 같다.

동산제축문(洞山祭祝文)
維歲次 (丁亥)正月(壬寅) (癸未) 朔十五日(丁酉)
北倉里居民 選屬 糼學○○○ 敢昭告于
土地之神 伏惟尊神
代天宣化 鎭我一方 俾民有造 使安而樂
惟神之賜 使飽而暖 惟神之佑 導民至德
加民惠澤 顧雖甚迷 詎味
北倉里洞屬 思殫其躬 報祀及辰
惟月之正 牲酒雖簿 寔出微誠
惟神降格 庶鑑愚哀 望垂黙佑 克有始終 尙饗

독축과 소지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축원한다. 사신 재배가 끝나면 제물로 올려진 음식을 조금씩 떼어 담아 제당 밖 한쪽에 갖다 비운다. 이러한 [헌식](/topic/헌식)과정을 마을사람들은 ‘무샘물’이라고 한다. 산제의 모든 의례절차를 마치면 산제당의 불을 끄고 문을 잠근 뒤 산을 내려온다.

산에서 내려온 뒤 제관 집에서 메와 갱만 바꾸고 다른 제물은 그대로 담아 길산제를 치르는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로 향한다. 길산제를 지내는 제단으로 가기 전에 준비해 온 왼새끼 [금줄](/topic/금줄)을 마을 어귀 느티나무 양쪽에 있는 돌탑에 돌려서 감고 그 사이에 문종이를 끼운다. 이때 전 해에 감아둔 새끼줄과 종이는 제거한다. 그러나 돌탑에는 별다른 제의를하지 않는다. 길산제는 산제에 비해 간략하고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다. 제의는 산제에서 치러진 순서와 같지만 독축과 소지의 과정이 없다. 산제와 길산제의 모든 제의는 대체로 밤 12시 무렵에 마[무리](/topic/무리)된다.

산제와 길산제 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음복](/topic/음복)례를 행한다. 이것은 마을 동회를 겸하는 자리이다. 마을 사람들은 간밤의 산제 및 길산제에 올린 제물과동회를 위해 마련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1970년대 전까지는 마을에서 돼지를 잡아 산제를 지냈기 때문에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돼지고기와 떡 등을 조금씩 담아 집집마다 나누어 주기도 하였지만 최근에는 산제 음식이 많이 간소화되고 돼지를 잡는 일이 없어지면서 그러한 풍속도 사라[지게](/topic/지게) 되었다.
내용내창[마을](/topic/마을)산제는 [제관](/topic/제관) 선정을 제외하면 제물 마련을 비롯한 제의 준비와 의례절차 등 모든 과정이 제일(祭日)인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모두 이루어진다. 제관 선정은 여느 마을과 같이 그해 신상에 아무런 이상이 없고 복이 있는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젊은층이 마을을 떠나고 주민이 감소하면서 산제에 필요한 최소 인원을 확보하는일도 쉽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내창마을에서는 산제를 준비하는 제관 및 유사를 마을의 청장년층이 주축이 되는 개발위원회에서 맡도록 하고 있다. 다만 개발위원중 스스로를 부정하다고 여겨서 금기시하거나 꺼리는 일이 있는 사람은 산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산제에 소요되는 비용은 마을공동 소유 농경지를 경작하는 대가로 마련한다. 대체로그 농경지를 경작하는 사람이 제관과 유사 역할을 맡는다.

제일 아침이 되면 개발위원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제물 마련과 산제 준비를 위한 역할을 나눈다. 제물은 대체로 무주읍내 시장에서 구입하고, 제물 장만은 제관집에서 한다. 오후에는 산제당으로 올라가는 길과 산제당,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와 [돌탑](/topic/돌탑) 주변을 정리한다. 산제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늦은 밤이기 때문에 길게 뻗은 [가지](/topic/가지)나 길 바닥의 엉킨 잡풀들을 제거하고, 제당과 제단을 깨끗이 정리한다.

저녁 무렵 산제를 지내기에 앞서 제관을 비롯한 개발위원들이 마을회관 앞에 모여 풍물을 친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깽매기’라고 부른다. 산제와 길산제가 시작되기 전에 산제가 치러지는 산제당과 마을공동샘 등 마을의 주요 지점을 한바퀴 돌아오는 깽매기를 한다. 특히 마을공동샘은 마을 식수로 이용하던 곳으로, 이곳에 용왕신이 깃들어 있다고여기기 때문에 반드시 들러서 예를 표한다. ‘깽매기’는 산제를 지내기 전에 잡귀를 물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곧 산제가 시작됨을 알리는 의미이다.

내창마을산제는 밤 10시쯤에 시작된다. 제관과 개발위원들은 각기 자기가 맡은 제물과 짐 꾸러미를 들고 산제당으로 향한다. 산제당에 도착한 제관과 개발위원들은 제물을 진설한다. 내창마을에서는 옛날부터 제주(祭酒)를 청주나 막걸리가 아닌 식혜로 대신하고 있다.

![마을신앙 무주내창마을산제](/upload/img/20170106/20170106130150_t_.jpg)

메, 갱, 제주는 둘씩 올린다. 산신도에 그려진 산신할아버지와 산신할머니를 모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의의 절차와 형식은 유교식으로 치러지며, 강신-[참신](/topic/참신)-[독축](/topic/독축)-소지-사신 순으로 진행된다. 2007년 [축문](/topic/축문)은 다음과 같다.

동산제축문(洞山祭祝文)
維歲次 (丁亥)正月(壬寅) (癸未) 朔十五日(丁酉)
北倉里居民 選屬 糼學○○○ 敢昭告于
土地之神 伏惟尊神
代天宣化 鎭我一方 俾民有造 使安而樂
惟神之賜 使飽而暖 惟神之佑 導民至德
加民惠澤 顧雖甚迷 詎味
北倉里洞屬 思殫其躬 報祀及辰
惟月之正 牲酒雖簿 寔出微誠
惟神降格 庶鑑愚哀 望垂黙佑 克有始終 尙饗

독축과 소지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축원한다. 사신 재배가 끝나면 제물로 올려진 음식을 조금씩 떼어 담아 제당 밖 한쪽에 갖다 비운다. 이러한 [헌식](/topic/헌식)과정을 마을사람들은 ‘무샘물’이라고 한다. 산제의 모든 의례절차를 마치면 산제당의 불을 끄고 문을 잠근 뒤 산을 내려온다.

산에서 내려온 뒤 제관 집에서 메와 갱만 바꾸고 다른 제물은 그대로 담아 길산제를 치르는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로 향한다. 길산제를 지내는 제단으로 가기 전에 준비해 온 왼새끼 [금줄](/topic/금줄)을 마을 어귀 느티나무 양쪽에 있는 돌탑에 돌려서 감고 그 사이에 문종이를 끼운다. 이때 전 해에 감아둔 새끼줄과 종이는 제거한다. 그러나 돌탑에는 별다른 제의를하지 않는다. 길산제는 산제에 비해 간략하고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다. 제의는 산제에서 치러진 순서와 같지만 독축과 소지의 과정이 없다. 산제와 길산제의 모든 제의는 대체로 밤 12시 무렵에 마[무리](/topic/무리)된다.

산제와 길산제 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음복](/topic/음복)례를 행한다. 이것은 마을 동회를 겸하는 자리이다. 마을 사람들은 간밤의 산제 및 길산제에 올린 제물과동회를 위해 마련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1970년대 전까지는 마을에서 돼지를 잡아 산제를 지냈기 때문에 정월대보름날 아침에는 돼지고기와 떡 등을 조금씩 담아 집집마다 나누어 주기도 하였지만 최근에는 산제 음식이 많이 간소화되고 돼지를 잡는 일이 없어지면서 그러한 풍속도 사라[지게](/topic/지게) 되었다.
지역사례[마을](/topic/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의 사례는 전국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무주군은 전북 동부의 산간지대에 위치하여 평야지대에서 행해지는 마을제의와 구별되는 산신제의사례가 많이 남아 있다. 무주군에서는 정월 초 무렵부터 대보름을 사이에 두고 무주읍을 비롯하여 설천면 적상면 안성면 등지에서 마을단위로 산신제 산제 당산제 등 의례가 전승되고 있다.
지역사례[마을](/topic/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의 사례는 전국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무주군은 전북 동부의 산간지대에 위치하여 평야지대에서 행해지는 마을제의와 구별되는 산신제의사례가 많이 남아 있다. 무주군에서는 정월 초 무렵부터 대보름을 사이에 두고 무주읍을 비롯하여 설천면 적상면 안성면 등지에서 마을단위로 산신제 산제 당산제 등 의례가 전승되고 있다.
의의내창[마을](/topic/마을)산제는 산신제(산제)와 [거리제](/topic/거리제)(길산제)가 결합된 유형으로 마을 사람들은 이 산제와 길산제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빌고 마을 주민들의 단결을 도모하고있다. 내창마을산제는 산간지역 마을신앙의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마을](/topic/마을)지킴이·정악 (전라북도, 2004)
잿들, 산 위에 들을 일구다 (국립민속박물관, 2008)
의의내창[마을](/topic/마을)산제는 산신제(산제)와 [거리제](/topic/거리제)(길산제)가 결합된 유형으로 마을 사람들은 이 산제와 길산제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빌고 마을 주민들의 단결을 도모하고있다. 내창마을산제는 산간지역 마을신앙의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전라북도 [마을](/topic/마을)지킴이·정악 (전라북도, 2004)
잿들, 산 위에 들을 일구다 (국립민속박물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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